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우리 궁시(弓矢)는 민족의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활은 구석기 시대부터 총 같은 화약병기가 출현한 이후에까지도 두루 사용해온 도구이자 무기로, 선사 시대에는 생존을 위한 수렵활동의 도구로서, 또는 마을을 지키기 위한 무기로서 사용했고, 최근에는 국궁이라 하여 하나의 스포츠로서 자리 잡고 있다. 2011년 개봉한 김한민 감독의 영화 <최종병기 활>을 통해 친숙해진 활. 궁시장(弓矢匠).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이다. 활을 만드는 장인은 궁장(弓匠), 화살을 만드는 장인은 시장(矢匠)이라 한다.
옛날부터 우리 민족은 활을 가까이했고, 중국이 우리 민족을 동이족(東夷族)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활을 잘 쐈다. 고구려를 세웠던 주몽, 태조 이성계는 물론 자신의 시조에서 활과 칼을 읊은 충무공 이순신까지 많은 위인들과 함께했던 활은 현재 유일하게 맥이 끊기지 않은 전통무기 제조 기술 장인이다.
우리 활의 역사는 대략 3,000년 전후로 추정되며, 모양에 따라 직궁과 만궁으로 나누고 재료 쓰임에 따라 목궁, 각궁, 철궁, 철태궁 등으로 나누며 재료의 수에 따라 단일궁, 복합궁, 크기에 따라 장궁, 단궁 세기에 따라 강궁, 연궁, 용도에 따라 예궁, 정량궁 등과 활의 장식에 따라 붉은 칠을 한 동궁, 검은 칠 한 노궁 등으로 분류된다.
<각궁>
과거 궁시가 가장 크게 발전한 시기는 삼국 시대였다. 삼국 시대는 고대사회로 정복전쟁이 빈번했고, 자연스럽게 무기가 발달했다. 이때 등장 한 것이 바로 각궁이었고, 각궁을 가장 먼저 사용한 나라는 고구려로 유물과 고분벽화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무소뿔과 소 힘줄로 만든 각궁(角弓)은 화살을 300~400m까지 날려 보낼 정도로 탄력이 좋아 원거리 사격에 용이해 전쟁에서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 활은 현재 우리나라 외에는 세계 어디에서도 만들 수 없는 기술로 전해지고 있다.
<궁시장 유영기 선생>
궁시장은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됐다. 현재 궁시장 보유자로는 유영기 선생, 박호준 선생, 김종국 선생 등 3명이다. 유영기 선생은 1936년 현 DMZ지역인 장단에서 태어났다. 장단은 조선 이해 경기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화살이 만들어지던 곳으로 선생의 집안은 유명한 화살 제작 가문이었다. 선생의 선친인 유복삼 선생은 국내에서 최고의 장인이었으며, 현재 아들인 유세현 선생도 전수조교로 활동하고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화살제조 기술을 익힌 선생은 한국전쟁 이후 파주로 전방을 옮겨 전통 기술을 계승했다. 이후 입으로만 전해지던 전통 화살 제작 기법을 등사판으로 100부의 문서로 만들어 책을 출간, 우리 화살 제조 기술을 책으로 출간했다.
<유영기 선생의 효시 장전 액자>
박호준 선생은 전 보유자 故 박상준 선생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생은 화살만 만들고 있는 시장(矢匠)이다. 박호준 선생의 집안도 3대로 이어지는 장인 가문으로 중요무형문화재였던 박상준 선생의 아들로 일찍부터 전통 기술을 전수 받았다.
<궁시장 김종국 선생>
김종국 선생은 1938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전남 여수에서 성장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생계 방편으로 경남 마산에 있던 전방에서 화살 제작에 입문했다. 이 곳에서 전 보유자 조명제 선생으로부터 기술을 연마했고, 이후 전국에서 활을 가장 많이 생산하던 경북 예천으로 옮겨 제시업을 시작했다. 지난 2008년 박호준 선생과 함께 궁시장 보유자로 지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