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쓰면서 작가가 느꼈던 생각들
* 월남참전 한국군에 관하여 감히 평가한다면 그들은 전쟁의 또 다른 승리자이다. 내 글이 보여 주듯이 한국군은 미군과 전쟁파트너로 그들과는 또 다른 내용의 참전 일지를 썼다. 그리고 “월남 파병의 목적”을 암기하고 구호로 외치며 전선으로 달려갔던 우리들은 하나가 되어 피와 땀을 흘렸다. 그 피와 땀은 젊은이들의 순수하고 고귀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세계 평화와 조국의 경제 발전”이라는 파병의 목적을 이루었기 때문에 베트남전 참전 한국군은 자랑스러운 승리자이다.
* 그러나, 진정한 승리자가 되기 위한 길은 그렇게 단순하지 만은 않다. 우리의 정당성을 주변에서 이해하고 인정해 주기 전에는 아무리 올바른 요구라 해도 불평으로 들리고 때로는 꼴불견이 될 수 있다. 내 요구의 정당성은 상대방이나 주변인들이 함께 그 정당성을 동조해 주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된다. 전쟁이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하고 쉽게 상처가 아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처는 참전자인 우리들에게도 있지만 베트남인들에게는 더 많이 있을 수 있다. 내가 또는 우리들이 입히고 온 그들의 상처를 위하여도 우리는 생각해야 된다. 이미 많은 베트남인들이 이 땅에 들어와 있다. 이것 또한 우리에게는 좋은 기회이다. 베트남에서 자매마을이나 형제부대로 다가갔던 우리들이 다시 한 번 그들에게 다가갈 기회인 것이다. 진정한 승리자는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는 자가 아니라 내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올바른 일에 헌신하는 자라는 생각이 든다.
* 처음에 작가가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개인적인 회고의 목적이었지만 글을 정리하면서 목표가 새롭게 정립되었다. 글을 쓰면서 베트남과 베트남전을 바르게 이해하였고 우리 민족과 유사한 현대사를 경험한 그들이 우리에게는 큰 교훈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우리의 한반도는 아직도 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음도 보았다. 작가가 경험한 베트남 전선은 우리나라와 같은 철저한 반공 이데올로기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다. 이미 무너진 공산주의의 망령에 아직도 사로 잡혀 있는 우리 민족의 집착성 우매함의 치료를 위하여 그들로부터 한 수 배워야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 한국역사상 최초의 해외 파병 32만 베트남 참전군의 위상을 고려하여 긍정적인 시각에서 참전의 의미를 세상에 말하고 싶었다. 어떤 행위가 진정 평화를 위한 것인지도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가 온정의 사랑을 베풀며 잘 한 일들이 우리 민족의 긍지로 기록될 뿐만 아니라 강대국들을 포함한 세계의 모든 민족들이 함께 본으로 삼는 미래 지향적인 교훈이 되기를 원했다. 영어 본을 동시에 만든 것은 전쟁의 주역이었던 미국인들이 전쟁 파트너였던 한국군이 어떠한 조건에서 어떻게 그 역할을 했었는가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삼백만 명의 베트남인 사상자는 전쟁의 비극을 말한다. 그들 외에 또 다른 전쟁의 피해자인 보트 피플의 이야기는 가슴 아프다. 그들의 상처가 빨리 치유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힘없는 한 여인의 보상 없는 억울한 죽음을 보았었다. 전쟁터 월남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69, 9, 23-24)
또 하나 밀림의 자연에서 평화스럽게 살던 산족 소수민들이 때로는 이리저리 전쟁을 피해다니고 일부는 새로운 정착지에 마을을 이루며 살게 되면서 그들에게 많은 생활의 변화가 왔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들은 과연 전쟁의 수혜자인지 피해자인지 궁금한 연구 대상이다.
* 나는 개인적으로 베트남인들을 좋아한다. 말과 문화와 그들의 생활을 체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프랑스나 미국 같은 강대국들과 자력으로 싸워 이긴 강한 민족정신도 존경이 간다. 그들은 통일을 위하여 엄청난 노력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 자원이 풍부하고 아름다운 나라에서 그들은 복을 누리며 평화롭게 살 자격이 있다.
* 베트남 민족이 호지명이라는 지도자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다. 공산주의자로 알려져 있던 그가 공산주의에 매달렸더라면 베트남도 우리나라와 똑 같은 불행을 겪었을 것이고 지금도 그럴지 모른다. 그는 공산주의 대신에 민족주의를 택하면서 좌나 우에 치우치지 않는 지도자로 전민족의 지지를 받았다. 그는 이미 공산주의가 몰락할 것을 깨닫는 선견지명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덧붙여 청렴결백과 자기희생이 그를 큰 지도자로 돋보이게 한다.
* 미국이 스스로 패전을 인정하면서 베트남참전미군이 패잔병이 되어 숨죽이고 지내는 모습이 안타깝다. 그러나 내 판단으로 그들의 상처는 두 세대 정도의 세월이 가면 새로운 시각의 전쟁 평가가 이루어지면서 영광의 상처로 바뀔 수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들이 결코 전쟁에 패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미국이 승리자가 되는 방법도 생각해 두었다. 그러나 아직은 내가 사실을 알려 주어도 그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 할 것이다. 물론 내가 미국인이 아니고 미국인들 스스로 해결할 문제이기도 하다.
* 나는 처음에 미국이 베트남전을 승리하지 못하는 것은 엄청난 정글이 첫째 원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다수의 베트남인들이 그들의 적은 VC가 아니라 미국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데서 그 해답을 얻었다. 베트콩들은 동족을 포섭하며 그들을 적으로 만들지 않고 생업에도 지장이 없게 하였다. 베트콩은 민간인 동족들에게 결코 총을 쏘지 않았고 민간인들은 그들을 피해 도망갈 필요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지지를 받았고 미군이 철수하자 곧 전쟁도 끝나고 무리가 없는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 본문에서 나는 미군과 베트콩의 싸움을 사자와 모기의 싸움에 비유했는데 두고두고 그럴듯한 비유라고 생각해 왔다. 아무리 힘이 세어도 사자가 모기와 싸워서 이길 수 없고 체면만 구길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 한글본과 영문본을 내 손으로 완성하게 된 지금 나는 대필을 통해서라도 베트남어 판을 완성하는 것이 희망이다. 세상에 나가는 것이 늦은 감이 있지만 내 글은 논픽션으로서 시간을 초월하여 그 가치를 인정하는 귀한 독자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나는 스스로 이글을 박사학위 논문으로 생각하고 정리하였다. 그래서 한 때는 이 글의 부제로 The Last Report (마지막 보고서)로 붙여 보기도 하였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월남전에 관하여 많은 공부를 하였고 아직도 궁금하고 알아야할 점은 많이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월남전에 관한한 언제 어디서나 장시간 강의할 능력이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기타 참고사항
* 월캄전우회는 참전당시 캄란반도 해상 10km 지점의 남방섬 기지 소총소대원들의 모임이다. 나는 처음에 그들과 함께 월남생활을 시작하였다. 현재 27명이지만 앞으로 더 많은 전우들을 찾게 될 것이다. 9월24일 잠실실내체육관 참전 기념일 행사에서 월캄전우회가 도서판매를 주관하고 그 수익금은 불우한 참전전우와 불우한 월남전 관련 베트남인 돕기에 사용하기로 하였다. 앞으로 전우회 회원들이 단합하여 돕기 사업은 계속될 것이다.
* 2005년 4월 30일 승전 30주년 기념사에서 판 반 카이 수상은 과거 베트남전에 참여했던 나라들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유대관계를 증진시키기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발표하였다.
지금 우리나라와 베트남은 주요 교역국이며 많은 베트남인들이 한국인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대학 입학 수학능력 시험 과목으로 베트남어가 채택되어 있기도 하다. 김대중, 노무현 , 이명박 대통령이 재임 중에 베트남을 방문하였고 이제 박근혜 대통령도 방문하여 양국간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