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민출신 첫 인도대통령 코체릴 나라야난
“모든 이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
사부(師父)인 마하트마 간디의 혼과 외침을 가슴에 새기고 행동...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동고(同苦)하는 마음’이다”
취임 3개월 후인 1997년 10월 코체릴 나라야난 대통령을 예방한 이케다 다이사쿠 회장.
두 사람 모두 청년의 미래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
인도의 나라야난 대통령과는 불가사의한 인연이 있다. 내가 명문 네루대학교를 방문했을 때, 중심이 되어 환영해준 분이 당시 그 대학의 부총장을 맡고 있던 나라야난 대통령이다.
1979년 2월, “오늘은 하루만 교수가 되어주세요” 하고 상냥하게 말하는 부총장에게 “아닙니다. 하루만 학생입니다”라고 대답했더니 부총장은 파안대소했다. 웃는 얼굴에서 꾸밈없는 따뜻한 인품을 엿볼 수 있었다.
일본어를 배우는 여학생 네 명이 일본 동요를 정확한 발음으로 불러주었다. 장내에 박수가 울려 퍼졌다.
내가 “저 네 명의 학생에게는 최고의 성적을 주세요”라고 교수진에게 ‘긴급 제안’하자 부총장도 학생들과 함께 손뼉을 치면서 웃었다.
어느 남학생이 손을 들고 내게 말했다. 들어보니 창가학회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취득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즉각 부총장이 “저 학생에겐 이케다 회장님이 ‘연구대상’입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합니다!”라고 했다.
부총장은 인간미 풍부한 부드러움을 겸비하고, 두뇌회전이 빠른 분이었다.
부총장에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전에는 쭉 외교관으로서 활약하며 타이·터키·중국 대사 등을 역임했다고 한다. 신혼 시절에는 일본대사관에서도 근무했다.
두 번째 대담 때 그는 “큰딸은 일본에서 태어났습니다” 하고 가르쳐 주었다.
네루대에서 뵌 지 16년 후인 1995년 12월 “일본에 갑니다. 뵙고 싶습니다”라는 연락을 받고 도쿄에서 맞이했다. 당시 부통령 시절이었다.
“딸이 여덟 살 때, 시 백일장에서 장원하여 네루 총리에게 직접 상을 받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국외 전근이 결정되어 딸도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딸을 데리고 총리를 찾아갔더니, 총리는 딸의 시를 읽고 ‘훌륭해, 훌륭해. 이미 잡지에서 읽었어요’라고 하셨어요.
그 자리에는 많은 학생이 모여 있었습니다. 네루 총리는 제 딸을 옆으로 불러 시를 낭독하게 했어요. 그 광경은 정말 ‘시상식’ 같았습니다.
제가 네루 총리에게 가장 감명 받은 것은 바로 그 ‘인간성’입니다.”
불가촉천민 출신의 첫 인도 대통령
물레틀 옆에 앉은 마하트마 간디.
저널리스트 출신인 나라야난 대통령은 마하트마 간디를 인터뷰하며 기자시절 최고의 절정기를 맞았다.
권력을 휘두르는 지도자가 있다. 인간성을 겸비한 지도자가 있다. 마하트마 간디의 직제자인 네루 총리는 사람 마음의 미묘함을 아는 사람이었다.
나라야난 대통령은 자신을 ‘인도의 민초(民草) 출신, 인도의 흙먼지와 염열(炎熱) 속에서 태어났다’고 표현한다.
코체릴 라만 나라야난(Kocheril Raman Narayanan, 1921~2005) 전 인도 대통령은 인도 남단에 있는 케랄라 주(州)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긴긴 세월 동안 차별받아온 최하층 출신이었다.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이라 불리며, 인간 이하의 학대를 당했다. 여성이 상의를 입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곳도 있었다.
그는 7형제 중 넷째다. 아주 가난해서 굶주림에 시달렸고, 집에는 욕실도 없었다.
학교에 가려면 편도 7㎞를 걸어야 했다. 장마에는 발목까지 진흙탕에 잠겼다. 그 먼 거리를 늘 무엇인가 읽으면서 걸었다. 책을 살 수 없어서 눈에 띄는 신문이나 책을 닥치는 대로 읽고 메모했다.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나라야난 소년을 위해 형과 누나들은 초등학교마저 포기했다. 그래도 학비를 내지 못해 복도에서 벌을 서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런 굴욕에 지지 않고 소년은 교실 밖에서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정말 외교관은 뻔뻔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어린 시절에 사람들 앞에서 벌서는 건 좋은 훈련이었습니다.”
대통령이 얘기하면 고생담까지도 밝아진다. 강한 분이다. 어린 시절 얘기를 하는 일이 거의 없는 것 같은데, 대통령의 가슴속에는 학대받아온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활화산처럼 타고 있다.
도쿄에서 대담한 후, 나라야난 부통령은 히로시마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동고(同苦)하는 마음’입니다. 세계의 어느 곳이든 잔학한 행위, 슬픈 사건을 보면 ‘어쩌면 나 자신이 그런 피해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타인을 위로하는 마음을 지닌 인간을 육성하는 교육이 중요합니다” 하고 심경을 밝혔다.
그리고 저 유명한 간디의 말 “전 세계 모든 이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내고 싶다”는 인류의 누군가의 고통은 내 고통이라고, 지도자가 모두 이 마음을 소유해야 한다고 인용했다.
나는 은사께서 “이 지구에서 ‘비참’이라는 두 글자를 없애고 싶다”고 하신 말씀을 떠올렸다.
간디는 불가촉천민 제도를 마음속 깊이 증오했다. ‘이것은 악마가 만든 제도’라고 규탄하고 불가촉천민을 ‘하리잔(신의 자녀들)’이라 부르며 사랑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만약에 태어난다면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나서 그들의 고통, 슬픔, 굴욕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나라야난 소년은 간디가 만든 ‘하리잔 장학금’을 받아 공부를 계속했다. 고생고생하며 대학도 수석으로 졸업했다. 뛰어나게 우수했으나 출신 때문인지 원하는 직업을 얻을 수 없었다.
고향을 떠나 저널리스트가 되었다. 기자 시절 최고의 정점(頂點)은 간디의 인터뷰였다.
극도로 긴장하고 찾아갔는데 하필 점심식사 중이었다. 더구나 방안에는 인도의 거의 모든 수뇌가 모여 있었다. 게다가 간디는 ‘침묵의 날’이라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하트마는 일개 새내기 기자의 질문에 흔쾌히 서면으로 답변했다. 나라야난 기자가 돌아가려고 방을 나서는데 누군가 불러 세웠다.
간디가 “저 청년에게 점심식사를 대접하라” 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충격이 온몸을 관통했다.
간디는 ‘수척하고 허기진 듯한 청년’이 질문하는 동안 자신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는 점을 미안하게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어쩌면 이토록 훌륭한 배려인가! 질문에 대한 훌륭한 답변보다도 이 ‘마음’이 바로 오늘 최고의 수확이다!
어린 시절부터 항상 모욕만 받아왔기 때문에 청년은 타인의 마음에 매우 민감했다.
‘나는 잊지 않겠다. 이 마하트마의 다정함을. 내 평생 잊지 않으리라!’고 다짐한 이때 청년은 스물넷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 후에 이 청년이 인도의 대통령이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1997년 7월, 독립 50주년이라는 황금 같은 해에 제10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일찍이 간디는 “독립 인도의 대통령은 학대받아온 불가촉천민 중에서 뽑고 싶다”고 소원했다. 그 소원이 실현되었다.
1997년 7월 나라야난 인도 신임대통령이 의회에 참석해 대통령 선서를 한 뒤 취임연설을 하고 있다.
가난하고 차별 받는 백성에서 대통령으로
학식으로 보나, 인격으로 보나, 혁혁한 경력으로 보나, 이보다 훌륭한 사람은 없었다. 선거에서 득표율이 놀랍게도 95%였다.
대통령 취임 석 달 뒤 나는 대통령부로 예방했다. “정말 잘 오셨습니다.” 싹싹하신 대통령이 달려오듯이 내 손을 붙잡고 환영했다.
대통령의 임기는 2002년까지다. 나는 ‘정신의 대국’인 인도가 21세기에는 더욱더 비중을 늘려갈 것이라고 지론을 말씀드렸다.
“미소(美蘇) 두 초강대국시대에는 냉전을 불러왔습니다. 양극단(兩極端) 아래에서는 아무래도 대립하게 됩니다. 3개국이 축이 되어 전 세계를 조화롭게 안정된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할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하고, 거시적으로 본다면 이윽고 미국·중국·인도 3개국이 세계의 중심축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전했다.
중국의 <삼국지>를 예로 들자, 박학한 대통령은 이 책도 잘 알고 “회장님의 비전에 찬성합니다” 하며 웃음을 지었다.
내가 대통령 취임식 연설을 칭찬하자 “사실은 연설은 항상 이케다 회장님의 저서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합니다”라고 하셨다.
나는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따뜻한 격려 감사합니다”하고 답변하니, 대통령은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하셨다.
네루대에서 가졌던 즐거운 대화가 떠올랐다. 대통령을 만나면 언제나 청년 이야기를 한다.
청년 시절의 자신을 소중히 해준 간디, 네루에게 보은하는 마음도 있어서인지 청년의 성장을 늘 염려한다.
취임식 연설에서도 나라의 지도층이 독직(瀆職) 등을 하면 청년들이 ‘냉소와 무관심’에 빠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자신의 이익 따위는 모두 내팽개치고 청년들의 ‘훌륭한 본보기’가 되지 않으면 나라의 미래가 위태로워진다고 단호히 호소했다.
그리고 취임식 연설 서두에 대통령이 한 말은 “나에게는 지금 들립니다! 국부 간디의 목소리가. ‘모든 이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내고 싶다’를 비원으로 삼고 산 사람의 그 목소리가!” 하는 잊을 수 없는 고백이었다.
대통령에게 정치가란, 지도자란, 약한 처지의 서민을 위해, 학대받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치는 사람을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