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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포크아트세상으로 원문보기 글쓴이: 또다른 나
프랑스
1. 세브르 도자기
루이 15세의 연인이며 국정행사에 영향력을 행사한 마담 퐁파두르는 예술품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녀의 권유에 의해 뱅센의 도요를 세브르, 그녀의 집 근처로 이전하게 된다. 그후 적극적인 국왕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1759년에는 왕을 세브르의 주인으로 영접해 '로열 세브르'를 탄생시킨다.
이 때 중국에서 활동하던 프랑스 선교사가 귀국하면서 중국
1750년 세브르는 프랑스의 제일가는 예술가 및 도예가의 집합소여서 마이센처럼 중국식 경질자기의 개발은 이뤄지지 못했어도 제품 출하에는 까다로워 조금의 흠이 있는 것들은 버려졌다. 버려진 자기들이 유출되는 통에 루이 15세는 세브르 외에는 도금이나 에나멜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까지 재정했다고 한다
1780~1800년에는 혁명의 물결을 타고 세브르는 국영화가 되었고 신고전주의 풍의 영국 웨지우드 스타일에 카메오(보석이나 모조품)을 곁들인 것이 디자인을 취급한다. 나폴에옹 시대에는 운치있고 무거운 엠파이어 양식의 디자인이 등장하여 베를린, 빈, 마이센에서도 제작되었다.
1793년경 혁명의 물결속에서 세브르는 위기를 맞아 디자인되지 않은 백색의 자기가 대량 수출되어 영국에서 백색자기에 세브르의 디자인이 그려넣어 생산하기도 하였다.
1800년 알렉상드르 브롱냐르에 의해 다시 살아나 대량생산을 하고 신고전주의 스타일로 제조된다
■ 세브르의 특징
- 사발이나 접시면 귓불 같은장식이 있는지
- 에나멜이 유약 속으로 스며들었는지
- 도금의 품질이 예외적인 느낌을 주는지
- 접시의 경우 실용적인 면과 미적인 가치를 함께 고려하였는지
- 시기별 색의변화 1749 : 청금색 = 세브르 색/1752 : 스카이 블루/1756:연녹색/1757:보라색/1758:장미핑크색=로즈퐁파두르/1763:로열블루
2.파리의 도자기
18세기 말경 높은 수준의 도 자기 공장이 많이 생겼고, 이곳에서 광택없는 도금을 많이 사용하였다.당시의 것들은 에나멜과 도금이 잘 스미지 않아서 시간이 지나면 도금이 닳거나 벗겨졌다.
19C초 파리는 도자기의 황금기 였는데, 이때 역시 신고전풍의 자기로, 파리의 물가를 피해 점토가 발견된 리모주로 공장들이 대거 이동하여 리모주가 프랑스 도자기의 중심지가 되었다.
■ 파리의 도자기특징
- 유약이 단단하여 유리같은 느낌을 주는지
- 에나멜이 유약표면에 있는지
- 도금이 닳은 부분이 있는지
3.샹타이 문양
도자기 애호가인 샹타이 콩데공이 자신의 성에서 유럽귀족의 꿈인 백색자기를 개발하려 했고, 특히 일본 가키에몬을 목표로 하였다. 그는 독일의 마이센, 중국, 일본 자기에서 모티프를 얻어 디자인을 다양화시켰다. 당시 세브르 보호법 때문에 색채 가공만을 염두에 두고 제작하였는데. 이때 나온 붉은 용 무늬 식기세트는 붉은 빛은 산화철로부터 나오는 붉은 색과 금박을 입힌 무늬를 특징으로 한다. 이 방식의 문양을 '샹타이 공작 앙리 무늬'라고 하게 된다. 이외에 가정에서 사용하는 실용기도 만들었으며 작은 꽃다발,정형화된 스크롤 문양, 엮은 밀집등의 무늬를 '상타이 잔가지 무늬'라고 한다.
4.베네치아 베치
경질 자기를 개발한 베치가 금시공사인 프란체스코 베치와 크리스토프 콘라드 헝거각 설립.
특징은 무겁과 유약은 약간 갈색빛을 띠고 있다.
5.도치아(Doccia) 도자기
이탈리아 고급도자기 공장으로 1735년 마르케제 카를로 지노리에 의해 세워졌다. 초기의 도치아는 마크도 없는 회색빛 경질 자기를 구웠다.유럽 도자기 업계중에서도 매우 우수한 자기를 만들면서 위상을 확보해 나간다. 광물학에 관심이 있던 피렌체의 지노리 후작은 원료인 흙이나 발색 연구에 힘을 쏟아 본 차이나를 개발하고 자신의 관할지역인 도치아에 요를 설치한게 된 것이다.
1760년 토스카나 부호의 별장 식기류를 개발하면서 알려진 이탈리안 프루트 시리즈는 도치아 초창기부터 생산되었다. 금색과 푸른색띠가 받침접시 둘레,컵 주위, 안쪽에도 그려져 있고, 하얀 바탕에는 과일과 작은 꽃들이 아름답게 디자인 되어 있는 도치아의 대표작이다.
카르넬리, 카스파니, 레벨리 세 도공에 의해 세워진 이탈리아 세라믹 길드가 1856년 포루타 루피의 설게로 라베노에 공장을 세웠고, 1896년에는 밀라노의 리카르도사와 합병하면서 리마르도 지노리라 불리나 이것을 통상 도치아로 호칭한다. 라베노에 공장이 세워지면서 마욜리카 느낌의 레칼리 장식, 영국식 스타일 장식, 19세기 이탈리아 독립운동시대를 반영한 조각 그림 등을 수작업에 의해 작업한다.
건축가이자 도공인 안드로 비즈가 경쟁사인 도치아와 대등한 위치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1920년 아르데토의 절정기에 리카르도 지노리의 라베노 공장은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한다.
6.덴마크
코펜하겐 도자기
덴마크에서는 프랑스 뱅센과 샹타이에서 일한 도공 후룬제가 코펜하겐에 설립한 것이 첫번째 도자기 공장이고, 독일에서 시집온 왕비 율리안 마리, 화학자 헨리크 밀러가 힘께 1774년 시작한 도자기 공장이 제대로 된 도자기 공장이랄 수 있다.
중국식 가마의 중요성을 인식한 왕비의 적극적인 재정적인 도움으로 운영이 되다가 재정난이 오자 왕실에서 운영을 맡아 국영'덴마크 도자기 제조소'로 탈바꿈 되었다. 100년간 국영으로 운영 후 1858년 민간인이 운영하게 된다.
이 때부터 대중을 상대로 한 자기업체로 방향을 바꾸었고 또 왕의 허가로 '로열'이란 칭호를 얻어 '로열 코펜하겐'이 된다.
초기는 독이릐 마이센의 영향을 받다가 프랑스의 빈, 베를린, 세브르를 모방한다. 식물을 주제로 세피아색,암갈색, 핑크색을 사용한 단색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특징이랄 수 있느데, 이를 반영해 1790년 러시아의 여왕 예카테리나 2세게게 선물하기 위한 도자기 '플로라 다니카(Flora Danica)'시리즈를 만든다.
1802년 러시아 여왕의 죽음으로 미완으로 끝나 덴마크 왕실 소유로 보관되어있다. 이 시리즈는 1735년 스웨덴의 식물학자 카를 본 린네가 '플로라'라는 식물 체계에 대해 쓴 저서를 참고로 저서 안에 그려진 3천종이상의 식물 그림을 모티프로 삼았다.
두번째 '플로라 다니카'시리즈는 는 숙련된 도공들의 제작참여로 1863년 덴마크 공주 알렉산드라와 영국 에드워즈 7세의 결혼 선물로 제작되었다.
코펜하겐의 특징은 코발트 빛을 많이 사용 한 것인데 이를 '블루 플루티드(blue fluted)'-하얀 바탕에 푸른꽃 무늬가 그려진 문양- 라고 하며 이 문양은 '로열 코펜하겐'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다.
그 외에도 고대 중국 도자기 무늬를 이용한
코펜하겐의 특징
블루 플루티드가 있는지
유약이 세련되고 정교하며 흠이 없는지
유약이 광택이 나서 번쩍거리고 옅은 회색을 띠는지
■ 리카르도 지노리의 특징
중국자기의 원료와 독일 제조 기법을 받아들여 이탈리아적인 예술성을 부여하고 칠과 마무리를 하는 것이 라고 할 수 있다.
마욜리카 풍의 도안을 가졌는가, 이탈리아다운 밝음과 고전의 예술성을 담고 있나, 마무리가 독일과 중국의 느낌을 담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7.독일
마이센
5기-1817~
마이센에서는 경쟁을 의식해 도예학교를 설립하여 후학을 양성했고, 이곳의 학생들은 산화된 크롬에서 얻은 초록색을 써서 유약아래 포도잎을 그리는 기법을 성공하게 된다. 이것을 계기로 인상주의적인 꽃무늬를 완성할 수 있게 된다.
1865년에는 기존의 알프레히츠 부르크성에서 마이센에 있는 트리뷔시탈로 공장을 이전하고, 1.2차 대전에서 마이센은 구동독에 편입된다.
마이센 도자기의 특징
푸른 쌍검 마크
마이센의 역사를 구분해 누구시대의 자기인지 확인함
중국상인이 그려진 그림인가,조각상이 따로 되어 있는가,표정이 약간 딱딱하고도 세밀한가, 바닥위에 꽃이나 로코코 스크롤이 있는가 확인.
상표가 바닥부분에 없으면 뒤나 옆에 있는가 체크한다.
빈도자기
1717년 빈에서 두 파키에르는 자기굽기에 도전한다. 당시 기술적인 능력이 부족해서 마이센에서 크리스토퍼 헝거라는 도공을 빼와 기법을 전수받으려 했으나.헝거는 도자기 제조 기법을 잘 알지 못했다. 그다음으로 베트거의 조수이자 가마 축조 주임인 슈탈처를 데려왔으나 합스브르크가의 재정적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1920년 슈탈처는 헤롤트를 데리고 마이센으로 떠나 버린다.
그러나 그간의 공정을 지켜보던 두 파키에르는 스스로자기를 제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기법이 경쟁자인 회히스트, 루트비히스부르크, 엘방겐에게 누출되어. 1744년 두 파키에르는 공장을 오스트리아 정부에게 넘긴다.
1784년 까지 두 파키에르의 디자인으로 생산이 이뤄진다. 그 후에도 로코코 스타일의 탁자를 만들기 시작하였고, 오스트리아 정부의 요청으로 마이센 기술자로부터 도움을 얻기도 했으나 1784년 자금난을 겪는다.
총감독 소젠탈은 로코코 스타일을 버리고 신고전주의와 프랑스 세브르 스타일로 바꿔 딱딱한 배경과 색깔과 도금 및 스크롤 기법을 사용했다, 1864년 문을 닫기까지 미래지향적 디자인을 추구한다
■ 빈 도자기 특징
초기 - 유약이 얇고 초록빛이고조각상의 경우 불균형한 느낌을 준다
중기 - 경질의 회색빛, 유약은 희고 유리처럼 빛나는 성향. 조각상에는 숫자나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말기- 1784년 이루의 것에는 제작 일자가 새겨져 있고 신고전주의 스타일을 유지하며 배경 색깔이 하나 이상이다
3.회히스트 도자기
1736년 마이센의 화가 아담 프리드리히 폰 로웬휭크가 빚 독촉에 도망쳐 마인츠로 떠나게 되는데, 1746년 두명의 프랑크프르트 상인의 후원으로 제후의 허락을 얻어 회히스트 도자기 공장을 연다. 이곳의 제품들은 아름답고 개성있는 제품들이 많아 유럽도예사에 많은 기여를 하는데, 1750년까지 소량 생산하다, 후원자들이 떠나면서 1796년 문을 닫게 된다. 단명한데다 소량생산이어서 이곳의 것들은 희소성면에서 가치있게 여겨진다.
회히스트 도자기의 특징
독특한 작품으로는 로코코 스타일의 차주전자가 있고, 이 제품은 뚜껑의 꼭지 부분이 꽃봉오리 모양이며 손잡이가 새가슴뼈 모양이면서 손가락 두 개를 올려놓을 수 있는 자리가 있어 섬세하고 신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