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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령지맥 2구간
x83.1m-x96.1m-△116.4m-고봉동 구지산단-x102.4m-x113.9m-구지면 소재지 범안골마을 입구-x392.1m-재니산(407.1m)-△406.7m-x236.3m-x227.2m-x257m-석문산(242.8m) 왕복-진등산(281.5m)-△280.2m-도동나루
도상거리 : 9.1km 석문산 왕복0.6
경남 창령군 대합면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현풍면
도엽명 : 1/5만 남지
재니산 오름이 아주 가파르나 이 구간 전체적으로 편안한 구간이고 임도가 많다
1/5만 지도 크게 보기
◁산행 후기▷
2018년 1월14일 (일) 미세먼지 아주 심함
덩달이 본인 2명
언급한대로 지난 7일 우봉지맥 완주 후 왕령지맥 2구간 일부를 종주한 상태였기 때문에 오늘은 오전이 나머지 왕령지맥을 완주하고 차량으로 대구 상리동 일대로 이동 후 청룡지맥 2구간을 마치기로 약속하고 대전에서 합류 후 04시30분 들머리로 달려간다
한 며칠 영하 15도 이상의 대단한 한파에 시달린 탓이라 영하 7~8도는 별거 아니라고 했지만 그래도 이른 시간 추위를 느낀다
일찌감치 도착해서 큰 도로 뒤 범안골마을 입구 좌측 메기매운탕 식당 옆에서 기다리다가
07시 아직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마을을 지나면서 산행시작이다
곧 넓은 길은 좌측 골자기 쪽으로 버리고 우측의 능선으로 올라서니 밭과 무덤지대를 지나 숲으로 들어서며 올라서니 어둠 속에서 길은 없지만 잡목의 저항 없이 치고 오른다
이후 우측 대동이구마을 쪽으로 흘러내리는 능선 쪽 무덤지대가 나타나면서 뚜렷한 족적이다
잠시 후 해발150m 일대부터 아주 된비알 오름이 시작되고 소나무들 아래 울툭불툭 바위들이 보이더니 더 뚜렷한 족적이 나타나지만 여전히 가파르다
출발 30분후 석축에 흙이 드러난 봉분의 무덤이 나타나니 해발 약300m 정도고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상태지만 곧 가팔라지면서 여기저기 희미한 석축만 보이는 폐 무덤 흔적들이다
족적은 x392.4m로 바로 오르지 않고 좌측사면으로 이어지니 그냥 따르니
07시40분 x392.4m에서 내려선 지점에서 북서쪽 오름이다
▽ 구지 면소재지 쪽을 보며 어둠속에서 산행 시작이다
▽ 무덤지대에서 현풍 쪽을 보니 비슬산이 보인다
▽ x392.4m
07시46분 숲 아래 공터를 이루며 의자 두 개가 설치된 재니산 정상에 올라서니 북동쪽으로 비슬산이 보인다
재니산은 원래 대니산(代尼山)이었으나 연산군 때 한훤당 김굉필이 이곳에 거주하게 되면서 성현인 공자의 자인 중니(仲尼)에서 니(尼)는 그대로 살리고 대신할 대(代)를 일 대(戴)로 고쳐「공자를 받드는 산」이라는 의미인 대니산(戴尼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것이 변하여 태리산(台離山) 또는 제산(梯山)이라고 불리기도 하다가 일설에는 예전에는 한자로 태리산(台離山)이었으나 이 산 아래 현인군자가 많이 나서 중국의 니구산(尼丘山)과 같다 하여 재니산(載尼山)이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지명에 따라 솔례산 구지산이라 하며 봉우리가 높고 빼어나 수리산이라고도 하며 신라 때 큰 절이 있었으므로 금사산 이라고도 한다
오늘은 미세면지가 아주 심해서 아침부터 조망은 답답할 정도고 얼마나 미세먼지가 심했던지 서울의 다음 날 출근시간 대 대중교통의 요금을 받지 않는 그런 정도였다
07시56분 정상을 뒤로하고 몇 걸음 내려서고 4분후 살짝 오르니 KT기지국과 대구 TBC TV 중계국 시설이 있고 오르는 시멘트 길이다
삼각점은 당연히 중계소 시설 안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냥 우측의 진입도로를 따라 간다
그러나 먼저 간 일행이 삼각점 확인을 하고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다시 내려선 나타난 시설물 위로 올라서니 헬기장이다
여전히 비슬산과 북서쪽 가야산도 조망하고 바로 능선으로 내려서는데 좌측의 임도를 따라도 무방하겠다
헬기장에서 능선으로 들어서면 금방 납작 무덤 하나를 지나 뚝 떨어져 내려서니 좌측에서 온 기지국 진입도로를 만난다
▽ 재니산 정상
▽ 저 위 삼각점인데 못 들어가는 줄 알고 오르지 않았다
▽ 두 번째 헬기장 활공장
▽ 비슬산을 보고
▽ 가야산을 당겨 보고
▽ 돌아본 삼각점봉 돌아보니 오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임도를 따르다가 좌측으로 돌아가는 임도를 버리고 숲으로 들어서서 2분여 올라서서 내려서려니 뚜렷했던 족적은 사라지고 송림아래 잡목의 저항은 없지만 낮게 가지를 드리운 소나무가지로 고개를 숙이며 고도를 줄이며 내려선다
08시22분 다시 임도를 만나서 몇 걸음 더 진행하니 전신주 체욱시설 의자가 설치된 임도갈림길인데 진행방향 임도는 남쪽 사동마을로 흐르는 지점 대니산 정상1.3km 수리2리1.8km 도동서원6.8km를 알려준다
삼각점에서 나를 기다리던 일행과 연락이 되어 추위에 떨며 일행을 기다리다가 08시31분 뒤에서 소리가 들리니 천천히 걸으며 합류하기로 하고 우측의 임도를 따른다
7분후 우측으로 비켜난 x244.8m분기점 오름 직전이나 올랐다가 금방 내려설 것이니 무시하고 임도를 잠시 따르다가
08시42분 x244.8m분기점에서 내려선 지점에서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산으로 올라선다
무덤가는 길인 듯 넓은 길이 보이지만 좌측사면으로 사라지고 그냥 오르는 곳에는 키 큰 아카시나무들도 보이더니 봉분의 흔적과 석축만 남아있는 아주 오래된 무덤을 지나 금방 올라서니 특별할 것 없는 x236.6m다(08시47분)
살짝 우측으로 틀어 송림아래 잡목들이나 큰 저항 없이 내려서노라면 우측아래 돌아온 임도가 보인다
08시52분 급격하게 내려서면 절개지를 이룬 임도삼거리고 우측아래 대니산 정상2.9km↔도동서원5.6km 좌측 오설리2.4km의 이정표다
▽ 임도에서 올라서서 가야할 능선을 보고
▽ 다시 임도에 내려선 후 삼거리에서 우측의 임도를 따른다
▽ 돌아본 x244.8m분기점에서 내려선 지점
▽ x236.6m
▽ 오설리고개 임도 이 일대에서 담비를 보았다
▽ 오설리고개에서 날 등의 우측 바로 아래 임도를 따른다
아래서 짐승의 울부짖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서 그 아래를 살펴보며 소리를 질러보는데 내가 내려섰던 절개지 쪽에 뭔가 보여서 사진을 찍으려니 휙 달아나는 노란색의 짐승은 한 10년 전 백덕지맥 종주 때 보았던 담비 같다
무리중에 짐승을 잡아 죽이는 소리같고 사람소리가 들려서 측후병(?) 역할을 한 놈이지 않나 하는 나 혼자의 생각이다
절개지 앞의 약230m로 올라서야 하겠지만 우측아래 임도를 따라간다
임도를 따른지 5분후 임도가 우측으로 빙 돌아갈 때 좌측으로 오르는 뚜렷한 족적이 있어 날 등으로 올라서서 잠시 내려서고 북쪽으로 잠시 올라선 우측 사방지 방향 능선 분기점에는 풀밭에 문패 없는 무덤 하나가 보이고 내려서면 다시 우측에서 돌아온 임도를 만나지만 역시 작은 봉우리 하나를 올라야 하지만 금방 내려설 것이니 그냥 오름의 임도를 따른다
09시26분 임도를 버리고 임도 우측 송림아래 3분여 올라서니 별 것 없는 x227.2m 다
송림의 평탄한 능선이다가 잠시 오르고 내려서려니 봉분이 큰 무덤의 주인은 瑞興 金公에 配 善山 金氏 명찰(?)을 달고 있고 좌측 가깝게 임도가 따라오지만 그냥 능선을 따른다
잠시 후 좌측(남) 오리마을 쪽 능선 분기점이고 그 쪽 능선으로도 큰 봉분의 무덤이 보이더니 우측으로 살짝 틀어 내리면 돌아오는 임도를 만난다
임도에서 좌측으로 보니 역시 낙동강 건너 보이는 산은 칠봉지맥의 청룡산으로 보인다
▽ 마루금의 우측으로 돌아가는 임도를 보며 멀리 미세먼지 속 청룡산
▽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올라선 x188.2m 능선 분기점을 살짝 지난 우측 능선 분기점
▽ 임도를 버리고 3분여 올라서면 x227.2m
▽ 다시 임도롤 내려서기 전 서흥 김공 뚜렷한 무덤이다
▽ 임도로 내려선 후 좌측 오리골 저 편 낙동강 건너 칠봉지맥 청룡산이다
북서쪽 오름의 임도는 목책들과 함께 도동서원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로 조성되어 있고
09시42분 x257m 정상 우측아래 임도에는 우측 다람재0.9km 대니산 정상5.6km↔도동서원3.4km를 알리는 이정표다
좌측으로 올라선 x257m 정상 역시 별 것 없고 내려서면 다시 임도를 만나면서 서쪽으로 슬그머니 오르는 임도며 임도의 정점인 좌측능선 분기점에는 의자가 설치되어있다
의자에서 5분후 임도상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는 오설리0.9km 갈림길을 지나자말자 잠시 후 다시 좌측 석문산 분기점에는 석문산성0.3km 도동서원2.6km의 이정표다
살짝 내려선 곳에 배낭을 내려두고 남쪽으로 내려서며 석문산으로 향한다
남쪽으로 내려서다가 남서쪽으로 오르면
10시03분 郡威 方氏 묘역이 자리하고 있는 석문산 정상이고 묘역 옆으로 석축들의 흔적이 산성의 흔적인 듯싶다
도동리 석문산성(石門山城)의 축조시기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자료는 없지만 성의 북동쪽에서 죽곡리산성(竹谷里山城)이나 문산리산성(汶山里山城) 등에 있는 것과 유사한 돌무지 망대가 확인된다는 점에서 삼국 시대의 산성으로 추정된다
석문산(石門山)과 진등산(陳登山) 기슭이 맞닿은 협곡 절벽 전면에 우뚝 선 암석이 문처럼 보인다고 하여 석문산성(石門山城)'이라고 한다
다시 임도로 돌아 나와서 막걸리 한잔에 숨을 고르고 10시18분 출발이다
▽ 오르며 돌아보며 줌인 한 재니산 쪽인데 육안으로는 잘 보였지만 사진은 중앙 희미하다
▽ x257m 정상 우측아래 임도의 이정표 갈림길
▽ x257m 정상
▽ 임도를 따르다가 좌측으로 비켜난 석문산 정상으로 향한다
▽ 군위 방씨 묘역 위가 석문산 정상이고 일대 산성의 흔적은 미미하다
북쪽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르는 왕령지맥 2구간은 나야 사전 공부를 하지않고 그냥 지도만 슬쩍 훑어보는 스타일이라 이렇게 쉽게 진행할 줄은 몰랐다
10시25분 석문산 분기점에서 7분후 서쪽으로 돌아가는 임도를 버리고 산으로 오르면 넓은 길이고 2분도 되지 않아 通政大夫 驪陽 陳公 淑夫人 密陽 孫氏 잘 가꾸어진 쌍무덤이 자리한 x281.5m의 진등산 정상이다
마루금에서 좌측으로 비켜난 곳에는 月城 孫公이 누워있고 바로 옆에「창녕308 1981재설」삼각점의 △280.2m다
북쪽 낙동강 건너 아까부터 보이던 기산고개로 이어지는 칠봉지맥의 x357.1m봉과 그 우측으로 비죽한 제석산(△385.3m)을 보며 마루금에서 좌측으로 비켜난 뚜렷한 길로 임도로 내려서니 절골마을 분기점 임도에는 체육시설들이다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돌아 가다가 진등산 정상에서 내려서는 마루금의 자락에서 임도를 버리고 북쪽의 숲으로 들어서도 넓은 길이나 본격적으로 내려서려니 넓은 길은 사라진다
▽ 통정대부 무덤 위 진등산 정상은 별 것 없다
▽ 월성 손공 무덤 옆 삼각점의 △280.2m에 진등산 표시들이다
▽ 임도를 버리고 마지막 능선으로 내려선다
임도를 버리고 3분후 넓은 공터를 이루며 큰 비석의 成均進士 東厓 瑞興 金公의 무덤을 지나니 우측으로 바위벼랑을 이루며 조망터가 나타나면서 도동나루 일대 도동서원과 강 건너 제석산과 칠봉지맥의 능선 비슬산들이 조망된다
갈비가 푹신한 송림능선을 내려가다가 진사무덤에서 6분후 파묘 흔적을 지나니 내려서는 능선은 족적이 희미해지고 잡목들이다
마지막 우측에서 오는 무덤 진입로를 만나서 편안하게 내려서고
11시02분 도동나루 위 도로에서 산행을 접는다
인근 도동서원을 둘러보고 기다리고 있던 차량으로 청룡지맥 마지막 구간을 종주하기 위해 대구 외곽으로 달려가면서 현풍시가지 중국집에서 이과두주 한 병 반주삼아 식사 후 들머리로 달려간다
▽ 진사 동에 서흥 김공 무덤을 지나고
▽ 도동서원이 보이고 그 앞 강 건너 x56.4m와 뒤 중앙 큰 산이 제석산 우측 x339.5m
▽ 중앙 큰 산이 제석산이고 좌측이 칠봉지맥
▽ 도동나루 인근 도로로 내려선 후 제석산(뒤) 와 좌측 칠봉지맥
▽ 강 건너 x56.4m
▽ 도동서원
도동서원은 조선 五賢으로 문묘에 종사된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을 향사한 서원으로 1568년 지방유림에서 현풍 비슬산 동쪽 기슭에 세워 쌍계서원(雙溪書院)이라 불렀는데 창건 5년 뒤인 1573년(선조6)에 같은 이름으로 사액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그 후 1604년(선조37)에 지방의 사림들이 지금의 자리에 사우를 중건하여 보로동 서원(甫老洞書院)이라 불렀다
이황은 김굉필을 두고 東方道學之宗이라고 칭송했고 1607년(선조40) 도동서원(道東書院)이라 사액하였으며 마을 이름도 도동리라 고쳐 불렀다
도동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전국 650개 서원 중 철폐 되지 않은 전국 47개 중요서원의 하나로 사림과 후손들의 두터운 보호 하에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서원 앞의 수령 400년이 넘은 은행나무는 김광필 선생의 외증손인 한강 정수 선생이 1605년에 심었다고 전해진다. -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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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지맥 2구간
상리동-△255.3m(상리봉)-△294.2m 지맥 합류-와룡산(299.7m)-x190.6m-x150.5m-신당고개-궁산(250.9m)-x157.2m-x114.3m-강창교
도상거리 : 7km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성군 다사읍
도엽명 : 왜관 대구
1구간 앞산에서 내려선 다음 대구시내구간을 생략한 체 대구시가지 외곽의 와룡산-궁산을 지나는 마지막 산자락구간을 종주하며 청룡지맥 완주를 한다
따라서 전 구간 뚜렷하고 넓은 산책로를 따르게 되는 별도의 중요 설명이 필요 없는 구간이다.
1/2만5천 지도 크게 보기
◁산행 후기▷
2018년 1월 14일 맑으나 미세 먼지 심함
덩달이 본인 2명
오전에 왕령지맥 2구간을 완주를 마치고 이동하면서 현풍시가지에서 중식당에서 반주를 겯들인 식사를 마치고 청룡지맥을 마치기 위해서 이동한다
차량으로 법왕사 위쪽 x126.9m 아래까지 차량으로 들어가서
12시35분 점심 반주의 취기가 살짝 올라온 가운데 산불초소를 바라보며 x126.9m 아래로 올라서면서 산행 시작이다
산불초소에서 능선의 좌측사면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길을 따르니 출발 5분후 법왕사0.55km 진달래군락지3.32km를 알리는 컨테이너시설이 있는 와룡산 넓은 산책로를 따라 부드러운 오름이다
역시 5분여 그렇게 올라서니 오르기로 한 △255.3m와 북쪽 x286.8m 사이의 용리봉1.17km 할아버지봉0.67km 손자봉0.28km↔용두봉2.87km 이정표인데 용의 머리에 해당되는 것이 와룡산 정상을 가르키는 것이라면 거리가 너무 멀다
아무튼 좌측으로 틀어 계단의 산책로를 따라 오른다
12시55분 올라선 넓은 광장 같은 △255.3m에는「대구465」낡은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고 이곳에서는 상리봉 으로 불리우는 모양이다
▽ 대구시가지를 생략한 청룡지맥 산행이 시작되고
▽ 상리봉으로 불리는 △255.3m에 올라서서 와룡산 쪽을 본다
▽ 며칠 간 계속된 지독한 미세먼지로 육안으로 희미하게 보이던 두류산도 사진으로 안 보인다
▽ 송전탑 뒤가 북쪽의 x286.8m 다
대단한 미세먼지로 인해서 대구시가지 쪽도 답답하리만큼 뿌옇고 두류산 정도는 가늠되지만 비슬산이나 앞산은 육안으로만 간신히 보일 정도다
50년이 넘은 아련한 추억을 더듬는 것이 달구벌에서 태를 묻은 이 몸이 유년시절 인근 칠곡면(지금은 대구광역시) 소재 외갓댁으로 갈 때 금호강 건너 저 편에 솟은 산이 와룡산이라 들었고 그 너머 성서에는 50사단이 있어 가끔은 사격하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던 어릴 때 높게 보이던 그 와룡산을 지맥산행 때문에 50년이 넘은 세월 후에 직접 올라보는 기분이란!
또한 저 두류산은 형들 따라 먼 길을 가서 몇 차례 올라갔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넓은 산책로를 따라 가다가 살짝 오르니 좌측(남) 소망모자원0.8km의 갈림길을 지나고 갈림길에서 5분후 넓은 광장과 체육시설에「대구23 1988재설」2등 삼각점이 설치된 △294.2m에 오르니 이곳도 많은 산책객들이다
13시19분 삼각점에서 편안한 산책로를 따라 6분후 안내판과 정상석의 와룡산 정상이다
와룡산(臥龍山)은 가운데 움푹 패여 들어간 부분은 침식에 약한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능선은 단단한 변성암으로 구성되어 있어 말발굽 형으로 형성되었으며 와룡산은 과거 대구의 중심지에 위치했던 경상감영을 등진 채 금호강 쪽으로 향하고 있어 풍수에서는「대구를 거역하는 산」이른바 역산(逆山)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대구에서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으레 와룡산의 풍수적 해석에 근거하여 설명하기도 하였다
와룡산을 용으로 볼 때 용의 머리 부분은 금호강 왼편에 꼬리 부분은 오른편에 위치한다
금호강물에 의해 깎여 만들어진 강가 절벽으로 생김새가 누워 있는 용의 모습을 보인다
「대구읍지」에 와룡산은 부의 서쪽 약 10리쯤에 위치한다
산 아래에 옥연(玉淵) 이라는 연못이 있어 용이 그 못에서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와룡산'이라고 불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설에 의하면 와룡산 기슭에 있는 옥연 이라는 못에 살던 용이 아녀자들이 놀라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승천을 못해 그 자리에 누워서 머무르게 되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 △294.2m
▽ 와룡산 정상
정상에서 북서쪽 3분후 방향을 좌측(남)으로 틀어 가파르게 내려서는 지점은 북쪽 비죽하게 솟은 △262.5m(와룡산) 분기점인데 내가 어릴 때 알았던 와룡산이 저 봉우리다
5분후 내려선 안부는 넓은 쉼터를 이루며 체육시설이고 북쪽 서재리1km 와룡산 정상0.8km을 알려주고 2분도 걸리지 않아 올라서면 남쪽 불미골공원 능선 분기점이다
잠시 후 의자에 앉아 막걸리 한잔에 7분간 숨을 고르고 출발이다
13시41분 잠시 오른 의자와 안내판의 서재초등학교 쪽 분기봉에 올라서니 전면으로 궁산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우측 아래로 서재리 아파트들이다
차량이 다닐 정도의 넓은 산책로를 따라 3분도 걸리지 않아 체육시설과 쉼터의 x190.6m에서 내려서는데 북쪽 서재리 저편 금호강 건너 박산(218.5m)이 보이는데 그 좌측은 황학지맥의 용산(244m) 마천산(274.4m)들이다
6분후 내려선 곳은 좌측 와룡중학교 갈림길이고 3분후 31번 4번을 단 송전탑이 자리한 곳이 x150.5m다
▽ 서재초등학교 쪽 분기봉에 올라서니 궁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 x190.6m
▽ 궁산과 서재리 아파트 들
▽ x150.5m
14시05분 좌측능선 분기점 그 쪽으로 가는 뚜렷한 등산로를 버리고 그대로 진행하다가 마루금은 우측으로 내려서야 하지만 배수로를 따라 그대로 내려서니
많은 차량들이 다니는 넓은 도로의 신당고개 좌측으로 살짝 비켜난 지점이다
횡단보도를 건너 좌측으로 꿈에 그린 아파트 진입로를 보며 고개 쪽 절개지를 보다가 횡단보도 건너 산으로 접어드는 산책로가 보이니 그대로 올라선다
어차피 대구시가지 구간도 생략한터에다가 하루에 두 개지맥 말아먹기니 쉽게 오르자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아파트 110동이 보이면서 서쪽으로 오르는 뚜렷한 등산로 인근에는 석축만 남은 폐 무덤 흔적들이 많이 보이는데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다른 곳으로 이장한 것들이겠다
도로에서 표고차 160m 정도를 줄이며 오름이니 그놈의 반주로 마신 싸구려 중국술의 영향을 받은 듯 숨이 가쁘다
14시35분 계명대학교0.8km↔궁산 정상0.2km 올라선 곳 한화 꿈에 그린0.65km를 알리는 능선 분기점에서 북쪽의 오름이다
▽ 북쪽 금호강 건너 박산(중앙 우측)과 중앙 좌측 용산 마천산의 황학지맥이다
▽ 절개지 쪽이 신당고개
▽ 도로 건너 오름에는 곳곳 석축만 남은 파묘 흔적들이고
▽ 너른 산책로를 만나서 올라선 분기능선
갈림길에서 부드럽게 오르다보니 산불초소도 보이고 5분후 올라선 궁산 정상이고 서쪽으로 틀어 진행하노라면 강 건너 대실 쪽 아파트들과 어우러진 황학지맥의 끝자락들이다
궁산(弓山)은 강창교부터 서재까지의 산세가 활대 모양을 이루고 있고 정상에서 계명대까지의 산세가 화살 모양으로 마치 십자가 형태로 시위를 한껏 잡아당긴 활과 같다고 하여 붙은 지명이며 와룡산에서 서쪽으로 이어진 산줄기 끝에 위치한다
잠시 후 방향을 좌측으로 틀어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다
내려선 후 부드럽게 4분여 올라선 송림아래 의자들의 x157.2m에서 내려서는 곳에는 궁산21 쌍룡 녹색길 구조표시 다
우측아래 절벽을 이루며 금호강이 가깝고 산책로 곳곳에 옛 軍시설들이다
다시 내려선 곳 체육시설들을 지나고 2분여 올라서니「궁산25」구조표시가 설치된 곳이 x114.3m이니 이제 하산할 때까지 지도의 삼각점이나 x점 봉우리 표시는 없다
▽ 궁산 정상을 향하고
▽ 궁산 정상
▽ 궁산에서 바라본 와룡산
▽ 세천아파트들 너머 박산이고 우측 끝 지천역 인근이고 아파트는 사수동
▽ 황학지맥 용산 마천산 하빈고개로 이어진다
▽ x157.2m
▽ 북쪽 세천교와 푹 들어간 하빈고개와 황학지맥 및 인근 능선
▽ 가야할 능선 중앙 멀리 갸날픈 황학지맥 끝 강정보 인근의 시설 디아크 다
▽ x114.3m
x114.3m에서 2분후 우측의 벼랑을 이룬 곳에 노는바위 안내판을 지나고 4분후 배꼽덤 안내판을 지나니 이제 산 자락의 끝이 보인다
마지막 잠시 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이락서당이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고
15시32분 강창교 아래로 내려서면서 실질적으로 산길을 걸을 수 있는 지맥은 끝이 난다고 보면 된다
이락서당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와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정조 22년(1798)에 건립한 강학소(講學所)이다
정조가 등극하면서 탕평책을 쓰고 학문을 숭상하는 기풍이 일어나자 당시 대구와 달성 칠곡 등지의 명문가 유생 30명이 뜻을 모아 세운 후 인재 양성과 예학 숭상을 위한 사숙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락서당 건립에 참여한 문중은 모두 아홉 문중으로 성주도씨 광주(光州)이씨 함안조씨 밀양박씨 전의이씨 일직손씨 순천박씨 달성서씨 광주(廣州)이씨이며 이들을 통칭하여 9문 11향 30군자라 한다
▽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 강창교와 황학지맥 죽곡산
▽ 이락서당
▽ 강창교 아래
▽ 대명유수지 일대 갈대밭과 월성교
▽ 2015년 6월 황학지맥을 마치며 바라본 중앙 궁산과 우측은 황학지맥 죽곡산
강창교에서 대기하고 있던 차량과 합류해서 강변 옆으로 이어지는 큰 도로를 따라서 금호강 건너 황학지맥의 끝자락을 보고 월성교에서 차량을 잠시 멈추고 일대를 보려고 하지만 대명유수지 일대 갈대의 늪지만 바라보고 전체적인 산행을 종료한다
이후 검색한 고깃집으로 이동했지만 영업을 하지 않아서 인근의 막창집에서 소주 몇 병을 마시고 대전으로 이동 후 돌아오는 셋 째 주는 홀로 원진지맥을 졸업하고 넷 째 주 다시 만나서 봉대지맥 종주를 하기로 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