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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히브리서 11장에 들어 가기에 앞서 믿음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1,12장은 믿음의 장이라고 합니다. 전체가 믿음에 대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믿음은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구약에서는 율법을 통한 행위의 믿음이었다면 신약에서는 행위의 믿음이 아닌 믿음 그 자체입니다.
믿음에는 그 대상이 있습니다. 누구를 믿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에는 내용이 있습니다. 어떤 내용을 믿느냐는 것이죠.
믿음의 대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도 그 내용을 잘 모른다거나 앎에 그친다면 그 사람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살아 있는 것이고 생명이기도 합니다.
이 시간에는 잠시 구약적인 믿음과 신약적인 믿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구약의 믿음과 신약의 믿음은 다릅니다. 구약에서는 행위적인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행위를 요구하셨습니다. 즉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그래서 율법에 보면 “하라와 하지 말라”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으로 믿음을 보셨습니다. (신7:9 그런즉 너는 주 네 하나님 그분이 하나님이시요, 신실한 하나님이신 줄 알라. 그분께서는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명령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천대까지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되)
여기에서 믿음을 지키면 천대까지 언약을 지킨다고 하지 않고 “명령을 지키는 자들에게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구약 성경에 너무나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징개를 받는 것도 보면 믿음이 아니라 행위였습니다. 불순종과 하지 말라는 우성 숭배와 불의 때문에 그들은 속절없이 하나님의 징개를 받았던 것이지요. 유다 왕들 중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왕들은 한결같이 율법을 지키며 우상들을 타파했습니다.
유다의 요시왕도 왕이 된 후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을 백성들 앞에서 낭독을 하는데, 주 내용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들을 마음을 다해서 지키겠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열하23:2-3 왕이 주의 집에 올라가매 모든 유다 사람과 모든 예루살렘 거주민과 제사장들과 대언자들과 온 백성이 작은 자든 큰 자든 다 왕과 함께하였으며 그가 주의 집에서 발견한 언약 책의 모든 말씀을 그들의 귀에 낭독하니라. 또 왕이 기둥 옆에 서서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여 주를 따라 걸으며 그분의 명령과 증언과 법규를 지키고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들을 수행하기로 주 앞에서 언약을 맺으매 온 백성이 그 언약을 고수하니라)
구약에서는 율법에 나타난 그 명령과 규례들을 지키는 것으로 믿음을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 행위가 아닌 오직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것을 믿는 믿음을 통해 사람을 구원하시고 함께 하십니다. 즉 복음을 통해 알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행위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에서는 오히려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자들을 향해,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간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갈5: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율법으로 의롭게 된 자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아무런 효력이 없으며 너희는 은혜에서 떨어져 나갔느니라)
사람은 믿음을 가질 수도 있고 갖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롬14:22 네게 믿음이 있느냐?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너 자신을 위해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허용하는 그것으로 인해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행복하도다)
우리는 때때로 소위 믿음줄을 놓을 때가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믿음이 없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구원이 없어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충격적인 일을 당했을 때, 그때의 나의 믿음은 너무 연약해져서 없는 것같이 생각하고 행동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을 잘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2. 우리는 믿음 안에 거해야 합니다. (고후13:5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살펴보고 너희 자신을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는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믿음이란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자라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합니다. 어느 경우에 말할 수 없는 큰 충격을 받았을 때 순간적이지만, 전혀 믿음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믿음을 회복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향한 믿음이 어떤 상황에서도 내 안에 머무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유는 하나님은 믿음있는 사람에게 역사하시지 믿음이 없으면 역사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내가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내 속에서 나오는 것은 육신적인 것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3. 믿음은 강해질 수도 있고 약해질 수도 있습니다. (고전 16:13 너희는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행동하며 강건한 자가 되라)
지금 이 말씀은 육체적인 행동이나 건강한 몸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죠. 믿음이 강하면 소위 세상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마치 다윗이 골리앗앞에 당당히 나아가 싸운 것처럼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하면 어떨까요? 세상이 두렵고 매사를 어려워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입니다. (살전3:8 너희가 주안에서 굳게 서면 이제는 우리가 사느니라) 우리가 산다는 것은 영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정적인 것이 아니고 역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의 믿음은 그만큼 깨어 있어야 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지켜야 하고, 믿음을 강건하게 해서 성장시켜 나가야 합니다.
믿음에는 강한 믿음, 약한 믿음이 있습니다. (롬14:1-2 믿음이 약한 자를 너희가 받아들이되 의심에 찬 논쟁은 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자기가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다고 믿고 다른 사람은 약하여 채소를 먹느니라)
이 말씀에도 보면 믿음이 강한 자가 믿음이 약한 자를 받아 드리라고 하죠. 믿음이 약한 자의 육신적인 면과 잘못된 것을 받아 드리라는 것입니다. 왜요? 믿음이 약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람은 각자 믿음의 분량, 크기가 다 다르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의 믿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믿음을 판단하면 안될 것입니다.
믿음에는 종류가 있습니다.
1. 교리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교리적인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한 믿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확한 하나님 말씀의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다른 믿음을 가질 때, 그 사람의 영혼은 큰 폐해를 당할 것입니다.
레위기 10장에 아론의 아들 제사장인 나답과 아비후가 성소에서 다른 불로 드리다가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다른 불로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다른 불이란,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은 불입니다. 오늘날 다른 불은 무엇이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아닌 다른 복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갈1: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때문에 교리적인 믿음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만약 교리적인 믿음이 없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이단만 아니라면 그 사람이 어떠한 신앙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성경관이나 잘못된 교리도 용납하는 위험한 교제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성경적인 교리가 약하면 감정적인 믿음으로 신앙 생활을 하게 됩니다. 문제가 많이 발생하죠.
그래서 교리적인 믿음이 없는 사람은 얼마든지 잘못 믿을 수 있고,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 기뻐하시는 믿음은 진리의 말씀 안에 거하는 믿음입니다.
(요삼1:3-4 형제들이 와서 네가 진리 안에서 걷는 그대로 네 속에 있는 진리에 대해 증언하였으므로 내가 크게 기뻐하였노라. 내게는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걷는다는 것을 듣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도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 안에서 행했고 그 진리를 위해 대적자들과 싸웠던 것입니다. (고후13:8 우리는 진리를 대적하는 어떤 일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해서만 할 수 있노라) 그래서 교리적인 믿음은 성도들에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바른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한 바른 교리위에 기초가 세워질 수 있습니다.
- 구원얻는 믿음입니다. 구원하는 믿음은 사람의 영혼을 죄에서 건지는 믿음입니다. 구원얻는 믿음은 대상과 내용이 중요합니다.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이때 믿음의 크기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얻는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을 떠나 산 죄인임을 회개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 행전 20장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서 소아시아 터어키 서쪽 해안에 있는 도시인 “밀레도”에서 에베소 지역의 장로들을 초청한 후 여러 권면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합니다.
(행20:20-21 너희에게 유익한 것은 어떤 것도 숨기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보여 주며 공중 앞에서 또 집에서 집으로 다니며 너희를 가르치고, 유대인들과 또한 그리스인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증언하였노라)
사도 행전 11장에서는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와서 이방인인 고넬료와 그 가족들, 친구들이 구원받은 사건을 이야기 하자 주변에 듣고 있던 제자들과 할례자들이 한 말이 있습니다.
(행11:18 그들이 이것들을 듣고는 잠잠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생명을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구원얻는 믿음에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자기 때문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구원얻는 믿음은 먼저 복음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모르면 믿을 수 없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살아 계심, 자신이 죄인인 것과 하나님의 형벌인 지옥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자기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 계신 주님이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적인 것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 . 정 . 의의 인격적인 요소가 실행됨으로써 구원을 얻게 됩니다.
지적인 면은 아까 말씀대로입니다. 알아야 믿을 수 있습니다. (롬 10:17 그런즉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느니라)
2. 구원얻는 믿음의 다음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마음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리고 심판과 지옥에 대해 들었을 때, 아무런 반응이 없다고 한다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사도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전했을 때에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을 합니다. ( 행2:37 이제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찔려 베드로와 나머지 사도들에게 이르되, 사람들아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까? 하거늘) 그날 3천명이 구원을 받습니다.
빌립보 간수도 사도 바울을 보고 말합니다. (행16:30 선생들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리까? 하거늘) 마음에 감정적인 반응이 있어야 합니다.
“아 내가 죄인이구나. 나같은 죄인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겠습니다”하는 마음의 감정의 표현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 아무런 감정이 없는데 믿을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는 믿고 싶은데, 안믿어져서 못믿겠다고 합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구원의 말씀을 몰라서요? 아닙니다. 문제는 마음입니다.
3. 의지적인 결단입니다. 사람은 복음을 듣고 자신의 의지적인 결단을 해야 합니다. (롬6:17-18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죄의 종이었으나 너희에게 전달된 교리의 그 틀에 마음으로부터 순종하고, 이로써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느니라)
마음으로부터 순종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마음에 영접한 것이지요. 그래서 구원얻는 믿음은 글자 그대로 행위가 아닌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엡2:8-9 너희가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결론은 구원얻는 믿음도 삼위일체가 되었을 때 온전한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삼위일체 이신 것처럼, 사람도 영,혼,몸, 삼위일체로 이루어진 것처럼, 구원얻는 믿음도 삼위일체가 되었을 때에 받게 됩니다.
일차적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 복음의 핵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입니다. 두 번째는 그 말씀을 듣고 마음이 움직여지고 회개와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의지적인 결단으로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순간적으로 한 번에 일어납니다. 듣고, 마음으로 받아 드리고 입으로 시인하는 결단입니다. (롬10:10 이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니라)
- 다음은 칭의의 믿음이 있습니다. 구원얻는 믿음은 예수님과 인격적인 실제적인 만남이라면 칭의의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고 의롭다고 선포된 믿음을 말합니다. 칭의는 우리 감정으로 느끼는 어떤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관이며 주권입니다. 하나님은 칭의의 행위를 하시는 분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칭의를 받는 자입니다.
(롬8:33 누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을 무슨 일로 고소하리요?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이로써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을 의롭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칭의는 하늘에서 우리의 신분이 합법적으로 변화된 행위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의 시민권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칭의의 믿음으로 우리는 죄책감에서 해방되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죄책감에 눌려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칭의의 믿음을 주셔서 죄와 죄책감에서도 자유함을 주셨던 것입니다. (롬8:33 누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을 무슨 일로 고소하리요?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마지막으로 생활에서의 믿음이 있습니다. 이 믿음은 자신의 일상 생활에서 사소한 것도 주님을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 안에서 자라게 하십니다. 일상 생활에서 나타내는 믿음은 큰 변화를 이루게 하는 믿음으로 성장시키실 것입니다.
첫댓글 수요설교 올려 주셔서 감사!!!
목사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