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묵상을 통한 十字架의 길 - 글, 류해욱 신부님
이 십자가의 길은 전통적인 14처와는 내용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1991년에
기도하셨던 십자가의 길에 담겨 있는 내용을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회 수원 말씀의 집 십자가의 길입니다)
주님, 십사처를 바라보며 당신이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을 그려봅니다.
우리는 그 길이 얼마나 험한지 산이 얼마나 높은지 모릅니다.
다만 당신이 그 길을 걸으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 길을 통해 당신은 십자가를 승리의 나무로,
어둠을 광명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셨습니다.
이제 당신의 마지막 생애를 묵상하며 우리도 그 길을 걷고자 합니다.
끝까지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제1처. 예수, 게쎄마니에서 고뇌하심
그리고 그들은 게쎄마니라는 곳으로 갔는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기도하는 동안 여기 앉아 있으시
오” 하고 이르셨다.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함께 데리고 가셨다. 그분은 무서워 떨며 번민하시기
시작했다. 이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영혼이 근심에 싸여 죽을 지경입니다. 당신들은 여기 머물러서 깨
어 있으시오.” 그리고는 조금 더 나아가 땅에 엎드려, 할 수만 있다면 (수난) 시간이 자기를 비켜가게 해 주
십사고 기도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어떤 일이든 하실 수 있사오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소서.”
(마르코 14, 32-36)
주님,
우리가 근심에 싸여 있을 때
게쎄마니에서 고뇌하시던 당신의 모습을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당신은 우리의 사무치는 근심을 속속들이 아십니다.
우리가 지닌 근심의 연원을 당신은 아십니다.
우리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당신이 곁에 함께 계시며 아파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당신의 자애로우신 어깨 위에 근심의 보따리를 벗어놓게 해 주십시오.
또한 고통 중에 있는 이웃을 위해 늘 깨어 기도하게 해 주십시오.
그들 곁에 함께 머무르는 것이 내키지 않을 때
그들 안에서 당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들 안에 깃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우리 자신의 모습도 비추어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제2처. 예수, 유다에 의해 배반당하심
예수께서 아직 말씀하시고 계실 때에 드디어 열두(제자) 중의 하나인 유다가 찾아왔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께 손을 대어 그분을 붙잡았다.
또한 그와 함께, 대제관들과 율사들과 원로들이 보낸 군중도 칼과 몽둥이를 (들고 다가왔다).
그가 와서는 곧 예수께 다가와“선생님!” 하면서 입을 맞추었다. (마르코 14, 43. 45-46)
주님,
당신은 배신의 거짓된 입맞춤을 기꺼이 받아들이셨습니다.
믿고 있던 사람에게서 발등을 찍힐 때
아끼던 사람에게서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우리는 치유할 수 없을 정도의 상처를 받습니다.
그때 제자로부터 배신당한 당신을 떠올리게 해 주십시오.
타인에게 받은 상처로 하여 마음의 빗장을 걸지 않게 해 주십시오.
주님,
때로 유다와 마찬가지로 배신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약함으로 인하여 유혹에 빠지는 일이 있더라도 유다처럼 절망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당신은 용서하시는 분,
당신으로 하여 용서하고 용서받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제3처. 예수, 대사제들과 의회 원로들에 의해 심문받으심
대사제관들과 온 의회는 예수를 죽이려고 그분에게 불리한 증언을 찾았으나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러자 대제관
이 한가운데로 일어서서 예수께 묻기를 “당신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소? 이 사람들이 얼마나 당신에게 불리
한 증언을 하고 있소?”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잠자코 계시며 아무런 대답도 하시지 않았다. 다시 대제관
은 예수께 “당신이 찬양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그)입니다. 여러분은 인자가 전능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대제관이
자기 속옷을 찢으며 말했다. “이제 우리에게 증인들이 무슨 필요가 있겠소? 여러분은 저 신성모독의 (말을)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여기십니까?” 이에 모두 그분이 죽을 죄를 지었다고 단죄하였다.
(마르코 14, 55. 60-64)
주님, 대답하십시오.
어째서 침묵을 지키고 계십니까?
저들의 어리석은 외침이 들리지 않으십니까?
당신 곁에는 변호해 줄 단 한 명의 친구도 없습니까?
이 세상 어디라도 따르겠다던 베드로는 어디 있습니까?
침묵이 끝내 말이 되어 가슴을 뚫고 들어옵니다.
“내가 바로 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당신이 바로 찬양받으셔야 할 분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것이 당신이 하신 대답이었고 또한 저들이 원한 대답이었습니다.
당신은 진실을 말씀하셨으나
저들은 그 진실을 당신의 심장을 찌를 추악한 창으로 바꾸었습니다.
주님,
우리가 타인의 진실을 외면하고 오히려 공격의 무기로 삼을 때
거짓의 탈을 쓴 대사제의 모습을 기억하게 해 주십시오.
누군가를 단죄하고 싶은 증오감이 생길 때
악의 유혹을 단호히 거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제4처. 베드로, 예수를 세 번 모른다고 부인함
한 시간쯤 지나서 어떤 다른 사람이 우겨대며 “이 사람도 정말 그와 함께 있었소. 갈릴래아 사람이니까요”
하였다. 그러자 베드로는 “여보시오.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하였다. 그가 아직 말하고
있을 때 마침 닭이 울었다. 주님께서 돌아서서 베드로를 눈여겨보시자, 베드로는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당신
은 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하고 자기에게 이르신 주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루가 22, 59-62)
주님,
베드로가 스승이신 당신을 부인하는 말을 들을 때
우리가 슬퍼하는 연유는 바로 베드로에게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때로 당신을 부인하게 되는 것은 아직 우리가 암흑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닭이 울고 새벽이 오면
당신의 그 자애로우신 사랑의 눈길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당신의 눈에 가득찬 연민을 알아채고 슬피 울게 해 주십시오.
회한의 눈물로 몸과 마음을 정히 씻고
밝아오는 새벽을 맞을 준비를 하게 해 주십시오.
제5처. 예수, 빌라도에 의해 사형선고 받으심
빌라도는 대제관들과 지도자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예수를 풀어주고자 다시 그들을 가까이 불렀으나 그들은
소리를 높여 “그자를 십자가형에 처하시오. 삽자가형에 처하시오” 하였다. 빌라도는 세 번째로 그들을 향하
여 말했다. “도대체 이 사람이 무슨 나쁜 짓을 했단 말입니까? 나는 그에게서 아무런 사형죄목도 찾지 못했습
니다. 그래서 그를 메질이나 해서 풀어 주겠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큰 소리로 재촉하여 그분을 십자가형에
처해야 한다고 요구하였고 그들의 소리는 갈수록 거세어졌다. 마침내 빌라도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결정
하였다. 그래서 폭동과 살인으로 감옥에 갇힌 자, 곧 그들이 요구한 자는 풀어주고 예수는 그들의 소원대로 넘
겨주었다. (루가 23, 13. 20-25)
주님,
당신은 어리석은 군중들의 성난 외침을 들으면서 다만 침묵하셨습니다.
단 한 마디 변명이나 어떠한 항변도 없이 당신은 너무나 의연하십니다.
당신을 바라보면서 우리 가슴에 손을 얹어봅니다.
당신의 아픈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 합니다.
당신은 아시고 계십니다.
당신의 죽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의 문이 열린다는 것을.
그를 위해 고난의 십자가를 메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셔야 한다는 것을.
우리도 깨닫게 해 주십시오.
우리 자신도 삶 속에서 십자가를 짊어져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그것을 통해 진실로 당신의 길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을.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제6처. 예수, 채찍질 당하시고 가시관 쓰심
그리고는 (군인들은) 예수께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서 씌웠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왕, 만세!”
하며 (짐짓) 인사를 했다. 또한 갈대로 그분의 머리를 치고 침을 뱉으며 무릎을 꿇어 절하는 것이었다.
(마르코 15, 17-19)
주님,
머리에 얹혀지는 치욕스런 가시관을 당신은 가만히 받아들이셨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이 갈대로 당신의 머리를 치며 비웃고 조롱할 때
그들을 꾸짖기보다 오히려 연민의 눈길을 보내셨습니다.
주님,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타인을 향해 멸시의 눈길을 보낼 때
그것이 몰이해와 무지에서 온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또한 우리를 향해 부당한 언사가 쏟아질 때라도
상대방의 허물을 증오하지 않고 용서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우리의 아픔보다는 타인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너그러움을 주십시오.
제7처. 예수, 십자가 지심
(군인들은) 그렇게 그분을 조롱하고 나서 자색 옷을 벗기고 그분의 겉옷을 입혔다. 그리고 그분을 십자가형에
처하기 위해 데리고 나갔다. (마르코 15, 20)
주님,
당신은 죽은 나무를 걸머지고 형극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 나무의 무게를 어림해 봅니다.
무거운 나무에 짓눌려 당신은 쓰러지십니다.
당신은 다시 일어나 형틀을 메십니다.
당신이 가시는 길은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 죽음의 길 뒤에 영원한 삶이 있다는 것을
때로 삶의 무게가 우리의 어깨를 짓누를 때
주님, 당신이 짊어지셨던 그 십자가를 생각하게 해 주십시오.
십자가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 주십시오.
비록 어둠의 심연을 헤매이게 될 때라도
고단한 삶에 절망하게 될 때라도
꿋꿋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영원을 향한 당신의 고난을 바라보면서
우리에게 지워진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질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준비하고 계신 부활의 빛을 볼 수 있는 혜안을 주십시오.
제8처. 키레네 사람 시몬, 예수를 도와 십자가를 옮김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가다가 들에서 오고 있던 시몬이라는 어떤 키레네 사람을 붙들어 그
에게 십자가를 메우고 예수의 뒤를 따라 지고 가게 하였다. (루가 23, 26)
주님,
당신은 키레네 사람 시몬의 도움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고통이 닥쳐올 때
누군가에게 그 고통을 나누어주기를 갈망합니다.
주님, 당신의 십자가의 길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특히 고통 속에 빠진 아들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키레네 사람 시몬이 아들 예수의 십자가를 넘겨받았을 때
어머니는 마음속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셨을 것입니다.
제자들도 감히 나서서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하면서도
선뜻 그 십자가를 대신 짊어질 용기를 갖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십자가 가장 가까이 따를 용기를 주십시오.
우리에게 당신의 고통을 나누어 질 힘을 북돋아 주십시오.
제9처. 예수, 예루살렘 여인들을 위로하심
백성과 여인들이 큰 무리를 이루어 예수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여인들은 그분을 위해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다.
예수께서는 그 여인들을 돌아보시고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이여, 나 때문에 울지 말고 여러분과 여러
분의 자식들 때문에 우시오.”(루가 23, 27-28)
주님,
당신은 지금 우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진정 울 줄 알게 해 주십시오.
당신의 고통에 아파하는 여인들의 슬픔을 깨우치도록 해 주십시오.
주님,
우리의 삶에 알 수 없는 번뇌가 엄습해 올 때
모든 것이 끝장이라는 절망이 닥칠 때
당신의 위로의 말을 듣게 해 주십시오.
슬픔의 눈물을 기쁨의 눈물로 바꿀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고통 속에서도 곧 다가올 새 빛을 볼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주님, 당신은 말없이 위로를 건네시는 분.
그 침묵의 언어를 마음으로 새겨들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제10처. 예수, 십자가에 못박히심
마침내 그들은 그분을 십자가에 달고는 그분의 겉옷을 나누었는데 각자 차지할 몫을 놓고 주사위를 던졌다.
(때는) 아홉시였고, 그들은 그분을 십자가형에 처했다. 그분의 죄목 명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혀 있
었다. (마르코 15, 24-26)
주님,
당신은 날카로운 못이 여린 살을 뚫는 처절한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견디기 힘든 고통을 감내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오로지 아버지 하느님께 맡겨드린 봉헌의 삶에서 오는 것입니까?
작은 상처에도 진저리치는 우리들입니다.
당신의 여린 살 속으로 파고 들었던 살을 찢는 대못을 생각하며
하찮은 상처로 아파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또한 아무리 작은 상처일지라도 타인에게 주지않도록 해 주십시오.
타인을 향한 미움이
곧 당신을 향한 아픈 못질이라는 것을 깨우치게 해 주십시오.
제11처. 예수, 회개하는 죄수에게 하느님 나라를 약속하심
달려 있던 죄수들 가운데 하나도 그분을 모독하여 “당신은 그리스도가 아니오? 당신 자신도 구하고 우리도 구
하시오” 하였다. 그러나 다른 죄수가 되받아 그를 나무라며 “같은 심판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
도 않으냐? 예수님, 당신 나라로 가실 때에 저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씀드렸다.
(루가 23, 39-40, 42)
주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십자가에 달린 당신을 보고 비천한 죄수조차도 조롱을 보내고 있습니다.
불행한 영혼을 가진 그 죄수를
당신은 하실 수만 있다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어깨를 감싸 안아 주셨을 것입니다.
상처투성이의 그의 몸과 마음을 크신 사랑으로 감싸 주셨을 것입니다.
주님,
우리가 누군가에게 조롱받을 때
분노하지 않고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의 돌같이 굳어버린 마음속에
소외로부터 오는 고독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해 주십시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일지라도 진정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그를 이해하고 어루만져줄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
제12처. 예수, 십자가 위에서 어머니와 그의 사랑하는 제자에게 말씀 건네심
예수께서는 어머니와 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던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부인, 보십시오. 부인의 아들입
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제자에게는 “보시오. 당신의 어머니시오” 하셨다. 그래서 그 시간부터
그 제자는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요한 19, 26-27)
주님,
당신은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에게 모자관계를 맺어 주셨습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 중에서도 어머니를 향한 당신의 사랑이
우리의 가슴을 사무쳐옵니다.
어머니 마라아가 바로 우리의 어머니가 되기를 원하신 주님,
우리의 삶의 희노애락을 어머니 마리아와 나눌 수 있도록
어머니를 더 가깝게 느끼게 하여 주십시오.
또한 우리 육신의 어머니에게 효성을 드리는 것에 게으르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어머니가 얼마나 소중한 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늘 가까이 계시기 때문에 소홀하게 대했음을 고백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늘 가슴에 새기며 살게 하여 주십시오.
제13처. 예수,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
세 시에 예수께서 큰 소리로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하고 부르짖으셨다. 이는 번역하면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하는 말이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달려가 해면을 식초
에적신 다음 갈대(끝)에 꽂아서 예수께 마시라고 (갖다 대면서) “자,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주시나 두고
봅시다” 하고 말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큰 소리를 내시면서 숨지셨다. (마르코 15, 34. 36-37)
주님,
당신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생명이 축복이듯이 죽음도 축복일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하여 주십시오.
죽음이 끝나는 그 곳에서 먼동이 터 오르듯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마음의 등불을 환히 켜고 죽음을 두렵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당신의 죽음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우치게 됩니다.
당신의 죽음과 바꾼 우리의 생명이며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사람들을 바르게 사랑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십시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에서
당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여 주십시오.
제14처. 예수, 무덤에 묻히심
그리하여 요셉은 삼베를 사 가지고 가서 그분 (시신)을 내려다가 삼베로 싼 다음, 바위에 뚫린 무덤에 하고 무덤 입구에 돌을 굴려 놓았다. (마르코 15, 46)
주님,
당신은 이제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결코 당신이 머무실 곳이 아닙니다.
당신은 어린 아기가 잠에서 깨어나듯 깨어나실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짊어지셨던 십자가를 참 생명의 월계나무로 바꾸실 것입니다.
어둠을 환희 비추면서 무덤을 열고 나오실 것입니다.
이른 새벽 당신의 무덤을 찾았던
막달라 마리아의 간절한 심정을 마음속에 가만히 느껴봅니다.
활짝 열린 무덤의 문을 보고 놀라움에 제자들에게 달려갔던
마리아의 이름을 당신은 다정한 음성으로 부르셨습니다.
주님, 우리에게도 당신이 부르시는 이름을 듣게 하여 주십시오.
삶을 소란스러운 장터로 만들어
행여 당신이 부르시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십시오.
주님, 당신은 기꺼이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다.
그 십자가를 통해서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셨습니다.
벗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내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신 당신께서 바로
벗인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의 길을 택하신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이제 해야 할 일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바로 당신이 보여주신 그 길을 따라 걷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곧 사랑의 길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랑은 말에 있지 않고 행동에 있습니다.
당신을 향한 사랑으로 우리가 세상 안에서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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