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는 여자였다 / 김명규
요즘 신혼부부들 중 아이는 낳지 않고 개를 기르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자기 자식인 양 엄마아빠 호칭까지 쓴다. 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뽀뽀를 하고. 정이 든 애완견이 사랑스럽지만 실내에 털이 빠져 날리고 오물이라든지 동물 특유의 냄새를 나는 감당할 수 없기에 아예 기를 생각이 없다.
티브이 방송에서 뜨고 있는 개 훈련사가 개와 교감하며 버릇을 고쳐놓는 기술을 보면 개라는 동물의 감정이나 심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이 흥미롭다. 잘못 길들여진 습관을 바로잡아주는 것을 볼 때면 개뿐만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모든 동물들에게는 감정이 있음을 본다. 개들 중에도 어떤 개는 주인을 잘 만나 금수저 신세가 되고 어떤 개는 버림을 받아 떠도는 유기견이 되기도 한다. 반려견이라 하여 값비싼 고급 간식거리며 개의 식탁까지 마련한 집도 있다. 개가 사람처럼 감정을 지니듯 다른 짐승들도 마찬가지임을 우리는 잘 모르고 지낸 것 같다. 중동지역 여행의 핵심 코스인 요르단 페트라에 갔다. 가는 도중 사해를 만나 그 짠 물속에 나도 발을 담가보았고 수심 깊은 바닷속에 누워 둥둥 떠다니는 사람들도 보았다. 어릴 적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보았던 그 장면이다. 사해는 그 길이가 85킬로였는데 이젠 55킬로로 줄었다. 다녀온 사람은 다 알겠지만 페트라는 정말 놀랍고 불가사의한 세상에 있었다. 그 어마어마한 바위를 어떻게 뚫고 그 안에서 사람이 살 수 있었으며 돌 속에 무덤들을 지었는지 경이롭기 그지없었다. 놀라운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알카즈네 신전 앞에 도착했을 때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 촬영을 하느라 붐비고 있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 최후의 성전으로 촬영되었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인 그 신전이다. 신전 앞 광장에는 낙타나 당나귀가 여행길에 지친 관광객들을 태워 가려고 기다리고 있다. 요르단에 살던 아들 내외가 페트라에 동행하면서 가이드를 해주었다. 주인에게 채찍을 맞고 있는 당나귀를 보면서 며느리는 말하였다. 짐을 싣고 사람을 태워 나르느라 혹사당한 당나귀는 자살도 한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즐비하게 늘어서 일감을 기다리고 있는 낙타와 당나귀가 너무도 불쌍했다.
인간이나 모든 동물이 감정을 가졌다는 것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슬픈 일이기도 하다. 친구의 딸이 애완견을 기르다가 병이 들었는지 죽게 되었다. 그 딸네 식구들은 개의 죽음에 울며불며 초상집을 방불케 하였다. 개는 화장하여 납골당으로 갔다. 딸은 그 후로도 몇날 며칠을 개의 이름을 부르며 슬퍼한다고 하였다. 며칠 전 어린 미혼모가 출산한 갓난아기를 20만원에 팔아넘기려고 인터넷 게시판에 공지한 사실도 있다. 자신의 핏덩어리 새끼를 물건을 사고팔듯 하였다는 사실이 어이없고 기가 막힌 일이다. 애지중지 애완견을 기를 게 아니라 젊은 부부들이 자식을 낳아 그렇게 기르면 얼마나 좋겠는가. 개는 개일 뿐이다. 주인이 개에게 지나친 사랑을 주다보면 영리한 개는 주인을 얕잡아 보거나 지배하려 든다고 한다. 집을 방문한 외부 사람에겐 오히려 순한 양처럼 굴면서 갖은 애교도 부리지만 정작 집주인은 온몸에 상처가 나도록 물어뜯는 개도 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엄격하고 적당히 사랑할 일이다. 옛말에도 애들을 예뻐하다 보면 코 묻은 밥을 먹는다고 하였다. 예전에 어린 손자들을 사랑만 하다보면 할아버지 수염을 쥐어뜯는 일이 허다했다. 조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마냥 사랑만 받고 자라다 보면 대개는 버릇이 없다고들 한다.
이십 년 전 나도 단독 주택에 살면서 개 한 마리를 얻어다 길러본 적이 있다. 이웃집에서 개가 일곱 마리나 새끼를 낳았다며 억지로 강아지 한 마리를 안겨주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강아지부터 안고 있었다. 이름은 태양이었다. 저 예뻐하는 아이들만 보면 꼬리를 흔들고 뱅뱅 돌며 무럭무럭 잘 자랐다. 어느 날 개집 에 핏방울이 뚝뚝 떨어져 있었다. 난생 처음 길러보는 개였으므로 개에 대한 아무런 상식이 없었다. 화분에 있는 나뭇가지에라도 다쳤나 싶어 남편과 나는 태양이를 붙들고 항문 주위에 빨강 소독약을 발라주었다. 개는 사람처럼 병도 나지 않고 그저 주는 밥 먹고 잘 살아가는 짐승이려니 했다. 그런 일이 있었던 얼마 후 우리 집 대문 앞으로 어디선가 개들이 놀러와 문틈으로 기웃거렸고 태양이도 반가워서인지 밖으로 나가려고 낑낑거렸다. 문밖은 찻길이어서 우리는 좀처럼 대문을 열어두지 않았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태양이의 배가 점점 불러오기 시작했다. 태양이가 여자였다는 것을 나는 정말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어느 아침에 일어나 보니 태양이는 여섯 마리의 새끼를 낳아 품고 있었다. 그렇게 따르던 주인도 새끼를 만지면 으르렁 대며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였다. 출산 할 때 나온 태반 같은 것을 태양이는 다 먹어 치웠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싶어 안쓰러웠다. 나는 소고기를 넣고 미역국을 끓여 태양이에게 주었지만 이삼 일이 되어도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태양이는 내가 개를 길러 본 첫 경험이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