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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보삼매경 하권
6. 다라니, 해탈, 변화의 근본
[사리불, 모든 다린니를 얻게 하려면?]
사리불이 보래에게 물었다.
“시방세계에 일체의 학자(學者)들로 하여금 총지인 모든 다린니(陀隣尼)를 얻게 하려면, 어떤 법을 수행하여야 마땅히 성취할 수 있습니까?”
[보배, 서른두 가지 법보]
보래가 대답하였다.
“마땅히 서른두 가지 법보(法寶)를 수행하여야만 됩니다.
첫째는 아직 마음을 내지 못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다 마땅히 해탈하게 하여 변화와 같음을 알게 하고 걸림이 없게 하려 함이고,
둘째는 무상정진도(無上正眞道)의 마음을 내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그들로 하여금 다 바른 법에 머물게 하는 것이며,
셋째는 삼천대천세계를 보되 모두 동등하여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이고,
넷째는 만약 한(限)에 머무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로 하여금 모든 욕망을 영원히 여의고 지혜의 문에 있게 하여 동요함도 없고 바뀌지도 않으며 니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사람들이 ‘하늘이 있다느니 하늘이 없다느니’ 하고 말하면 마음이 동요되어 돌아가지 않게 하는 것이고,
여섯째는 도에 대한 마음이 견고하여 뜻에 겁약하지 않는 것이며,
일곱째는 와서 생(生)을 받지 않는 일체 중생들이 현재ㆍ미래ㆍ과거를 보되 두 가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여덟째는 모든 삼매 선정은 적연하여 처소가 없다고 관하는 것입니다.
아홉째는 모든 제도할 대상에는 주인이 없어서 일체 것은 공(空)을 좇아 공을 이루는 것이고,
열째는 나는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부처님을 다 따라 법을 받는 것이며,
열한째는 다른 지방의 국토에서 감히 와서 경을 듣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로 하여금 다 결정을 증득하게 하는 것이고,
열두째는 여러 부처님의 국토에서 꽃이나 향을 가지고 오는 사람이 있어도 또한 기뻐하지 않고 오지 않는다 해도 또한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열셋째는 마음을 낸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들로 하여금 법에 머물 수 있게 하는 것이고,
열넷째는 현재ㆍ미래ㆍ과거에 대하여 뜻에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일이 없는 것이니 왜냐하면 근본엔 두 가지 법이 없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며,
열다섯째는 시방세계의 연비연동(蜎飛蠕動)으로 하여금 모두 금계(禁戒)를 받들어 지녀서 마침내 훼범(毁犯)함이 없게 하는 것이고,
열여섯째는 삿된 생각이 없이 시방세계에 있으면서 마음을 바꾸어 근본으로 돌아가면 곧 지혜의 문으로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열일곱째는 인욕하지 못하는 것이 없고 항상 삿된 원한을 품지 않는 것이고,
열여덟째는 관(觀)으로부터 다른 관에 이르기까지 제도함이 없는 것이며,
열아홉째는 본래 머무름이 없는 것처럼 항상 머무는 곳이 없는 것이고,
스무째는 제도할 대상에 주인 없기가 마치 허공과 같아서 아무 염상(念想)이 없는 것입니다.
스물한째는 지혜 있는 이에게 보시하되 거명함이 없고, 탐욕에 대하여 집착함이 없으면 곧바로 이를 따라 해탈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스물두째는 법을 말하면 대상을 여의지 않고 인하여 보시하기 때문에 큰 나라의 대중들 가운데 제도하여 더 이상 해탈할 사람이 없게 하는 것이며,
스물셋째는 무수히 많은 국토에서 또 다른 국토에 날아서 이르러 여러 부처님 앞에 나타나되 걸릴 것이 없는 것이고,
스물넷째는 여러 국토를 보아도 해탈할 사람이 더 이상 없게 하는 것입니다.
스물다섯째는 깨끗함과 어리석음이 한군데에 합하여 근본이 깨끗한 것처럼 그와 다름이 없는 것이고,
스물여섯째는 대천세계에 머물러서 주로 다리를 놓고 아직 깨닫지 못한 이를 정진하도록 권유하여 어두운 사람으로 하여금 밝음을 보게 하는 것이며,
스물일곱째는 넓은 바다의 큰 선사(船師)가 되어 여러 군생(群生)들을 건네주면서 싫어함이 없는 것이고,
스물여덟째는 끝없는 일산을 만들어 모든 더러움을 막는 것입니다.
스물아홉째는 다함이 없는 은혜를 지어 시방을 떠나지 않는 것이고,
서른째는 큰 자애로움을 지어 일체 중생들을 다 거두어 윤택하게 하고 아직 해탈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을 마땅히 모두 제도하는 까닭에 그를 천중천(天中天)이라고 부르는 것이며,
서른한째는 평등심을 항상 행하여 치우침이 없고 구제하되 짝이 될 사람이 없기 때문에 호를 무상존우(無上尊祐)라 하는 것이고,
서른두째는 보살이 말하는 것은 경법(經法)을 떠나지 않고 대천 국토에 두루 소문이 들리지 않음이 없나니, 그런 까닭에 공중에서 저절로 꽃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살의 서른두 가지 법보가 됩니다.”
[보래보살의 게송]
그때 보래보살이 게송으로 말하였다.
넓고 넓은 시방세계 변화와 같아
일체 것은 모두 항상함이 없다네.
참다운 법과 바른 진리는 고요하다고
연설하여 중생들을 제도하네.
고정관념은 생각을 여의지 못하지만
일체는 진실로 본래 공한 것이라네.
꽃은 잎사귀를 베풀지 못하고
그 색깔을 감당할 수도 없네.
일체의 모든 탐욕을
세우면 의왕(意王)이 된다네.
모든 보배이자 무상존(無上尊)이기에
호(號)를 천중천(天中天)이라 한다네.
그런 까닭에 큰 모임 가운데에서
아직 해탈하지 못한 사람을 제도하려 의론 한다네.
그 근본은 항상 머무름이 없나니
그런 까닭에 십력존(十力尊)이라 한다네.
일체의 거꾸로 된 견해를
세간에선 깜깜하다 말하네.
인가하는 것은 변화와 같아
시방세계에서 해탈할 수 있다네.
허공은 항상한 처소가 없나니
부처님의 법장(法藏)이 다 그 가운데 있다네.
해탈함이 없음을 해탈함으로써
시방세계 중생들을 교화한다네.
시방의 여러 부처님 국토를
합하여 한나라로 만드니
저절로 대중들 크게 모여들어
시방세계를 가득 메웠네.
부처님께선 일체를 깨달으신 분으로
웃으셔도 그 모습을 여의지 않네.
황금 색깔도 여의지 않은 채로
아직까지 해탈하지 못한 사람에게 보여 주셨네.
시방세계를 인도하는 사람이 되어
마음에 법왕을 여의지 않네.
보시를 하면서도 보시한다는 생각이 없으니
꽃을 시방세계에 보시하였네.
금색의 커다란 연꽃이
모든 허공을 두루 가득 채웠네.
생각 일으키고 행동하여도
모든 하늘에 머물지 않네.
문수사리의 마음 넓고 커서 짝할 사람이 없네.
그로 하여금 득도(得道)케 하여
기별(記莂)을 주어
허공에 머물러 있게 하였네.
보래보살 지혜의 마음 존귀하여
밝은 빛이 궁중에 두루 비추네.
마음을 낸 여러 천인들
모두 다 법문에 이르게 했네.
시방세계 여러 보살들
여러 국토에서 감동하였네.
여기 모인 여러 천자들
이 귀중한 경전을 들을 수 있었네.
일체에 다 통해 볼 수 있으며
마침내 마음먹은 궁전이면 어디든 갈 수 있네.
변화로 교로좌(交露坐)를 만드니
온갖 하늘의 꽃과 향이 이르네.
모든 삼매를 듣고 받아서
대중 가운데 앉아서 보네.
여러 곳에서 온 공덕 높으신 분들
마음 내어 높은 분께 공양하네.
도 있는 사람이 바르게 보지 못하니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이와 같다네.
해탈한 모든 사람이 수없이 많아
삼계에 다함이 없네.
[문수, 무엇으로써 해탈해야 하는가]
문수사리보살이 보래에게 물었다.
“모든 음성은 변화와 같고 지은 법이 생각할 수 없음도 또한 다함이 없기 때문에 자연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무엇으로써 해탈해야 합니까?”
[보래, 아홉 가지 법의 보배]
보래가 대답하였다.
“아홉 가지 법의 보배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연이 처소가 없는 것도 또한 변화와 같은 것이고,
둘째는 모든 법이 처소가 없는 것도 변화와 같은 것이며,
셋째는 당래(當來)에 처소가 없는 것도 변화와 같은 것이고,
넷째는 모든 물질세계의 처소도 변화와 같은 것이며,
다섯째는 과거의 처소도 또한 변화와 같다고 보는 것이고,
여섯째는 모든 법을 보되 허깨비와 같다고 볼 뿐이지만 그 또한 처소가 없음도 변화와 같은 것이며,
일곱째는 보는 처소가 없음도 또한 변화와 같은 것이고,
여덟째는 도를 증득하여 벗어날 곳이 없는 것도 변화와 같은 것이며,
아홉째는 본래 머무는 처소가 없는 니원을 증득한 것도 변화와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아홉 가지 법으로서 해탈의 지혜를 증득할 수 있습니다.”
[문수, 변화의 근본을 묻다]
문수가 또 물었다.
“니원에 이른 것도 모두가 자연이라면 무엇이 이 변화의 근본이 되며, 또 무엇이 이 변화의 주인입니까?
변화는 근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변화가 일어난 처소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도에는 처소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보래, 아홉 가지 법]
보래가 대답하였다.
“아홉 가지 법이 있어서 변화에 처소가 없음을 압니다.
첫째는 도 아닌 것이 처소가 없나니 이것이 곧 변화이고,
둘째는 변화엔 처소도 없고 생각도 없나니 이것이 그 변화며,
셋째는 변화로 된 것은 일어나는 것도 없고 변화한 곳엔 처소도 없나니 이것이 곧 변화이고,
넷째는 항상하는 이름도 아니요 다할 때가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변화이며,
다섯째는 변화하는 처소는 처소가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변화이고,
여섯째는 도에는 생각이 없나니 이것이 곧 변화이며,
일곱째는 변화가 일어난 것에는 일어남도 없나니 이것이 곧 변화이고,
여덟째는 변화한 것이 모든 욕망에 대하여 아무 처소도 없나니 이것이 곧 변화이며,
아홉째는 변화한 것은 제도한 것에 대하여 처소가 없나니 이것이 곧 변화입니다.
이것이 아홉 가지 법으로서 변화의 근본을 아는 것입니다.”
[문수사리의 게송]
그때 문수사리가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시방엔 변화한 것이 없나니
변화하고 변화함에 아무 형상이 없다네.
일체 것은 항상함이 없는 보배이니
그런 까닭에 변화의 주인이라 한다네.
도라는 것은 변화로 증득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그 처소를 여의는 것도 아니라네.
말씀하신 바는 항상 존재하는 형상도 없고
자연(自然) 그 처소에 있는 것이라 하네.
모든 보배는 변화를 좇아 얻는 것이기에
근본을 여의고 무유(無有)를 따라야 한다네.
그 근본도 똑같은 변화로 생겨나나니
그런 까닭에 인중존(人中尊)이라 부르네.
탐욕은 변화를 따라 일어나지만
법에는 본래 이런 것이 없다네.
변화해서 다섯 갈래 세계에 머물지만
변화에서는 주인을 볼 수 없다네.
다섯 갈래 세계에서 나고 죽음은
변화와는 서로 상관하지 않네.
세간의 탐욕을 끊지 못하니
그러므로 정각께서 나타나셨네.
여래와 변화의 주인은
시방세계에 높기가 그지없네.
변화를 가져 세상에 크게 베풀지만
세간에 아는 사람이 없네.
법륜은 물질이 없이 구르는 것이고
변화에는 구르는 것마저 없다네.
물질에 얽매이면 고정관념이 생기니
심오한 법은 굴릴 것도 없다네.
생각과 물질로 시방세계를 교화하니
그 법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베푸신 큰 지혜는
세간에선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네.
모두 아라한에 이르고자 하지만
이 보배를 깨닫지 못하네.
그런 까닭에 대중들이 모인 가운데에서
둘도 없는 보배를 자세히 말하였네.
지혜는 다함이 없으니
광명이 가장 커서 이만한 것이 없네.
시방세계의 다리가 되어
두 가지 법이 없음을 말하였네.
시방의 모든 부처님 국토에 살고 있는
중생들로 하여금 평등하게 하였네.
또한 그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내어 다른 마음 있지 않게 하였네.
시방세계 모든 법 동산[法園]에 있는 사람들
일체 법으로 번뇌를 해탈케 했네.
또한 세간법을 따르지 않게 하여
법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네.
지혜에서 벗어남이 없게 하고
가고 오는 것도 보지 않게 하네.
고요한 데서 다시 고요함을 보고
밝음 가운데 또한 밝음을 보네.
법이란 지혜로 증득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 그대로여서 본래 아무것도 없다네.
지혜와 어두움이 모두 한군데에 합하니
그런 까닭에 서로 간섭하지 않네.
어리석음과 지혜는 함께 합할 수 없으니
저 지혜로 많은 어둠을 밝히네.
베푸는 것은 다만 법뿐이니
높은 산에 꽃이 있는 것과 같다네.
모든 악함이 다함이 없고
색욕(色欲)도 다함이 없네.
니원과 생사도 그렇고
일체가 다 이와 같다네.
시방의 모든 부처님 지혜를
아는 사람도 없고 깨달은 사람도 없네.
그런 까닭에 깨끗한 법을 보셨나니
그러므로 세무유(世無有)라 말한다네.
[담마, 어떤 것이 주인이 되는가]
담마보살이 다시 보래보살에게 물었다.
“변화에 일어남도 없고 여읨도 없다면, 어떤 것이 주인이 됩니까?
니원은 나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다섯 갈래 세계를 멀리하지도 않으니, 당래(當來)에 마음을 내어 법륜을 굴리고 머물러서 깨끗하고 모든 때가 없다면, 일체 중생들은 누가 제도합니까?”
[보래, 아홉 가지 법의 보배]
보래가 대답하였다.
“질문하신 말씀이 훌륭합니다. 일체 생사의 뿌리를 결단하고 싶으면, 마침내 이와 같이 해야 합니다.
보살에겐 아홉 가지 법의 보배가 있습니다.
첫째는 변화에는 변화시킨 주인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니원과 생사에는 애당초부터 서로 앎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생사와 적멸에는 모두 멸함이 없는 것이고,
넷째는 일체 천상으로 하여금 다시 생겨나지 않게 하고 생겨나는 곳이 없게 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마땅히 마음을 일으켰든지 아직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든지 간에 여여(如如)한 처소에 머무는 것이고,
여섯째는 삼천대천 부처님의 국토를 관찰하지만 득도(得度)할 대상이 없음을 깨달아 아는 것이며,
일곱째는 기억에 대하여 일어나는 곳이 없는 것입니다.
여덟째는 삼천대천세계의 부처님 국토로 하여금 다 니원을 취하고도 마음으로 또한 기뻐하지 않게 하고 취하지 않고도 또한 성내지 않게 하는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하면 모든 법은 처소가 없기 때문이며,
아홉째는 소원을 따라 아라한을 취하기를 원하면 나는 그들로 하여금 모두 마음을 말하게 하여 만약 마음을 내어 소원하는 것을 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로 하여금 다시는 모든 생(生)에 대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게 하고 소원하는 것에 되돌아감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홉 가지 법입니다.”
[보래보살의 게송]
또 게송으로 말하였다.
가(可)에 대하여 불가(不可)함이 없고
욕망에 대하여 욕망할 것도 없네.
제도할 바에 볼 것이 없으며
법륜에도 항상한 처소가 없다네.
지혜로운 사람은 아무것도 말한 바 없고
해탈[度]로 인하여 가는 것도 없다네.
그런 까닭에 크고 바른 법을 보았나니
세간에 제일가는 무유(無有)라네.
도라는 것엔 항상한 이름이 없나니
그런 까닭에 시방세계의 보배라네.
얻었거나 얻음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나고 죽음에 도가 없다네.
사마(四馬)가 다함이 없나니
뜻에 가한 것도 만족함이 없다네.
세간에서 다 즐거워하는 것을
버리지 않으면 도를 얻지 못하리라.
두려움이 생겨도 해탈하지 않고
두렵지 않아도 해탈함이 없다네.
나고 죽음을 마땅히 거명하여
그것을 세우면 다섯 갈래 세계가 되네.
보(報)는 있고 답(答)은 없는 것을
옳은 법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법에는 본래 두 가지가 없으니
존재의 진리 깨달았기 때문일세.
가장자리도 없고 또한 중앙도 없으며
다함도 없고 헤아려서도 안 되네.
본제(本際)는 그림자나 메아리와 같아서
가고 옴이 없는 것이라네.
일어난 것에도 일어난 것이 없고
법에도 모든 욕망이 없다네.
나고 죽음에 본래 처소가 없으니
생사와 변화 이와 같다네.
깨끗한 것에도 깨끗함이 없고
더러운 것에도 더러움이 없다네.
모든 시방세계 사람들을 위하여
다섯 갈래 세계로 모두 끊어 없앴네.
깨끗한 마음은 물과 같아서
일체의 더러운 때가 없으니
푸르고 누런 것과 희고 검은 것
그 형상을 모두 볼 수 있다네.
모든 법에는 번뇌가 없으니
곧 무상(無上)의 보배를 얻으리라.
나라는 것과 남이라는 것을
세간에선 얻을 것이 없다네.
머무름 없는 진리에도 머물지 않으니
소유(所有)의 진리가 이와 같다네.
깨달음이라는 것에 볼 것도 없으니
세간의 진리가 이와 같다네.
제도할 것도 없고 제도하지 않을 것도 없으면
세시(世時)에 어느 것인들 존재함이 아니리라.
시방에 바른 깨달음을 건립하면
모두가 무상보(無上寶)를 얻으리라.
[담마, 그 처소와 같음을 증득하게 하려면?]
담마보살이 보래보살에게 물었다.
“시방세계 여러 하늘의 인민들로 하여금 자연히 그 처소와 같음을 증득하게 하려면, 마땅히 어떤 등류의 법을 수행하여야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보래, 여섯 가지 일]
보래가 대답하였다.
“여섯 가지 일이 있어서 이 법을 체득할 수 있으니,
첫째는 이 법회가 있는 때를 듣고 아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둘째는 이 경을 들었으니 이것이 곧 그 보배가 되며,
셋째는 본래의 공덕에 미쳤으니 이것이 곧 그 보배가 되고,
넷째는 이 경법(經法)을 들은 사람은 모두 육만삼매를 증득하나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며,
다섯째는 이미 육만삼매를 얻고서는 시방세계 사람들로 하여금 무상의(無上意)를 내게 하려고 하나니 이것이 곧 그 보배가 되고,
여섯째는 시방세계로 하여금 모두 보리수 아래 모이게 하나니 이것이 곧 그 보배가 됩니다.”
[이 경의 공덕과 이름]
이 경전을 말씀하실 때에, 90억 보살들과 60억 여러 하늘의 인민들이 무소종생법(無所從生法)의 처소를 얻었으며,
9억이나 되는 보살이 이 삼매를 얻었고, 삼천대천 부처님 국토가 여섯 가지로 반복해서 진동하였다.
모든 하늘이 공중에서 크게 기악(伎樂)을 연주하였고, 모든 용과 아수륜(阿須倫)들이 다 이 심오한 삼매를 듣고 보았다.
아난이 의복을 바로잡고 꿇어앉아서[長跪]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경의 이름은 무엇이라 하며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의 이름을 무극보(無極寶)라 하고서 마땅히 그것을 받들어 지녀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여 마치자, 여러 천인과 아수륜과 인비인(人非人)들이 모두 환희하면서 각각 부처님의 앞에서 예를 올리고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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