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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법요해 하권
6. 4성제와 8정도
[4제]
【문】4제란 무엇인가?
【답】고제(苦諦)ㆍ집제(集諦)ㆍ멸제(滅諦)ㆍ도제(道諦)이다.
고(苦)에는 두 가지 있으니, 첫째는 몸의 괴로움[身苦]이고, 둘째는 마음의 괴로움[心苦]이다.
집(集)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번뇌의 부림[使]이고, 둘째는 번뇌에 얽매임[惱纒]이다.
멸(滅)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유여열반(有餘涅槃)이고, 둘째는 무여열반(無餘涅槃)이다.
도(道)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정(定)이고, 둘째는 혜(慧)이다.
또한 고제에는 두 가지 있으니,
첫째는 고제이고, 둘째는 고성제(苦聖諦)이다.
고제란 번뇌의 모습[惱相]이기 때문에 이른바 5수음(受陰)을 고제라고 이름한다.
고성제란 지견(知見)이 있기 때문에 도를 닦는 것이니, 이를 고성제라고 한다.
집제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집제이고, 둘째는 집성제(集聖諦)이다.
집제란 생겨나는 모습[出生相]이니, 이른바 애(愛) 등의 온갖 번뇌를 집제라 이름한다.
집성제란 그 온갖 번뇌를 끊기 위하여 도를 닦는 것이니, 이를 집성제라 한다.
멸제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멸제이고, 둘째는 멸성제(滅聖諦)이다.
멸제란 적멸의 모습[寂滅相]이니, 이른바 4사문과(沙門果)를 멸제라 한다.
멸성제란 증득하기 위하여 도를 행하는 것이니, 이를 멸성제라 한다.
도제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도제이고, 둘째는 도성제(道聖諦)이다.
도제란 벗어나 이르는 모습[出到相]이니, 이른바 8정도(正道)를 도제라 한다.
도성제란 닦기 때문에 도를 행하는 것이니, 이를 도성제라고 한다.
[진리의 두 가지]
또한 진리[諦]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총상(總相)과 별상(別相)이다.
총상의 고(苦)는 5수음(受陰)이고,
별상의 고(苦)는 색음(色陰) 및 수ㆍ상ㆍ행ㆍ식의 음을 구체적으로 분별하는 것이다.
총상의 집(集)이란 나중에 받을 몸을 능히 생겨나게 하는 것이고,
별상의 집이란 애(愛) 등의 온갖 번뇌와 유루업(有漏業) 및 5수음의 인연을 구체적으로 분별하는 것이다.
총상의 멸(滅)이란 나중에 받을 몸의 애(愛)가 다하는 것이고,
별상의 멸이란 89가지 번뇌가 다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분별하는 것이다.
총상의 도(道)란 8성도(聖道)를 말하며,
별상의 도란 고법인(苦法忍)에서부터 무학도(無學道)에 이르기까지를 구체적으로 분별하는 것이다.
만약 4제를 통달하지 못하면 5도(道)를 윤회하게 되니, 생사를 왕래하여 끊임이 없을 때 이 인연 때문에 수행자는 늙음ㆍ병듦ㆍ죽음 등의 모든 고뇌가 모두 몸이 있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비유컨대 모든 초목이 다 땅에서 나오는 것과 같다.
경에서 설하기를,
“시방의 중생은 몸이 있는 까닭에 모두 괴로움을 받으며 또한 몸을 받아 태어난다”라고 하였으니,
비유컨대 독을 먹으면 잘생겼든 못생겼든 모두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다.
만약 몸과 마음이 없다면 죽음과 괴로움이 의지할 바가 없으리니,
마치 사나운 바람이 큰 나무를 꺾어 부러뜨릴 수 있지만,
만약 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부러뜨릴 수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몸과 마음이 괴로움을 받는 근본임을 간략하게 말하였다.
마치 허공이 바람의 근본[本]이고, 나무가 불의 근본이며, 땅이 물의 근본이듯이,
몸은 괴로움의 근본이다.
또한 땅[地]은 항상 견고하고[堅相], 물[水]은 항상 축축하며[濕相], 불[火]은 항상 뜨겁고[熱相], 바람[風]은 항상 움직이듯이[動相],
몸과 마음은 항상 괴로움[苦相]을 가지고 있으니, 그 까닭은 무엇인가?
몸이 존재하기 때문이니, 늙음ㆍ병듦ㆍ죽음ㆍ배고픔ㆍ목마름ㆍ추위ㆍ더위ㆍ바람ㆍ비 등의 괴로움이 항상 몸을 따르며, 또한 마음이 존재하기 때문에 걱정ㆍ두려움ㆍ성냄ㆍ질투 등의 괴로움이 항상 마음을 따른다.
만약 현재의 몸이 괴로움이라는 것을 안다면, 과거의 괴로움도 또한 그러하고, 현재와 과거의 몸이 괴로움이라면 미래 또한 그럴 것이니,
비유컨대 지금 현재의 곡식의 종자가 곡식을 생산하는 것을 보면, 과거나 미래에도 또한 모두 이와 같다는 것을 비교하여 알 수 있으며,
또한 현재 불이 뜨겁다면 과거나 미래의 불도 또한 뜨거움이 이와 같다는 것을 비교하여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만약 몸과 마음이 없다면, 이전에도 괴로움이 없었고 지금도 괴로움이 없으며 나중에도 괴로움이 없을 것이니,
삼세의 고통은 모두 몸과 마음으로부터 비롯되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마땅히 고제(苦諦)를 관해서 이와 같이 마음으로 싫어하는 생각을 내야 한다.
이 괴로움의 인연은 오직 애(愛) 등의 모든 번뇌로부터 생기는 것이지,
하늘[天]로부터 생기는 것도 아니고, 시간[時]으로부터 생기는 것도 아니며,
자연(自然)히 생기는 것도 아니고, 인연이 없이 생기는 것도 아니니,
만약 번뇌를 떠나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땅히 세간은 모두 애욕 등의 번뇌로부터 생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짓는 것은 모두 욕심이 먼저 앞서기 때문이니, 온갖 번뇌가 괴로움의 인연이다.
또한 애욕의 물[愛水]로 말미암아 몸을 받으니, 만약 애욕의 물이 없으면 몸을 받지 않는다.
비유하면 마른 흙은 벽에 붙지 않지만, 물이 그것과 잘 섞여 화합되면 벽에 붙는 것과 같다.
또한 온갖 번뇌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몸을 받는 것도 갖가지로 똑같지 않으니,
가령 탐욕이 많은 자는 탐욕이 많은 형태의 몸을 받고,
성냄이 많은 자는 성냄이 많은 형태의 몸을 받으며,
어리석음이 많은 자는 어리석음이 많은 형태의 몸을 받고,
번뇌가 엷은 자는 번뇌가 엷은 형태의 몸을 받는다.
지금의 과보가 다름을 보기 때문에 옛날의 인연이 각기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내세에도 번뇌를 따라 몸을 받음이 이와 같이 각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업을 따라 몸을 받으니, 만약 성내지 않았으면 독사의 모습을 받지 않으며, 일체의 나머지 모습들도 또한 이와 같다.
이러하기 때문에 애(愛) 등의 온갖 번뇌가 일체 괴로움의 인연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괴로움의 인연이 다하면 괴로움이 없어져 열반을 얻는다.
열반이란 욕심을 떠난 것을 말하니, 온갖 번뇌가 끊어져 항상하여 변하거나 달라지지 않는다.
이 가운데서는 태어남도 없고 늙음도 없고 병듦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괴로움도 없고, 원수와 만나는 괴로움도 없어, 항상 즐거워 물러나지 않는다.
수행자가 열반을 얻어 멸도(滅度)할 때에는 도무지 가는 곳이 없으니,
이를 적멸(寂滅)이라고 한다.
비유컨대 불을 밝힌 등불에 기름이 다하면 불이 사라져 그 불빛이 아무 곳에도 이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를 멸제(滅諦)라고 한다.
[게정혜와 8정도]
열반을 얻는 방편도(方便道)의 정분(定分)에 세 가지가 있고,
혜분(慧分)에 두 가지가 있으며,
계분(戒分)에 세 가지가 있으니,
이 계 가운데 머물러 정과 혜를 닦는다.
이른바 4제 가운데서 혜가 능히 결정적으로 헤아려 아는 것을 정견(正見)이라 하며,
정견을 따라 법을 깨달음이 일어나는데 이를 정사유(正思惟)라 하니,
이들을 혜분의 두 가지라고 한다.
정정(正定)ㆍ정념(正念)ㆍ정정진(正精進)을 정분의 세 가지라고 한다.
정어(正語)ㆍ정업(正業)ㆍ정명(正命)을 계분의 세 가지라고 한다.
청정한 계에 머물기 때문에 온갖 번뇌의 싹이 자라나지 못하고 그 세력이 쇠약해지니,
마치 때가 아닌 때에 종자를 심으면 싹이 자라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온갖 번뇌의 세력이 다가오더라도 정분(定分)으로 막아낼 수 있으니,
이는 마치 큰 산이 물을 막으면 물이 그것을 파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비유컨대 주술로써 독사를 제어하면 비록 독을 가지고 있더라도 사람을 해칠 수 없는 것처럼 정분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혜(慧)는 온갖 번뇌의 근본을 뽑아낼 수 있으니,
이는 마치 여름에 물이 갑자기 범람하면 물가 언덕 위에 있는 모든 나무를 휩쓸어 뽑아 버리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
이 3분(分) 8정도(正道)를 행하면 진정 바른 길[正路]로 곧장 나아갈 수 있어서 능히 괴로움의 바탕[因]을 멸하고, 마침내 편안하고 항상 즐거운 무위(無爲)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처음에 그 수행문[門]을 익히는 열 가지 일]
만약 방편으로 처음에 그 수행문[門]을 익히려면 열 가지 일[十事]이 있다.
첫 번째는 마음이 전일하여 바른 것이니,
갖가지 외부의 일[外事]이 다가와 파괴하려 해도 마음을 바뀌게 할 수 없다.
이는 마치 네 방향에서 바람이 일어나도 산이 기울거나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두 번째는 질박하고 올곧은 것이니,
스승이 설하는 법을 들으면 그 장단(長短)을 보지 않아서 마음이 늘어나거나 줄어듦이 없으며 가르침을 따라 의심하지 않는다.
비유컨대 빽빽한 삼림에 들어가서 곧은 나무를 베면 나오기 쉬우나 굽은 나무를 베면 나오기 어려운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삼계라는 빽빽한 삼림은 곧은 자는 벗어나기가 쉬우나 굽은 자는 벗어나기가 어렵다.
불법(佛法) 가운데서는 곧은 것만 사용하고 굽은 것은 버린다.
세 번째는 부끄러워함[慙媿]이니,
이것은 제일가는 최상의 의복이며 가장 오묘한 장엄이다.
부끄러워함은 온갖 악한 마음을 감아 제어하니, 부끄러움이 있으면 진실로 사람이라 할 수 있으나, 만약 부끄러움이 없다면 축생과 다를 바가 없다.
네 번째는 방일하지 않음[不放逸]이니,
모든 선법(善法)의 근본이다.
이는 마치 세간에서 방일하면 온갖 이로운 일을 잃으며, 수행자가 방일하면 열반의 이로움을 잃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마땅히 방일함을 원수나 도적처럼 여겨야 하며, 마음이 항상 그것을 멀리 떠나야 한다.
반면에 방일하지 않음[不放逸]은 마치 군왕이나 부모, 스승처럼 여겨서 마땅히 준수하고 계승하여 버리지 말아야 한다.
다섯 번째는 멀리 떠남[遠離]이니,
이 멀리 떠남을 바탕으로 방일하지 않음을 성취할 수 있다. 만약 5욕을 가까이하면 온갖 정(情)이 개발되니,
먼저 몸이 취락(聚落)으로부터 떠나야 하고,
다음으로는 마음이 세간의 일을 멀리 떠나 그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여섯 번째는 욕심을 적게 내는 것[小欲]이다.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마음으로 많이 구하지 않아야 하니, 많이 구하기 때문에 많은 고뇌에 떨어진다.
일곱 번째는 만족할 줄 아는 것[知足]이니,
어떤 사람이 비록 욕심을 적게 내더라도 좋은 물건에 애착하면 도심(道心)을 그르치게 된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자는 만족하게 여길 뿐이다.
여덟 번째는 마음이 얽매여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제자든 단월(檀越)이든 선지식[知識]이든 친척이든 그들에게 안부를 묻거나 환영하거나 환송하는 등 많은 일을 치르게 되면, 이와 같은 등의 일이 도를 훼손하고 그르치기 때문에 그런 일에 매여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아홉 번째는 세간의 즐거움을 좋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래하고 춤추며 음악을 연주하는 등을 즐기기 위해 좋은 때나 좋은 날을 가려 길흉을 선택하는 따위의 일체 세간의 일에 대해 모두 기뻐하거나 즐거워하지 않아야 한다.
열 번째는 인욕(忍辱)이다.
수행자가 도를 구할 때에는 마땅히 열 가지 일을 참아야 한다.
첫째는 모기와 등에가 물거나 쏘는 것이고,
둘째는 뱀이나 도룡뇽 따위의 독을 가진 것들이 무는 것이다.
셋째는 악독한 짐승이고,
넷째는 욕하고 비방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때리고 던져 해를 가하는 것이고,
여섯째는 질병의 고통이다.
일곱째는 배고픔이고,
여덟째는 갈증이다.
아홉째는 추위이고,
열째는 더위이다.
이와 같이 괴로운 일들을 수행자는 참아서 이런 일들이 자신을 이기지 못하도록 하고, 항상 이런 일들을 이겨내야 한다.
또한 사람들이 병의 모습을 알면 병의 인연을 알 수 있고, 병을 치료하는 약을 알 수 있으며, 간병인을 구해 병자의 뜻에 따라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면 머지않아 차도가 있는 것과 같이,
수행자도 이와 같아서,
진실로 괴로움의 모습[苦相]을 알면 괴로움의 인연을 알 수 있고, 괴로움이 다하는 도(道)를 알 수 있으며, 훌륭한 스승과 동학(同學)을 얻음을 알 수 있으니, 이와 같으면 머지않아 안온한 적멸을 얻을 것이다.
【문】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얻어 깊은 선정에 들어가면 오직 상지(上地)만이 존재하여 번뇌[結使]가 미세하고 엷어 마음이 이미 부드러워져 갖가지 인연과 갖가지 비유가 상응하지 못하니, 4제(諦)를 관함이 마치 믿지 못하는 것과 같다.
【답】비단 유정(有頂)의 지위에 있는 이를 위해 설할 뿐만 아니라, 모든 유정의 지위에 있는 이들을 위하여 설한 것이다. 다만 무색계의 4음(陰)을 무상(無常)ㆍ고(苦)ㆍ공(空)ㆍ무아(無我)라고 관하여 그것들을 병ㆍ부스럼ㆍ화살과 같다고 여긴 것이니,
마음속에 들어가면 무상ㆍ고ㆍ공 ·무아는 모두 인연으로 허망하게 속여 지은 법이다.
열반을 훌륭하고 오묘하며 편안하고 즐거운 것이며 인연으로 지은 법이 아니므로 진실하여 허망되지 않다고 관하여 3독(毒)과 3쇠(衰)를 멸하고,
몸과 마음의 괴로움을 멸하며,
항상 4음 및 그 인연을 꾸짖는 것을 고제(苦諦)와 집제(集諦)라고 한다.
또한 열반과 열반도를 찬탄하는 것을 진제(眞諦)와 도제(道諦)라고 한다.
수행자가 4선(禪)과 4무색정(無色定)을 얻으면 마음이 유연해진다.
만약 5신통을 구하려 한다면, 제4선에 의지하면 쉽게 얻을 수 있다.
만약 초선과 2선과 3선에 의지하면 비록 얻을 수는 있으나 구하기가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얻는다 해도 견고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초선에서는 각관(覺觀)이 선정을 어지럽히기 때문이고,
2선에서는 기쁨[喜]이 많기 때문이며,
3선에서는 즐거움[樂]이 많기 때문에 선정과 서로 위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