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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현재인과경 제2권
6. 출가, 스물아홉 살
그때에 태자는 부왕의 말을 듣고 생각하였다.
‘대왕께서 몹시 나를 만류하신 까닭은 바로 나라에 후사가 없었던 것이었구나’
그리고는 왕에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칙명대로 하겠사옵니다.’
그리고는 즉시 왼손으로써 그의 비(妃)의 배를 가리켰는데, 때에 야수다라는 곧 몸에 이상함을 깨달았고 저절로 임신한 것을 알았다.
왕은 태자가 칙명대로 하겠다는 말을 듣고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면서 이르기를,
‘태자는 7일 안에야 반드시 아이가 있지 못할 것이므로, 만약 이 기간만 지나면 전륜왕의 자리가 저절로 이를 것이며, 다시는 집을 떠나지 않게 되리라.’
그때 태자는 생각하였다.
‘나는 나이 이미 열아홉에 이르렀다.
[석가의 전기에는 스물아홉에 출가한 것으로 되어 있다.]
지금이 바로 2월이요 또 이는 7일인데, 방편을 써서 집 떠날 것을 생각해야겠구나. 왜냐하면 지금이 바로 때이며, 또 부왕의 소원도 이미 만족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여 마치고, 몸에서 광명을 내쏘아 사천왕 궁전을 비추고 내지 정거천이 궁전을 비추었으나 인간만은 이 광명을 보지 못하게 하였다.
그때 여러 하늘들은 이 광명을 보고서 모두가 태자가 집을 떠날 때가 다가왔음을 알고는 곧 내려와서 태자에게 이르러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고 합장하고 아뢰었다.
‘한량없는 겁으로부터 오면서 닦고 행한 바 이 원이 이제야 바로 성숙해진 때입니다.’
이에 태자는 여러 하늘들에게 대답하였다.
‘그대들의 말과 같이 지금이야말로 바로 때입니다. 그러나 부왕께서 안팎의 관속들에게 칙명하여 엄히 막고 지킴을 당하고 있는지라 떠나고 싶어도 갈 수가 없습니다.’
여러 하늘들이 아뢰었다.
‘우리들이 여러 방편을 마련하여 태자를 나가시게 하겠으며, 알아차리는 이가 없게 하겠습니다.’
여러 하늘들은 곧 그의 신통력으로써 여러 관속들을 모두가 다 혼곤히 잠이 들게 하였다.
그때 야수다라는 누워 잠자는 동안에 세 가지의 큰 꿈을 얻었나니,
첫째의 꿈은 달이 땅에 떨어짐이요,
둘째의 꿈은 어금니가 빠짐이요,
셋째의 꿈은 오른편 팔을 잃어버린 것이었는데,
이 꿈을 꾸고 나서 잠결에 놀라 깨어나서 마음에 크게 두려워하면서 태자에게 알리기를,
‘저는 잠을 자는 동안에 세 가지의 나쁜 꿈을 꾸었습니다.’
태자는 물었다.
‘당신은 어떤 꿈을 꾸었습니까?’
야수다라는 자세히 꾸었던 일을 설명하는지라 태자는 말하였다.
‘달은 아직도 하늘에 있고, 어금니도 빠지지 않았으며 팔도 아직 있습니다.
모든 꿈이란 거짓이어서 진실이 아닌 줄 알아야 하리다. 당신은 이제 쓸데없이 두려워하지 마시오.’
야수다라는 또 태자에게 말하였다.
‘제가 스스로 꿈을 꾼 일을 헤아려 볼 것 같으면, 반드시 이는 태자께서 집을 떠나는 조짐이십니다.’
태자는 또 대답하였다.
‘당신은 편히 잠이나 잘 것이요, 그런 염려는 하지 마시오. 반드시 당신에게 상서(祥瑞)롭지 못한 일은 없게 되리라.’하므로,
야수다라는 이 말을 듣고, 곧 도로 잠을 자는지라,
태자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두루 기녀들과 야수다라를 살펴보매, 모두가 마치 나무로 만든 사람들과 같았고 파초의 속이 굳거나 차지 않음과 같았는데, 혹은 악기의 위에 엎드려 있기도 하고 팔다리를 땅에 드리워 있기도 하고 다시 서로가 베개 삼아 누워 있기도 하고 콧물과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입 속에서 침이 흘러나오기도 하였으며,
또 다시 두루 아내와 기녀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그의 형체에는 터럭과 손톱 발톱ㆍ골수ㆍ뇌ㆍ뼈ㆍ이ㆍ해골ㆍ피부ㆍ살ㆍ힘줄ㆍ맥ㆍ기름ㆍ피ㆍ심장ㆍ허파ㆍ지라ㆍ콩팥ㆍ간ㆍ쓸개ㆍ소장ㆍ대장ㆍ밥통ㆍ똥ㆍ오줌ㆍ눈물이며 침이 보였는데, 바깥이 가죽 주머니로 되어 가운데에 더러운 것이 담겨져서 하나도 기특할 만한 것은 없었거늘 억지로 향을 바르고 꽃과 비단으로 꾸몄다.
마치 빚졌다가 도로 갚는 것과 같아서 역시 오래할 수 없었으므로,
‘백년 동안의 목숨을 누어서 그 반을 소비하고, 또 근심과 괴로움이 많아서 그 즐거움을 얼마 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어찌하여 항상 이런 일을 보면서도 깨치지를 못하며, 또 그 속에서 음욕에 탐착하는 것일까?
나는 이제 옛날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닦으셨던 행을 배워야겠으며, 서둘러서 이 큰 불더미를 멀리하여야 하겠구나.’
그때 태자는 이를 생각하여 마치고 5경(更)이 되었는데, 정거 천왕과 욕심 세계의 하늘들이 허공에 가득히 차서 함께 소리를 같이하여 태자에게 말하였다.
‘안팎의 권속들이 모두 다 혼곤히 잠을 자고 있으니, 지금이 집을 떠날 때입니다.’
그때에 태자는 즉시 스스로 가서 차익에게 도착하는데, 하늘들의 힘 때문에 차익이 저절로 깨어나므로 말을 하였다.
‘너는 나를 위하여 건척을 차리어서 오도록 하라.’
그때에 차익은 이 말을 듣고 나서 온몸을 떨면서 마음에 머뭇거렸나니,
첫째는 태자의 명령을 어기지 않으려는 것이요,
둘째는 왕의 칙명이 엄함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니라.
한참 생각을 하며 있다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대왕의 인자하신 칙명이 이렇게 엄하거늘, 또한 지금은 유람을 하실 때도 아니며, 또 적을 항복 받는 날로 아니옵니다. 어찌하여 이 5경인 밤중에 갑자기 말을 찾으십니까?
어디를 가려 하십니까?’
태자는 또 다시 차익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일체 중생들을 위하여 번뇌의 도둑을 항복받으려는 까닭이니, 너는 이제 나의 이 뜻을 어기지 말지니라.’
그때에 차익은 소리를 높여 울부짖으면서 야수다라와 여러 권속들에게 태자가 떠나가는 것을 모두가 깨어나 알게 하려 하였지만 그때에는 하늘들의 신력이었는지라 혼곤히 잠을 그대로 자게 하였으므로, 차익은 말을 끌고 오자,
태자는 천천히 나오면서 차익과 건척에게 말하였다.
‘온갖 은혜와 사랑은 만나면 이별을 하여야 한다. 세간의 일은 쉬이 해낼 수가 있거니와 집을 떠나는 인연이야말로 매우 성취하기 어렵다.’
차익은 듣고 잠자코 말이 없었고, 이에 건척도 다시는 울부짖지 않았다.
그때에 태자는 새벽 동이 트는 것을 보고 몸의 광명을 내어 시방을 환히 비추고 사자처럼 외쳤다.
‘과거 모든 부처님께서 집을 떠나신 법을 나도 이제 그렇게 하노라.’
이에 여러 하늘들은 말의 발을 바치고 아울러 차익을 붙안고서 석제환인은 일산을 잡고 따르며 여러 하늘들은 곧 성의 북쪽 문이 저절로 열리게 하면서 소리가 없게 하였다.
태자는 이에 문을 따라 나가자 허공의 하늘들은 찬탄하며 따르는데, 그때에 태자는 또 사자처럼 외쳤다.
‘나는 만약 나고ㆍ늙고ㆍ병들고ㆍ죽음과 근심ㆍ슬픔이며 괴로움을 끊지 못하면 마침내 궁중으로 돌아오지 않겠으며,
나는 만약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거나 또 다시 법의 바퀴를 굴릴 수 없다면 반드시 돌아와 부왕을 만나지 않을 것이며,
만약 은혜와 사랑의 정을 다하지 못하면 끝까지 돌아와 마하파사파제와 야수다라를 만나지 않으리라.’
태자가 이 맹세를 말할 때 허공에서 하늘들은 찬탄하였다.
‘장하십니다. 그 말씀이야말로 반드시 이루시리이다.’
새벽에 이르기까지 갔던 길은 3요자나였으며, 때에 여러 하늘들은 태자를 따라서 이곳까지 와서는 할 일을 다 마쳤는지라 홀연히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태자는 점차로 가다가 저 발가 선인(跋伽仙人)이 고행하는 숲 속에 닿았는데, 태자는 이 동산 숲을 보자 고요하고 시끄럽지 않으므로 마음에 기뻐지고 모든 감관이 기꺼워지는지라 곧 말에서 내리며 등을 어루만지면서 말하였다.
‘하기 어려운 일을 너는 하여 마쳤도다.’
또 차익에게 말하였다.
‘말의 행보가 빨라서 마치 큰 금시조왕과 같았거늘 너는 한결같이 따르면서 나의 곁을 떠나지 않았도다. 세간의 사람들은 혹은 착한 마음을 지녔어도 몸은 따르지 않기도 하고, 혹은 몸과 힘은 따면서도 마음이 맞지 않기도 하는데, 너는 이제 마음과 몸이 모두 다 어김이 없었구나.
또 세간 사람들은 부귀에 있는 이면 다투어서 따르고 받들어 섬기거니와 나는 이미 나라를 버리고 이 숲속으로 왔는데, 오직 너 한 사람만이 혼자서 나를 따른 것이 매우 드문 일이로다.
나는 이제 이미 한가하고 고요한 곳에 이르렀으니, 너는 곧 건척과 같이 함께 궁중으로 돌아갈지니라.’
그때에 차익은 이 말을 듣고 슬피 울부짖으면서 정신없이 땅에 거꾸러져 어쩔 줄을 몰랐으며, 이에 건척은 보낸다 함을 듣고 무릎을 꿇고 발을 핥으며 눈물을 비오듯 흩리는데,
차익은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 어떻게 차마 태자의 하신 이런 말씀을 듣겠나이까? 나는 궁중에서 대왕의 칙명을 어기고 건척을 차리어서 태자께 드리어 오늘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부왕과 마하파사파제는 태자를 잃었기 때문에 반드시 근심하고 괴로워하실 것이며, 궁중 안팎에서도 야단법석일 것이옵니다.
또 여기야말로 여러 험난함이 많고 사나운 짐승과 독충들이 길에 마구 깔려 있거늘 제가 어떻게 태자를 버리고 혼자 궁중으로 돌아가겠나이까?’
태자는 곧 차익에게 대답하였다.
‘세간의 법에서는 혼자 나고 혼자 죽거늘 어찌 또 벗이 있겠느냐? 또 나고ㆍ늙고ㆍ병들고ㆍ죽음의 여러 고통이 있거늘 내가 어찌하여 이것과 함께 벗이 되어야겠느냐? 나야말로 이제 모든 고통을 끊기 위하여 여기까지 온 것이니,
고통이 만약 끊어진 때면 그런 뒤에 일체 중생들과 함께 벗이 되겠거니와,
내가 지금에 모든 고통도 아직 끊지 못했으면서 어찌하여 너와 벗이 될 수가 있겠느냐?’
차익은 또 말하였다.
‘태자가 탄생하셔서부터는 깊은 궁중에만 오래 계셨으므로 몸과 손발이 모두 다 부드러우며 잠을 자는 평상과 이부자리는 가늘고 미끄럽지 않음이 없었거늘, 어떻게 하루아침에 가시덤불과 기와 부스러기며 진흙을 깔고 나무아래 머무르시겠나이까?’
태자가 대답하였다.
‘진실로 너의 말과 같되 만일 내가 궁중에서 산다 하면 이런 가시덤불의 환난을 면할 수 있거니와, 늙고ㆍ병들고ㆍ죽음의 고통만은 마침내 저절로 침범을 당하리라.’
차익은 태자의 이 말을 듣고 슬피 울며 눈물을 흘리면서 잠자코 서 있자, 때에 태자는 차익에게 나아가서 7보의 칼을 잡고 사자처럼 외쳤다.
‘과거의 부처님네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기 위하여 장식과 좋은 것을 버려 버리고 수염과 머리칼을 깎아 없애셨나니, 나도 이제 모든 부처님의 법을 의지해야 하리라.’
이 말을 하여 마치고 곧 보배 관과 상투 속의 명주(明珠)를 벗어서 차익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이 보매 관과 명주를 왕의 발 아래 바치고서 너는 나를 위하여 대왕에게 아뢰기를,
〈저는 이제 하늘에 나서 즐기려 함도 아니요, 또한 부모에게 불효하려 함도 아니요, 또한 원망하거나 성내는 마음도 없으며 오직 저 나고ㆍ늙고ㆍ병들고ㆍ죽음을 두려워하여 끊어 없애기 위하여 여기까지 왔을 뿐이옵니다〉라고 할 것이며,
너는 나를 도와서 따라 기뻐하고 경하할 것이요, 상서로운 일에 다시는 슬퍼하거나 근심을 하지 말라.
부왕께서 만약 나의 지금의 집을 떠남이 아직 시기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면,
너는 나의 말로써 대왕께 아뢰기를,
〈늙고ㆍ병들고ㆍ죽음의 다가옴이 어찌 일정한 시기가 있으며, 사람이 비록 젊고 씩씩하다 한들 어찌 이를 면할 수 있겠나이까〉라고 하라.
부왕께서 만약 또 나를 책망하시되,
〈본래 아들을 두겠다는 약속으로 집 떠나기를 허락하였거늘 이제 아직 아들이 없으면서 어찌하여 떠나갔는냐〉라고 하시면,
궁중을 나올 때에 미처 여쭙지 못한 것을 네가 나를 위하여 자세히 부왕에게 여쭙되,
〈야수다라는 오래부터 이미 임신하였사오니 왕 스스로가 물어 보실 것이오며, 옛날의 칙명이 그와 같으셨으므로 멋대로 한 것이 아니옵니다〉라고 하더이다라고 하라.
옛날에 전륜성왕으로서 나라의 자리를 싫어할 이들은 산 숲에 들어가서 집을 떠나 도를 구하다가 중도에 돌아가서 다섯 가지 욕심을 받음이 없었나니 내가 이제 집을 떠나서도 역시 그와 같으리라. 보리를 이루지 못하면 마침내 궁중에 돌아가지 않으리니, 안팎 권속들이 모두 나에게 은혜와 애정이 있을 터이나 너의 변재로써 그들을 위하여 풀이할 것이요, 나에게 멋대로 근심 고통을 내지 않게 하라.’
그리고 태자는 또 다시 몸의 영락을 벗어서 차익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너는 나를 위하여 이 영락을 가져다 마하파사파제께 바치면서 아뢰되,
〈저는 이제 모든 괴로움의 근본을 끊기 위하여 짐짓 궁성을 나왔으므로 이 소원을 채우겠으니, 다시는 저에 대하여 도리어 괴로움을 일으키지 마소서〉라고 하더라 하라.
또 몸 위의 그 밖의 꾸미개를 벗어서 야수다라에게 줄 터이니, 또 다시 말하기를
〈인생은 세상에서 사랑하면 이별하는 괴로움이 있으므로, 나는 이제 이 여러 괴로움을 끊기 위하여 집을 떠나서 도를 배우는 것이니, 나 때문에 항상 근심 걱정을 하지 마시오〉라고 하더이다 할 것이며,
아울러 여러 친척들에게도 모두 역시 그와 같이 할지니라.’
그때에 차익은 이 말을 듣고 나서 갑절 더 몹시 슬퍼하면서 차마 태자의 명령을 어기지 못하고 길이 꿇앉아 보배 관과 명주ㆍ영락ㆍ꾸미개 등을 받아 가지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제가 태자의 그와 같은 뜻과 소망을 듣자오매 온몸이 벌벌 떨리옵니다. 설령 어떤 사람의 마음이 나무와 돌과 같다 하더라도 이 말씀을 들으면 역시 슬프게 느끼겠거든 하물며 나면서부터 태자를 받들어 모신 제가 이 맹세를 들고서 마음 아파하지 않겠나이까? 오직 원하옵나니, 태자께서는 이 뜻을 버리시고 부왕과 마하파사파제와 야수다라며 아울러 다른 친척들에게는 큰 슬픔과 고통이 나지 않게 하옵소서. 만약 결정코 이 뜻을 돌리시지 않겠으면 이 곳에서 다시 저를 버리지나 마옵소서.’
저는 이제 태자의 발 아래 귀의하겠사오니, 끝끝내 어기고 떠나가는 거동은 보지 않으리이다. 설령 궁중으로 돌아가더라도 왕은 반드시 저를 책망하실 터인데, 어떻게 태자를 버리고 혼자 돌아가서 무슨 말로써 대왕에게 대답을 올리게 하려 하나이까?’
태자는 대답하였다.
‘너는 지금 그와 같은 말은 하지 말라. 세상이 모두 이별이니, 어찌 언제나 모여 있겠느냐? 나를 낳은 지 7일 만에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모자도 오히려 죽음과 삶의 이별이 있거든 하물며 딴 사람들끼리겠느냐? 너는 나에게 치우치게 그리움만을 내지 말고 건척과 함께 궁중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렇게 다시금 명령하였으나 아직도 떠나가려 하지 않았다.
그때 태자는 곧 날카로운 칼로써 스스로 수염과 머리칼을 깎고서 원을 세우기를,
‘이제 수염과 머리칼을 깎았사오니, 원컨대 일체와 함께 번뇌와 익힌 죄장을 끊어 없애 주소서.’
그러자 석제환인은 머리칼을 받아서 떠나갔으며, 허공에서 여러 하늘들은 향한 사르고 꽃을 흩으면서 소리를 같이하여 찬탄하였다.
‘장하십니다. 장하십니다.’
그때 태자는 수염과 머리칼을 깎은 뒤에 스스로 그 몸에 입고 있는 옷을 보았더니, 아직도 이는 7보인지라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과거 모든 부처님네의 집을 떠난 법에 입으셨던 의복은 이와 같지는 않으셨으리라.’
이때에 정거천이 태자의 앞에서 변화로 사냥꾼이 되어서 몸에 가사를 입고 있자, 태자는 보고 마음에 크게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당신이 입고 있는 옷은 바로 고요함이 의복인지라, 옛날 모든 부처님네의 표지이거늘 어찌하여 이를 입고서 죄를 짓는 행동을 하십니까?’
사냥꾼이 대답하였다.
‘내가 가사를 입은 것은 여러 사슴들을 유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슴은 가사를 보고 모두 와서 나를 가까이하면 나는 죽일 수가 있습니다.’
태자는 또 말하였다.
‘만약 당신의 말과 같다면 이 가사를 입는 것은 다만 사슴들을 죽이려 하는 것뿐이요, 해탈을 구하려고 입은 것이 아닙니다. 나는 이제 이 7보의 옷을 가져서 당신과 바꾸겠소. 나는 이 옷을 입고서 일체 중생을 거두고 구제하여 그의 번뇌를 끊으려 합니다.’
사냥꾼이 대답하였다.
‘좋습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즉시 보배 옷을 벗어서 사냥꾼에게 주고 자신은 가사를 입고서 과거 모든 부처님네의 입으셨던 법을 의지하였다.
이때에 정거천은 다시 범천의 몸으로 되돌아가며 허공을 올라서 그의 있던 곳으로 돌아갔었는데, 때에 공중에서 기이한 광명이 있자 차익은 이를 보고 마음에 기특하게 여기며 전에 없었던 일이라 찬탄하면서,
‘이제 이 상서로운 감응(感應)이야말로 작은 일이 아니로구나.’
차익은 태자가 수염과 머리칼을 깎아 없애고 몸에 법복을 입었음을 보고서 결정코 태자를 돌릴 수 없음을 알고 땅에 뒹굴며 갑절 더 괴로워하므로, 그때에 태자는 말하였다.
‘너는 이제 마땅히 이 슬픔과 근심을 버리고 곧 궁성으로 돌아가서 자세히 나의 뜻을 말할지니라.’
태자는 이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므로 차익은 흐느끼며 땅에 엎드려 예배하고 멀어질 때까지 바라보며 태자가 보이지 않게 되자 연후에야 일어나서 온몸을 벌벌 떨면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건척과 꾸미개를 돌아보고는 목이 메어 슬피 울며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곧 건척을 끌고 보배 관과 몸을 장식한 꾸미개를 가지고서 차익은 울부짖고 건척은 슬피 울면서 길을 따르며 돌아왔다.
그때 태자는 그대로 나아가서 발가 선인이 살고 있는 곳에 이르자, 때에 그 숲 속에 있던 날짐승과 길짐승들이 태자를 보고서 모두 다 똑바로 보며 단정히 서서 눈도 깜작거리지 않았으며,
발가 선인은 멀리서 태자를 보고 생각하였다.
‘이 분은 어떠한 신이실까, 일천(日天)일까, 월천(月天)일까, 제석이실까’라고 하면서,
곧 권속들과 함께 태자를 영접하며 깊이 공경과 존중심을 내면서 말하였다.
‘잘 오십시오. 어진 이여.’
태자는 여러 신선들을 보며 마음과 뜻이 부드러워지고 위의가 차분하여지므로 태자는 곧 그들의 사는 곳으로 나아갔더니, 그 신선들은 다시는 거룩한 빛이 없어져버렸는데 모두가 다 같이 와서는 태자가 앉기를 청하는지라, 태자는 앉고 나서 그 신선들의 행을 자세히 살펴보자,
어떤 이는 풀로써 옷을 삼은 이도 있고 어떤 이는 나무껍질과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기도 하고,
어떤 이는 하루에 한 끼를 먹기도 하고, 어떤 이는 이틀에 한 끼를 먹기도 하고, 어떤 이는 사흘에 한 끼를 먹기도 하여 이와 같은 스스로 굶주리는 법을 행하였으며,
혹은 물과 불을 섬기기도 하고, 혹은 해와 달을 받들기도 하고, 혹은 한 다리를 발돋움하여 서 있기도 하고, 혹은 티끌 있는 땅에 누워 있기도 하고, 혹은 가시나무 위에 누워 있기도 하고, 혹은 물과 불의 곁에 누워 있기도 하였으므로,
태자는 이러한 고행을 보고서 곧 발가 선인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지금 이러한 고행을 닦으니, 매우 기특합니다. 모두가 어떠한 과보를 구하려고 하십니까?’
선인이 대답하였다.
‘이런 고행을 닦아서 하늘에 나려고 합니다.’
태자는 또 물었다.
‘여러 하늘이 비록 즐겁기는 하나 복이 다하면 떨어져서 여섯 갈래를 윤회(輪廻)하므로 마침내 괴로움의 무더기거늘 당신들은 어째서 모든 괴로움의 원인을 닦아서 괴로움의 과보를 구하십니까?’
그리고 태자는 마음에 스스로 한탄하였다.
‘장사하는 사람은 보배 때문에 바다에 들어가고, 왕은 국토를 위하여 군사를 일으켜 상대방을 치거늘, 이제 저 신선들은 하늘에 나기 위하여 이런 고행을 닦는구나.’
한탄하기를 마치고 잠자코 서 있자, 발가 선인은 곧 태자에게 물었다.
‘어진 이께서는 무슨 뜻으로 잠자코 계시며 말씀을 하지 않습니까? 저희들의 하는 일이 참되고 바른 것이 아닙니까?’
태자는 대답하였다.
‘당신들의 하는 일들이 지극한 고행이 아님은 아니로되 그러나 구하시는 과보가 마침내 괴로움을 여의치 못하리라.’
태자와 그 신선들은 이런 의론을 펴며 말이 오가다가 날이 저물어졌으므로, 태자는 거기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다시 생각하였다.
‘이 신선들은 비록 고행을 닦기는 하나 모두가 해탈하는 참되고 바른 도가 아니다. 나는 이제 여기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겠구나.’
즉시 신선들과 작별을 하고 떠나가려 하자, 때에 그 신선들은 태자에게 아뢰었다.
‘어진 이께서 여기에 오시자 우리 모두가 기뻐하였으며 우리들에게 거룩한 덕이 더욱 왕성하게 해 주셨거늘 이제 무엇 때문에 갑자기 떠나가려 하십니까?
바로 우리들이 위의에 잘못을 깨쳤습니까?
이 대중 가운데서 감정을 돋울까 해서 그러하십니까?
무슨 일 때문에 여기에 계시지 않겠습니까?’
태자는 대답하였다.
‘이는 당신들이 손님을 대하는 위의에 잘못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또한 모자란 바도 없지만 다만 당신들의 닦는 바가 괴로움의 원인만을 더욱 자라게 하는 것이므로, 나는 이제 도를 배워서 괴로움의 근본을 끊으렵니다. 이런 인연 때문에 떠나갈 뿐입니다.’
그러자 그 신선들은 함께 의논하였다.
‘그가 닦은 도가 극히 넓고 크거늘 어찌하여 우리들이 만류할 수야 있겠습니까?’
그때에 관상하는 법을 잘 아는 한 신선이 있다가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이제 이 어진 이야말로 모든 상호가 완전히 갖추어져서 반드시 일체 종지를 얻어서 하늘과 사람들의 스승이 되겠습니다.’
그리고는 곧 함께 태자에게 나아가서 이런 말을 하였다.
‘닦는 도가 특이한지라 감히 만류하지는 못하겠습니다만 만약 떠나가시려면 북쪽을 향하여 가십시오. 거기에는 아라라(阿羅邏)와 가란(加蘭)이라는 큰 신선들이 계십니다.
어진 이께서는 가셔서 그들과 논의를 하십시오. 그러나 제가 어진 이를 자세히 살피건대 역시 그 곳에서도 머무르지 않으실 것같습니다.’
이에 태자는 곧 북쪽으로 떠나가자 그 신선들은 태자가 떠나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괴로워하면서 합장하고 따라 전송을 하며 아주 멀어져서 보이지 않게 되자 그런 뒤에 비로소 돌아왔었다.
그때 태자가 궁중을 나간 뒤에 날이 밝아지자 야수다라와 여러 채녀 들은 잠에서 깨어났는데, 태자가 보이지 않는지라 슬피 부르짖으며 울다가 곧 마하파사파제에게 가서 여쭈었다.
‘오늘 아침에 갑자기 태자가 어디 계신지를 모르겠습니다.’
마하파사파제는 이 말을 듣고 기절하여 땅에 넘어져 버렸다. 이렇게 하여 차츰차츰 왕까지 알게 되자 왕은 이 말을 듣고 우두커니 소리가 없다가 정신을 잃었는데, 마치 온몸이 죽어버린 것과 같아졌으며, 온 궁중 안팎이 다 역시 그와 같았었다.
이때에 대신들은 곧 들어가서 태자의 살던 곳을 조사하였고 궁성을 순찰하자 성의 북쪽 문이 저절로 이미 열리어 있음을 보았으며, 또 다시 차익과 건척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바로 문지기에게 물었다.
‘누구가 이를 열었느냐?’
서로가 알아 보아도 모두가 모르겠다고 하므로, 아울러 방위하던 사람들에게 물어도 역시 이 문이 열려진 뜻을 모르겠다고 하는지라 때에 대신은 생각하였다.
‘북쪽 문이 이미 열렸으니 태자는 반드시 여기로 나갔으리니, 빨리 태자의 계신 데를 찾아야겠구나.’
그리고는 곧 천 수레와 만의 말에게 칙명하여 잇달아 사방으로 내보내어 태자를 좇아 찾게 하였으나 하늘의 힘 때문에 길을 헷갈려 잃어버리고 가는 데를 몰랐으므로 곧 돌아와서는 대왕에게 아뢰었다.
‘태자를 찾아보았사오나 계신 데를 모르겠습니다.’
그때 차익은 걸어서 건척과 꾸미개들을 끌고 슬피 울며 목이 메어서 길을 따라 돌아오는데, 온 읍의 인민들이 목이 메어서 길을 따라 돌아오는데, 온 읍의 인민들이 이를 보고 놀라며 괴로워하지 않는 이 없이 모두 다 다투며 와서 차익에게 물었다.
‘너는 태자를 보내어 어느 곳에 두고서 이제 건척과 혼자만이 돌아오느냐?’
차익은 여러 사람들의 이런 질문을 받고 갑절이나 더 슬퍼하면서 대답을 못하였는데, 이 인민들은 비록 건척이 안장을 7보로 장엄은 하였으나 태자가 보이지 않는지라, 마치 죽은 사람이 꽃과 비단으로 꾸며 있음과 같았다.
이에 차익이 먼저 궁성으로 들어가니 건척이 슬피 울었는데, 여러 마구에서 말들이 한꺼번에 슬피 울었으므로 밖의 여러 관속들이 마하파사파제와 야수다라에게 아뢰었다.
‘차익만이 건척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이 말을 듣고 땅에 뒹굴어져서 생각하였다.
‘이제 차익과 건척이 서로 따르며 함께 돌아왔다는 것만 들리고 태자가 돌아왔다고 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구나.’
마하파사파제는 이런 말을 하였다.
‘내가 태자를 길러서 나이가 장대하여졌는데, 하루아침에 나를 버려 있는 데를 모르겠구나. 마치 과일나무에 꽃이 맺어서 열매가 되었다가 익으려 하는데 땅에 떨어져버린 것과 같으며, 또 굶주린 사람이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만나서 먹으려 하는데 갑자기 엎어져버린 것과 같구나.’
야수다라는 또 스스로 말하였다.
‘나와 태자는 가고ㆍ서고ㆍ앉고ㆍ눕는 데에 서로가 멀리 여의지를 않았거늘, 이제 나를 버리고 간 데조차 모르겠구나.
옛날에 여러 왕들도 산에 들어가 도를 닦으면 모두가 처자를 데리고서 잠시도 서로가 버리지 않았다.
세간의 사람들은 한 번 만나서 서로가 알았다가 이별하여도 서로가 잊어버리지 아니하거늘, 부부간의 정은 은애와 사랑이 깊은데도 이에 도리어 이렇듯 야박하실까.’
그리고는 차익을 힐난하였다.차라리 지혜로운 이들과 원수를 맺을지언정 어리석은 사람과는 함께 친할 것이 못되도다.
너 미련퉁이야, 몰래 태자를 전송하여 어디다 두고 이 석가 성바지가 다시는 흥성하지 못하게 하느냐? .’
또 건척을 책망하였다.
‘너는 태자를 싣고 이 왕궁을 나가면서 떠나갈 때쯤 되어서는 고요히 소리조차 없이 하다가 이제야 빈 것으로 돌아와서 무슨 뜻으로 슬피 울었느냐?’
그때에 차익은 곧 대답하였다.
‘저와 건척만을 책망하지 마십시오. 왜냐 하면 이것은 바로 하늘의 힘이었고 사람으로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날 저녁에 부인과 채녀들은 모두가 다 혼곤히 잠이 들었는데 태자께서 저에게 칙명하여 일으켜 말을 차리게 하셨으므로 저는 그때에 크고 높은 소리로써 태자에게 간하면서 부인과 채녀들이 이를 듣고 놀라 깨어나게 하려 하였으며 건척을 차렸지만 도무지 깨어난 이가 없었습니다.
성문이 열린 적마다 40리를 들리는 데도 그러한 때에만은 저절로 열려지고 또 소리 하나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어찌 하늘의 힘이 아니었겠습니까?
성을 나갈 때에는 하늘이 여러 신들에게 손으로 말의 발을 바치고 저를 붙안았으며, 허공의 하늘들로서 따라 모신 이가 수없었는데 제가 어떻게 하여 중지시킬 수가 있었겠나이까?
이때에 하늘이 밝자 3요자나를 갔었으며, 저 발가 선인이 사는 데에 이르러서는 또 여러 가지의 기특하고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원컨대 저의 말씀을 들어 주십시오. 태자께서 발가 선인이 고행하는 숲 속에 이르시어 말을 내리면서 손으로 말의 등을 어루만지며 아울러 저에게 명령하여 궁성으로 돌아가게 하시는지라, 저는 이때에 태자를 따라 모시며 영원히 돌아올 뜻이 없었는데도 태자는 보내면서 끝끝내 머물기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저에게 나오셔서 7보의 칼을 가지시고 스스로 부르짖기를,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기 위하여 장식한 것을 버리고 수염과 머리칼을 깎아 없애셨으니, 나도 이제 모든 부처님네의 법에 의지하리라〉 하며,
이런 말씀을 하여 마치시고, 곧 보배관과 명주를 벗어서 모두 저에게 맡기며 왕의 발 아래 놓아두게 하셨고, 또 영락을 마하파사파제에게 드리도록 하셨으며, 나머지의 꾸미개를 야수다라에게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에 비록 이런 가르침을 들었었으나, 오히려 좌우에서 모시면서 돌아오려는 뜻이 없어 하자, 때에 태자께서는 문득 날카로운 칼로써 스스로 수염과 머리칼을 깎으셨는데, 하늘이 공중에서 따라 받아 가지고 떠나갔었습니다.
바로 앞으로 나가시다가 사냥꾼을 만나서는 몸에 입으셨던 7보의 아름다운 옷을 사냥꾼에게 주시고 가사와 바꾸셨는데, 이에 허공에서는 큰 광명이 있었습니다.
저는 태자의 형상과 의복이 변하셨음을 보고 그의 뜻을 반드시 돌리 수 없음을 깊이 알아차리자, 저는 곧 기절하고 마음으로 크게 괴로워하였습니다.
태자께서 나아가시다가 발가 선인이 사는 곳에 이르러서야 저는 곧 거기에 작별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여러 가지 기특한 것이 모두 이는 하늘의 힘이요, 사람의 힘은 아니었습니다. 원컨대 저와 건척을 책망하지 마십시오.’
이때에 마하파사파제와 야수다라는 차익이 하는 이러한 말을 듣고 나서는 마음에 조금은 깨닫고서 잠자코 소리가 없었다.
그때 백정왕은 기절하였다가 비로소 깨어나서 칙명으로 차익을 불러서는 말하였다.
‘너는 어째서 여러 석가 성바지들에게 큰 괴로움이 생기게 하였느냐?
나는 엄한 금제령을 두어서 안팎의 관속들에게 칙명하며 태자를 수호하게 하면서 그의 집 떠날 것을 두려워하라 하였거늘, 너는 또 무슨 뜻에서 곧 건척을 차리어 태자에게 주며 몰래 떠나가 버리게 하였느냐?’
차익은 듣고 나서 크게 두려워하면서 왕에게 여쭈었다.
‘태자께서 성을 나가신 것은 실로 저의 허물이 아니옵니다. 오직 원하옵나니, 저의 자세한 말씀을 들어 주옵소서.’
그리고는 곧 보배의 관과 상투 속의 명주를 왕의 발아래에 놓으면서 말하였다.
‘태자는 저에게 이 관과 구슬을 왕의 발아래 놓게 하고,
7보의 영락은 마하파사파제에게 드리라 하고,
나머지 꾸미개는 야수다라에게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왕은 여러 물건들을 보고 갑절이나 더 슬퍼하였나니, 비록 또 나무와 돌이더라도 느낌이 있거늘 하물며 부자간의 은애와 사랑의 깊음이겠는가?
차익은 자세히 앞의 일들을 왕에게 아뢰었다.
‘태자께서 저에게 칙명하시기를,
〈부왕께서 만약 본래 아들을 둘 것을 약속으로 집 떠나기를 허락하였거늘 이제 아직 아들을 두지 못하였으면서 어찌하여 떠나갔느냐라고 하시면,
떠나려 할 때에 미처 여쭙지 못한 것을 너는 나를 위하여 자세히 부왕게 대답하되,
야수다라는 오래부터 이미 임신하였사오니, 왕께서 물어보심이 마땅하오리다.
옛날에 칙명(勅命)이 그러하였으므로 제멋대로 한 것은 아닙니다라고 하라〉고 하였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곧 야수다라에게 묻게 하였다.
‘태자가 말하는데, 너는 오래 전에 이미 임신하였었다하니 사실이 그러하느냐?’
야수다라가 대답하였다.
‘대왕께서 이 궁전에 오셨을 적에 태자가 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는데, 바로 임신하게 된 것을 알았습니다.’
왕은 그의 말을 듣고 기특한 마음을 내며 근심과 괴로움을 잠시나마 쉬면서 생각하였다.
‘내가 전에 허락한 까닭은 아들이 있게 되면 집떠나기를 허락하겠다고 하였지만 7일 동안에 반드시 아들이 있을 리가 없고 전륜왕의 왕위는 저절로 이르겠기에 그러하였거늘 7일 미만에 문득 임신하리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였다.
깊이 자신의 허물이 애처롭구나. 지혜가 얕고 짧아서 썼던 방편으로는 그를 머무르게 할 수 없었으니, 경솔하게 이런 약속을 하여 더욱 더 뉘우쳐만 지는구나.
태자의 귀신 같은 지략이야말로 사람들의 뜻을 뛰어났으며 오늘의 일은 또한 바로 여러 큰 하늘의 힘까지 겹쳐진 것을 나는 이제 차익만을 책망해서는 안 되겠구나.’
이때에 백정왕은 생각하였다.
‘태자의 집 떠난 것은 반드시 돌릴 수도 없거니와 설사 다시 다른 방편을 써서도 역시 만류할 수는 없다.
비록 또 나라를 버리고 집을 떠나서 도를 배우기는 하되, 그러나 이미 아들을 두었으니 후사는 끊어지지 않았도다.
나는 이제 야수다라에게 칙명하여 배에 있는 아들이나 잘 보호하도록 하여야겠구나.’
때에 백정왕은 사랑스런 생각과 정이 깊은지라 차익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태자를 찾아 나가야겠다. 지금쯤 바로 어디에 있는 줄 모르겠느냐?
그는 이제 이미 나를 버리고 도를 배우는 터인데 날들 다시 어찌 차마 혼자야 생활하겠느냐?
곧 좇아가서 그의 있는 데를 따르리라.’
그때에 왕사(王師)와 대신은 왕이 태자를 찾아 나서려 한다 함을 듣고 두 사람이 함께 와서 왕에게 간하였다.
‘대왕께서는 스스로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왜냐 하면 제가 태자를 자세히 살피며 그의 모습을 보건대 과거의 세상 동안에 오래 이미 집을 떠나는 업을 닦고 익혔습니다.
설령 다시 석제환인이 되라 하여도 즐겨하지 않겠거든, 하물며 또 이제 전륜왕의 왕위로서 만류하겠습니까?
대왕께서는 기억하시지 않습니까?
태자께서 처음 탄생하여 일곱 걸음을 가서 손을 들고 서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생(生)은 이미 다하여 바로 마지막 몸이로다〉라고 하셨으며,
여러 범천왕과 세제환인이 모두 내려와서 따랐습니다.
이와 같이 기록(奇特)하셨거늘 어찌하여 세상을 즐기겠습니까.’
또 다시 왕에게 아뢰었다.
‘아시타 신선이 옛날에 태자의 관상을 보면서 나이 열아홉 살이 되면 집을 떠나 도를 배우며 반드시 일체 종지를 성취하리라 하셨습니다.
이제 때가 이미 이르렀거니 대왕께서는 무엇 때문에 근심하고 괴로워하십니까?
또 대왕께서는 엄히 안팎에 칙명하여 태자를 수호하게 하면서 집 떠날 것을 두려워하셨지만 여러 하늘이 와서 인도하여 성을 나가시게 하였으니, 이와 같은 일이야말로 사람의 힘은 아닙니다. 오직 원컨대 대왕은 기쁨을 내셔야 합니다.
수심과 괴로움은 품지 마시고 몸소 나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태자를 생각하며 오히려 마지 않으시겠다면 제가 이제 대신과 함께 계신 데를 찾아 가겠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나도 태자를 돌릴 수 없다 함은 알고 있으며 차마 버리지는 못하겠지만 따르기까지는 않으리라.
이제 시험 삼아 스승과 대신에게 한 번 찾도록 하여야겠다.’
곧 스승과 대신에게 대답하였다.
‘장하십니다. 떠나가십시오. 온 궁중(宮中) 안팎이 마음으로 모두 괴로워하면서 기다리고 있으리니, 속히 돌아오십시오.’
이에 왕사와 대신은 즉시 작별하고 나가서 태자를 따르며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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