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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식신족론 제1권
4) 올타남송(嗢拕南頌)
무소연(無所緣)과 정려(靜慮)와
이생(異生)과 대사(大士)와 수(羞)와
유정들의 거처[有情居]를 널리 펴 설하는 것과
식(食)과 성제(聖諦)와 누를 끊는 것[斷漏]이다.
[무소연(無所緣)]
사문 목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반연할 대상이 없는 마음[無所緣心]이 있다.”
그에게 물어야만 하리니,
“계경에서 세존께서는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되,
‘필추는 요별(了別)하나니, 요별하기 때문에 일컬어 식(識)이라 한다.
어느 것을 요별하는가?
이른바 물질[色]을 요별하고 소리[聲]ㆍ내음[香]ㆍ맛[味]ㆍ촉감[觸]ㆍ법[法]을 요별하느니라’ 하셨는데,
그대는 이 말씀을 옳다고 여기는가?”
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말해 주어야 하리라.]
“그대는 이미 논의에 지고 있다[墮負].
만일 그대가 반연할 대상이 없는 마음이 있다 한다면,
곧 계경에서 세존께서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면서,
‘필추는 요별하나니, 요별하기 때문에 일컬어 식이라 한다.
어느 것을 요별하는가?
이른바 물질을 요별하고 소리ㆍ내음ㆍ맛ㆍ촉감ㆍ법을 요별하느니라’라고 말씀하지 않았어야 하나니,
이와 같은 말씀은 도리에 맞지 않다
그대는 지금 만일 계경에서 세존께서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되,
‘필추는 요별하나니, 요별하기 때문에 일컬어 식이라 한다.
어느 것을 요별하는가?
이른바 물질을 요별하고 소리ㆍ내음ㆍ맛ㆍ촉감ㆍ법을 요별하느니라’라고 하신 말씀을 인정한다면,
곧 ‘반연할 대상이 없는 마음이 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반연할 대상이 없는 마음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반연할 대상이 없는 마음이란 반드시 있는 것이다.
어느 것이 그것인가?
이른바 과거를 반연하기도 하고 혹은 미래를 반연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에게 물어야만 하리니,
“계경에서 세존께서는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면서 본래 어부였던 사저(沙底) 필추를 위하여 말씀하시되,
‘필추야, 저 여러 가지의 인(因)으로 말미암고 저 여러 가지의 연(緣)으로 말미암아 식(識)을 일으키고 식이 생긴 뒤에는 저 여러 가지의 범주[數]에 떨어지나니,
눈과 물질로 말미암아 식을 일으키고 식이 생긴 뒤에는 안식(眼識)의 범주에 떨어지며,
귀ㆍ코ㆍ혀ㆍ몸ㆍ뜻과, 그리고 [소리ㆍ내음ㆍ맛ㆍ촉감]ㆍ법으로 말미암아 식을 일으키고,
식이 생긴 뒤에는 의식(意識)의 범주에 떨어진다’ 하셨는데,
그대는 그 말씀을 옳다고 여기는가?”
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말해 주어야 하리라.]
“그대는 논리에 지고 있다.
만일 그대가 반연할 대상이 없는 마음이 반드시 있다고 한다면,
곧 이른바 계경에서 세존께서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면서 본래 어부였던 사저 필추를 위하여 말씀하시되,
‘필추야, 저 여러 가지의 인으로 말미암고 저 여러 가지의 연으로 말미암아 식을 일으키며,
식이 생긴 뒤에는 저 여러 가지의 범주에 떨어지나니,
눈과 그리고 물질로 말미암아 식을 일으키고,
식이 생긴 뒤에는 안식의 범주에 떨어지며,
귀ㆍ코ㆍ혀ㆍ몸ㆍ뜻과 그리고 [소리ㆍ내음ㆍ맛ㆍ촉감]ㆍ법으로 말미암아 식을 일으키고,
식이 생긴 뒤에는 의식의 범주에 떨어진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어야 하니,
그와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그대가 이제 만일 이른바 계경에서 세존께서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면서 본래 어부였던 사저 필추를 위하여 말씀하시되,
‘필추야, 저 여러 가지의 인으로 말미암고 저 여러 가지의 연으로 말미암아 식을 일으키고,
식이 생긴 뒤에는 저 여러 가지의 범주에 떨어지나니,
눈과 그리고 물질로 말미암아 식을 일으키고,
식이 생긴 뒤에는 안식의 범주에 떨어지며,
귀ㆍ코ㆍ혀ㆍ몸ㆍ뜻과 그리고 [소리ㆍ내음ㆍ맛ㆍ촉감]ㆍ법으로 말미암아 식을 일으키고,
식이 생긴 뒤에는 의식의 범주에 떨어진다’고 하신 말씀을 인정한다면,
곧 ‘반연할 대상이 없는 마음은 반드시 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반드시 반연할 대상이 없는 마음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정려(靜慮)]
사문 목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과거와 미래는 없고 현재와 무위는 있다.”
그에게 물어야만 하리니,
“만일 나쁜 짓 한 것을 부끄러워하고[慚羞]ㆍ애락(愛樂)을 막아 수호하고 배운 것에 오래오래 있으면서 잘 머물면[善處] 세간의 네 가지 정려를 증득한다고 하니,
그것을 그대는 옳다고 여기는가?”
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물어야 하리라.]
“저 구수(具壽)가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는 여러 가지로 도리에 밝으며 범행을 같이한 어떤 이가 와서 말하기를,
‘구수여, 그대 스스로가 증득한 바를 기별(記別)해야 합니다’고 하면,
그는 말하기를,
‘구수여, 나는 지금 이미 세간의 네 가지 정려를 증득하였습니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대에게 묻겠다.
곧 저 구수는 언제 증득한 것을 기별하는 것인가? 과거의 것인가, 미래의 것인가, 현재의 것인가?
만일 과거의 것을 기별한다고 하면,
‘과거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과거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과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미래의 것을 기별한다고 하면,
‘미래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미래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현재의 것을 기별한다고 하면,
‘한 보특가라에게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하나는 바로 기별할 대상[所記]이요,
다른 하나는 바로 기별하는[能記] 자로서 두 개의 마음이 화합하는 것이 있다’고 말해야 하며,
또 선정 가운데 있어서는 특이한 말[異語]을 해야 하나니,
이것은 도리에 맞지 않으며,
만일 ‘한 보특가라에게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하나는 바로 기별할 대상이요,
다른 하나는 곧 기별하는 자로서 두 개의 마음이 화합한다’라고 말하지 않고,
또 선정 가운데 있어서의 특이한 말을 하지 않으면,
곧 현재의 것을 기별한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현재의 것을 기별한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것을 기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곧 빈 것이어서 남보다 뛰어난 법[勝過人法]이 없으면서도 자칭 ‘있다’고 말할 뿐이니,
그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5근, 이생(異生)]
사문 목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과거와 미래는 없고 현재와 무위는 있다.”
[그에게 물어야만 하리니,]
“계경에서 세존께서는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의 근(根)이 있으니, 이른바 신근(信根)ㆍ정진근(精進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ㆍ혜근(慧根)이니라.
필추야, 만일 이 다섯 가지의 근이 있으면 상품(上品)에 해당하며,
맹렬하고 날카로우며[猛利] 고르고 좋으며[調善] 원만하기 때문에 아라한(阿羅漢)ㆍ구분해탈(俱分解脫)을 이루나니,
이로부터 아래로 내려갈수록 한층 미약하고 둔해져서 혜해탈(慧解脫)을 이루고,
이로부터 아래로 더 내려가면 한층 더 미약하고 둔해져서 신증(身證)을 이루며,
이로부터 아래로 내려가면 또 한층 미약하고 둔해져서 견득(見得)을 이루고,
이로부터 아래로 내려가면 또 한층 미약하고 둔해져서 신해탈(信解脫)을 이루며,
이로부터 아래로 내려가면 한층 미약하고 둔해져서 수법행(隨法行)을 이루고,
이로부터 아래로 내려가면 더 한층 미약하고 둔해져서 수신행(隨信行)을 이루느니라.
필추야, 이와 같이 근바라밀다(根波羅密多)를 반연하여 과바라밀다(果波羅密多)가 시설된 줄 알아야 하며,
과바라밀다를 반연하여 보특가라(補特伽羅) 바라밀다가 시설된 줄 알아야 하니,
이와 같이 하면 다섯 가지의 근은 헛되이 버려짐이 없느니라.
비구야, 만일 이 다섯 가지의 근에 대하여 일체가 다 무아(無我)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생(異生)을 벗어난 곳[外異生品]에 머무른다≻고 하느니라.’
그대는 이 말씀을 옳다고 여기는가?”
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물어야 하리라.]
“구수여, 유학(有學)이 번뇌에 얽힌 마음[纏心]을 일으킬 때에 이 다섯 가지의 근은 어느 세상에 있다고 말해야 하는가? 과거인가, 미래인가, 현재인가?
만일 과거에 있다고 말한다면,
‘과거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과거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과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미래에 있다고 말한다면,
‘미래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미래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현재에 있다고 말한다면,
‘한 보특가라에게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하나는 배우는 마음[學心]이요,
다른 하나는 번뇌의 마음으로서 이 두 개의 마음이 화합하는 것이 있다’라고 말해야 하나,
이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한 보특가라에게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하나는 배우는 마음이요,
다른 하나는 번뇌의 마음으로서 이 두 개의 마음이 화합하는 것이 없다’고 한다면,
곧 현재에 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현재에 있다고 말함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곧 배울 것 있는 이가 번뇌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바깥[外]이라 말해야 하고,
또는 이생(異生)이라 말해야 하며, 바깥이자 이생의 부류에 머물러 있다고 말해야 한다.”
[대사(大士)]
사문 목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과거와 미래는 없고 현재와 무위는 있다.”
그에게 물어야만 하리니,
“계경에서 세존께서는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면서 구수 무멸(無滅)을 위하여 사람[大士]의 거친 생각[尋思]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욕탐심이 적은 것은 곧 법이지만 욕탐이 많은 것은 법이 아니니라[非法]’고 하셨는데,
그대는 이 말씀을 옳다고 여기는가?”
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물어야 하리라.]
“구수여, 욕탐이 적은 것은 곧 무슨 법인가?
이것은 심소유법[心所有法]이어서 마음과 상응한다[心相應].
구수여, 만일 아라한이 몸은 욕계(欲界)에 있으면서 현재 멸정(滅定)에 들었다면 이와 같이 욕탐이 적은 것은 어느 세상에 있다고 말해야 하는가? 과거인가, 미래인가, 현재인가?
만일 과거에 있다고 한다면,
‘과거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과거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과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미래에 있다고 한다면,
‘미래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미래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현재에 있다고 말한다면,
곧 ‘현재 멸정에 들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현재 멸정에 들었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지 않다고 말하면,
이것은 곧 아라한의 몸이 욕계에 있으면서 현재 멸정에 들어있을 때는 조금의 욕탐도 없어야 한다.”
[부끄러움, 수(羞)]
사문 목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과거와 미래는 없고 현재와 무위는 있다.”
그에게 물어야만 하리니,
“계경에서 세존께서는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면서 구수 라호라(羅怙羅)를 위하여 말씀하시되,
‘라호라야’ 만일 바르게 알고 있으면서도 거짓말을 하면서 남에게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워함이 없거나 그런 짓을 한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가 나쁜 업을 짓지 않음이 없다고 말하리라’라고 하셨는데,
그대는 이 말씀을 옳다고 여기는가?”
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물어야 하리라.]
“구수여, 남에게 부끄러워하고 자신에게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바로 어떠한 법인가?
이것은 심소유법(心所有法)이어서 마음과 상응한다고 하면,
구수여 만일 아라한이 몸은 욕계(欲界)에 있으면서 현재 멸정(滅定)에 들어 있을 때는 저 부끄러움은 어느 세상에 있어야 하는가? 과거인가, 미래인가, 현재인가?
만일 과거에 있다고 말하면,
‘과거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과거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과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미래에 있다고 말하면,
‘미래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미래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현재에 있다고 말하면,
‘현재 멸정에 들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현재 멸정에 들었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지 않다고 말하면,
이것은 곧 아라한의 몸이 욕계에 있으면서 현재 멸정에 들어 있을 때는 응당 부끄러움도 없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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