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일승보성론 제1권
6. 무량번뇌소전품(無量煩惱所纏品)
시들은 꽃 속의 모든 부처이고
뭇 별 속의 아름다운 꿀이고
껍질 겨 속의 알찬 열매이고
더러운 땅 속의 참된 금이며
땅 속의 값진 보배 광이고
모든 과일 씨 속의 싹이고
썩고도 허물어진 옷으로써
참된 금의 형상을 싸놓았으며
빈천하고도 추악한 연인이
전륜성왕(轉輪聖王)을 잉태하고
까맣게 타버린 흙 모형 속에
가장 훌륭한 보배 상(像)이 있는 격이라.
중생들의 탐욕ㆍ진심ㆍ우치와
허망한 생각과 번뇌 따위의
그 모든 때[垢] 속에도
다 여래장(如來藏)은 있기 마련이네.
꽃ㆍ벌과 껍질 겨와 더러운 똥과
땅ㆍ과일과 또는 낡은 옷과
빈천한 여인과 타버린 흙 모형은
번뇌의 때[垢]하고 서로 비슷한 것이며
부처님과 꿀ㆍ벌과 참된 금과
과일의 싹과 금 형상과 전륜왕과
가장 훌륭한 보배 형상 등은
여래장과 서로가 비슷한 것이네.
[문] 꽃과 부처님의 비유는 무슨 뜻을 밝히기 위한 것입니까?
[답] 시들어진 꽃을 말한 것은 모든 번뇌에 비유한 것이고,
모든 부처님을 말한 것은 여래장에 비유한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공덕으로 장엄하신 부처님께서
시들은 꽃 속에 머물러 계시지만
청정한 하늘눈을 지닌 자는
꽃을 제거하면 부처임이 나타나는 것을 보나니
부처님 눈은 자체를 보는 법이어서
일체 중생들에게 두루하되
아래로 아비지옥에 이르기까지
다 여래장을 구족한 것을 보시는지라
스스로 항상 머무는 곳에 처하사
자비(慈悲)의 방편으로써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장애를 멀리 여의게 하시네.
마치 썩어빠진 꽃 속에
모든 여래가 계시는 것은
하늘 눈 지닌 자는 보고 알아서
시들은 꽃잎을 제거하는 것처럼
여래께서도 이와 같이
탐욕과 번뇌의 때[垢]인
그 부정한 중생들 속에도
다 여래장을 구족한 것을 보시나니
대자대비한 마음으로써
세간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에
일체 중생들을 위하사
번뇌의 꽃잎을 제거해 주시네.
[문] 벌과 꿀의 비유는 무슨 뜻을 밝히기 위한 것입니까?
[답] 뭇 벌을 말한 것은 모든 번뇌에 비유한 것이고,
아름다운 꿀을 말한 것은 여래장에 비유한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최상의 묘하고 맛 좋은 꿀이
뭇 벌에 둘러싸여 있지만
필요로 하는 자는 방편을 베풀어
법을 흩어 버리고서 꿀을 취하나니
여래께서도 이와 같이
일체 지혜의 눈으로써
모든 번뇌의 벌들이
불상의 꿀을 둘러싼 것을 보시는지라.
큰 방편의 힘으로써
저 번뇌의 벌들을 흩어 버리고
여래장을 나타내는 그것이
마치 꿀을 취해 수용(受用)하는 것과 같네.
백천억 나유타(那由他)의
그 뭇 벌레들이
미묘한 꿀을 가로막음으로써
능히 가까이 할 자가 없지만
슬기 있는 자는 꿀을 필요로 하여
저 뭇 벌들을 살해하고서라도
최상의 맛 좋은 꿀을 취해
뜻대로 수용(受用)하는 것처럼
번뇌 없는 지혜는 꿀과 같아서
중생들의 몸속에 있는데
번뇌는 독한 벌레와 같으므로
이 때문에 여래께서 살해하시는 것이네.
[문] 거와 열매의 비유는 무슨 뜻을 밝히기 위한 것입니까?
[답] 껍질 겨를 말한 것은 모든 번뇌에 비유한 것이고,
겨 속의 열매를 말한 것은 여래장에 비유한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곡식의 열매가 겨 속에 있을 적엔
능히 수용할 사람이 없지만
언제나 필요하여 수용할 이가 있으면
방편으로써 그 껍질 겨를 제거하네.
부처님은 모든 중생들의 몸에
여래의 상품이 있기는 하되
번뇌의 껍질 겨에 둘러싸여서
부처님 일을 할 수 없는 것을 보시고
훌륭한 방편의 힘으로써
세 세계의 중생들로 하여금
번뇌의 껍질 겨를 제거하게 하여
뜻대로 부처님 일을 일으키시나니
마치 벼 곡식과 보리 곡식이
모든 껍질 겨를 여의지 않고는
속 열매가 깨끗이 다뤄지지 못해서
훌륭한 식용(食用)이 될 수 없는 것과 같네.
이와 같이 여래장도
번뇌의 겨를 여의지 않고는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그 번뇌에 허덕거리게 하는지라.
부처님은 자유로운 법왕이시므로
중생들의 몸속에 계시어
능히 좋은 맛을 보여 줌으로써
저 허덕이는 괴로움을 제거하시네.
[문] 똥과 금의 비유는 무슨 뜻을 밝히기 위한 것입니까?
[답] 더러운 똥을 비유한 것은 모든 번뇌와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고,
참된 금을 비유한 것은 여래장과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마치 어떤 사람이 먼 길을 가다가
금을 더러운 똥 속에 떨어뜨린 것이
백천세 동안을 묻혀 있어도
본래 그대로 변하지 않는지라.
청정한 누를 지닌 이가 보고는
뭇 사람들에게 두루 알려 말하기를
이 가운데 참된 금이 있으니
그대들은 가져다가 수용하라고 하는 것처럼
부처님도 중생들의 성품이
번뇌의 똥 속에 빠진 것을 보시고
저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미묘한 법 비를 부으시며
또 마치 부정(不淨)한 땅에
참된 금 보배를 흘린 것을
모든 하늘눈은 분명히 보지만
중생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는지라.
모든 하늘눈이 이미 보고는
중생들에 일러 주어 다 알게 하고
더러움을 제거하는 방편을 가르쳐
그 참된 금을 깨끗이 해 수용하는 것처럼
불상도 저 금과 마찬가지어서
번뇌의 더러움 속에 떨어진 것을
여래께서 관찰하시고는
중생들을 위해 청정한 법을 설하시네.
[문] 땅과 보배의 비유는 무슨 뜻을 밝히기 위한 것입니까?
[답] 땅을 비유한 것은 모든 번뇌와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고,
보배 광을 비유한 것은 여래장과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마치 가난한 사람의 집 땅에
값진 보배 광이 있기는 하지만
저 가난한 사람이 알 수 없고
보배 또한 말하지 않는 것처럼
중생들도 이와 같이
자기 마음의 집 속에
상상할 수 없고 다함이 없는
법 보배의 광이 있다.
비록 이 보배의 광이 있기는 하되
스스로가 깨달아 알지 못하고
깨달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사의 가난과 괴로움을 받는 것 같네.
또 마치 값진 보배 광이
저 가난한 사람의집에 있긴 하되
사람이 내가 가난하다고 말하지 않고
보배 또한 내가 보배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법 보배의 광도 이와 같아서
중생들이 마음속에 있긴 하지만
중생은 가난한 사람과 같고
불성은 보배의 광과 같은지라.
저 중생들로 하여금
이 값진 보배를 얻게 하기 위해
이 때문에 모든 여래께서
일부러 세간에 출현하시는 것이네.
[문] 과일과 싹의 비유는 무슨 뜻을 밝히기 위한 것입니까?
[답] 과일 껍질을 비유한 것을 모든 번뇌와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고,
종자 싹을 비유한 것은 여래장과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갖가지 과일 나무의
종자 싹이 썩지 않음으로써
땅 속에 심고 물을 주어
자라나 큰 나무를 이룩하는 것처럼
일체 중생들의
가지가지 번뇌 속에도
다 여래의 성품 있는 것이
무명의 껍질에 둘러싸인지라.
모든 선근(善根)의 땅에 심어
저 보리(菩提)의 싹을 냄으로써
차례차례로 점점 자라나
여래의 나무 왕[樹王]을 이룩하나니
땅과 물과 불과 바람과 허공과
시간과 날과 달의 인연을 의지해
다라수(多羅樹) 등의 종자 안에서
크나큰 나무 왕을 출생하는 것이네.
일체 중생들도
다 이와 마찬가지어서
번뇌의 과일 껍질 속에
정각(正覺)의 종자 싹이 있나니
바르고 깨끗한 모든 법의
갖가지 인연에 의지하기 때문에
차례차례로 점점 자라나서
부처님의 큰 법왕을 이룩하는 것이네.
[문] 옷과 금 형상의 비유는 무슨 뜻을 밝히기 위한 것입니까?
[답] 허물어진 옷을 비유한 것은 모든 번뇌와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고,
금 형상을 비유한 것은 여래장과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허물어진 옷으로 금 형상을 둘러싸서
저 한길 복판에 버려두어도
모든 하늘눈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이 가운데 금 형상이 있다고 하리니
가지가지 번뇌의 때[垢]로써
여래장을 둘러싸 있지만
부처님의 거리낌 없는 눈은
아래로 아비지옥[阿鼻獄]에까지 보시는지라.
누구나 다 여래의 몸이 있는 것을
그들로 하여금 얻게 하기 위해
널리 모든 방편을 베풀어서
가지가지 묘법을 설하시네.
금 형상이 허물어진 옷에 싸여서
넓은 벌판길에 떨어져 있어도
하늘눈을 지닌 자가 보고는
그 청정함을 위해 뭇 사람들에게 보이나니
중생들의 여래장도
번뇌의 허물어진 옷에 둘러싸여서
세간의 험한 길에 놓여 있건만
스스로를 깨달아 알지 못하는지라.
부처님의 눈은 모든 중생들에게
다 여래장이 있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위해 갖가지 법을 설하사
모두 함께 해탈할 수 있게 하시네.
[문] 여인과 전륜왕의 비유는 무슨 뜻을 밝히기 위한 것입니까?
[답] 빈천한 여인을 비유한 것은 모든 번뇌와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고,
가라라(歌羅邏) 네 가지 원소[四大] 가운데 전륜성왕의 몸이 있는 것을 비유한 것은 나고 죽는 가라라장(歌羅邏藏) 가운데 여래장 있는 것이 전륜성왕과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마치 고독한 여인이
빈궁한 집에 살고 있으면서
몸에 전륜성왕을 잉태하고도
스스로가 깨달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세 세계[三有]는
빈궁한 짐과 같고
잉태한 여인은
부정한 중생들에 비유한 것이며
중생들의 성품은
저 장(藏) 속의 태[胎]와 같고
그 속에 있는 때[垢] 없는 성품은
고독하지 않음에 비유한 것이라
빈궁한 여인이 때 묻은 옷을 두르고
지극히 누추해 괴로움을 겪으면서
고독한 집에 살고 있긴 하지만
전륜왕의 귀중한 짐을 잉태한 몸이네.
이와 같이 모든 번뇌가
중생들의 성품을 더럽힘으로써
한량없는 고뇌를 받기만 하고
귀의할 처소가 없는가 하면
사실 귀의할 처소는 있어도
귀의할 마음이 없는 것은
그 각자의 몸 가운데에
여래장이 있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네.
[문] 모형과 형상의 비유는 무슨 뜻을 밝히기 위한 것입니까?
[답] 진흙 모형을 비유한 것은 모든 번뇌와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고,
보배 형상을 비유한 것은 여래장과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어떤 사람이 진금(眞金)을 녹여서
진흙 모형 속에 부어 넣으면
바깥엔 까맣게 타진 진흙이 있고
안에는 진금 보배의 형상이 있으리니
그 때에 저 사람이 이미 식혀진 것을 알고서
바깥 진흙의 장애를 제거하고
모형을 열어 나타나게 한 뒤에
그 속의 진금 보배 형상을 꺼내는 것처럼
불성(佛性)의 항상 밝고 깨끗한 것이
객(客)ㆍ진(塵) 번뇌에 더럽히는 것을
모든 부처님은 잘 관찰하시어
그 장애를 제거하고 나타나게 하시네.
때[垢]를 여읜 그 밝고 깨끗한 형상이
더러운 진흙 속에 있는 것을
주사(籌師)는 열(熱)이 없는 것을 알고
그런 뒤에야 진흙의 장애를 제거하나니
여래께서도 이와 같으시어
중생들에게 있는 그 불성이
엄연히 번뇌에 묻혀 있어서
모형 속에 들어 있는 형상과 같음을 보시는지라.
능히 교묘한 방편으로써
설법의 방망이를 잘 사용하사
번뇌의 모형을 때려 부수고는
여래장을 환히 나타내 보이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