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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구사론본송
6. 분별현성품(分別賢聖品)[83송]
앞에서 이미 번뇌의 끊어짐은
견도와 수도에 의해서라고 설하였는데,
견도는 오로지 무루이며
수도는 두 종류와 모두 통한다.
제(諦)는 네 가지로 그 명칭은
이미 설한 대로 고ㆍ집ㆍ멸ㆍ도이니,
4제 자체도 역시 그러한 것으로
그 순서는 현관(現觀)에 따른 것이다.
세 가지 괴로움과 부합하기 때문에 고이니
상응하는 바대로 일체의 유루행법으로서
마음에 드는 것이나 들지 않는 것이나
그 밖의 다른 유루행법은 모두 그러하다.
그것의 감각은 그것이 파괴되면 바로 없어지며
혜(慧)에 의해 다른 것으로 분석되어도 역시 그러하고,
항아리나 물과 같은 것이 세속제라면
이와는 다른 것을 일컬어 승의제라고 한다.
장차 성제를 관찰하는 도로 나아가려는 이는
마땅히 계(戒)에 머물면서 문(聞)ㆍ사(思)ㆍ수(修)로써
성취되는 바를 부지런히 닦아야 할 것이니
이를테면 말과, 말과 뜻과, 뜻이 그것의 경계이다.
몸과 마음의 원리(遠離)를 갖추고
만족하지 않음과 대욕(大欲)이 없어야 하는데,
이는 이미 획득한 것과 아직 획득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많이 추구함이 없는 것을 일컫는 말로서,
그 대치와 상위하는 것이고, 3계와
무루에 통하며, 무탐의 성질이다.
4성종(聖種) 역시 그러하여
앞의 세 가지는 오로지 희족(喜足)이다.
즉, 이 세 가지와 뒤의 한 가지는 생의 도구이자 사업으로
이는 네 가지 애탐의 생기를 대치하기 위한 것이니,
아소(我所)와 아(我)의 개별적인 욕탐을
잠시 멈추게 하고 영원히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소성에 들어가는 중요한 문에는
부정관(不淨觀)과 지식념(持息念) 두 가지가 있으니,
탐욕과 심(尋)이 두드러진 자라면
순서대로 마땅히 닦아야 하는 것이다.
부정관이란 네 가지 탐욕을 모두 대치하기 위해
바야흐로 골쇄(骨鎖)를 관찰하여 분별하는 것이니,
널리 바다에 이르고 다시 줄여 자신의 골쇄를 관찰함을
일컬어 처음으로 업을 익히는 단계라고 한다.
발의 뼈를 제거하고 머리의 반쪽뼈에 이르는 것을
일컬어 이미 익숙하게 닦는 단계라고 하며,
마음을 미간에 묶어 두는 것을
일컬어 작의(作意)를 초월하는 단계라고 한다.
부정관은 무탐의 성질로, 10지(地)에 의지하며
욕계 색경(色境)을 소연으로 하고, 인취에서 생겨나며,
부정(不淨)의 행상으로, 자세(自世)를 소연으로 하며
유루이며, 두 가지 득(得) 모두와 통한다.
지식념은 혜로서 5지(地)에 의지하며
숨바람을 소연으로 하고, 욕계 신(身)에서 일어나며,
두 가지(가행과 이염)로 획득되고, 진실로서 외도에게 일어나지 않으며
여섯 원인이 있으니, 수(數) 등이 그것이다.
지식념의 들숨과 날숨은 몸에 따르는 것으로
두 가지[身心] 차별에 의지하여 일어나며,
유정수이고, 유집수(有執受)가 아니며
등류성이고, 하지(下地)의 소연이 되지 않는다.
이미 지(止)를 닦아 성취하였으므로
관(觀)의 성취를 위해 염주를 닦아야 할 것이니,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으로써
몸[身]과 수(受)와 마음과 법을 관찰하는 것이다.
4념주의 자성은 문(聞) 등의 혜이며
그 밖의 근거는 상잡(相雜)과 소연인데,
설한 순서는 생에 따른 것으로서
전도를 대치하기 때문에 오로지 네 가지이다.
나아가 그는 법념주에 머물면서
네 가지 소연을 전체적으로 관찰[總觀]하며
비상(非常)과 고(苦)와 공(空)과
비아(非我)의 행상을 닦아야 한다.
이로부터 난법(煖法)이 낳아져
4성제를 모두 다 관찰하고,
열여섯 가지의 행상(行相)을 닦으니
다음에 생겨나는 정법(頂法)도 역시 그러하다.
이와 같은 두 선근은 모두 다
처음에는 법념주이고 후에는 4념주이나,
다음의 인법(忍法)은 오로지 법념주로서
하품과 중품은 정법과 동일하며,
상품은 오로지 욕계 고제의
1 행상을 1 찰나에 관찰한다.
세제일법의 경우도 역시 그러한데
4선근은 모두 혜로서 득(得)을 제외한 5온이다.
이러한 순결택분의
4선근은 모두 수소성으로,
6지(地)에, 두 선근은 혹은 7지에 존재하며
욕계 9처(6욕천과 3주)의 몸에 의지하여 일어난다.
세 선근의 경우, 남녀가 두 가지의 그것을 획득하지만
네 번째 선근의 경우는 여성만이 역시 그러하다.
성자는 지(地)를 상실함으로써 4선근을 버리게 되고
이생의 경우는 목숨을 마침으로써 버리게 되며,
또한 역시 처음의 두 선근은 물러남으로써 버리게 된다.
근본지(4정려)에 의거하면 반드시 현생에서 성제를 관찰하며,
버리고 나서 획득하는 것은 앞의 선근이 아니며
두 가지 버림[失ㆍ退]의 자성은 비득(非得)이다.
난법은 반드시 열반에 이르게 하고
정법은 끝내 선근을 끊지 않게 하며,
인법은 악취에 떨어지지 않게 하고
세제일법은 이생위(離生位)에 들게 한다.
4선근위에서 성문의 종성이 전향할 경우
두 선근에서는 부처를, 세 선근에서는 다른 것(독각)을 성취하며,
인각유독각과 부처는 전향하는 일이 없으니
한 자리에서 깨달음을 성취하였기 때문이다.
전생에 심은 순해탈분은
빠르면 세 번째 생에서 해탈하는데,
그것은 문소성ㆍ사소성이자 신ㆍ구ㆍ의 세 업으로서
인취의 세 주에서만 심을 수 있다.
세제일법과 무간에
욕계 고제를 소연으로 하여
무루의 법인(法忍)을 낳으며,
법인 다음에 법지(法智)를 낳는다.
다음으로 그 밖의 상계의 고제를 소연으로 하여
유인(類忍)과 유지(類智)를 낳으며,
다시 집제ㆍ멸제ㆍ도제를 소연으로 하여
각기 네 가지를 낳는 것도 역시 그러하다.
이와 같은 16찰나의 마음을
성제현관(聖諦現觀)이라 이름하는데,
여기에는 모두 세 종류가 있으니
견(見)ㆍ연(緣)ㆍ사(事)의 차별이 그것이다.
16찰나의 마음은 모두 세제일법과
동일한 지(地)에 의지하는 것인데,
그 중의 인(忍)과 지(智)는 순서대로
무간도와 해탈도이다.
그리고 견도는 앞의 15찰나의 마음뿐으로
일찍이 관찰한 적이 없었던 것을 관찰하기 때문이다.
수신행과 수법행이라 이름하는 성자는
근기의 둔함과 예리함의 차별에 의한 것으로,
수혹을 갖춘 자로서 1품에서부터
5품을 끊은 자는 초과(初果:예류과)로 향하는 자이며,
다음의 3품을 끊은 자는 제2과(일래과)로 향하는 자이며
8지(地)를 떠난 자는 제3과(불환과)로 향하는 자이다.
열여섯 번째 찰나의 마음에 이르러
세 향(向)에 따라 과위(果位)에 머무는 이를
신해(信解)와 견지(見至)라고 이름하는데
역시 둔근과 이근의 차별 때문이다.
온갖 과위(果位)를 획득하는 단계에서는
아직 승과도(勝果道)를 획득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아직 승과도를 일으키지 않았을 때에는
주과(住果)라고 하지 향이라고 이름하지 않는다.
각 지(地)마다 과실과 공덕에 아홉 가지가 있으니
하품ㆍ중품ㆍ상품의 각기 세 가지가 바로 그것인데,
아직 수소단의 과실을 끊지 못하고
과위(果位:제16심)에 머무는 자를 극칠반생이라고 한다.
욕계 3품ㆍ4품의 수혹을 끊고
세 번ㆍ두 번 태어나는 자면 가가(家家)이고,
5품까지를 끊으면 두 번째(일래) 향이며
6품의 수혹을 끊으면 일래과이다.
7품 혹은 8품의 수혹을 끊고
한 번 태어나는 자를 일간이라 이름하니,
이는 바로 세 번째(불환) 향이며
9품을 끊은 자를 불환과라고 한다.
불환에는 중(中)ㆍ생(生)ㆍ유행(有行)과
무행(無行)ㆍ상류(上流)의 반열반이 있으며,
만약 상류로서 잡수(雜修)의 행자라면
능히 색구경천으로 가서 반열반한다.
여기에는 전초(全超)ㆍ반초ㆍ변몰이 있으며
그 밖(무잡수)의 행자는 능히 유정천으로 가 반열반한다.
무색계로 가 반열반하는 불환에는 네 가지가 있으며
여기(현신)에 머물면서 반열반하는 자도 있다.
색계로 가는 불환에는 아홉 가지가 있으니
이를테면 세 가지를 각기 세 가지로 나눈 것으로,
업과 혹과 근기에 다름이 있기 때문에
세 가지와 아홉 가지의 차별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계경에서 7선사취를 건립한 것은
상류와 차별이 없기 때문으로,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않으며
가더라도 되돌아오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욕계의 생을 거친 성자는
다른 계로 가 태어나지 않는데,
이러한 자와 상계에 왕생한 성자에게는
연근(練根)과 물러남이 없다.
먼저 제4정려를 잡수해야 하니
잡수의 성취는 1찰나에 의하며,
5정거천의 생을 받고, 현법락과
번뇌로 인해 물러남을 막기 위해서이다.
5품을 잡수함으로 말미암아
5정거천에 태어남이 있는 것이며,
멸진정(滅盡定)을 획득한 불환을
이름을 바꾸어 신증이라고도 한다.
상계의 수혹 중에서
초정려의 1품 내지
유정지의 8품을 끊은 이를
모두 아라한향이라고 한다.
그리고 제9품의 무간도를
금강유정(金剛喩定)이라고 하는데,
번뇌 멸진의 득과 함께 하는 진지(盡智)는
무학의 응과(應果)를 성취한다.
유정지에서는 무루도에 의해
그 밖의 지에서는 두 가지에 의해 이염하니,
성자는 두 가지 도로써 8지의 수혹을 떠나
각기 두 가지(견혹ㆍ수혹)의 2계득을 일으킨다.
무루로서 미지정의 도는
능히 모든 경지의 염오를 떠나고,
그 밖의 8지의 도는 자지ㆍ상지의 염오를 떠나며
유루도는 바로 아래 경지의 염오를 떠난다.
근분으로 하지의 염오를 떠남에 있어
처음 세 가지의 뒤(제9품)의 해탈도는
근본 혹은 근분에 포섭되고
상지의 그것은 오로지 근본에 포섭된다.
세간도로서 무간도ㆍ해탈도는
차례대로 하지와 상지를 소연으로 삼아
추(麤)ㆍ고(苦)ㆍ장(障)의 행상과 아울러
정(靜)ㆍ묘(妙)ㆍ이(離)의 세 행상을 짓는 것이다.
부동의 아라한은 진지를 일으킨 후
반드시 무생지(無生智)를 일으키고,
그 밖의 아라한은 진지, 혹은 정견을 일으키는데
이것(정견)은 응과(應果)에 모두 존재하는 것이다.
사문의 본성은 청정도로서
유위와 무위가 사문의 과보인데,
여기(과보)에는 여든아홉 가지의
해탈도와 택멸이 있다.
그럼에도 다섯 근거에 의해 네 과위를 설정하였으니
일찍이 획득된 도를 버리고 수승한 도를 획득하며,
끊어짐[斷:택멸]을 모두 모으고, 8지(智)를 획득하며
단박에 16행상을 닦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세속도에 의해 획득된 끊어짐은
성도에 의해 획득된 것과 섞여 있기 때문에,
무루의 득이 이(세속단)를 임지하기 때문에
역시 사문의 과(果)라고 이름할 수 있다.
앞에서 설한 사문의 본성을
역시 바라문이라고도 이름하며,
범륜(梵輪)이라고도 이름하니
진실의 범(梵)이 작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오로지 견도만을
설하여 법륜(法輪)이라고 이름하니,
신속함 등이 바퀴[輪]와 유사하고
혹은 바퀴살 등의 갈래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앞의 세 과(果)는 욕계에, 뒤의 과는 3계에 의지하는데
상계에는 견도가 없고, 청문(聽聞)이 없으며,
하지를 소연으로 하는 일이 없고, 싫어함[厭]이 없기 때문에
아울러 경증에 의해 불환은 상계에서 획득되지 않는다.
아라한에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퇴법에서 부동법에 이르는 것이 그것인데,
앞의 다섯 가지는 신해(信解)로부터 생겨나는 것으로
그 모두는 시해탈로 일컬어진다.
뒤의 것(부동법)은 불시해탈로서
앞(유학위)의 견지(見至)로부터 생겨나는 것인데,
이러한 종성 중에는 이전부터 있던 종성도 있으며
후에 근기를 단련하여 획득된 종성도 있다.
시해탈 중 뒤의 네 종성은 종성으로부터 물러나고
다섯 종성은 과위로부터 물러나는 일이 있지만, 일찍이 획득한 것(이를테면 유학)에서는 물러나지 않는다.
유학과 이생에게도 역시 여섯 종성이 있지만
견도위에서는 근기의 단련[練根]을 수습하지 않는다.
물러남에는 세 가지가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하니
이득(已得)과 미득(未得)과 수용(受用)의 그것으로,
부처님에게는 오로지 최후의 것만이 있을 뿐이지만
이근에게는 중간과 뒤의 것이, 둔근에게는 세 가지가 다 있다.
일체의 아라한은 과위에서 물러나더라도
반드시 다시 획득하고, 명종하지 않으며,
과위에 머물면서 짓지 않았던 일은
부끄러움[慚]이 증가하였기 때문에 또한 짓지 않는다.
무학위에서의 연근(練根)은
아홉 가지의 무간도와 해탈도이니,
오래 익혀야 하기 때문이고, 유학은 한 가지의 그것인데
이러한 연근은 무루이며, 인취의 세 주에 의지한다.
또한 무학은 9지에 의지하고
유학은 다만 6지에 의지하여 연근하니,
과도(果道)와 승과도[向道]를 버리고서
오로지 과도만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무학에는 일곱 성문과 두 부처님께서 계시니
이러한 차별은 9품의 근기에 의한 것이다.
가행과 근기와 멸진정과
해탈의 차이 때문에 일곱 가지가 된 것으로
이것의 실제적인 차별은 다만 여섯 가지일 뿐이니
세 가지 도에 각기 두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멸진정을 획득하였기 때문에 구해탈이라고 하며
그렇지 않은 이(혜만을 획득한 이)를 혜해탈이라고 한다.
유학으로서 원만하다고 일컬을 수 있는 것은
근기와 과보와 선정의 세 가지 조건에 의해서이며,
무학으로서 원만하다는 명칭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근기와 선정의 두 가지 조건에 의해서이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으로, 일체의 도를
간략히 설하면 오로지 네 가지가 있으니,
말하자면 가행도와 무간도와
해탈도와 승진도가 바로 그것이다.
통행에는 네 종류가 있으니
낙통행은 근본정려에 의한 것이고,
고통행은 그 밖의 지에 의한 것으로
그것의 느림과 빠름은 둔근과 이근에 따른 것이다.
각분(覺分)에는 서른일곱 가지가 있으니
이를테면 4념주 등이 그것으로,
각이란 진지와 무생지를 말하며
이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분이라 이름하였다.
각분의 실제적 본질은 열 가지이니
이를테면 혜(慧)ㆍ근(勤)ㆍ정(定)ㆍ신(信)과
염(念)ㆍ희(喜)ㆍ사(捨)ㆍ경안(輕安),
그리고 계(戒)ㆍ심(尋)을 본질로 한다.
4념주와 4정단과
4신족은 두드러진 것에 따라
혜ㆍ근ㆍ정을 본질로 한다고 설하였으나
실제로는 온갖 가행선이다.
초업위(初業位)와 순결택분
그리고 수도위와 견도위에서는
차례대로 염주 등의 7품이
증가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7각지와 8도지는
한결같이 무루이며,
4의 세 가지(염주ㆍ정단ㆍ신족)와 5근ㆍ5력은
두 가지(유루ㆍ무루) 모두와 통한다.
초정려에는 각분 모두가 존재하며
미지정에는 희근이 제외되고,
제2정려에는 심(尋)이 제외되며
제3ㆍ4정려와 중간정에는 두 가지가 제외된다.
앞의 3무색정의 단계에는
계(戒)와 앞의 두 가지(희ㆍ심)가 제외되며,
욕계와 유정지에 있어서는
7각지와 8도지가 제외된다.
증정(證淨)에는 네 종류가 있으니
이를테면 불ㆍ법ㆍ승과 계(戒)로서,
세 가지 제(諦)를 관찰할 때 법과 계를 획득하며
도제를 관찰할 때 아울러 불과 승을 획득한다.
법이란 세 가지 제(諦) 전부와
보살과 독각의 도를 말하며,
신(信)과 계 두 가지를 본질로 하는
네 증정은 모두 오로지 무루이다.
유학에는 계박이 남아 있기 때문에
정해탈과 정지(正智)의 갈래가 없는 것으로,
해탈에는 유위와 무위가 있으니
말하자면 승해와 혹(惑)의 멸(택멸)이 그것이다.
그리고 유위의 무학해탈의 갈래인
두[慧ㆍ心] 해탈은 바로 해탈온이다.
정지는 각분에서 설한 바와 같으니
진지(盡智)와 무생지를 말한다.
무학의 마음이 생겨날 때
바로[正] 장애로부터 해탈하는데,
도는 오로지 바로 멸하는 상태에서
능히 그것의 장애를 끊어지게 한다.
무위해탈을 3계로 설할 경우
이계(離界)는 오로지 탐을 떠난 것이며,
단계(斷界)는 그 밖의 결(8결)을 끊은 것이며
멸계(滅界)는 그것의 계박을 멸한 것이다.
계박을 싫어함[厭]은 고제ㆍ집제를 소연으로 하는 혜이고
떠나는 것[離]은 4제를 소연으로 하여 능히 끊는 것으로,
서로가 서로에 대해 광ㆍ협의 뜻을 갖기 때문에
마땅히 4구(句)로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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