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초기 왕릉의 봉분은 하나의 봉분에 왕 또는 왕비가 단독으로 묻히는 단릉(單陵)이 주를 이루었다. 이외에도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하는 쌍릉(雙陵), 왕과 왕비를 하나의 봉분에 묻는 합장릉(合葬陵), 왕과 왕비의 봉분을 다른 언덕에 두는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이 조성되기도 했다.
조선왕릉은 임진왜란(1592년)을 기점으로 다양한 공간구성을 갖추게 되었다. 임진왜란 직후(1600년) 조성된 선조(宣祖)의 목릉(穆陵)은 조선 후기 새로운 능제변화를 알린 첫 사례로, 조선 초기 건원릉으로 대표된 단릉(單陵) 위주의 배치에서 벗어나 왕과 두 왕후를 다른 세 언덕에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태가 처음 등장하였다.
이후 효종의 영릉(寧陵)은 왕과 왕후의 봉분을 아래위로 배치한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 형식을 새롭게 채택하였으며, 이러한 배치형식은 경종 의릉(懿陵)으로 계승되었다. 헌종의 경릉(景陵)은 봉분 세 개를 나란히 배치한 삼연릉(三連陵)으로 조성된 특이 사례이다.
이처럼 조선왕릉은 표면상 모두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는 듯 보이지만, 조성당시의 상황과 지리적 여건, 조정 신료들의 의견에 따라 유연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이는 배치가 규정화되어 일관되게 적용된 중국 명·청대 황릉과 구별되는 조선왕릉 고유의 특징이다.
각 봉분의 종류를 클릭하시면 해당하는 능의 상세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