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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요경 제5권
4. 무방일품(無放逸品) ①
1
계율을 감로(甘露)의 길이라 하고
방일(放逸)을 죽음의 길이라 하니
탐하지 않으면 죽지 않을 것이며
도를 잃으면 스스로 죽을 것이다.
“계율을 감로(甘露)의 길이라 하고”란 무슨 뜻인가?
방일하지 않는 사람은 비록 죽더라도 죽지 않는다.
옛날 어떤 비구는 덕행이 원만하여서 매일 여섯 때[六時]에 도를 행하되, 털끝 만큼도 어기는 일이 없었다. 초저녁이나 밤중이나 새벽에 부지런히 정진하여서 잠깐도 쉬지 않았다. 이와 같이 오랜 시간이 흘러가자, 그는 가슴이 막히고 기운이 맺혀서 그만 마음의 병을 얻고 말았다. 여러 의사들이 치료하였으나 끝내 낫지 않고 죽고 말았다.
그때에 매우 총명하고 재주가 많아서 모르는 일이 없는 어떤 우바새(優婆塞)가 비구승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선정을 배우고 닦은 사람은
몸이 비록 변하여 사라지더라도
다음 세상에서는
죽지 않고 언제나 존재한다.
왜 그러한가? 선정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정신도 교화시키지 못하고, 또 남도 제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그러한가? 자신의 정신도 교화시키지 못했으면서 남이 베푸는 보시, 즉 의복, 음식, 침구, 의약 등을 받으면 끝내 그 은혜를 소화하지 못하므로 목숨을 마친 뒤에는 그것을 보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도 제도하지 못한다’란 무슨 뜻인가?
즉, 시주자로 하여금 그 과보를 얻지 못하게 하고, 공덕을 크게 나타내 보이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법이 비록 있기는 하지만, 날마다 쇠퇴하여서 큰 법은 자취를 감추고 외도가 왕성하기 때문에 그런 무리는 법을 해치는 우두머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율을 감로의 길이라 하고, 방일을 죽음의 길이라 하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거듭 말씀하시길, “방일을 죽음의 길이라 하니”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무슨 뜻인가?
방일하는 사람은 갖가지 허물의 종자가 많고 이 생에서나 다음 생에서도 선의 뿌리를 심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마사(馬師) 존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혜로운 사람은 방일함을 버리기를 마치 독약을 버리듯 한다. 이 생에서나 다음 생에서도 방일에는 온갖 허물이 많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 근본으로 돌아가서 방일의 근본을 깊이 살피고는,
‘아아 방일함이란, 마치 쥐가 소(酥)를 담은 병에 빠진 것과 같다.’라고 말한다.”
옛날 어떤 장자(長者)의 집에서 소(酥)를 담은 병을 높은 다락 위에 둔 일이 있었다. 그런데 뚜껑을 꽉 막지 않아서 쥐가 그 병 속으로 들어가 밤낮으로 그것을 먹으면서 나오지 않았다.
쥐는 그 몸이 자꾸만 커졌으며 소는 곧 줄어들어 없어졌다. 결국 쥐의 몸은 병 속에 가득 차게 되었는데, 그것은 소(酥)의 빛깔과 같았다.
이때에 어떤 사람이 소(酥)를 사기 위해 그 장자의 집으로 왔다.
그래서 장자는 다락에 올라가 그 소를 가져다가 불 위에 놓았다. 병 속의 쥐는 머리는 밑에 있고 몸뚱이는 위로 향한 채 그대로 병 속에서 죽고 말았으며, 또한 병 속에서 녹아 버려 소(酥)가 되었다.
그들이 되를 가져다가 그 소를 담아 보니, 쥐 뼈가 병 밑에 가라앉아서 머리뼈와 다리뼈가 각기 흩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장자는 가만히 생각하였다.
‘내가 병에 소(酥)를 넣고 난 다음에 병마개를 막지 않았구나. 틀림없이 쥐가 들어가서 소를 먹고는 그대로 병 속에 있으면서 나오지 않은 것이다. 소를 다 먹어 버렸으니, 쥐가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장자는 다시 생각하였다.
‘방일하면 허물이 많은 것도 이와 같아서 도속(道俗)이 다르지 않다.’
‘속인에게도 다르지 않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들은 인색하고 탐욕이 많아서 보시를 하지 않고 계율을 지키지 않고 8관재(關齋)의 법을 닦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년 세 번 매월 여섯 번 [歲三月六] 행하는 재(齋)를 항상 받들어 행하지 않았다.
비록 세상에 살지만 도에는 아무런 이익이 없고, 죽어서는 저승에서 재앙과 고통을 받으며, 악취(惡趣)인 8한처(閑處)에 떨어져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온갖 고통을 받는다. 이것이 속인의 방일함이니, 그 온갖 고통이 이와 같다.
‘도인의 방일함’은 어떤 것인가?
도를 배운다는 사람이 겉에는 법복을 입고 있으면서 속으로 간사한 마음을 품는 것이다.
또한 경전을 익히지도 않고 바른 가르침을 받들지도 않으며, 선정이나 계율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고, 한갖 그 공만을 헛되이 하여서 그 과보(果報)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몸은 도의 과를 얻지 못하고 다음 생에 가서야 비로소 행을 쌓게 된다.
그러므로 “방일을 죽음의 길이라 하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탐하지 않으면 죽지 않을 것이며”란 무슨 뜻인가?
비록 죽더라도 죽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경우이다.
왜냐 하면, 방일하지 않은 사람은 그 혼이 올라가 하늘에 나서 한량없는 복을 받으며, 수명이 늘어나 죽지 않고 마음이 굳세어 미혹됨이 없다.
또 요절하는 일이 없으므로 목숨을 잃을 걱정이 없다.
그러므로 “탐하지 않으면 죽지 않을 것이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도를 잃으면 스스로 죽을 것이다”란 무슨 뜻인가?
방일한 행을 익히면서 앞뒤나 중간에 악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고, 현성의 수명과 같은 좋은 수명을 배우지 않으며, 그른 일을 하면서 스스로 옳다고 하고, 사람들의 충고에 따르지 않는다.
또한 자신의 행동은 진실하고 바르지만 남의 행동은 진실하지 않다고 하니, 지혜롭게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를 잃으면 스스로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2
지혜는 수승한 도를 지키니
끝내 방일하지 않는다.
탐하지 않으면 기쁨이 오니
이에 도의 즐거움을 얻는다.
“지혜는 수승한 도를 지키니”란 무슨 뜻인가?
지혜로운 사람은 가장 수승하고 으뜸가는 갖가지 공덕으로 그 몸을 닦기에 조금도 이지러짐이 없고 온갖 세계와 길을 잘 분별한다.
또 지혜로운 사람은 총명하여 어리석거나 미혹됨이 없으므로 항상 천인들의 칭찬을 받고,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을 더욱 이롭게 하여서 끊어지지 않게 한다.
그러므로 “지혜는 수승한 도를 지키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끝내 방일하지 않는다”란 무슨 뜻인가?
그는 이미 방일함을 여의어서 다시는 짓는 일이 없기 때문에 마음과 뜻이 즐겁고 온갖 선법에 대해 싫증 내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끝내 방일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탐하지 않으면 기쁨이 오니 이에 도의 즐거움을 얻는다”란 무슨 뜻인가?
현성의 도는 방일한 행을 닦는 일이 없고, 전생의 인연이 다하였기 때문에 다시는 3유(有)에 태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에 도의 즐거움을 얻는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3
언제나 도를 생각하고
스스로 굳게 바른 행을 지켜라.
굳센 사람만이 깨달음을 얻으니
이것이 위없는 길상(吉祥)이다.
“언제나 도를 생각하고”란 무슨 뜻인가?
대개 좌선하는 사람은 아침에 시작해서 밤까지, 밤에 시작해서 아침까지 생각을 매어 앞에 두는데, 그 마음에 조금도 산란함이 없다. 처음에서 끝까지, 끝에서부터 처음까지, 자신의 몸에 부정관(不淨觀)을 행하여 오로(惡露)를 생각한다.
그러므로 “언제나 도를 생각하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스스로 굳게 바른 행을 지켜라”란 무슨 뜻인가?
마음이 항상 용맹스러워서 중단하거나 후회하거나 하지 않고, 생사를 뛰어 넘어서 거두지 못한 것은 거두고, 얻지 못한 것은 얻으며, 깨닫지 못한 것은 속히 깨닫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굳게 바른 행을 지켜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굳센 사람만이 깨달음을 얻으니”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부처님과 그 제자들은 바른 법에 굳게 머무르기 때문에 그 마음이 어지럽거나 무너짐이 없다. 온갖 악법과 부정한 행을 버리기에 영원히 고요하고 편안한 열반으로 점차 가까이 간다.
그러므로 “굳센 사람만이 깨달음을 얻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이 위없는 길상이다”란 무슨 뜻인가?
부처님께서 교화하고 행하시는 것은 모두 이롭고 길상하므로, 모든 외도의 삿된 가르침과 일체의 생사와 이른바 좋지 않은 온갖 근심과 괴로움을 모두 항복받으니, 돌아가는 수레바퀴처럼 조금도 쉼이 없다. 이것은 가장 뛰어나며, 또 이 법보다 뛰어난 어떠한 법도 없다.
그러므로 “이것이 위없는 길상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4
방일한 행을 스스로 금하고
물리치면 현인(賢人)이라 하니
지혜의 전당에 오르자마자
위험에서 벗어나 곧 편안함에 이른다.
지혜로운 이는 어리석은 이를
마치 저 산이나 땅을 보듯 한다.
그러므로 교만함을 버린
지혜로운 이는 밝은 지혜를 익힌다.
“그러므로 교만함을 버린”이란 무슨 뜻인가?
저 밝은 눈을 가진 사람은 방일한 행을 볼 때에 그것은 진실이 아니며, 지닐 만한 것이 못 되고, 믿을 만한 것도 아니라고 관찰한다.
그러므로 “방일한 행을 버리는 것을 생각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른바 ‘지혜로운 이’란 남에게 의지함이 없고, 남을 대할 때에도 지나침이 없으며 남에게 물어서 알지 않고 그 모양을 보고 곧 깨닫는다. 이것이 지혜롭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그 마음과 성품이 예민하여 무슨 일이나 다 해내고, 안으로 비록 많은 배움이 있지만 겉으로는 물어서 아는 듯이 보인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밝은 지혜를 익힌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옛날 대목건련(目揵連) 존자는 몸소 두 제자를 제도하였는데, 그들은 처음으로 집을 떠나 도를 배운 자들이었다.
첫째는 세탁업하는 사람이었고, 둘째는 대장장이었다. 목건련이 이윽고 두 사람을 가르쳤다. 그는 먼저 대장장이에게 말하였다.
“너는 이 선법(禪法)을 익히고 잘 생각하되, 사람 몸의 온갖 부정한 오로(惡露)에 대해 관찰하여라.”
이어 세탁업을 한 제자에게 말하였다.
“너는 지금부터 안반(安般)을 염(念)하고 생각을 지켜 나가라.”
그들은 밤낮으로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12년을 지냈으나 그것을 얻지 못하였다.
그때에 사리불(舍利弗) 존자는 그들이 원을 이루지 못한 것을 알고 목건련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제자들에게 바른 행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바른 법으로써 가르치려 하다가 도리어 방일을 가르쳤습니다. 당신은 아직 적절하게 법을 행하는 것을 깨치지 못했습니다. 저 세탁업을 하다가 출가한 사람은 부정관(不淨觀)으로써 가르쳐야 합니다. 왜냐 하면, 그 사람은 깨끗한 마음을 지니고 오랫동안 무엇이나 깨끗이 하려는 생각으로 살아왔으므로 부정관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 마음이 열려서 아무런 걸림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저 대장장이 비구에게는 안반(安般)을 염(念)하고 생각을 지켜 나가게 가르쳐야 합니다. 왜냐 하면, 그는 항상 풀무를 손에 잡고 바람의 많고 적음을 잘 알기 때문이니, 그렇게 하면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에 목건련은 사리불의 말대로 가르쳐서 그 두 제자는 모두 도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방일한 행을 스스로 금하고 물리치면 현인이라 하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지혜의 전당에 오르자마자”란 무슨 뜻인가?
현성으로서 이 전당에 오른 사람은 범부나 수행하는 사람들을 마치 저 들의 초목과 같이 관찰하여서 큰 자비심으로 빠짐없이 두루 적셔 준다.
또한 부유한 사람의 큰 집을 보고 일반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처럼, 현성들도 이와 같아서 현성의 전당에 올라 중생들이 익히는 것이 진실이 아님을 보고, 또 그 중생들이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방일함에 집착해 있는 것을 걱정한다.
혹 지혜에 방일하더라도 그 마음이 선정에 있고 뜻으로 선정을 익히며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그것을 어기지 않으니, 이것을 ‘지혜의 방일’이라고 한다. 선정을 익히지 않으면 제도될 수 없음을 결국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위험에서 벗어나 곧 편안함에 이른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지혜로운 이는 어리석은 이를 마치 저 산이나 땅을 보듯 한다”란 무슨 뜻인가?
어떤 사람이 높은 산에 올라가 내려다볼 때에 그 밑에 있는 사람을 두루 볼 수 있지만 밑에 있는 사람은 위의 것을 전혀 볼 수 없는 것처럼, 어리석은 자와 현인에 있어서도 역시 이와 같은 것이다. 무지한 사람은 그 마음이 어두워서 법을 알지 못하니, 현성이라야 그것을 깨칠 수 있다.
5
행을 일으켰거든 방일하지 말고
몸을 단속하고 그 마음을 다루어라.
지혜는 능히 밝은 등불이 되니
다시는 어두운 연못에 빠지지 않으리라.
“행을 일으켰거든 방일하지 말고”란 무슨 뜻인가?
한번 수행하려고 결심했으면 게으르지 말고 마음을 다하라는 것이니, 비록 결심했더라도 마음이 약한 사람은 그대로 되지 않고, 다만 용맹스런 사람이라야 그 원을 성취할 수 있다.
그러므로 “행을 일으켰거든 방일하지 말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 그 마음이 굳세고 부지런하더라도 방일함이 있으면, 위없는 도의 과(果)를 성취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방일하지 말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몸을 단속하고 그 마음을 다루어라”란 무슨 뜻인가?
몸을 단속하면 계율이 두루 청정하고, 마음을 다루면 뜻을 다잡아서 산란함이 없어지니, 끝내 삿된 생각이 없다.
그러므로 “몸을 단속하고 그 마음을 다루어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지혜는 능히 밝은 등불이 되니”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잠깐 사이에 네 가지 일을 성취한다.
네 가지란 무명을 없애고, 5음(陰)으로 된 몸을 태우며, 생(生)의 기름덩이를 태우고, 애욕의 근본을 영원히 없애는 것이다.
현성의 도의 밝음도 이와 같아서 잠깐 사이에 네 가지 일을 성취한다. 즉, 무명을 없애고 생의 기름덩이를 태우며 애욕의 근본을 영원히 없애고 5음으로 된 몸을 태우기 때문에 어리석은 자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이것은 다 그 현성의 도의 밝음을 성취하였기 때문이니, 도의 밝음이 있기 때문에 어떤 삿된 외도들도 그 마음을 흔들지 못한다.
그러므로 “다시는 어두운 연못에 빠지지 않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