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Andalucia) 지방<3>
콜럼버스의 항해
그러나 스페인은 훗날 그들에게 엄청난 부와 영광을 안겨준 콜럼버스를 기리기 위하여 콜럼버스의 시신을 스페인으로 모셔오지만 그의 유언을 거스를 수 없어 땅에 묻지 못하고 세비야성당에 모시면서 지금처럼 공중에 붕~ 떠 있게 설계하고 스페인의 네 명의 왕이 관(棺)을 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설계하여 최고의 존경을 나타냈다고 한다.
이사벨 여왕이 스페인을 통일하기 전 아라곤(Aragon), 카스티야(Castilla) 등 작은 네 개의 왕국이 있었는데 이사벨 여왕이 콜럼버스의 항해에 투자(投資)하자 각 왕국의 왕 중에서 두 명은 찬성하고 두 명은 반대했다고 한다. 콜럼버스의 관을 앞쪽에 메고 의기양양하게 머리를 들고 있는 왕들은 찬성하였던, 그리고 뒤쪽 두 왕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는 모습인데 반대를 하였던 당시 왕들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콜럼버스가 죽은 후, 멕시코에서 아즈텍(Aztec)제국을 무너뜨린 코르테스(Hernán Cortés), 남미에서 잉카(Inca) 제국을 멸망시킨 피사로(Gonzalo Pizarro)로 대변되는 스페인의 정복자, 탐험가들의 활약으로 스페인은 엄청난 부를 쌓게 된다. 이처럼 탐험가들이 발 벗고 모험에 나서게 된 직접적인 발단(發端)은 이탈리아 베네치아(Venice)공화국 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과 더불어 황금도시 엘도라도(El Dorado)의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곁들여진다.
◐ 황금도시 엘도라도(El Dorado)
전설(傳說) 속의 엘도라도는 도시의 모든 건물이 황금으로 되어있으며 길바닥도 황금으로 깔았다.
또 축제 때가 되면 제사장(祭司長)들은 벌거벗은 온몸에 금가루를 칠하고 황금 마스크를 쓰고 제사를 지낸 후 신전 앞 호수에 들어가 금가루를 씻어냈고, 축제에 참가한 일반인도 가지가지 금붙이를 가지고 왔다가 제물로 호수에 던진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황금도시로 꿈의 도시요, 이상향이었다.
그 이후 엘도라도 붐이 일어나 탐험가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찾아 나서는데 콜롬비아(Colombia) 산간오지(山間奧地) 어디쯤이 아닐까 하는 추측으로 수많은 탐험가들이 찾아 나서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Bogota)의 볼리바르(Bolivar) 광장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황금박물관(Museo del Oro)이 있는데 이 박물관에는 이 지역에서 출토된 수많은 황금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나는 그 황금박물관을 관람했던 적이 있는데 그 엄청난 양과 아름다운 세공기술(細工技術)을 보면 정말 이곳 어디쯤 엘도라도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추측컨대, 당시 유럽 정복자들이 멕시코, 콜롬비아를 비롯한 중남미에서 엄청난 양의 금을 약탈해 가지고 가자 사람들이 어떻게 이 많은 금붙이와 보석을 어디서 구했는지 물었을 것이다. 차마 약탈했다고는 못하고 엘도라도(El Dorado)라는 황금도시가 있는데 황금이 무진장이라 그냥 주워올 정도...
어쩌구 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멕시코에 있던 아즈텍(Aztec)제국을 무너뜨린 스페인 정복자 코르테즈(Cortes)는 아즈텍의 마지막 왕이었던 쿠아우테목(Cuauhtemok)을 인질로 삼고 그의 방에 황금을 가득 채우면 왕을 살려주겠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아즈텍 사람들은 황금을 가지고 와 방을 가득 채우고 석방할 것을 탄원하지만 결국 왕을 죽여 버리고 마는 만행을 저지른다. 그만큼 이곳 중남미지역은 황금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남미의 콜롬비아(Colombia)는 탐험가 콜럼버스의 이름을 따서 나라 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콜럼버스(1451~1506)가 조금 서운할 일은 그가 발견한 신대륙의 이름을 첫 번째 탐험가였던 자신의 이름을 따지 않고 후배 탐험가였던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1454~1512)의 이름에서 따서 아메리카(America)라고 하였으니 억울하겠다.
<2> 알카사르(Alcázar) 성채
알카사르 성채 입구 / 소녀의 중정(中庭) 내부 / 소녀의 석상
세비야의 또 다른 자랑거리의 하나는 관광객들이 표를 사려고 항상 장사진(長蛇陣)을 이루는 곳으로 알카사르(Alcázar) 성채(城砦)가 있다. 알카사르(Alcázar)는 스페인어로 성(城)이라는 의미이다.
이 궁전은 12세기 후반 이슬람(Islam)인들이 세운 성채인데 대부분 없어지고 현재의 것은 14세기 아라곤(Aragon)의 왕 페드로 1세(Pedro I)가 건설한 ‘페드로 궁전’이라고 한다. 스페인 특유의 이슬람 양식인 무데하르(Mudejar)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로 알려졌고,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과 비슷한 채색 타일 장식과 격자천정(格子天井), 패티오(Patio/안뜰) 등이 유명하며 항상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아기자기한 아라베스크(Arabesque) 문양이 새겨진 아치(Arch)형 문과 건물 가운데 패티오가 있는 제법 아름다운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의 이름이 ‘소녀의 중정(中庭)’이라고 하며, 이슬람 무어족들이 이 지역을 점령했을 때 매년 스페인 소녀 100명을 시녀(侍女)로 바치라고 했다는 서글픈 사연이 있다.
기하학적으로 꾸며진 아담한 정원은 모양부터 너무나 아름답고 가지가지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는데 내 허리보다 낮은 난쟁이 무화과나무에는 탐스러운 무화과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또, 예전에는 수영장이나 목욕탕으로 사용했었던 듯 작은 풀장도 있는데 오래된 돌계단이 매력적이며, 또 좁은 통로를 따라 성벽 위로 오르면 좁은 전망대가 있어 도시 일각이 내려다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