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장경 중권
5. 정계품 ②[1]
[화살 7, 경을 듣고서 마음이 청정하지 않고 환희하지 않고 믿지 않고 즐겁지 않다]
“또 다음으로 사리불아, 파계한 비구는 부처가 설하는 이와 같은 경을 듣고서 마음이 청정하지 않고 환희하지 않고 믿지 않고 즐겁지가 않다.
스스로 잘못이 있음을 알고 곧 이 경을
‘우리를 위하여 설하지, 남을 위하여 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우리와 같은 비구에게 이러한 일이 있는 까닭이다’고 의심한다.
사리불아, 이와 같이 가장 오묘하고 비할 수 없는 법을 파계한 비구는 곧 성내고 원한을 갖는다. 법을 설한 자에게 대해서도 마음은 크게 불신(不信)한다.
이와 같이 부처가 설하는 경을 들을 수 있어도 어기고 거역하여 받지 아니한다.
그리고도 이러한 말을 한다.
‘이는 부처님의 설이 아니다’라고 남에게 말한다.
무슨 까닭인가?
파계한 비구는 수도(修道)를 즐기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수도하는 비구는 부처의 말을 거스르지 않는다. 이는 모두가 계를 깨트린 어리석은 악법(惡法)이므로 말하여도 마음에 믿지 아니하고 부처의 말을 어기고 거스르는 것이다.
이 같은 비구는 스스로 잘못이 있음을 안다.
다만 성냄과 원한을 내어 교만하고 더욱 어그러진다.
악하고 삿된 교만한 마음으로 부처와 법과 승(僧)을 비방한다.
사리불아, 이 비구를 따라서 이 여러 경을 듣고 어기고 거역해서 믿지 않으면 마음은 위없는 보리를 통달하지 못한다.
여러 사람에게 가르쳐 말하기를
‘부처님의 설한 바가 아니다’고 한다.
부처는 이 사람을 설하여 곧 법을 비방한다고 한다.
법을 비방하는 까닭에 사문이 아니며 석가(釋迦)의 종자가 아니라고 한다.
마땅히 이들 비구를 없애고 빈척(擯斥)해야 한다.
혹은 백천만억(百千萬億)의 모든 부처가 세 번을 다시 나타난다 하여도 깨닫게 하고 도(道)의 열매(보리와 열반)를 얻을 수가 없다.
무슨 까닭인가?
사리불아, 이 같은 악인은 이 법 중에서 스스로 길을 막는 일을 짓고 다시 낳는 분(分)이 없고 믿는 마음이 없다. 다만 의식(衣食)을 좋아하고 세간의 이익을 탐하여 즐긴다.
나는 이 사람에게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고 설한다.
사리불아, 나는 지금 명료하게 너에게 고(告)한다.
만약 사람으로 하여금이같이 법보(法寶)를 거역하게 하면 태어나기를 바라는 곳에서 오래 있을 분(分)이 없으며 오직 나쁜 곳에 나서 항상 눈이 멀고 눈이 없을 것이다.
사리불아, 이 여러 비구는 교만함이 치성하여 결정적으로 설할 수가 없고 나의 바른 법을 깨트린다.
그 다른 뭇 사람은 자활(自活)할 수가 없어 이익을 위하는 까닭에 따라서 나의 법을 깨트린다.
사리불아, 이와 같이 해서 법보(法寶)는 이 때 파멸한다.
무슨 까닭인가?
이 같은 법보는 일체의 모든 부처가 모두 함께 공경하고 모든 벽지불(辟支佛)과 아라한들도 역시 모두가 공경한다.
파계한 비구와 증상만(增上慢)하는 자는 결정코 법을 설하지 않는다.
여러 비구들은 이 때, 모두가 함께 나의 법을 가벼이 여기고 그리고 함께 멀리 떠난다.
많은 간탐(慳貪)을 품고 오로지 생업(生業)을 구하고 재물의 이익을 귀히 여겨서 질투에 묶이고 항상 다투고 싸우는 것을 좋아해서 서로 원한과 간격을 낳는다.
서로 존경하고 순종하지 않아서 위의가 없다. 뜻[志]과 성품이 경박하여 마치 원숭이와 같다. 위의를 쉽게 굴려 여러 악업을 행한다. 사문(沙門)의 법을 물리치고 현성(賢聖)으로부터 멀리 떠난다.
사리불아, 이와 같은 악인은 하자(瑕疵)를 덮어 가리고 욕심이 많고 구하는 것이 많아 재물로써 자활(自活)한다.
악마는 마음 알고서 그를 위해서 방편을 짓고 그 어그러지고 다른 것으로 하여금 각각 함께 흩어지고 무너지게 한다.
한 맛[一味]인 승보(僧寶)는 나뉘어 5부(部)가 된다.
이미 5부(部)가 있으면 곧 다툼이 생긴다. 상호시비를 하여 과실(過失)을 이야기한다.
사리불아, 지금과 같은 비구는 상호 교화하고 서로 공경하며 마음을 함께 하여 함께 수행하고 부처의 말씀에 수순한다.
그 때의 비구는 서로 교화하지 아니하고 서로 공경하지 않으며 악을 짓는 것을 보면 두려워서 버리고 떠나며 법으로써 서로 함께 가르치고 뉘우치지를 못한다.
혹은 그 때에 많이 들어 지혜가 깊은 자가 있다 해도 더욱 교만한 마음을 품어 다른 사람을 가벼이 여기고 천대(賤待)한다.
저마다 이 곳이 나의 곳이라고 스스로 울타리를 세우고 서로 보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하물며 능히 가르침을 받겠느냐?
사리불아, 여래가 세간에 있을 때의 3보(寶)는 한 맛이지만 나의 멸도(滅度) 후에는 나뉘어 5부(部)가 된다.
사리불아, 악마는 지금은 아직 몸을 감추고 있지만 조달(調達)을 도와서 나의 법과 승(僧)을 깨트리고자 한다.
여래의 큰 지혜가 지금의 세간에 있는 까닭에 폐마(弊魔:남에게 괴로움을 끼치는 악마)는 그 큰 악을 이룰 수가 없다.
장차의 세간에는 악마가 모습을 바꾸어 사문의 모양을 하고 승(僧) 가운데 들어서 여러 가지 삿된 것을 설한다.
많은 중생으로 하여금 삿된 견해에 들게 하고 그러기 위해서 삿된 법을 설한다.
이른바 미루타(彌樓陀)와 라가루(羅迦樓)의 쌓인 일과 다섯으로 나뉘는 일과 생각마다 법이 멸하는 일과 일체가 변함 없이 존재한다.
주장하는 일과 자아(自我)가 영구히 존재한다는 일과 얻는 바가 있는 일이다.
이 때 악마는 이와 같은 삿되고 탐착하는 일들을 설한다.
이와 같은 일은 모든 부처와 부처의 제자가 설하는 바가 아니다.
이 때 악인은 악마 때문에 미혹하여 저마다 소견(所見)을 갖고서
‘나는 옳다’ ‘그는 그르다’고 한다.
사리불아, 여래는 미리 미래세(未來世)를 보며, 이 같이 법을 깨트리는 일이 있는 까닭에 이 깊은 경을 설하여 악마가 쥐고 탐착하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끊는다.
사리불아, 이 때를 당하여 염부제(閻浮提) 안은 이 증상만(增上慢)인 자가 많아 작은 선(善)에 따르고서 곧 도를 얻었다고 말한다.
목숨이 다한 뒤에는 마땅히 나쁜 세계에 떨어진다.
무슨 까닭인가?
이 사람은 긴 밤 스스로 도를 얻었다고 말하며 또 남에게 설하여 도를 얻었다고 자칭하며 성인이 공양해야 할 일을 무릅쓰고 받는다.
이 사람을 여러 사람과 세간에서 크게 악한 도적이라고 한다.
이 같은 어리석은 사람은 제일의(第一義)의 진실한 뜻을 설함을 들으면 놀라고 의심하며 두려워함이 깊은 함정에 떨어지는 것과 같다.
사리불아, 여러 비구가 있고 이 일을 즐기는 자는 함께 모여서 서로 위없는 보리를 파괴한다.
이 때 증상만(增上慢)인 사람과 편협한 데 집착하는 사람이 많다.
악마는 또 다시 재가자와 출가자의 마음을 미혹(迷惑)하고 비법(非法)을 갖게 한다.
바른 법을 설하는 자를 돕는 것은 적고 즉 흩어지고 무너져 다시는 일어설 수가 없게 한다.
사리불아, 이 때의 세간에 근기가 날카로운 나이 젊은 비구가 많이 있다. 왜냐 하면 출가한 여러 사람이 아직 남은 번뇌가 있어서 사람 가운데 다시 태어나 곧 다시 출가하기 때문이다.
이 여러 비구는 어려운 물음을 기뻐하고 즐겨 불법의 제일의(第一義)의 진실한 뜻을 추구하지만
사리불아, 이 때 깨달았다고 자부하여 교만한 자는 악마에게 미혹되어 오직 목숨 살기를 구할 뿐, 실지로 이는 범부이면서 스스로는 나한(羅漢)이라고 칭한다.
여러 젊은 비구들에게 말한다.
‘몸과 입과 뜻을 착하게 하는 것, 이는 곧 부처님 법의 진실한 제일의이다.
깨끗한 계를 지키고 경법(經法)을 독송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많이 듣기를 부지런히 닦아라. 이를 인가(認可)에 순응하는 인연이라고 이름한다.
이른바 마음을 밝히고 부처님을 믿는 것이다. 또 제일의의 진실한 뜻이 있다.
그대는 마땅히 마음의 반연 속에 묶어두고 오로지 열반을 염하고 세 가지 괴로움을 없애야 한다. 즉 능히 5음(陰)과 12입(入)과 18계(界)를 싫어해서 떠나는 것이다.
그대들은 마땅히 조용한 곳에서 이 5음과 12입과 18계의 법은 모두가 남김없이 무상(無常)하다고 관하여 스스로 그 몸의 여러 가지 부정(不淨)을 관(觀)해야 한다.
그대들이 능히 이와 같이 관하면 마땅히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는다.
또 능히 이 5음(陰) 등의 법에 대하여 무상(無常)하고 괴롭고 공(空)이며 무아(無我)이며 견고함이 없음을 깊이 관하면 사다함(斯陀含)을 얻는다.
또 더욱 나아가서 깊이 관하면 아나함(阿那含)을 얻고 아라한을 얻는다.
이를 제일의 진실한 뜻이라고 한다.
이 중에 나이 젊은 비구는 다시 묻는다.
‘불법 중에서 아라한과(阿羅漢果), 이는 곧 제일의(第一義)인가?
또 우리들이 이 일이라고 안다면 아라한을 얻어 곧 제일의인가?
지금의 이 5음(陰)은 억념(憶念)하는 자가 생(生)하는가, 억념하지 않는 자가 생하는가?’
답하여 말한다.
‘이 5음을 억념하면 생하고, 기억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생하지 않는다.’
또 묻는다.
‘5음과 다른가, 다르지 않은가?’
답하여 말한다.
‘5음과 같이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도 같다.’
또 묻는다.
‘만약 5음과 같이 기억하고 생각함이 역시 그와 같다면 누가 이 5음을 생각하는[念] 자인가?’
답하여 말한다.
‘만약 5음을 생각함이 없는 자는 곧 열반이 없다.
실로 5음을 생각하는 자가 있으면, 이 까닭에 여덟 가지 바른 성도(聖道:8정도)를 닦아 열반에 드는 자가 있다.’
사리불아, 미래세(未來世) 중에 많은 비구가 있어 이 인가를 성취한다.
사리불아, 이 때 모임 가운데 여러 하늘의 무리가 있어 불법의 진실한 제일의를 듣고자 바라는데, 이 증상만(增上慢)인 자의 설하는 것을 듣고서 마음에 의심하고 뉘우침이 생기기를 깊은 구덩이에 떨어짐과 같아서,
함께 이러한 말을 한다.
‘괴이하구나.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이 지금 바야흐로 신속하게 멸하려 한다.’
사리불아, 그 중에 선근(善根)을 성취한 비구가 있다.
이 비구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헛되이 늙어 깨달은 것도 없이 깨달았다고 자만하는 자’라고 말한다.
그는 ‘만약 5음의 상(相)과 12입의 상과 18계의 상이 있다면 이 말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고,
기뻐하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간다.
사리불아, 이 때 여러 하늘은 마음에 크게 환희하여 사방을 향하여 말한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아직도 좋은 제자가 있으시다.’
이 소리를 들은 여러 사람들은 선근이 적지 않아서 이 아견(我見)ㆍ인견(人見)을 말하는 것을 듣기를 기뻐하지 않는다. 여러 하늘은 이것을 듣고서 모두가 크게 환희하고 이 근기가 날카로운 자를 칭찬하고 찬탄한다.
‘어려운 것을 기쁘고 즐겁게 물으면 반드시 모두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성취한다.’
이와 같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함께 반려(伴侶)가 된다. 사람의 무리가 보다 적으면 세력도 또한 약하다.
사리불아, 이 때 나의 참다운 여러 아들은 아버지의 종족(種族)에 대하여 더욱 사랑하는 말이 없다. 하물며 공양을 얻고 머물러 탑사(塔寺)에 살겠느냐?
사리불아, 그대는 마땅히 이를 보아야 한다.
이 때 여래는 곧 가벼운 징후를 보인다.
내가 열반한 뒤 나의 제자들이 소득이 없는 선적(善寂)의 인가를 성취한 때 역시 경시하고 천대하지 말라.
나의 견해 까닭으로 해서 무수한 겁 동안 여러 원수와 적을 꺾고, 일체의 천왕(天王과 인왕(人王)을 교화하여 마음을 청정하게 하였다. 그러한 까닭은 나의 여러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지위에 살게 함을 얻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사리불아, 여래는 지금 일체 세간의 하늘과 사람을 가져 밝히고자 한다.
여래는 법답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위없는 법륜(法輪)을 굴린다.
사문과 바라문과 혹은 하늘과 마왕(魔王)과 범(梵)도 굴릴 수 없는 것이다.
사리불아, 이 같은 것은 지금의 일이다.
여래가 멸한 뒤, 나의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나의 여러 제자들은 널리 유포하고자 한다.
그 여러 악인은 증명하지를 못한다.
또 두려움이 없음[無畏]을 베풀어 줄 수도 없다.
사리불아, 비유컨대 꿀 병을 네거리에 놓아두고서 이렇게 말한다.
‘만약 사람이 멀리 털 하나 만큼만이라도 능히 먹는 자는 항상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
이 때 여러 하늘과 세상 사람이 저마다 칼과 몽둥이를 가지고 이 병을 지킨다.
그 때 지키는 자들이 저마다 이러한 말을 한다.
‘만약 혹 사람이 있어 머리털 하나만큼이라도 먹는 자는 우리들이 마땅히 죽일 것이다.’
사리불아,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있어 남 모르게 이 생각을 한다.
‘이 병 속의 꿀을 머리 털 하나 만큼만이라도 먹으면 곧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 나 지금 어찌 죽음을 아껴 먹지 않을 것인가?
만약 먹을 수 있어 먹기를 마치기만 하면 곧 여러 지키는 자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또 항상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다.’
이같이 마음을 정하고 목숨을 아끼지 않고서 곧 병이 있는 곳에 이른다. 지키는 여러 사람은 저마다 칼과 몽둥이를 들고서 다투어 이를 죽이고자 한다.
사리불아, 이 사람이 만약 능히 칼과 몽둥이에 잘리기 전에 한 방울이라도 먹으면 곧 쇠퇴함과 병환을 면하고 또 늙음이 없고 죽음이 없음과 같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많은 악인과 마왕(魔王)과 마왕의 백성이 있어서 나의 법을 없애고자 한다.
여래가 멸한 뒤에 혹시 사람이 있어서 능히 공(空)의 법에 수순(隨順)하여 의혹이 없음에 통달하면 곧 모든 법에 있어서 마음이 얻은 바가 없어 높은 인가를 성취한다.
이 때 악인 때문에 가볍게 여김을 받아 그 도를 막고 무너지게 되는 일이 있어도,
만약 이 사람이 능히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서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면,
모든 법의 남이 없고 지음이 없어 통달하여 곧 낳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을 해탈함을 얻는다.
사리불아, 꿀병은 이 부처님의 제일의의 법이다.
여러 하늘과 세인(世人)으로 병을 지키는 자는 곧 이 악인이며 악마의 일을 행하는 것을 즐겨 스스로 큰 이익을 잃고 또 다른 사람으로 실상을 행하는 자를 막아서 큰 이익을 잃는다.
사리불아, 깨닫지 못하고 깨달았다고 자만(自慢)하는 자는 모두가 이 악마의 무리로서 악마의 일을 도와서 이루며 모두가 함께 생멸(生滅)이 없는 법을 비방하고 꾸짖는다.
또 사리불아, 부정(不淨)을 설한다 함은 아견(我見)ㆍ인견(人見)ㆍ중생견(衆生見)ㆍ5음(陰)ㆍ12입(入)ㆍ18계견(界見)으로서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고 말하여, 마음에 도를 얻었다고 꾸미고, 열반을 얻었다고 꾸미는 자까지도 모두 또 이 같은 바른 법을 비방하고 꾸짖는다.
무슨 까닭인가?
이 사람은 공에 탐착하는 까닭이다.
이 또한 악마의 무리로서 악마에게 미혹되어 나의 바른 법을 가져 악마의 일이라 한다.
사리불아, 만약 재가자나 출가자로서 이 자아가 없고 사람이 없고 중생이 없는, 필경공법(畢竟空法)을 듣고서 의심하고 놀라 두려워하는 자, 이 사람은 악마의 교화를 받은 자라고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모양의 비구를 나는 곧 법을 훔치는 행위를 하는 자라고 한다.
사리불아, 이 사람은 곧 이 아견(我見)ㆍ인견(人見)ㆍ중생견(衆生見)ㆍ유견(有見)ㆍ무견(無見)ㆍ상견(常見)ㆍ단견(斷見)으로서 이 모두는 악마의 백성이며, 부처의 제자가 아니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경 가운데서 설하였다.
‘일체의 세간은 모두가 공하여 자아가 없고 자아에 속한 것도 없으며 사람도 없고 중생도 없고 항상하는 것도 없고 정해진 것도 없으며 무너지지 않는 법도 없다.’
이 같은 악인은 또 모두가 함께 이 경을 독송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설하면서도 마음과 아견(我見)과 인견(人見)에 탐착한다.
이같이 어리석은 사람을 이름하여 괴로움의 원인을 만든다고 한다.
두 끝을 반복하는 자라고 이름한다.
어지럽게 싸워 승(僧)을 깨트리는 자라고 이름한다.
도(道)의 법을 오염하는 자라고 이름한다.
사문(沙門) 중의 흐림[濁]이라고 이름한다.
추하고 더러운 자라고 이름한다.
다만 말이 있을 뿐인 자라고 이름한다.
거짓된 사문이라고 이름한다.
사문 가운데서 가난한 자라고 이름한다.
무거운 짐을 진 자라고 이름한다.
모든 부처를 속이는 자라고 이름한다.
반역하는 죄를 짓는 자라고 이름한다.
사리불아, 이 사람을 크게 악한 역적이라 하고, 악지식이라 이름하며, 파계(破戒)라 이름하고,
삿된 견해라 이름하고, 외도(外道)라 이름하고, 진실한 행이 없다 이름하고, 나쁜 친구라 이름하고, 살귀(殺鬼)라 이름하고,
문둥이의 곪은 상처라 이름하고, 더러운 냄새라 이름하고, 삶고 태우는 것이라 이름하며, 아첨이라 이름하고,
어둠 속에 떨어져 있는 것이라 이름하고, 빽빽하고 거친 숲 속에 든 것이라 이름하며,
생사의 흐름에 떨어진 것이라 이름하며, 서로 악을 내는 자라 이름하며,
지옥이라 이름하며, 축생이라 이름하며, 아귀라 이름하며, 아수라라 이름하며,
도에 들지 않은 자라 이름하며, 사람을 속이는 자라 이름하며,
자기를 스스로 칭찬하는 자라 이름하며, 점상(占相)을 행하는 자라 이름하며, 큰 소리로 외치는 자라 이름하며,
이익의 인연인 이익을 구한다 이름하며, 오염된 남의 집이라 이름하며,
항상 무익한 희롱을 즐기는 자라 이름하며, 마음이 흩어지고 어지러운 자라 이름하며,
탐욕이 해(害)치는 자, 성냄이 해치는 자, 어리석음이 해치는 자라 이름하며,
좋은 얼굴로 속이는 자라 이름하며, 쇠약한 생각에 처한 자라 이름하며,
해탈이 없는 자라 이름하며, 근심과 걱정에 묶인 자라 이름하며,
사문(沙門)이 아니라 이름하며, 껍데기만의 사문이며, 사문의 선다라(旋陀羅)이며, 사문의 더러운 냄새이며 사물의 찌꺼기라고 이름한다.
채우기 어렵다 이름하며, 기르기 어렵다 이름하며,
위의(威儀)를 깨트린 자라 이름하며, 부끄러움이 없는 자라 이름하며,
머리를 잘라버린 자라 이름하며, 신체가 무너진 자라 이름하며,
가사(袈裟)로 머리를 묶은 자라 이름하며, 스스로 어둠 속에 든 자라 이름하며,
탐욕이 많은 자라 이름하며, 성냄이 많은 자라 이름하며, 어리석음이 많은 자라 이름하며,
5개(蓋)에 얽히고 가려진 자라 이름하며,
죽은[沒] 자라 이름하며, 헛된 자라 이름하며,
빈[空] 자라 이름하며, 어리석은 자라 이름한다.
사리불아, 어찌하여 비었다고 이름하는가?
모든 부처가 칭찬하는 좋은 사람의 상을 물리치고 잃었기 때문에 이름하여 비었다고 한다. 사문의 일체의 공덕과 사문의 의무(義務: 事法)를 물리치고 잃었기 때문에 이름하여 비었다고 한다.
어찌하여 헛되다고 하는가?
거룩한 법의 밖에 있는 까닭에 이름하여 헛되다고 한다.
공(空)과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의 법을 멀리 떠났기 때문에 이름하여 비었다고 한다.
사리불아, 이와 같은 악인은 능히 악마로 하여금 즐겁게 한다. 허망한 법에 탐착하여 굳게 집착하는 까닭이다.
한가지로 죄악이 있는 사람의 상을 있는 대로 갖춘 범부로서 법인(法忍:인욕바라밀)을 얻은 자와 비슷하지도 않다.
사문의 의무와 사문의 공덕의 백천만분의 일이라도 더욱 없다.
사리불아, 이 까닭에 이름하여 빈 자, 헛된 자라고 한다.
오직 세간의 이익과 즐거움에 깊이 탐착한다.
이는 사문이 아니면서 스스로 사문이라고 칭한다.
마땅히 공양을 받아서는 안 되면서도 공양을 받는다.
이름하여 항상 도둑질하는 도둑이며, 서로 깃발을 세운 도둑이라 하며, 사람을 자재(自在)하게 죽이고 해치는 도둑이라 이름한다.
이 사람이 먹는 것은 한 입도 모두가 깨끗하지 않다.
오직 도에 나아가는 자와 도과(道果)를 얻은 자만이 능히 공양을 받을 수가 있다.
이 사람에게는 이것이 없다.
이 까닭에 이름하여 부정(不淨)한 것을 먹는 자라고 한다.
사리불아, 이 까닭에 빈 자, 헛된 자라고 이름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약 사람이 살생(殺生)과 도둑질과 사음(邪淫)과 거짓말과 두말[兩舌]과 나쁜 말[惡口]과 꾸밈말과 탐욕과 질투와 성냄과 삿된 견해를 가졌는데,
이 사람을 항상 살생한다 하겠느냐, 아니겠느냐? 항상 목숨을 빼앗는다고 하겠느냐, 아니겠느냐?”
“세존이시여, 아닙니다. 재가자의 살생은 항상 목숨을 빼앗지 않으며, 살생할 때가 적으며 살생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사리불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약 사람이 도둑질을 한다면 도둑질을 하는 때가 많겠느냐, 도둑질을 하지 않을 때가 많겠느냐?”
“세존이시여, 훔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사리불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약 사람이 사음을 하는데 사음 하는 때가 많겠느냐, 사음하지 않을 때가 많겠느냐?”
“세존이시여, 사음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거짓말을 하고 나쁜 말을 하고 두 말을 하고 꾸미는 말을 하고 탐욕하고 질투하고 성내는 때가 많겠느냐, 성내지 않는 때가 많겠느냐?”
“세존이시여, 성내지 않는 때가 많습니다.”
“사리불아, 이 열 가지 착하지 않은 길 중에서 어떤 것이 죄가 더 무겁겠느냐?”
“세존이시여, 열 가지 착하지 못한 것 중에서는 삿된 견해의 죄가 무겁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세존이시여, 삿된 견해는 때[垢]로서 항상 마음에붙어 있고 마음으로 하여금 청정하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아, 내가 지금 너에게 말한다.
만약 사람이 하루에 백천만억(百千萬億)의 중생을 죽이고,
하루에 백천만억의 금과 은과 보물을 훔치고,
사음하여 밤낮으로 쉬지 않고
거짓말을 해서는 항상 사람을 속이고 구업(口業)이 부정하기로는 한마디도 진실한 말이 없으며,
두 말을 해서는 항상 화합을 깨트리고 또 깨트리는 자를 돕는다.
나쁜 말을 해서 항상 입이 악하고 거슬려서 유연(柔軟)한 한마디 말도 하지 않으며,
꾸밈말에는 근본이 없고 사람이 이 일을 물으면 다른 헤아릴 수 없는 말로써 어지럽게 한다.
탐욕하고 시기하여 남의 물건에 대해 법답지 아니한 마음을 낸다.
인연이 없음에도 성을 내고 제멋대로 진심[瞋恚]을 일으켜 마음에 가득히 한을 품는다.
삿된 견해에서 도 아닌 것을 행하는 일을 즐긴다.
사리불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약 사람이 이와 같은 착하지 아니한 법을 성취하면 죄가 많다 하겠느냐, 아니겠느냐?”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불아, 나는 지금 너에게 말하겠다.
만약 사람이 100년을 이와 같은 열 가지 착하지 아니한 죄를 성취하였다면, 파계한 비구가 하루 낮 하룻밤이라도 남의 공양을 받은 죄는 그 보다 많다.
무슨 까닭인가?
이 살생한 자는 많은 사람이 아는 바이며,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서 사람들의 미움과 천대를 받는다.
사람이 모두가 목숨을 빼앗고 죽이는 자임을 안다.
죄가 사람을 더럽고 흐리게 하니, 즉 오염된 자이며, 착하지 아니하고 덕이 없어 사람들이 떠나가는 것이다.
또 사리불아, 살생한 자가 많은 남의 목숨을 빼앗고서 혹 싫어하는 마음을 내어 스스로 이렇게 해서는 안됨을 알고 마땅히 죄의 과보를 받는다.
사람들 모두가 악하고 계가 없고 더러운 줄을 알면 이 사람에게 대해서 털을 나눈 그 백분의 일만큼이라도 공덕을 바라지 않는다. 하물며 복전(福田)이라고 해서 이를 공양하겠느냐?
또 사리불아, 이 살생한 사람 집의 아내와 자식은 사람들 모두가 잘 알고 함께 공경하지 않는다. 더욱 함께 앉게 하지 않는다. 하물며 공양이겠느냐?
살생한 사람은 재물로써 자활(自活)하고 아내와 자식을 양육한다. 혹은 때로 사문이나 바라문을 공양한다. 이 업보(業報)로 해서 현성을 만날 수 있게 된다.
비구와 비구니는 그를 위하여 도법(道法)을 설하고 가르쳐서 살생을 떠나 그 살생을 버리게 한다.
불법(佛法) 중에서 출가함을 얻어 장애 받음이 없다.
출가를 한 다음에는 선지식을 가까이 해서 사문의 과위(果位)를 얻는다.
이 사람은 현세(現世)에서 죄의 과보를 가볍게 받고 거룩한 길을 장애 받지 않아서 3도(途)를 면함을 얻는다.
사리불아, 나의 법 중에 여러 비구가 있는데,
곧 사문이 아니면서 스스로 사문이라 말하고, 곧 범행(梵行)이 아님에도 스스로 범행이라고 말하며
여러 선근(善根)을 끊고 열반에 드는 것을 장애하고, 미혹하여 도를 잃고, 도의 인과를 깨트리고 여러 선법(善法)을 깨트리고 외도의 일을 행하여 악도(惡道)에 들어서는 온갖 나쁜 도적이 많다.
헛되이 태어나 목숨을 받아도 마치 죽은 사람과 같다.
형색이 깨어지고 무너져서 바른 위의를 잃는다.
나의 법 중에서는 오염(汚染)이라고 이름하고, 법의 도둑이라고 이름하며, 거슬리는 사람이라고 이름하고, 악마의 심부름꾼이라고 이름한다.
마치 변소와 같고 또 죽은 개와 같다.
모양은 사문과 같고 사문의 옷은 같으나 사문의 일은 없다.
사리불아, 비유컨대 여우가 사자의 무리 속에 있음과 같다.
또 황문(黃門)이 전륜성왕(轉輪聖王)의 무리 가운데 있음과 같다.
또 원숭이가 여러 하늘에 있음과 같고,
또 당나귀가 코끼리 왕의 무리 속에 있음과 같고,
또 장님이 천안(天眼)을 가진 무리 속에 있음과 같고,
또 박쥐가 금시조(金翅鳥)의 무리에 있음과 같다.
사리불아, 파계한 비구가 나의 무리 가운데 있으면 백천만억의 하늘의 대중은 이 비구의 무리 가운데 앉아 있는 것을 보고서 모두가 크게 근심하고 걱정하여 이 말을 한다.
‘이 같은 악인이 어찌 포살(布薩)을 하겠는가?
이는 악마의 무리로서 위없는 불도를 듣고서는 속인(俗人)을 향하여 설하고자 하는 자이다.’
또 불법을 믿고 즐기는 여러 용과 귀신이 있는데 높은 소리로 크게 외친다.
‘이 나쁜 비구는 무슨 까닭에 이곳에서 그 몸을 감추고 있는가?
나쁜 말이 훈련된 좋은 말 가운데 있음과 같다.’
이 같은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생각한다.
‘나의 악을 보고 아는 자가 없구나. 나 이곳에 섞여서 천하를 속이리라.’
이것을 모든 사람과 하늘 중의 도둑이라 한다.
무리가 함께 보고서 다시 크게 웃는다.
사리불아, 이와 같은 죄악의 비구를 곧 모든 하늘이 아는 나쁜 도둑이라고 한다.
속인에 다름이 없으면서 공양을 받고 환영하고 환송(歡送)하고 예배와 합장과 공경을 받는다.
나쁜 사람은 어리석어 마치 주검과 같다. 입은 옷은 모두가 훔쳐서 얻은 것이며 발우 속의 먹는 것은 모두가 훔쳐서 얻은 것이다. 사람이 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내지 조금의 물도 또한 훔쳐서 얻은 것이며 발우 속의 먹는 것은 모두가 훔쳐서 얻은 것이다. 사람이 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내지 조금의 물도 또한 훔쳐서 얻은 것이다.
사리불아, 파계한 비구가 이르는 곳의 방향이 혹은 동쪽이거나 남ㆍ서ㆍ북쪽에 이르러도 이 모두는 땅을 훔쳐서 간다.
무슨 까닭인가?
이 사람의 모든 위의와 행동의 법이 모두가 훔치고 도둑질한 것으로서, 가고 서고 앉고 눕고 오고 가고 보고 몸을 굽히고 위를 쳐다보고, 옷을 입고 발우를 갖는 지금 간략히 해서 몸과 입과 뜻의 업을 설한다.
모든 보시의 지음이 모두가 도둑질이다. 만약 이 사람이 머리털을 깎는 일이 있어도 도둑은 머리를 깎는다고 하지 않는다.
요점을 들어서 이를 말하면 파계한 비구가 보시하여 짓는 것이 있어도 이 모두가 도둑질이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리불아, 폐악한 비구가 대소변(大小便)을 누는 것과 손을 씻는 것까지도 이 모두는 도둑의 법이다.
무슨 까닭인가?
사리불아, 염부제 안은 이 모두가 국왕(國王)과 여러 대신과 백성의 소유이며 사람 아닌 것[非人]에게 속한다. 이 나쁜 비구는 이 가운데에서 도둑질을 하기 때문이다.
사리불아, 만약 왕과 대신이 나쁜 도둑이 있는 곳에서 공덕을 바라지 않고 나와 평등하다고 말하지 않고, 나보다 뛰어나다고 말하지 않으나 파계한 비구가 거룩한 법의 옷을 입으면 이 사람이 있는 곳에서 공덕 얻기를 바라고 이 까닭에 국토에 머물러 살기를 허락한다. 만약 그가 악한 것을 알면 곧 땅에 침을 뱉고 또한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사리불아, 폐악한 비구가 몸을 움직여 짓는 바는 이 모두가 도둑질인 것이다. 이름하여 일상적인 도둑이며, 큰 도둑이며, 깃발을 세운 도둑이라고 한다. 일체 세간의 사람을 때리고 해치는 자이다.
무슨 까닭인가?
악으로서 짓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까닭에 사리불아, 이 악한 비구를 일체의 모든 하늘과 사람과 세간(世間)에서 곧 큰 도둑이라 한다.
사리불아, 만약 어떤 사람이 일체의 하늘과 사람과 세간의 큰 도둑이라 하면 이 사람이 능히 한 모금의 물일지라도 없애겠느냐, 않겠느냐?”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불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은 곧 큰 악인(惡人)이 아니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불아, 파계한 비구는 일체의 모든 하늘과 사람과 세간에 있어서 크고 악한 죄가 있다. 이 뜻 때문에 나는 이 게송을 설한다.
오히려 불에 달군 돌을 물고
끓는 구리를 머금어 마실지언정
계가 없으면서
사람의 믿음과 보시를 먹지 말라.
사리불아, 이 파계한 비구는 색(色)이 없고 덕이 없고 또 뜻[志]과 바람[願]이 없다. 몸과 마음이 매우 독하여 나쁜 소리를 기쁘게 보며 홀로 있는 곳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혹은 때로 홀로 있고 혹은 때로 홀로 행하여도 몸은 곧 전율(戰慄)하고 두려워 맑은 계를 지닌 자를 보면 구석으로 숨고 회피하며 마음에 겁을 내고 스스로 부끄러워해서 기뻐하지 않고 보기를 바라지 않는다.
공양을 받을 때에도 놀라고 의심하고 두려워해서 마음은 항상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온갖 생각이 많다. 재물과 이익을 깊이 탐하고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즐긴다.
이와 같은 비구는 목숨이 그친 뒤에 반드시 지옥에 든다.
사리불아, 이것을 파계한 비구의 일곱째 근심과 고뇌의 화살이라고 이름한다.
반드시 지옥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