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화수경 제2권
6. 염처품(念處品)
[부처님께서 발타바라에게 말씀하시다]
[염처의 문]
부처님께서 발타바라에게 말씀하셨다.
“저 때에 세상의 여러 착한 이들은 마땅히 이런 생각을 하리라.
‘우리들은 4념처(念處)에 스스로 꼭 의지해야겠다.’
4념처는, 성인의 법 가운데 온갖 법은 모두 염처(念處)라고 이름한다. 왜냐하면 온갖 법은 자성(自性)에 늘 머물러 있으므로 능히 무너뜨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염처의 문은 법이 머무는 바의 문, 법에 들어가는 첫 문, 8성도(聖道)의 문, 3해탈의 문이다.
[해탈의 문, 둘이 아닌 법]
해탈의 문이란 둘이 아닌 법으로써 두 가[邊]를 버리고 성현의 해탈을 얻는다.
둘이 아닌 법은 있는 바가 없다. 있는 바가 없다는 것은 곧 다함이 없는 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바른 견(見)이라 하니, 두 가를 멀리 여의었으므로 가는 곧 스스로 공하여 진실이 없느니라.
발타바라야, 알아 두어라. 여래는 가[邊]를 보지 아니하여 가를 여의나니, 본래 가[邊]가 없으므로 가를 여읜다고 말하느니라.
여러 부처님께서는 온갖 법을 여의시었다.
지혜 있는 이는 범부가 받는 바와 같지 않으니라.
발타바리야, 법의 진상을 구하되 실은 얻지 못하는 까닭에 이름하여 여읜다 하느니라.
이 법은 허망하여 얻음도 없고 싫음도 없느니라.
발타바라야, 이런 뜻에서 옛적에 일찍이 어떤 하늘 사람이 나에게 와서 물었다.
‘사문은 기쁜 일이 있습니까?’
나는 곧 답하여 말하였다.
‘내가 무슨 일을 얻었기에 기쁨이 있겠느냐?’
또 물었다.
‘근심이 있나이까?’
나는 또 답하여 말하였다.
‘무슨 일을 잃었기에 근심이 있겠느냐?’
또 물었다.
‘기쁘지도 않고 근심스럽지도 않습니까?’
답하여 말하였다.
‘그와 같으니라.’
하늘 사람이 말하였다.
‘거룩하시나이다. 기쁘지도 않고 근심스럽지도 않으시다 하오니.’
나는 또 하늘 사람에게 물었다.
‘내게서 무슨 뜻을 얻었느냐?’
하늘 사람은 말하였다.
‘나는 사문께서 적멸(寂滅)에 편히 처하셨다고 일러 말하나이다.’
발타바라야, 그대는 이 하늘 사람을 보아 내 법을 빨리 얻어야 한다.
저 때의 하늘 사람은 지금 이 회상에 있어서 온갖 법의 본 성품이 적멸한 줄 아느니라.
마땅히 알아라. 이 하늘 사람은 옛적에 일찍이 5백 부처님에게 공양한 까닭에 내 법 가운데서 통달함을 빨리 얻었느니라.
이런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선근을 심지 않고 선근이 익지 못하면 성문(聲聞)의 법도 오히려 알 수 없거늘 하물며 내 법을 능히 빨리 통달할 수 있으랴?’
발타바라여, 이 법을 듣고 능히 빨리 아는 이는 공덕이 극히 적다 해도 천 부처님에게 여러 선근을 심었느니라. 왜냐하면 선근이 넓고 크므로 매우 깊은 지혜를 능히 곧 통달할 수 있느니라.”
때에 발타바라보살ㆍ보적(寶積)보살ㆍ도사(導師)보살ㆍ성득(星得)보살ㆍ나라달(那羅達)보살ㆍ제천(帝天)보살ㆍ수천(水天)보살ㆍ선력(善力)보살ㆍ대의(大意)보살ㆍ익의(益意)보살ㆍ증의(增意)보살ㆍ불허견(不虛見)보살ㆍ선주의(善住意)보살ㆍ과력(過力)보살ㆍ상정진(常精進)보살ㆍ불휴식(不休息)보살ㆍ일장(日莊)보살 등 5백 보살이 각각 여러 가지 꽃을 부처님 머리 위에 흩어 공양하고 이렇게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어떤 중생이 이 경을 구하거나 얻어 들으려 하면 모두 반드시 보리의 도를 얻게 되며,
또 그 인연으로써 현재 계신 시방의 여러 부처님으로 하여금 세상에 오래 계시어 법문 설하실 것을 청하면 중생으로 하여금 조보리(助菩提)의 도를 구족케 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서원의 이익]
그때에 부처님께서 발타바라에게 물으셨다.
“중생은 그대에게 무슨 이익되는 일이 있기에 이 큰 원을 발하며, 부처님께서 오래 계시어 법문 설하심을 청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조보리의 도를 구족시키려 하느냐?”
발타바라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중생이 저에게 손해가 된다거나 이익이 되기 때문에 장엄을 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이 여러 중생이 저에게 이익되므로 부처님의 법에 머무르게 하며, 저에게 손해가 있으면 부처님의 법에 머물지 않나이다.
여러 보살들은 이와 같은 분별로써 장엄하지 않나이다.
비유하건대 마치 파리질다(波梨質多)ㆍ구비라(拘毘羅) 나무의 꽃과 잎사귀가 무성한 때에 도리천(忉利天)의 여러 하늘 사람들은 그 꽃이 피어 영화스러움을 보고 마음이 크게 기뻐서 이 나무 밑에서 오욕을 스스로 즐기는 것과 같나이다.
부처님이시여, 도리천의 여러 하늘 사람들은 이 나무왕에게서 무엇인가 손해되고 이익됨이 있나이까?
여러 하늘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사랑하고 즐거움을 내고, 언제나 그 나무 밑에 나아가 오욕을 스스로 즐겨 비할 데 없는 기쁘고 즐거움을 문득 얻게 하나이다.
여러 보살들도 또한 이와 같이, 중생에게 이익이 있고 손해가 있으므로 장엄을 발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생각은 갖나이다.
‘어느 때고 마땅히 부처님의 지혜를 갖추어 시방세계 한량없는 중생이 돌아갈 곳이 되겠다.’
마치 저 하늘 나무가 그 꽃이 만발하여 여러 하늘 사람이 즐겨함을 얻는 것처럼,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5근(根)의 법희(法喜)로써 스스로 즐겁게 함을 마치 저 나무왕이 하늘 사람들을 그 밑에서 5욕의 즐거움을 스스로 즐기게 함과 같나이다.
다시 부처님이시여, 중생을 여의는 까닭에 장엄을 발함이요 중생을 얻음이 아니며,
나를 여의는 까닭에 장엄을 발함이요 나를 얻음이 아니며,
법을 여의는 까닭에 장엄을 발함이요 여러 법을 얻음이 아니며,
음(陰)을 여의는 까닭에 장엄을 발함이요 여러 음을 얻음이 아니며,
계(界)를 여의는 까닭에 장엄을 발함이요 여러 계를 얻음이 아니며,
입(入)을 여의는 까닭에 장엄을 발함이요 여러 입을 얻음이 아닙니다.
부처님이시여, 이 장엄 가운데 여러 과(果)가 없나니, 장엄을 여읜 까닭에 이 과가 공하여 여러 법에 취함이 없고 버림이 없어서 장엄을 발하나이다.
부처님이시여, 이와 같이 장엄의 상(相)은 얻을 수 없으며 이 장엄의 곳, 장엄이 하는 바는 모두 얻을 수 없나이다.
부처님이시여, 혹 얻는 것이 있으면 곧 나를 얻는 것이 되나니, 이런 까닭에 보살은 아(我)와 무아(無我)에 탐내지 않고 받지 않나니, 혹 무아를 받으면 곧 아가 되고, 아가 없고 받는 바가 없는 것이라고 이름하지 않나이다.
부처님이시여, 이와 같은 뜻으로써 큰 장엄을 세간에 나타내며, 이 장엄 가운데는 저와 이것의 상(相)이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발타바라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장엄에 어떠한 이익이 있음을 보았느냐?”
발타바라가 대답하였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장엄을 발하여 범부와 배우는 사람들이 나는 멀리하고 부처님 법에 가까이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며,
저도 또한 이 여러 부처님의 법, 이와 같은 부처님의 법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장엄을 발하여 그 가운데 이익이 있고 손해가 있음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장엄은 이 상으로 말미암아 세간에 나타납니다.”
그때에 여러 보살이 흩은 여러 가지 꽃이 신통력을 나타내어 시방에 두루 이르러 여러 부처님께 공양하고 중생을 교화하여 부처님 법에 머무르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