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권방편경 하권
4. 가호품(假號品)[1]
[즐겁게 하며 가르치는 방편]
이때 수보리가 여인에게 말했다.
“누이여, 어째서 문을 나섭니까, 남편이 있습니까?”
여인이 대답했다.
“현자여, 잘 들으십시오. 나는 남편이 하나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가령 중생이 방종함[放逸]을 부지런히 닦기를 좋아하고 즐거워하거나 또는 능히 순선권방편(順善權方便)을 받든다면 이런 중생은 모두 나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물었다.
“누이여, 무엇을 순권방편(順權方便)을 좋아하고 즐거워한다고 합니까?”
그 여인이 대답했다.
“오직 수보리여, 혹 중생이 먼저 일체의 욕락(欲樂)을 즐거워하므로 그것을 즐긴 뒤에 대도(大道)로써 변화하기를 권합니다.
만약 중생이 애욕으로 인하여 법을 받으려 한다면 문득 애욕의 즐겁고 기쁜 일을 주고는 이미 지난 것을 따라서 별리(別離)를 나타내어 교묘한 방편으로 때에 따라 교화하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물었다.
“누이여, 여래께서 처음부터 어찌 즐거움을 좋아했겠습니까?
적당한 때를 따르는 것은 법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수보리가 여인에게 말했다.
“여래ㆍ지진께서는 남을 가르치시되 애욕을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그 여인이 대답했다.
“현자여, 듣지 못했습니까?
여래께서 가르치신 법은, 만약 어떤 비구가 마음에 좋아하는 바를 따라 의복ㆍ음식ㆍ상(牀)ㆍ와구(臥具)와 병든 자의 의약품 등을 자비스런 마음으로 모든 집에서 탁발하여 거주처에 돌아와 동등하게 주되,
뜻이 즐거워함을 바라면 화상(和尙)과 교사(敎師)가 학문을 따르고 교훈에 힘쓰게 하고 그로 인하여 도에 들어가도록 교화한다고 했습니다.”
수보리가 대답했다.
“그러합니다. 누이가 지금 말한 것과 같습니다.”
여인이 말했다.
“그런 까닭으로 현자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여래께서 그것을 들어주셨으니 그때의 사정에 따르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방편으로써 그들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여인에게 물었다.
“중생의 무리에게는 어떠한 방편으로 즐겁게 그들을 따라 가르칩니까?”
그 여인이 대답했다.
“삼천세계에 있는 별들은 셀 수 있으나, 내가 교화[開化]하되 욕망을 따라 제도한 중생으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 자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수보리가 물었다.
“누이여, 어떤 방편으로 사람을 기뻐하고 즐겁게 합니까?”
그 여인이 대답했다.
“혹 중생이 범천(梵天)을 좋아한다면 나도 범행(梵行)을 닦고 한량없는 선(禪)을 따라 흔연히 뜻을 편안하게 하여 그 즐거움을 그들에게 준 뒤에 변화시켜 부처님의 대도(大道)를 권합니다.
혹 제석(帝釋)을 그리워하면 천제(天帝)의 지위를 나타내어 매우 사랑하고 즐거울 만한 것을 나타내고, 이 자재함과 무상(無常)의 법을 보이고, 그로 인해서 대도의 뜻을 내도록 권합니다.
혹 어떤 중생이 모든 천(天)과 용신(龍神)ㆍ건답화(揵沓惒:건달바)ㆍ아수륜(阿須輪:아수라)ㆍ가류라(迦留羅:가루라)ㆍ진타라(眞陀羅:긴나라)ㆍ마휴륵(摩休勒:마후라가)을 사모하고 좋아한다면,
나도 모두 그들 지위의 즐거운 것을 보인 뒤에,
모두가 허망하고 진실하지 못한 것을 변화로 나타내어,
각자로 하여금 대도의 뜻을 내도록 권합니다.
혹 전륜왕의 지위를 바라고 좋아하거나
혹 대신(大臣)ㆍ백관(百官)ㆍ주목(州牧)ㆍ군수(郡守)ㆍ영장(令長)ㆍ사정(四征)ㆍ공경(公卿)ㆍ군자(君子)ㆍ범지(梵志)ㆍ공사(工師)ㆍ세민(細民)을 바라고 좋아하거나,
혹은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을 좋아하고 즐거워하거나,
혹은 화향(華香)ㆍ안식향(安息香)ㆍ도향(塗香)ㆍ의복ㆍ번기[幡]ㆍ일산[蓋]ㆍ대당(大幢)을 좋아하거나
또는 금(金)ㆍ은(銀)ㆍ명월(明月)ㆍ진주(眞珠)ㆍ수정(水精)ㆍ유리(琉璃)ㆍ차거(硨磲)ㆍ마노(碼瑙)ㆍ백옥(白玉)ㆍ진기(珍琦)를 좋아하는 등 이와 같이 즐거워하는 그 종류들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혹은 고무(鼓舞)ㆍ가희(歌戱)ㆍ음락(婬樂)ㆍ비성(悲聲)과 같은 종류의 기교(伎巧)를 좋아하고 즐거워한다면
나는 그 뜻을 따라 충족하게 취하도록 하여 각자의 소원을 이루게 한 뒤에,
곧 도심(道心)을 내도록 권하여 중생을 해탈하게 하되,
상ㆍ중ㆍ하를 따라서 각각 자리를 얻게 합니다.”
수보리가 여인에게 물었다.
“누이여, 마땅히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현성(賢聖)의 도에서 구하고 얻으려 한다면 방해가 됩니다. 법을 구하는 바가 없어야 이에 거리낄 것이 없습니다.
한 사람이 불도에 들어가서 율(律)에 교화를 받아 인연을 여의고 일찍이 없는 법을 얻는 일이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보살ㆍ대사(大士)는 한량이 없는 이러한 법으로 무상(無上)의 업을 짓고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그들은 이 법으로 두루 중생을 교화하여 법률을 얻게 합니다.
그래서 나는 감화되어 기뻐하고 축하합니다.”
이때 두 존자의 아들이 그 문 앞의 뜰에 함께 와서 모여 법을 들었으며,
그 여인이 근본을 널리 펴고 행함을 즐겨하며 순권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도를 권하는 것을 보았다.
[보살의 지혜]
이때 두 동자가 존자 수보리에게 말했다.
“인자(仁者)께서는 자신의 지혜로 타인의 지혜를 헤아리지 마십시오.
수보리의 뜻은 어떠합니까?
반딧불이의 빛이 어찌 자기의 몸을 비추고 어둠을 제거하겠습니까?”
수보리가 대답했다.
“족성자여, 그 반딧불이의 광명은 족히 일컬을 것도 없는데, 이를 비출 수 있겠습니까?”
“그와 같이 수보리여, 성문승을 배우는 족성자ㆍ족성녀는 덕이 얇고 지혜가 작으니, 빛나는 공훈과 혜명(慧明)의 즐거움을 한결같이 생각하면 머지않아 적멸(寂滅)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마치 겁소(劫燒)와 같은 것을 항하수(恒河水)나 샘의 근원이나 모든 흐름으로써 소멸시킬 수 있겠습니까?”
수보리가 말했다.
“일체의 백천(百千)이나 거억(巨億)의 대해(大海)나 강하(江河)의 많은 물로써도 겁소(劫燒)의 왕성한 불을 소멸시킬 수 없는데 하물며 강물이나 큰 강의 지류[流]이겠습니까?”
그 여인이 말했다.
“그와 같이 수보리여, 모든 보살의 많은 지혜의 광명도 한량이 없으며, 공덕과 빛나는 위신력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가령 보살이 강하(江河)의 모래와 같은 겁 동안 다섯 가지 욕망으로 스스로 즐거워한다고 해도 그 끝을 다함이 없습니다.
보살의 지혜 광명과 공덕과 위엄의 빛남은 아득하고 높기가 한량이 없습니다.
수보리여, 마치 가난한 선비가 병을 얻어 매우 곤궁할 때 의사가 와서 치료하며 병에 따라 약을 주되 그 경중(輕重)을 따라서 치료하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약을 쉽게 얻은 것은 박덕한 선비가 홀로 스스로 괴로움을 만나서 편안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재물의 사용이 풍부하지 않아서입니다.
이와 같이 수보리여, 모든 성문승의 행동하는 덕은 욕심이 적고 탐욕이 없으며 조용한 곳에 살며 인색함과 질시를 버리며, 아는 바가 매우 적어 모든 번뇌에 떨어졌다가 이에 번뇌가 다하고 마음의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마땅히 이렇게 관찰해야 합니다.
오직 수보리여, 가난한 선비가 치료를 받아 괴로움이 낫게 된 것은, 말하자면 성문승의 해탈이라 할 것입니다.
오히려 대국(大國)의 왕정(王頂)은 위상(威相)이 있어서 질병을 얻게 되면 의사가 와서 그를 치료하되 제왕(帝王)의 약으로 병세에 따라 치료합니다.
그 약의 색이 미묘하고 향기가 좋아 향하는 곳마다 즐겁고 목덜미와 턱이 다 편안하여 몸에 많은 병을 없게 하는 것은 모든 맛이 갖추어 졌기 때문입니다.
제왕의 재보(財寶)로 화향(華香)ㆍ잡향(雜香)ㆍ대향(擡香)으로 몸을 덥히고 여러 기악(伎樂)이 자연히 울리게 합니다.
제왕이 장차 공포와 두려움을 없애려는데 근심을 품게 해서 되겠습니까?”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와 같은 종류의 약을 항상 복용하여 병을 다스리고 여러 기악으로써 스스로 즐거워하고 아울러 모두를 즐거워함으로써 질병을 없애고, 길이 편안해집니다.”
“그와 같이 수보리여, 혹 보살이 선권방편을 즐거워함으로써 일체 도법(道法)의 즐거움을 좋아하고,
스스로 몸과 마음을 수행하기를 즐겨하여 일체를 널리 도승(道乘)에 편안히 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도에 이르러 최정각(最正覺)이 되게 합니다.
오직 수보리여, 이런 까닭으로 마치 의사가 병을 치료하듯
보살도 이와 같이 지혜와 때를 나타내어 그들을 교화합니다.
또 수보리여, 다섯 가지 욕망은 근본이 없으므로 머무는 곳도 없습니다.
이런 인(忍)이 있으면 능히 스스로 내가 지어야 할 바가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다섯 가지 즐거움에는 복조(福祚)가 없으며 방일하게 공훈(功勳)을 위한다면 이치에 이를 수 없으니, 모두 소유함이 없어서이며, 이 일체지(一切智)도 얻어 머무는 바가 없으며 또한 명훈(名勳)도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인자(忍者)는 이미 몸으로 상(想)을 통달했으니, 무엇을 일러 도(道)가 있다 하고 무엇을 일러 도가 없다 하겠습니까?
5음(陰)이 공(空)하고 적연(寂然)하니 또한 공한 것에 체달했습니다.
이 인(忍)에 이른 자는 탐욕하는 바가 없으며, 자기의 탐욕을 싫어하여 모두 즐거워하는 것이 없으며, 구하고 익히는 바도 없으니, 이에 지도(志道)라고 합니다.
5음이 분주하게 달려 마음을 안정하지 못한다면 이는 곧 도가 없는 것입니다.”
이에 존자 수보리가 두 존자의 아들에게 물었다.
“지금 이 여인은 그대들과 어떤 관계[親]입니까?”
두 존자의 아들은 함께 합장하고 이 게송을 읊었다.
이는 나의 부모이시라
자비를 베풀어 널리 편안케 하시니
이 가실(家室)은 친함이 두텁네
또한 위없는 세존
이러한 위덕(威德)으로써
모든 공훈(功勳)에 이르게 하시니
이와 같은 합집(合集)의 행으로
무수한 괴로움을 벗어나게 하셨네.
이 경법(經法)을 널리 펴서
많은 행업(行業)을 갖추게 하시고
나에게 도와 지혜의 즐거움 베풀어
마음을 공(空)과 무(無)에 행하게 하셨네.
경법을 널리 폄으로써
모두 두루 정진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법의 즐거움을 내리시고
공행(空行)을 가르치셨네.
집을 버리고
불길이 뼈를 태우듯 해도
이 방편을 사용하여
번뇌의 그물을 없애고 찢으셨네.
독사에게 물리게 되면
여러 독의 해를 제거해야 하듯이
탐욕도 그와 같아
은애(恩愛)의 해침이 되네.
사람이 불의 재난을 만나면
와서 불의 재앙에서 구제해야 하듯이
들끓는 번뇌도 그와 같아
음욕의 어려움을 벗어나야 하네.
모든 법의 뜻을 깨달아서
큰 두려움을 소멸시키고
모든 어려움 끊음으로써
밝은 지혜를 해탈하셨네.
나는 탐욕을 따르지 않고
뜻[義]으로써 지혜를 깨닫네.
모든 뜻에 뜻이 없으면
이것을 세간욕(世間欲)이라 하네.
[여인의 모습으로 교화하는 까닭]
이때 현자 수보리가 그 여인에게 물었다.
“누이여, 어떠한 선권방편이라야 일체의 중생을 버리지 않고 때에 따라 베풀어서 그들을 다 교화시킵니까?”
여인이 말했다.
“인자여, 마땅히 이런 뜻을 알아야 합니다.
여인이 세상에 살 때 욕망의 즐거움을 좋아함이 많아서 억누르기가 남자를 뛰어넘지 못합니다.
여인의 정(情)과 흥취는 욕망의 즐거움을 좋아하기 때문에 보살은 선권방편을 행하여 그들을 이끌고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여인의 모습을 나타내어 그들을 가르칩니다.
남자의 몸으로는 귀인(貴人)이나 음녀(婬女)에게 들어갈 수 없습니다.”
수보리가 물었다.
“지금 누이는 무슨 까닭에 여인의 모습으로 모든 여인을 교화합니까?”
그때 전녀(轉女)보살은 여인의 모습을 나타냈다가 순식간에 12년을 경유한 모습을 나타냈다.
남자의 옷을 입은 청정한 존자(尊者)의 아들이 되어 수보리에게 물었다.
“인자(仁者)는 범부(凡夫)의 배움[學]을 따릅니까?”
수보리가 대답했다.
“나는 배우지도 않고, 또한 범부도 아닙니다.”
그녀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수보리여, 나도 지닌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때 존자의 아들은
‘수보리께서 깊고 미묘한 지혜로 보살의 업을 성취하며 평등행을 닦았으므로 이렇게 서로 문답하는구나’ 하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