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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비바사론 하권
1. 분별색품(分別色品) ②
[감각기관에 포섭되지 않는 것]
【문】만들어진 색의 내근(內根)에 대해서 나는 잘 알았다.
이제 다시 감각기관에 포섭되지 않는 것을 듣고자 하니, 그 모양에 대해 말해주기 바란다.
【답】색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무표색(無表色)이 있다.
이 가운데 색깔은 좋아하는 현색(顯色) 등을 말한다.
만약 청색ㆍ황색 등의 색이 변하지 않고 깨어지지 않는다면 이를 좋아하는 현색이라고 한다.
만약 청색ㆍ황색 등의 색이 변하고 깨어진다면 이를 싫어하는 현색이라고 한다.
만약 평등하다면 둘 사이의 중간이라고 한다. 비슷하게 나타나는 색이기 때문이다.
[색처, 현색과 형색]
【문】색처(包處)에는 둘이 있으니, 첫째는 현색이고, 둘째는 형색(形色)이다.
무슨 까닭에 이 가운데서 오직 현색만을 말하는가?
【답】지금 이 가운데 마땅히
“색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현색이고, 둘째는 형색이다.
현색은 청색ㆍ황색 등을 말하고,
형색은 길고 짧은 것 등을 말한다”고 말해야 하는데,
말하지 않은 것에 무슨 뜻이 있겠는가?
현색은 거칠고 알기 쉽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모든 색은 6식 가운데서 두 가지 식이 인식하는 것이다.
안식 및 의식이다.
먼저 안식으로 자신만의 모습[自相]을 요별하고,
뒤에 의식으로써 자신만의 모습과 공통된 모습[其相]을 요별한다.
저 모든 색이 현재에 머물 때에 안식은 오직 그 자신만의 모습을 요별하고, 안식이 바로[無間] 분별하는 의식을 일으켜서 거듭 이전의 색에 대한 자신만의 모습과 공통된 모습을 요별한다.
그러나 이 일어난 분별하는 의식은 이전의 안식에 의지하고, 이전의 색의 대상을 반연한다.
이와 같이 의식이 바로 현재 머물 때에 의지하는 것과 반연이 되는 것은 모두 과거에 있다.
이로 말미암아 다섯 가지 대상이 현재에 머물 때에 의식은 저들 자신만의 모습을 요별할 수 없다. 이런 까닭에 색의 대상은 두 가지 식이 인식하는 것이다.
모든 안식이 현재 머물 때에는 오직 현재의 자신만의 모습을 요별하고 공통된 모습은 요별하지 못한다.
만약 모든 의식이 현재 머물 때에는 삼세(三世)의 자신만의 모습과 공통된 모습을 다 요별한다. 모든 의식은 대상에 두루하기 때문이고 분별함이 있기 때문이다.
안식 뒤에 바로 의식이 일어나는 것은 정해지지 않았다.
6식신(識身)에서 허용하는 것에 따라 한 종류가 일어난다.
안식이 바로 의식을 반드시 일으킨다면, 괴로움의 뿌리는 괴로움의 등무간연(等無間緣)이 아니어야 한다. 괴로움의 뿌리는 오직 5식신(識身)에만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다시 근온(根蘊)에서 말한 것과 어긋나게 된다.
가령 괴로움의 뿌리는 괴로움의 뿌리에게 인연(因緣)과 등무간연과 증상연(增上綠)이 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안식에 의지하여 색을 요별하고, 바로 뒤에 분별하는 의식을 끌어와 일으킨다.
그런 까닭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안식이 먼저 인식하고 안식이 받아들인 다음에 의식은 따라서 인식한다.”
소리에 두 가지가 있다. 널리 말한 것과 같다.
유집수대종(有執受大種)이란 현재 찰나의 유정의 수에 포섭되는 대종을 말한다.
무집수대종(無執受大種)이란 과거ㆍ미래의 유정의 수에 포섭되는 대종을 말한다.
또한 삼세의 유정이 아닌 수에 포섭되는 것을 말한다.
이 가운데 유집수대종에서 생겨난 소리는 유집수대종을 원인으로 한다고 말한다.
유집수대종이 여기서 생겨난 소리에 대하여 앞에서 말한 생인(生因) 등의 다섯 가지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무집수대종을 원인으로 하는 소리도 역시 이와 같다.
만약 입에서 나는 소리와 손 등을 합쳐서 생기는 소리는 유집수대종을 원인으로 하는 소리라고 한다.
만약 숲의 바람소리나 물소리 등의 소리는 무집수대종을 원인으로 하는 소리라고 한다.
나머지는 앞에서 해석한 것과 같다.
모든 냄새를 지닌 것도 널리 말한 것과 같다.
모든 즐거운 뜻을 주는 것을 좋은 냄새[好香]라고 한다.
즐겁지 않은 뜻을 주는 것을 나쁜 냄새[惡香]라고 한다.
느낌의 장소를 수순하거나 배제하는 것을 평등한 냄새라고 한다.
코가 냄새를 맡기 때문에 비근의 대상이라고 한다.
나머지는 앞에서 해석한 것과 같다.
모든 맛을 지닌 것도 널리 말한 것과 같다.
모든 즐거운 뜻을 주는 것을 좋은 맛[可意味]이라고 한다.
즐겁지 않은 뜻을 주는 것을 나쁜 맛[不可意味]이라고 한다.
이 둘과 어긋나는 것을 따르고 버리는 곳[順捨處]의 맛이라고 한다.
혀가 맛을 보기 때문에 설근의 대상이라고 한다.
나머지는 앞에서 해석한 것과 같다.
[맛과 설식과 신식]
【문】만약 맛을 보았을 때, 설식(舌識)이 먼저 일어나는가, 신식(身識)이 먼저 일어나는가?
【답】만약 차가움, 따뜻함 등이 더욱 강하다면, 신식이 먼저 일어난다.
만약 짠맛, 신맛 등이 더욱 강하다면, 설식이 먼저 일어난다.
만약 촉감과 맛이 평등하다면, 설식이 먼저 일어난다. 맛보고자 하는 욕망이 더욱 뛰어나기 때문이다.
모든 촉감의 일부분도 널리 말한 것과 같다.
미끄러운 성질이란 부드러운 것을 말한다.
껄끄러운 성질이란 거칠고 강한 것을 말한다.
가벼운 성질이란 무게를 달아서 잴 수 없는 것을 말한다.
무거운 성질이란 달아서 잴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차갑다는 것은 저것에 핍박받아 따뜻해지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배고프다는 것은 먹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갈증이 난다는 것은 마시고 싶은 마을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일곱 가지는 모두 촉처(觸處)에 포섭되나니, 만들어진 색으로 자성을 삼는다.
앞의 4대종은 비록 촉처에 포섭되나, 만들어진 색이 아닌 것으로 자성을 삼는다.
이런 까닭에 촉처에는 열한 가지가 있다.
지금의 일곱 가지는 만들어진 색이기 때문에 일부분이라고 한다.
몸이 접촉하기 때문에 신근의 대상이라고 한다.
나머지는 앞에서 해석한 것과 같다.
[미끄러움, 갈증 등등]
【문】어떤 대종이 더욱 강해지면 미끄러운 성질이 있는가? 나아가 어떤 대종이 더욱 강해지면 갈증이 나는가?
【답】어떤 이가 말한다.
“치우쳐서 더욱 강해지는 것이 없다.
그러나 4대종의 성질과 종류에 차별이 있어 능히 미끄러운 성질을 만들고 나아가 갈증이 생기는 것까지 능히 만든다.”
또한 어떤 이가 말한다.
“수계와 화계가 더욱 늘어나기 때문에 능히 미끄러움을 만든다.
지계와 풍계가 더욱 늘어나기 때문에 능히 껄끄러움을 만든다.
화계와 풍계가 더욱 늘어나기 때문에 능히 가벼움을 만든다.
지계와 수계가 더욱 늘어나기 때문에 능히 무거움을 만든다.
수계와 풍계가 더욱 늘어나기 때문에 능히 차거움을 만든다.
오로지 풍계만 더욱 늘어나기 때문에 능히 배고픔을 만든다.
오로지 화계만 더욱 늘어나기 때문에 능히 갈증을 만든다.”
여기서 말하는 ‘더욱 늘어난다’는 것은 업과 작용의 늘어남을 말하고, 일과 본체의 늘어남은 아니다. 마치 심과 심소와 같다.
[무표색, 법처(法處)에 떨어지는 색]
무표색(無表色)은 무엇을 말하고, 나아가 법처(法處)에 떨어지는 색이라고 하는가?
떨어짐에는 여섯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계(界)에 떨어짐이요,
둘째는 취(趣)에 떨어짐이요,
셋째는 보특가라(補特伽羅)에 떨어짐이요,
넷째는 처(處)에 떨어짐이요,
다섯째는 유루(有漏)에 떨어짐이요,
여섯째는 자체(自體)에 떨어짐이다.
계에 떨어짐이란, ‘결온(結蘊)’에서 말한 것과 같다. 모든 묶임은 욕계에 떨어진다. 저 묶임은 욕계 등에 있다.
취에 떨어짐이란, 만약 이와 같은 6취(趣)에 포섭되어 속한다면, 이를 이름하여 취에 떨어진다고 한다.
보특가라(補特伽羅)에 떨어짐이란, 비나야(毘奈耶)에서 말한 것과 같다. 두 가지 보특가라가 있는데, 승수(僧數) 가운데 떨어져서 승가를 화합케 한다.
자체에 떨어짐이란, 여기서 ‘무표색은 무엇을 말하는가? 법처에 떨어지는 색을 말한다’고 말한 것과 같다.
유루에 떨어짐이란, 이 논에서 ‘무엇을 법에 떨어짐이라고 하는가? 유루법을 말한다’고 말한 것과 같다.
자체에 떨어짐이란, ‘대종온(大種蘊)’에서 ‘유집수(有執受)란 무슨 뜻인가? 답하자면, 이는 말이 더욱 증가하여 나타나는 바의 자체법에 떨어짐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무표색’이란 선한 계율과 악한 계율이 서로 상속하여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는 언제나 하나의 식이 인식한 것으로서 의식(意識)을 말하니, 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색깔 등의 다섯 가지 대상은 현재에 다섯 가지 식이 인식한 것이다.
삼세(三世)의 시간에서는 의식이 인식한 것이다. 이것(무표색)은 항상 의식이 인식한 것이다.
눈 등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도 역시 항상 의식이 인식한 것이다.
이 무표색은 모두 두 가지 증류가 있다.
선(善)과 불선(不善)이다.
무기(無記)가 없는 것은 강한 힘으로 마음이 무표색을 능히 일으켜야 하는데,
무기는 마음의 힘이 약하여 무표색을 일으키지 못한다.
모든 선(善)의 무표에는 모두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율의에 포섭되는 것이고,
둘째는 율의에 포섭되지 않는 것이다.
불선(壽)의 무표에도 모두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율의가 아닌 것에 포섭되는 것이고,
둘째는 율의가 아닌 것에 포섭되지 않는 것이다.
율의에 포섭되는 무표색에 또한 네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별해탈율의(別解脫律儀)이고,
둘째는 정려율의(靜慮律儀)이고,
셋째는 무루율의(無漏律儀)이고,
넷째는 단율의(斷律儀)이다.
별해탈(別解脫)율의란 7중계(衆戒)를 말한다.
정려(靜慮)율의란 색계의 계율을 말한다.
무루(無漏)율의란 유학(有學)과 무학(無學)의 계율을 말한다.
단(斷)율의란 두 가지 율의, 즉 정려율의와 무루율의의 일부분에 의하여 건립한다.
욕계의 오염을 떠나 아홉 가지 무간도(無間道)에 전전함에 따르는 것에 포섭되는 것을 단율의라고 이름한다.
능히 모든 악한 계율을 다스리기 때문이고,
또한 악한 계율이 일으키는 번뇌를 다스리기 때문에 단율의라고 이름한다.
앞의 여덟 가지 무간도에 전전함에 따르는 것에 포섭되는 것은 오직 악한 계율이 일으키는 번뇌만을 다스리고,
제9무간도에 전전함에 포섭되는 것은 능히 악한 계율 및 악한 계율이 일으키는 번뇌를 다스린다.
【문】별해탈율의란 어떤 인연 때문에 얻고, 어떤 인연 때문에 버리는가?
【답】다른 사람의 가르침으로 연유하여 얻고, 네 가지 인연 때문에 버린다.
어떤 것들을 네 가지라고 하는가?
첫째는 배운 계율을 버리는 것이요,
둘째는 두 가지 형태[二形]의 생김이요,
셋째는 선근을 끊음이요,
넷째는 중동분(衆同分)을 잃어버림이다.
【문】정려율의란 어떤 인연 때문에 얻고, 어떤 인연 때문에 버리는가?
【답】색계의 선심을 만약 얻는다면 얻는 것이고, 만약 버린다면 곧 버리는 것이다.
이는 또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물러남으로 말미암는 것이요,
둘째는 계(界)와 경지[地]가 바뀌기 때문이다.
【문】무루율의란 어떤 인연 때문에 얻고, 어떤 인연 때문에 버리는가?
【답】도(道)와 함께 얻어서 모두 버림이 없는 것이다.
만약 분수에 따라 버린다면 이것은 세 가지 연(緣)으로 말미암는다.
첫째는 물러남으로 말미암는 것이요,
둘째는 과보를 얻기 때문이요,
셋째는 감각기관의 전변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문】단율의란 어떤 인연 때문에 얻고, 어떤 인연 때문에 버리는가?
【답】정려율의에 포섭되는 것은 정려율의에서 말한 것과 같고, 무루율의에 포섭되는 것은 무루율의에서 말한 것과 같다.
율의에 포섭되는 선한 무표색(無表色)의 경우,
만약 강한 청정한 마음이 일으킨 바의 선한 표색(表色)이라면 이 무표색을 얻고,
만약 열등한 청정한 마음이 일으킨 선한 표색이라면 이 무표색을 얻지 못한다.
이 무표색을 버림은 세 가지 연으로 말미암는다.
첫째는 의근의 즐거움이 멈추는 것이요,
둘째는 가행(加行)을 버림이요,
셋째는 세력의 지나침을 한정하는 것이다.
불율의(不律儀)에 포섭되는 불선한 무표색(無表色)이란, 양 등을 도살하는 모든 불율의를 말한다.
이 불율의는 두 가지 연으로 얻는다.
첫째는 업을 지음[作業]으로 말미암는 것이요,
둘째는 일을 받음[受事]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이 불율의는 네 가지 연으로 말미암아 버린다.
첫째는 별해탈계(別解脫戒)를 받음으로 말미암는 것이요,
둘째는 정려율의를 얻음으로 말미암는 것이요,
셋째는 두 가지 형태의 생김으로 말미암는 것이요,
넷째는 중동분을 잃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색은 간략하게 네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이숙(異熟)이고,
둘째는 더욱 성장함[長養]이요,
셋째는 평등하게 흐름[等流]이고,
넷째는 찰나(利那)이다.
이 가운데 안처(眼處)에는 오직 두 가지 종류만 있으니,
첫째는 이숙이고,
둘째는 더욱 성장함이다.
평등하게 흐름은 따로 없다. 앞의 두 가지를 떠나 다시 평등하게 흐름의 성질이 따로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ㆍ비처ㆍ설처ㆍ신처도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색처에는 오직 세 가지 종류만 있다.
첫째는 이숙이고,
둘째는 더욱 성장함이고,
셋째는 평등하게 흐름이다.
향처ㆍ미처ㆍ촉처도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성처(聲處)에는 오직 두 가지 종류만 있다.
앞의 세 가지에서 이숙을 제외한 것이다.
법처에 떨어진 색에는 오직 두 가지 종류만 있다.
처음의 무루심과, 함께하는 것은 찰나에 포섭되는 것이고, 나머지는 등류(等流)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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