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운경 제1권
[정진 바라밀]
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정진(精進)을 만족했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금강(金剛)과 같은 정진,
견줄 데 없는 정진,
중도(中道)에 처한 정진,
높고 훌륭한 정진,
불 같은 정진,
항상하는 정진,
청정한 정진,
2승과 다른 정진,
낮고 천하게 여기지 않는 정진,
물러서지 않는 정진이다.
[금강과 같은 정진]
무엇을 보살의 금강과 같은 정진이라 하는가?
보살은 이해하지 못하는 이는 이해시키고,
열반하지 못하는 이는 열반을 얻게 하며,
평안하지 못한 이는 평안하게 하고,
도탈(度脫)하지 못한 이는 도탈시키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한 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한다.
이와 같이 수행하고 정진할 때
천마(天魔) 파순(波旬)은 찾아와 보살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은 지금 무엇 하러 이렇게 정진합니까?
헛되이 자신만 고달프게 할 뿐 끝내 얻는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도 역시 일찍이 이와 같이 정진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해시키고,
아직 열반하지 못한 사람은 열반을 얻게 하며,
평안하지 못한 사람은 평안하게 하고,
건너지 못한 사람은 건네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한 사람은 모두 얻도록 하는 등 이와 같은 일들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모두 거짓말로서 단지 세상의 어리석은 범부를 속일 뿐 진실이 없습니다.
나는 아직 이와 같이 정진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선남자여, 나는 일찍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이 이와 같이 정진하여
아라한의 열반을 얻는 것을 보았고, 이와 같이 정진하여 벽지불의 열반을 얻는 것도 보았습니다.’
마왕(魔王)은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선남자여, 비록 정진한다 하여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사람은 없으니, 당신은 지금 생각해 보고 속히 이런 마음을 버리시오.
공연히 얻는 것 없이 헛되이 스스로 힘들고 피곤할 뿐입니다.
당신이 이제 속히 2승(乘)을 구한다면 금방 생사를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 보살은 이렇게 생각하라.
‘이는 곧 악마의 말이다. 나의 마음을 허물어뜨리려고 하는 것이구나.
너는 소소한 일로 너 자신이나 걱정하지 지나친 일로 오히려 나를 걱정하지는 마라.
업을 짓는 데 따라 각기 보(報)를 받는 것이니 업을 의지하면 업이 친구가 된다.
너 역시 이와 같아 업을 따라 보를 받고 업을 의지해 업이 친속(親屬)이 되리라.
악마 파순아, 너는 지금 속히 도를 회복해 돌아가거라.
네가 나를 괴롭혔기 때문에 반드시 오랫동안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악마는 곧 부끄러워 뉘우치고 몸을 숨겨 떠나간다.
이것을 악마도 허물어뜨리지 못하는 보살의 금강과 같은 정진이라고 한다.
[견줄 데 없는 정진]
무엇을 보살의 견줄 데 없는 정진이라 하는가?
이때 보살이 행하는 정진은 다른 모든 보살들보다 뛰어나기가 백천만억의 숫자로 비유하여도 미칠 수가 없다. 하물며 나머지 성문 등의 2승 학자가 미칠 수 있겠는가?
일체 모든 부처님의 선법(善法)을 정진하는 힘으로써 모두 능히 섭취하고, 모든 악법은 물리치지 못하는 것이 없다.
이를 곧 견줄 데 없는 정진이라고 한다.
[중도에 처한 정진]
무엇을 보살의 중도에 처한 정진이라 하는가?
부지런히 하되 분수를 넘지 않고 또한 게을러 퇴전하지도 않는 정진을
중도에 처한 정진이라 한다.
[높고 훌륭한 정진]
무엇을 보살의 높고 훌륭한 정진이라 하는가?
보살은 대정진을 일으켜 몸에 부처님의 색상(色相)이 나타나기를 소원하며
‘제가 부처가 될 때, 저도 능히 볼 수 없는 부처님 정수리의 육계와 1심(尋)이나 되는 광명을 얻고자 합니다.
부처님의 훌륭하신 모습과 걸림 없는 지혜와 대자재(大自在)하심을 제가 모두 얻기를 원합니다’라고 발원한다.
이를 높고 훌륭한 정진이라고 한다.
[불같은 정진]
무엇을 보살의 불같은 정진이라 하는가?
비유하면 진금(眞金)이나 마니주보(摩尼珠寶)가 흠과 더러움이 없이 찬란하게 빛나서 단엄(端嚴)함이 뛰어나게 드러나는 것과 같다.
진금이 선명한 빛으로 한량없이 불타오르고 마니보주가 환하고 밝게 빛나는 것처럼,
보살의 정진 또한 그러하여 어떤 허물도 없다.
무엇이 정진하는 데 허물이 되며, 무엇이 정진하는 데 장애가 되는가?
해태(懈怠)가 곧 정진하는 데 허물이 되고,
나타(懶墮)가 곧 정진하는 데 장애가 되며,
음식에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 곧 정진하는 데 허물이 되고,
잠자기를 탐하고 좋아하는 것이 곧 정진하는 데 장애가 되며,
음악을 좋아해 가까이하는 것이 곧 정진하는 데 허물이 되고,
나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 정진하는 데 장애가 된다.
이와 같은 것을 정진의 허물과 정진의 장애라고 하고,
이런 허물과 장애를 없애는 것을 보살의 불 같은 정진이라 한다.
[항상하는 정진]
선남자야, 무엇을 보살의 항상하는 정진이라 하는가?
거동(擧動)과 위의(威儀)가 정진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데 있어서 몸과 마음을 쉬지 않고 게으르지 않는 것이니,
이를 보살의 항상하는 정진이라고 한다.
[청정한 정진]
무엇을 보살의 청정한 정진이라고 하는가?
위에서 말한 것처럼 항상 정진하여, 악하고 불선(不善)한 업을 일으켜 도법(道法)을 장애하고 쇠퇴시키고 손상시키는 것이 있으면 모두 다 끊어 없앤다.
또 열반의 인연을 장애하지 않고 능히 도법을 도와 도처(道處)에 안정되게 머물게 하는 모든 선법(善法)을 모두 다 넓게 닦아 더하고 키워 치성하게 한다.
나아가 미세한 한 생각의 악도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는데, 하물며 큰 악이 일어나겠는가?
이를 보살의 청정한 정진이라고 한다.
[2승과 다른 정진]
무엇을 보살의 2승과 다른 정진이라고 하는가?
보살마하살의 주변에 있는 시방의 항하의 모래 수처럼 많은 세계에는 아비지옥의 맹렬한 불꽃이 가득 타오르고 있고, 이런 세계 밖에도 의지할 곳 없고 구해 주는 이 없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중생들이 있다.
나아가 하나라도 이와 같이 고통 받는 중생이 있다면, 보살은 능히 큰불[大火]을 참고 견디면서 항하의 모래 수처럼 헤아릴 수 없는 세계를 지나 그 한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고 성숙(成熟)시킨다.
한 중생을 위해서도 이렇게 하거늘 하물며 많은 중생이 고통 받는데 구제하지 않겠는가?
모든 외도(外道)와 2승의 학인은 미칠 수 없는 것이니,
이를 보살의 2승과 다른 정진이라고 한다.
[스스로를 낮고 천하게 여기지 않는 정진]
무엇을 보살의 스스로를 낮고 천하게 여기지 않는 정진이라 하는가?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3세(世)의 모든 부처님은 다들 아주 작은 것부터 정진하여 무량한 덕(德)을 닦으시고, 마침내 오랫동안 고행(苦行)을 쌓아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셨다.
그러므로 나도 이제 조금씩 정진하며 점차 덕본(德本)을 심으면 머지않아 틀림없이 나도 부처가 되리라.’
이를 보살의 스스로를 낮고 천하게 여기지 않는 정진이라고 한다.
[물러서지 않는 정진]
무엇을 보살의 물러서지 않는 정진이라고 하는가?
보살은 자신의 정진을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지 않고,
빈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또 재물이나 보배가 적더라도 평등한 마음을 내고,
항상 정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향하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과거ㆍ미래ㆍ현재 3세(世)의 모든 부처님들 역시 다들 미세한 정진을 잘 쌓아 보리를 얻으셨다.
나도 이제 미천하다 하여 스스로를 가볍게 여기거나 무너뜨리지 않고 조금씩 정진함으로써 모든 중생을 위해 많은 선(善)을 쌓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리라. 그러나 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열반에 들지는 않겠다. 차라리
중생을 위해 오랫동안 지옥에 있겠다.’
이를 보살의 물러서지 않는 정진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다 갖추면, 이를 보살이 정진을 만족한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