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영락본업경 상권
3. 현성학관품[4]
4) 10관으로 마음에 관하는 법
다시 다음에 십관(十觀)으로 마음에 관하는 법이란,
[2제정직]
첫째는 이제정직(二諦正直)이니, 이른바 제일의제(第一義諦)를 학습하는 것이니라.
이것은 일체 법상(法相)은 여여(如如)하여 불가득하다고 관하는 까닭에 자ㆍ비ㆍ희ㆍ사로써 육천인(六天人)을 가르쳐 삭발하고 삼보의 옷을 입게 하면, 출가 보살은 일체 승(僧)과 같아지느니라. 그것은 불법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며, 제일 청정한 까닭이니라.
[5신통]
불자여, 둘째는 심오한 제일의의 지혜이니, 이른바 오신통(五神通)이니라.
이것은 지혜의 자성이 차별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니, 천(天)은 신비로운 마음[神心]을 일컫는 것이기에 여기에서 천신통(天身通)이 있게 되는 것이니라.
천안(天眼)으로는 삼세에 있는 일체법을 보고, 미세한 색(色) 등을 보느니라.
천이(天耳)는 시방의 소리 등을 들을 수 있으며,
천타심지(天他心智)는 일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있으며,
천숙명지(天宿命智)는 삼세 육도(六道)의 명분(命分)을 알 수 있나니,
남이 없는 지혜[無生智]로써 일체법을 보기 때문이니라.
[4불괴정]
불자여, 셋째는 순지(淳至)이니, 이른바 무생혜(無生慧) 가운데에서 사불괴정(四不壞淨)이니라.
불ㆍ법ㆍ승ㆍ계(佛法僧戒) 중에서의 믿음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니라.
불자여, 넷째는 불력(佛力)과 동일하다고 간주되는 것이니, 이른바 삼상(三相)이니라.
제법은 본래 없는 것이지만 가상으로 생(生)이라 이름하고,
이미 있다가 다시 없음을 가상하여 멸(滅)이라 이름하며,
공하지 않고 법이 있음을 가상으로 주(住)라고 이름 하느니라.
이와 같이 일체는 공하여 둘이 아님을 통달하는 것을 세간의 진리(世諦)로 모양이 공하다고 하나니, 일제상(一諦相)이 공하기 때문이니라.
[5음]
불자여, 다섯째는 능히 중생을 헤아리는 힘이니, 이른바 5음(陰)이니라.
색은 공과 다르나 색이 모여서 대(大)가 되며,
색은 나누어지므로 색상공(色相空)이며
찰나찰나심(刹那刹那心)을 이루기 때문에 심상공(心相空)이니라.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은 모이는 일 없고 흩어지는 일도 없나니, 일상무상(一相無相)이기 때문이니라.
[12입]
불자여, 여섯째는 부처님의 교화력이니, 이른바 부처님의 십이입(十二入)이니라.
바깥의 육경(六境)과 안의 육근(六根)에 이르는 것을 식(識)이 들어가는 곳[所入處]이라 하므로 입(入)이라고 하느니라.
그 혜관(慧觀)은 안에 있지도 않고 밖에 있지도 않으며 중간에 있지도 않나니, 일체법은 자(自)가 없고 타(他)가 없기 때문이니라.
[18계]
불자여, 일곱째는 무애지(無礙智)를 지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니, 이른바 십팔계(十八界)이니라.
육경과 육근과 육식이 일합상이니, 일체법도 또한 일합상이기 때문이니라.
[인과]
불자여, 여덟째는 자연지(自然智)에 수순하는 것이니, 이른바 인과(因果)이니라.
선악을 인(因)이라고 하고 고락을 과(果)라고 하며,
말미암는[由] 곳을 인이라고 하고 일어나게 되는[起] 것을 과라고 하느니라.
말미암음과 일어남이 상대(相待)하고 통하여 인과(因果)라고 하기 때문에 인과의 둘은 공이며 생도 없고 멸도 없나니, 일합상이기 때문이니라.
[유와 무]
불자여, 아홉째는 능히 불법승을 받기 때문이니, 이른바 이제(二諦)가 공하기 때문이니라.
인연이 모이는 연고로 유(有)라 하고,
이 유는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고 인연이 흩어지는 것이므로 이것을 무(無)라고 하며,
이 무도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므로 유도 없고 무도 없나니,
반야와 해탈의 두 가지 모습이 없기 때문이니라.
[중도제일의제]
불자여, 열째는 자재혜(自在慧)로서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니, 이른바 중도제일의제(中道第一義諦)이니라.
반야 가운데 처하여 일체법이 또한 둘이 없다고 관하여 달통하는 것이니라.
이 관혜(觀慧)가 전변하여 성지(聖地)에 들어가기 때문에 상사제일의제관(相似第一義諦觀)이라고 하지만, 역시 참다운 중도제일의제관(中道第一義諦觀)은 아니다.
그 정관(正觀)이란 초지(初地) 이상에 삼관(三觀)의 마음이 있어서 일체지에 들어가느니라.
삼관이란
가명(假名)에서 공으로 들어가는 것은 이제관(二諦觀)이고,
공에서 가명으로 들어가는 것은 평등관이니라.
이 두 가지 관은 방편도이니, 이 두 가지 공관에 의하여 중도제일의제관에 들어갈 수가 있느니라.
이제(二諦)를 함께 비추어 온갖 마음이 적멸하며, 나아가 초지법류(初地法流)의 물속에 들어감을 마하살성종성(摩訶薩聖種性)이라 하나니, 무상법(無相法) 가운데 중도이면서 또한 둘이 아님[不二]을 행하기 때문이니라.
[일심]
불자여, 이 삼십심(三十心)으로써 일승(一乘)의 믿음에 들어가느니라.
일승의 인법(因法)은 근행(近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널리 대심(大心)을 행하는 일을 삼 아승기겁 동안 복도인(伏道忍)을 행하여야 비로소 충족시킬 수 있느니라.
불자여, 혹은 물러가고 혹은 나아간다고 하는 것은, 십주(十住) 이전의 일체 범부법 속에서 삼보리심(三菩提心)을 일으키면 항하사(恒河沙)와 같은 수의 중생이 불법을 배우고 실행하게 되는 것을 말하느니라.
신상심(信想心) 속에서 행하는 자는 이것이 퇴분(退分)의 선근(善根)이니라.
모든 선남자는 혹은 일 겁ㆍ이 겁 나아가 십 겁 동안에 십신(十信)을 수행하여 십주(十住)에 들어감을 얻느니라.
이 사람이 그때 처음 일주(一住)부터 제육주(第六住) 중에 이르러 만약 여섯 번째의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면 정관(正觀)이 나타나고 또한 모든 불보살과 선지식을 만나 보호를 받기 때문에 제칠주(第七住)에 나아가 태어나게 되어 항상 불퇴전에 머무느니라.
이 칠주 이전을 이름 하여 퇴분이라고 하느니라.
불자여, 만약 퇴전치 않는 자는 여섯 번째 반야에 들어가 공을 수행함에 아(我)와 인(人)과 머무르는 자[主者]가 없고, 마침내 가서는 무생(無生)이므로 반드시 정위(定位)에 들어가느니라.
불자여, 만약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는 이는 만약 일 겁ㆍ이 겁 나아가 십 겁 동안에 보리심에서 물러나게 되는 것이 나의 처음 모임의 대중 가운데 있던 팔만 사람이 물러나는 것과 같으니라.
정목천자(淨目天子)ㆍ법재왕자(法才王子)ㆍ사리불(舍利弗) 등과 같이 제칠주(住)에 들어가려고 원하지만 그 속에서 나쁜 인연을 만나기 때문에 물러나게 되어 범부불선(凡夫不善)의 악도 가운데 들어가므로 습종성(習種性)의 사람이라고 이름 하지 않느니라.
물러나 외도에 들어가게 되면 일 겁 혹은 십 겁 나아가 천 겁에 이르기까지 아주 큰 삿된 견해와 오역죄를 지어서 악을 짓지 않음이 없으므로 이것을 퇴상(退相)이라고 하느니라.
불자여, 내가 먼저 제사천(第四天:두율천(兜率天)) 가운데에서 널리 이 범부의 십회향법(十廻向法)을 열어 펼쳤으나, 지금 이 나무 아래에서는 대략 법의 요점만을 설하리니, 너희 모든 사람들은 능히 스스로 수행하여 받아 행할지니라.
[십지의 마음]
불자여, 십지(十地)의 마음이란,
첫째 사무량심(四無量心), 둘째 십선심(十善心), 셋째 명광심(明光心), 넷째 염혜심(焰慧心), 다섯째 대승심(大勝心), 여섯째 현전심(現前心), 일곱째 무생심(無生心), 여덟째 부사의심(不思議心), 아홉째 혜광심(慧光心), 열째 수위심(受位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