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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법집경 제2권
[모든 선근이 뛰어난 묘한 과보를 안다(1)]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모든 선근이 뛰어난 묘한 과보를 아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저 허공의 달 모양으로 인해 수면에서 여러 가지 달의 모양을 보지만 허공의 달이 물에 이르지 않은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와 같이 이 모든 선근의 업으로 인연을 실천하면 여러 가지 뛰어나며 묘한 과보가 있고 마음이 좋아하는 모두를 따라 성취함도 허공의 달이 물에 이르지 않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지은 바 모든 선근 인연도 과보에는 이르지 않느니라.
비록 과보에 이르지 않지만 저 모든 선근 인연을 의지하면 뛰어나고 묘한 과보와 차별이 있어 같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업으로 인연을 실천하는 것이 저 공작새의 한 깃털에서 여러 가지 빛깔을 보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도 모든 선근의 업에 의지하여 인연을 행하지만 헤아릴 수 없는 과보가 차별이 있음은 저 업과 행이 깃털 바퀴에 이르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비록 이르지 않지만 저 업을 의지한 인연의 힘인 까닭으로 깃털 바퀴 가운데 여러 가지 색깔이 있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지은 바 모든 선근의 업도 과보에 이르지 않느니라.
비록 과보에 이르지 않지만 모든 선근을 의지한 인연으로 뛰어난 과보와 차별이 있어서 같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저 뛰어나고 묘한 선근에 의지해서허공 가운데 여러 가지 꽃비가 오니, 이와 같은 모든 꽃은 묘하고 좋은 색깔과 향기와 맛과 닿음을 두루 갖추었느니라.
그러나 저 선근이 꽃에 이른 것이 아니니라. 모든 선근이 허공의 꽃과 같이 모습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지은 선근의 업으로 실천하는 것은 과보에 이르지 않느니라.
비록 과보에 이르지 않지만 저 선근에 의지한 업의 인연으로 뛰어난 과보는 차별이 있어서 같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저 뛰어나고 묘하며 좋은 실천에 의지하면 허공이 자연히 여러 가지 기악(器樂)과 미묘한 음성과 찬탄과 오락의 일을 만들어 공양하게 한다고 여기느니라.
그러나 저 좋은 실천이 기악이나 음성 따위에 이르지 않는 것은 이 선행(善行)과 모든 기악이 서로 각기 다르기 때문이니라.
그것이 비록 서로 다르지만 저 업을 의지해 허공 가운데 여러 가지 기악이 있으니, 이와 같은 모든 좋은 선근과 업과 실천의 인연을 의지하여 뛰어난 과보가 있느니라.
그러나 저 좋은 실천은 과보에 이르지 않으니 비록 과보에 이르지 않지만 저 선근 인연을 의지한 뛰어난 과보는 차별이 있어 같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허공에 여러 가지 색깔인 무지개가 서는데 저것은 네 가지 요소[四大]가 강성해지는 인연에 의지했지만 저 네 가지 요소는 무지개에 이르지 않느니라.
비록 무지개에 이르지 않지만 저 네 가지 요소의 인연의 힘 때문에 무지개의 여러 가지 색깔이 다르게 생기는 것이니라.
땅의 요소를 인연하여 황색이 생기고,
물의 요소를 인연하여 청색이 생기며,
불의 요소를 인연하여 붉은색과 여러 가지 고운 색깔이 생기고,
바람의 요소를 인연하여 무지개의 모습인 궁형(弓形)이 생기느니라.
이와 같이 모든 선근이 강성해지는 인연을 의지해서 뛰어나고 묘한 과보가 갖추어지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윤왕이 10선을 받아 지닌 업과 도(道)를 인연하여 7보가 두루 갖추어져 자연히 양식을 얻으니 씨를 뿌리거나 재배하는 일을 빌리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그러나 저 10선을 수지한 업과 도의 인연은 7보에 이르지 않고 또한 자연스러운 양식에 이르지 않지만, 10선을 수지한 업과 도의 인연에 의지함으로써 윤왕의 뛰어나고 묘한 과보가 있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뛰어난 마음을 잘 내고 모든 실천을 잘 일으키니, 선근을 잘 수지한 힘 때문이니라.
윤왕에게 뛰어나고 묘한 과보가 있지만 저 업의 원인이 과보에 이르지 않으므로 원인과 결과가 서로 같지 않다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모든 하늘 사람들은 뛰어나게 좋은 인연으로 자연스럽게 만다라(曼陀羅)꽃과 모든 묘한 하늘 궁전에서 모든 맛깔스럽고 단 음식들이 있지만 저 선근은 과보에 이르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저 선근 인연에 의지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모든 하늘 사람에게는 뛰어나고 묘한 과보가 있느니라.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매우 뛰어난 여의신통(如意神通)한 인연의 힘 때문에 석벽(石壁)에 장애됨이 없지만 저 신통 인연은 장애가 없는 가운데 이르지 않느니라.
저 신통 인연에 의지하면 장애가 없을 수 있으니, 이와 같이 방일하지 않는 선근 인연으로 하여 저 뛰어나고 묘한 과보가 있느니라.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바람을 의지하여 일어난 불은 저것을 여의고 생기지 못하느니라.
불이 이미 일어나면 힘이 무르익어 색깔을 빛나게 하고 밝게 비추지만 저 불의 성질은 바람을 따라 온 것이 아니니 저 밝음과 색깔과 더움과 부딪힘이 바람 가운데 없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모든 선근의 과보는 인연을 따라 생기느니라.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법답게 행하는 비구는 무루(無漏) 선근 공덕을 얻어 자재한 생각을 따라서 곧 허공에 있음을 얻느니라.
모든 땅과 물과 불과 바람과 푸르고 누렇고 붉고 흰 데 들어가 자재하면 장애가 없음을 성취하느니라.
그러나 장애가 없는 마음은 허공에 이르지 않느니라. 장애가 없는 따위에 비록 이르지 않지만 곧 장애가 없는 일을 성취했다고 생각하느니라.
이런 까닭으로 저 마음을 여의지 않고 땅 위에 장애가 없는 일을 성취하니 이와 같이 모든 무루 선근 인연에는과보와 뛰어난 일이 있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모든 선근과 뛰어나고 묘한 과보를 안다고 말하느니라.
[모든 선근이 뛰어난 묘한 과보를 안다(2)]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무루 선근과 뛰어나고 묘한 과보를 얻는 것을 아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6통(通)ㆍ3명(明)ㆍ8해탈(解脫)ㆍ8승처(勝處)ㆍ11체입(切入)ㆍ10자재(自在)ㆍ10제(諦)ㆍ9차제정(次第定)ㆍ삼마발제(三摩拔提)ㆍ10력(力)ㆍ10지(智)를 말하느니라.
[편자 주: 11체입은 서술되어 있지 않다. 9차제정과 삼마발제는 합쳐져 있다.]
[6통]
선남자여, 무엇이 6통인가?
천안(天眼)ㆍ천이(天耳)ㆍ타심지(他心智)ㆍ숙명지(宿命智)ㆍ여의통지(如意通智)ㆍ누진지(漏盡智)를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의 천안은 모든 선근 공덕을 다 갖추어 걸림 없고 집착이 없으며 헤아릴 수 없고 막힘이 없으며 머묾이 없고 행함이 없고 어그러짐이 없고 그릇됨이 없으니,
이와 같이 보면 미워하거나 나무랄 것이 없느니라.
모든 세간의 성문이나 벽지불과 함께하지 않느니라.
모든 번뇌와 번뇌의 습기를 멀리 여의면 잘못이 없고 잘못을 기억하지도 않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천안으로 모든 중생이 만약 나거나 죽거나 좋아하거나 추악하거나 거칠거나 묘함을 보면 저 중생의 업행을 따라 짓는 것이니 그 인과로 능히 진실과 같이 안다고 일컫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천안으로 불지를 얻고 마침내 불지를 성취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천안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의 천이는 장애가 없고 모든 선근 공덕을 다 갖추었으니,
모든 범부ㆍ석제환인ㆍ사천왕ㆍ하늘 사람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성문ㆍ벽지불보다 뛰어나느니라. 이 뛰어나게 묘하고 장애되는 것 없이 깨끗한 천이로써 모든 소리를 듣는데, 하늘 사람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의 소리와 더 나아가 모기ㆍ등에ㆍ파리ㆍ개미 따위의 소리와 성인(聖人)과 성인이 아닌 사람의 소리까지 다 듣느니라.
그러나 성인의 소리에 즐거운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성인이 아닌 사람들의 소리에 싫은 마음을 내지 않으며,
범부의 소리를 듣고 아래라는 생각을 내지 않고,
성문과 벽지불의 소리를 듣고 뛰어나다는 생각을 내지 않으며,
성인이 아닌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서 싫증을 내지 않고 들으며,
성인의 소리를 들으면서 즐거움을 내지 않고 듣느니라.
모든 소리에 아름답다거나 밉다는 생각을 내지 않으며,
비록 모든 소리를 듣지만 메아리가 공(空)함과 같아서 나와 내 것을 여의니 적정하여 공하기 때문이니라.
귀로 들어와도 애착하지 않고 소리가 들어와도 애착하지 않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천이(天耳)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의 타심지는 보살마하살이 사실과 똑같이 자기의 마음을 알고,
사실과 똑같이 자기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사실과 똑같이 모든 중생의 마음을 알며,
사실과 똑같이 탐심과 탐심 여읨을 아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사실과 똑같이 탐심임을 알아도 성을 내지 않으며,
탐심 여읨을 알지만 기쁨을 내지 않으며 오로지 탐심 있는 중생에게는 대비심(大悲心)을 내며, 탐심을 여읜 중생에게는 대자심(大慈心)을 내느니라.
이와 같이 사실과 똑같이 성내는 마음과 성냄을 여읜 마음을 알듯이 어리석은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을 여읨과,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여읨과, 취심(取心)과 취심 여읨과, 염심(染心)과 염심 여읨과, 사량(思量)하는 마음과 사량하지 않는 마음과,삼매심(三昧心)과 삼매심 여읨과, 해탈심과 해탈하지 아니한 마음을 사실과 똑같이 아니,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사실과 똑같이 중생의 마음을 알고,
아직 해탈을 얻지 못한 중생에게 성내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해탈을 얻은 중생에게 기쁜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오로지 해탈을 얻지 못한 중생에게 대비심을 내고 해탈을 얻은 중생에게 대자심을 내느니라.
사실과 똑같이 모든 법이 오직 한마음임을 알고서 저 마음과 이 마음에 탐심과 애착심을 내지 않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저 타심지를 알기 때문에 사실과 똑같이 모든 중생의 마음을 아니, 저 모든 중생이 만약 보살의 생각하는 힘[念力]과 함께하지 않으면 곧 보살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더 나아가 천안도 또한 알지 못하느니라.
모든 성문과 벽지불도 모르거늘 어찌 하물며 지혜가 없는 범부가 알 수 있겠는가?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타심지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의 숙명지는 모든 선근이 다 갖추어졌기 때문에 자신의 헤아릴 수 없는 과거의 숙명과 모든 중생의 헤아릴 수 없는 과거의 숙명을 아는 것이니라.
한 생ㆍ두 생ㆍ백 생ㆍ천 생ㆍ백천만 생 더 나아가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 생ㆍ헤아릴 수 없는 백천억 나유타 생을 알고,
겁이 이루어짐을 잘 알고 겁이 무너짐도 잘 알며,
더 나아가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겁이 이루어짐도 무너짐도 잘 알고,
더 나아가 헤아릴 수 없고 그지없는 백천만억 나유타 겁의 수만큼 겁의 이루어짐과 무너짐을 잘 알며,
큰 겁이 이루어짐을 잘 알고 큰 겁이 무너짐도 잘 알며,
큰 겁이 백 겁이라도 잘 알고 큰 겁이 천 겁이라도 잘 알며,
큰 겁이 백천 겁ㆍ백천만 겁이라도 잘 알고,
더 나아가 큰 겁이 헤아릴 수 없는 백천만 겁이라도 잘 아느니라.
보살마하살의 저 숙명지는 오로지 모든 부처님 여래와 지(地)에 머무는 보살을 제외하고 모든 세간 사람과 하늘 사람ㆍ성문ㆍ벽지불은 갈피를 잡지 못해 고민하느니라.
보살이 이와 같이 내가 저곳에서는 이와 같이 태어나고,
성(姓)은 이와 같았고, 색깔은 이와 같았으며,
이름은 이와 같았고, 음식은 이와 같았으며,
수명은 이와 같았고, 주거는 이와 같았으며,
크고 작음은 이와 같았고, 넓고 좁음은 이와 같았으며,
아름답고 추함은 이와 같았고, 괴로움과 즐거움은 이와 같았으며,
내가 저기서 죽어 아무 곳에 났으며, 저기에서 죽어 이곳에 났으며,
이와 같이 나고 이와 같은 성ㆍ색깔ㆍ이름ㆍ음식ㆍ수명ㆍ거주ㆍ크고 작음ㆍ넓고 좁음ㆍ아름다움과 추악함ㆍ괴로움과 즐거움임을 아느니라.
이와같이 자기 자신을 알며 더 나아가 모기ㆍ등에ㆍ파리ㆍ개미 따위까지도 또한 이와 같이 아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저 숙명에도 걸림이 없고 집착함이 없고 머묾이 없고 막힘이 없고 엉킴이 없으며, 때를 잃지 않고 대자대비와 상응하니, 매우 깊어 생각으로도 헤아리지 못하느니라.
사번뇌(使煩惱)와 습기 번뇌를 멀리 여의어 모두를 맑고 깨끗한 공덕과 지혜로 웅장하게 꾸미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숙명지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여의통지(如意通智)인가?
모든 복덕 지혜로 장애가 없음을 성취하여 자연히 분별이 없어지는 것을 말하니, 무량 아승기 백천만억 나유타 겁에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삼매ㆍ삼마발제를 수행하여 지혜가 강성해지는 자신의 힘 때문이며 여래의 깨끗하게 강성해지는 인연 때문이니라.
이 보살은뜻과 같이 자연스럽게 장애가 없음이 앞에 나타나는데 모든 세간보다 뛰어나서 중생에게 이익을 주느니라.
이 보살은 마음이 머물고자 함을 따라 능히 이와 같이 머물며,
마음이 하고자 함을 따라 이와 같은 경계를 나타내어 능히 이와 같이 나타내며,
이 보살은 모든 처소에서 자재하여 여의통으로 장애가 없음을 나타내느니라.
이 보살은 한 중생에게 알맞은 형상으로써 모든 중생의 형상을 나타내 교화할 수 있는 분이니라.
이 보살은 한 중생을 위하여 형상을 나타내기도 하고 모든 중생을 위하여 형상을 나타내기도 하느니라.
저 중생이 도를 수용하기에 알맞으면 그릇에 따라 모든 화신을 나타내 여러 가지 일과 여러 가지 말과 여러 가지 위의를 만들어 눈앞에 나타내느니라.
이 보살이 마음으로 모든 중생의 색상(色像)을 생각하고 모든 불상(佛像)을 짓고 싶으면 곧바로 모든 중생의 색상이 나타나고 모든 불상이 이루어지느니라.
이 보살이 마음으로 모든 부처님 색상을 생각하고 모든 중생의 색상을 만들고 싶어하면 즉시에 모든 부처님 색상이 이루어지고 모든 중생의 색상이 이루어지느니라.
이 보살이 성겁(成劫)으로 하여금 괴겁(壞劫)이 되게 하고자 하면 곧 성겁이 괴겁이 됨을 보이고 저 모든 중생들도 곧 성겁이 괴겁이 됨을 보이느니라.
괴겁으로 하여금 성겁이 되게 하고자 하면 곧 괴겁이 성겁이 됨을 나타내 보이니 저 중생들도 곧 괴겁이 성겁이 됨을 보느니라.
이와 같이 모든 성겁과 괴겁에서 성겁과 괴겁을 나타내 보이느니라.
이 보살은 한 겁을 하루의 초분(初分)으로 나타내 보이고 싶어하면 곧 나타내 보이고 저 중생들도 곧 한 겁이 하루의 초분이 됨을 보느니라.
이 보살이 하루의 초분을 한 겁으로 나타내 보이고 싶어하면 저것은 곧 이와 같이 이루어지고 중생들도 또한 이와 같음을 보는데,
이것을 이름하여보살마하살이 변화시키는 여의통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의 현전여의통(現前如意通)이라는 것은,
이 보살은 생각할 수도 없고 말로 할 수도 없는 공덕과 지혜가 강성해져 자연스럽고 무심하게 앞에 나타나는 것이며,
모든 일들이 무너지지 않게 성취되고서 앞에 나타나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현전여의통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자연여의통(自然如意通)인가?
만약 모든 중생이 마땅히 이와 같이 믿고 이와 같이 여러 가지 형색과 여러 가지 위의를 보면 이 보살은 생각하지 못하고 분별하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형색을 나타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자연여의통이라 하느니라.
이 보살이, 만약 천 세계 중생이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심을 보고 제도되기에 알맞으면 곧 이 세계에 출현하여서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심을 보이는데, 도솔천(兜率天)에서 물러나 태(胎)에 들고 태어나서 출가하며 고행하다가 도량에 나아가 마군(魔軍)에게 항복을 받고 정각(正覺)을 이루어 법을 펴다가 대열반(大涅槃)을 나타내니, 이와 같이 저 모든 중생을 교화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은 뜻대로 헤아릴 수 없는 경계를 통달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여의신통지(如意神通智)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누진지통(漏盡智通)인가?
선남자여, 보살은 네 가지 누를 멀리 여의느니라.
즉 욕루(欲漏)와 유루(有漏), 견루(見漏), 무명루(無明漏)를 말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누를 멀리 여의고, 다시 태어남을 받지 않으며, 이 보살은 다시 태어남을 받지 않지만 능숙하게 제도할 수 있는 중생을 수순하여 모든 장소에 태어남을 보이는데,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자연스럽게 쉬지 않고 보살도를 행한다고 하며,
보살마하살의 6통이라고 하느니라.
[3명]
선남자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3명(明)인가?
천안지명(天眼智明)과 숙명지명(宿命智明), 누진지명(漏盡智明)을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지혜가 있는 천안지(天眼智)라 하고, 천안명(天眼明)이라고 하는가?
어떤 하늘을 이르는가?
저 청정천(淸淨天)과 승묘상천(勝妙上天) 따위의 천안지니, 보살마하살은 마침내 저 천안지를 얻느니라.
청정천은 성문ㆍ벽지불ㆍ보살과 모든 부처님 여래를 말하고,
승묘상천은 모든 부처님 여래를 말하니 성문이나 벽지불 하늘 등의 위가 되느니라.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저 모든 부처님 여래의 천안을 얻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초명(初明)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숙명지명(宿命智明)인가?
선남자여,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는 과거ㆍ미래ㆍ현재의 경계를 모르거나 보지 못하거나 깨닫지 못하신 것이 없느니라.
보살마하살도 저 경계에서 숙명지명을 얻으니 이것은 분명히 성문이나 벽지불과는 다르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제2의 명[第二明]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누진지명(漏盡智明)인가?
보살마하살은 네 가지 누와 번뇌의 습기를 멀리 여의니, 욕루ㆍ유루ㆍ견루ㆍ무명루를 말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견도위를 증득할 때에 곧 이와 같은 번뇌와 번뇌의 습기를 멀리 여의고 증득할 뿐만 아니라 번뇌장(煩惱障)까지도 끊는 법이며, 또한 성문이나 벽지불들과는 다르니라.
누진지명을 얻고 나서 모든 나는 곳에서 모든 중생을 교화함에 장애가 없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의 누진지명이라 하고, 보살마하살의 3명이라고 하느니라.
[8해탈]
선남자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여덟 가지 해탈(解脫)인가?
색(色)이 있으면 색을 보니, 이것을 첫째 해탈이라 하느니라.
안으로 색상(色相)이 있으면 밖의 색을 보니 이것을 둘째 해탈이라 하느니라.
맑고 깨끗한 것을 믿으니, 이것을 셋째 해탈이라 하느니라.
이 보살은 모든 색상을 초월하여 모든 있는 대상을 없애고 모든 다른 상은 생각하지 않고 그지없는 허공을 알면 곧 그지없는 허공에 들어가 실천하니, 이것을 넷째 해탈이라고 하느니라.
이 보살은 모든 허공의 그지없는 상을 초월하여 그지없는 식(識)을 알면 곧 그지없는 식에 들어가 행하니, 이것을 다섯째 해탈이라고 하느니라.
이 보살이 모든 그지없는 식의 상을 초월하여 무소유를 알면 곧 무소유처에 들어가 실천하니 이것을 여섯째 해탈이라고 하느니라.
이 보살이 모든 무소유처를 초월하여 비유상비무상(非有想非無想)에서 안락함을 알면 곧 비유상비무상에 들어가 실천하니 이것을 일곱째 해탈이라고 하느니라.
이 보살이 모든 비유상비무상의 실천을 초월하여 모든 수(受)와 상(想)이 없어지고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 실천하니 이것을 여덟째 해탈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색이 있으면 색을 본다고 말하는가?
색이 있다는 것은 모두 인연으로 생기는 것이니라. 공(空)하다고 보면 목숨이라고 할 것도 없으니,
이와 같이 보면 번뇌[縛]에서 벗어남을 얻으니 이것을 해탈이라고 하느니라.
무엇을 안으로 색상이 있으면 밖의 색상을 본다고 하는가?
공하다고 보면 목숨이라고 할 것도 없으니 다 인연으로 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보면 번뇌에서 벗어남을 얻으니, 이것을 해탈이라고 하느니라.
무엇을 맑고 깨끗한 것을 믿는다고 말하는가?
청정하다는 것은, 만약 깨끗함과 깨끗하지 못한 상을 분별하면 그릇된 견해라 하며,
마음이 깨끗한 까닭으로 번뇌에서 벗어남을 얻으며, 이것을 해탈이라고 하느니라.
모든 색상을 초월하여 모든 있는 대상을 없애고 다른 상은 생각하지 않고 그지없는 허공을 알면 곧 그지없는 허공에 들어가 실천하느니라.
헤아릴 수 없는 허공은 허공이라 공하니 이와 같이 알면 번뇌에서 벗어남을 얻으며, 이것을 해탈이라고 하느니라.
모든 허공을 초월하면 그지없는 식(識)을 아니 곧 그지없는 식에 들어가 헤아릴 수 없고 그지없는 식을 인식하느니라.
이 그지없는 식은 곧 공이니, 이와 같이 알면 번뇌에서 벗어남을 얻으며 이것을 해탈이라고 하느니라.
그지없는 식을 초월하면 무소유를 아니 곧 무소유에 들어가 실천하느니라. 소유한다는 것은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의 번뇌를 말하느니라.
무소유에 들어가 실천하는 것은 저 번뇌를 여읨이니 이와 같이 알면 번뇌에서 벗어남을 얻으니, 이것을 해탈이라고 하느니라.
무소유를 초월한 이는 생각이 있지도 않고 생각이 없지도 않음을 알고 안락하며 곧 생각이 있지도 않고 생각이 없지도 않은 데 들어가 실천하느니라.
생각이 있지 않은 이 성품은 공하고 적정하며, 생각이 없지 않은 것은 인연에 의지해서 있느니라.
이와 같이 보면 번뇌에서 벗어남을 얻으니, 이것을 해탈이라 하느니라.
모든 생각이 있지도 않고 생각이 없지도 않음을 초월하면 모든 느낌과 생각을 여의고, 멸진정에 들어가 실천하면 이 보살의 생각은 아지랑이와 같고 느낌은 물거품과 같으니 생각이 곧 느낌이고 느낌이 곧 생각이니라.
앎도 없고 목숨도 없는 것이니 이와 같이 보면 번뇌에서 벗어남을 얻으며 이것을 해탈이라 하느니라.
[8승처]
선남자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여덟 가지 뛰어난 처소[八勝處]인가?
색이 있으면 색을 보니 저 색 중에서 자재함을 얻어 알며, 저 색 중에서 자재함을 얻어서 보니,
이것을 이름하여 첫째 뛰어난 처소라고 하느니라.
내신(內身)에 색상이 있어 바깥색이 아름답게 보이거나 추하게 보이거나 저 색에서 자재함을 얻음을 보면
이것을 이름하여 둘째 뛰어난 곳이라 하느니라.
내신에 색상이 있어 바깥 색이 헤아릴 수 없이 아름답게 보이거나 추하게 보이거나 저 색에서 자재함을 얻어 알며저 색에서 자재함을 얻어 보면,
이것을 이름하여 셋째 뛰어난 곳이라 하느니라.
자신에게 색상이 있어 바깥색이 아름답게 보이거나 추하게 보이거나 저 색에서 자재함을 얻어 알며 저 색에서 자재함을 얻어 보면,
이것을 이름하여 넷째 뛰어난 곳이라 하느니라.
자신에게 색상이 있어 바깥색이 푸르면 푸른 빛깔을 보니 푸른 빛깔에서 푸른 광명을 보는 것이,
비유를 들자면 우마가(優摩歌)꽃이 푸르면 푸른 빛깔과 푸른 광명을 보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안으로 색상이 있어 바깥색이 푸르면 푸른 빛깔을 보고 푸른 빛깔에서 푸른 광명을 보니 저 색 중에서 자재함을 얻어 알며, 저 색 중에서 자재함을 얻어 보면
이것을 이름하여 다섯째 뛰어난 곳이라 하느니라.
자신에게 색상이 있어 바깥색이 누러면 누런 빛깔을 보니, 누런 빛깔에서 누런 광명을 보는 것이
비유를 들자면 가니가라(伽尼歌羅)꽃이 누러면 누런 빛깔에서 누런 광명을 보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마하살도 이와 같아서 안으로 색상이 있어 바깥색이 누러면 누런 빛깔을 보고 누런 빛깔에서 누런 광명을 보니 저 색 중에서 자재함을 얻어 알며, 저 색 중에서 자재함을 얻어 보면
이것을 이름하여 여섯째 뛰어난 곳이라 하느니라.
자신에게 색상이 있어 바깥색이 붉으면 붉은 빛깔을 보며 붉은 빛깔에서 붉은 광명을 보는 것이,
비유를 들자면 반두시바(槃頭視婆)꽃이 붉으면 붉은 빛깔에서 붉은 광명을 보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마하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안으로 색상이 있어 바깥이 붉으면 붉은 빛깔을 보고 붉은 빛깔에서 붉은 광명을 보니, 저 색 중에서 자재함을 얻어 알며 저 색 중에서 자재함을 얻어 보면,
이것을 이름하여 일곱째 뛰어난 곳이라 하느니라.
자신에게 색상이 있어 바깥색이 희면 흰 빛깔을 보니 흰 빛깔에서 흰 광명을 보는 것이,
비유를 들자면 우사사다라(優沙私多羅)가 희면 흰 빛깔에서 흰 광명을 보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마하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자신에게 색상이 있어바깥색이 희면 흰 빛깔을 보고 흰 빛깔에서 흰 광명을 보니 저 색 중에서 자재함을 얻어 알며 저 색 중에서 자재함을 얻어 보면, 이것을 이름하여 여덟째 뛰어난 곳이라 하고,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여덟 가지 뛰어난 곳이라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