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나찰집 하권
[경을 찬집했거나 혹은 지은 것이다.]
[명색]
보살이 6입의 항복을 받고, 즉시에 다시 명색(名色)을 관찰하여 그의 체상을 알고 명색에게 말하였다.
“너 때문에 일체 중생이 큰 괴로움을 받으니, 너는 마땅히 속히 네 몸의 업을 돌이켜야 한다.”
명색이 말하였다.
“나는 스스로 몸의 허물이 있는 줄 모릅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너는 어찌하여 자신의 허물을 알지 못하는가?
너는 속이는 짓을 하여 체상이 극히 악하다. 너의 인연을 말미암아서 능히 일체 중생의 6정(情:根)을 내게 하는구나.”
명색이 대답하였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비유컨대 나는 나무가 가지를 내는 것처럼, 내가 있음으로 능히 6정(情)의 가지를 냅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내가 지금 지혜의 날카로운 도끼로 너의 근본을 찍으면 6정의 가지는 자연히 떨어지리라.”
명색이 말하였다.
“그대는 나를 죽이지 못할 것이니, 식(識)의 굳세고 장대한 어깨와 큰 힘이 항상 나를 옹호합니다.
이 식의 종자가 명색의 땅에 떨어지지 않으면 어찌 능히 일체의 괴로움을 내겠습니까?”
보살이 말하였다.
“그렇다. 만일 식이 어머니 태속에 들어 가라라(歌羅羅)에 머물지 않으면 중생의 몸은 마침내 생장(生長)하지 않을 것이며,
식이 만일 가라라에 머물지 않는다면 이 가라라는 곧 흩어져 무너질 것이다.
만일 흩어져 무너지면 무엇을 반연하여 중생의 몸이 있겠는가?
이러한 까닭에 내가 지금 지혜의 불로 식의 종자를 태우리라.”
보살이 곧 명색을 놔두고, 식을 관찰하고 꾸짖었다.
[인식]
“너는 꼭두각시와 같아서 체성이 허망하고,
원숭이와 같아서 가벼이 날뛰어 머묾이 없고,
또한 번개와 같아서 잠시도 멈추지 않으며,
길들이지 않은 말과 같아서 길에 나타나지 않고,
또한 미친 코끼리와 같이 제멋대로여서 제지하기가 어렵다.”
식이 말하였다.
“누가 감히 유위의 왕을 욕하는가?”
보살이 말씀하셨다.
“이는 누가 너를 왕으로 착각하는가, 어떠한 체와 상이 왕이라고 스스로 칭하는가?”
식이 말하였다.
“나는 몸으로 성을 삼고, 6입으로 문을 삼습니다.
지금의 나는 성주임에 틀림이 없어서 일체법이 모두 나를 따르고 나로써 머리를 삼으니, 왕이 어찌할 바가 아닙니다.”
보살이 말씀하셨다.
“나는 백천 겁 동안에 지혜의 칼을 갈았다. 이제 당장에 너의 왕위를 무찌르리라.”
식이 말하였다.
“괴이합니다. 나는 사실 허물이 없는데 까닭 없이 미움을 받습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네가 어찌 까닭 없이 미움을 받는다 하는가?
네가 능히 명색의 근심을 내니, 어찌 원망스럽지 않겠는가?”
“나와 명색은 실제로 서로 의지하고 있습니다.
내가 없으면 명색이 없고 명색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괴이하다. 명색과 식이 참으로 뗄 수 없이 매우 친한 벗이 되어서 일체 중생의 바퀴 도는 근본이 되는구나.”
“나와 명색과는 실로 뗄 수 없이 친한 벗으로서 업의 행(行)에게 불려 다니다가 업 가운데 빠져서 자재하지 못하게 되며, 선하고 악함을 따라 다섯 갈래의 형상을 받습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네가 행에게 불려 다닌다니 이러한 허물들을 너를 위하여 잠깐 사이에 밝히리라.
너는 비록 허물이 없지 않으나 내가 명백히 하도록 기다리라.
지금 지혜의 눈으로 행을 관찰한 뒤에 너를 징계하리라.”
[행, 의도]
보살이 곧 식을 버리고 행(行)의 처소로 가니, 행이 놀라서 말하였다.
“그대는 누구기에 용맹스럽고 몸이 가벼우며, 부서지지 않는 갑옷을 입고, 손에는 보리라는 몹시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습니까?
모든 중생들은 길이 잠들어 어두운 밤에 나[我]와 내 것[所]을 계교하고 있는데, 이 무섭고 두려우며 방일하고 어두운 곳을 홀로 다닙니까?”
보살이 말하였다.
“그대 수의 모습의 인연이 오래 되었지만, 내가 오늘 모두 궁구하고 관찰하였으니, 그 이름이 실달(悉達)이다.”
행이 즉시에 놀라며 말하였다.
“어디서부터 알고 통달하였습니까?”
“내가 오랜 옛날에 굳은 맹세를 하고 큰 석가모니불께 공경 공양하되, 목욕할 수 있게 하고 밥을 드렸으며, 크게 정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때로부터 공덕을 장엄하기를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행이 말하였다.
“내가 보니 그대는 오랫동안 장엄하지 않았습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그러한 말을 말라. 내가 첫째 아승기겁에는 결정을 얻지 못했다가, 둘째 아승기겁이 다 차서야 바야흐로 결정을 얻고 중생을 구원하고자 했다.”
행이 말하였다.
“기이합니다. 능히 중생을 사랑한다는 말씀이여.”
보살이 말하였다.
“내가 중생을 사랑함은 자비심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며, 물들고 집착하여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 아니다.
마치 코끼리 떼가 큰 숲속에 있을 적에 사방에서 불이 일어난 것과 같으니, 누가 이것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생각을 내지 않겠는가?
이때 가장 큰 코끼리가 나무 가지를 꺾어서 두드려 끄고, 길을 인도하여 빠져 나가 환란을 면하게 한다.
일체 중생이 생로병사의 불길에 둘러싸였으니, 누구든지 슬기로운 이라면 불쌍한 생각을 내어서 건지고자 하지 않겠는가?”
행이 말하였다.
“그대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중생을 사랑한다면서 어찌하여 버리려 하는가?”
보살이 말하였다.
“나는 중생을 구제하되 일찍이 버린 일이 없다. 내가 식(識)에서 생사를 관찰하니, 모든 허물은 너의 짓이었다.
그리하여 너를 끊기 위하여 너에게 왔다.
너 때문에 둘째 하늘에 태어나서 하늘의 제석이 되어 애욕을 만족히 하고,
또 너 때문에 범세(梵世)에 태어나서 연화의 좌석에 앉아서 고요한 선정에 들고, 내지 차례차례 올라가서 유정(有頂)ㆍ비상처[非想之處])에 이르며, 목숨을 마치고 3악도(惡道)에 태어나는 이러한 일이 너의 짓이 아닌가?”
행이 말하였다.
“진실로 그러합니다. 식을 왕도(王道)로 이끄는 것은 실로 나의 짓입니다.
식이 다니는 곳에는 내가 보호하는 장수가 되어 반드시 있을 곳에 이르게 합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나는 바른 견해의 돌에 지혜의 칼을 갈았으니, 너의 마디마디를 끊으리라.”
행이 말하였다.
“청컨대 그러지 마십시오. 그대가 고생한 결과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도움이 되지 않는가?”
행이 말하였다.
“일체의 맺힘[結]과 부림[使]과 불과 부싯깃과 큰 고통의 모체(母體)는 무명(無明)이니, 여러 가지의 번뇌와 야비함과 더러움과 큰 고통이 모여 있고, 일체의 재환(災患)도 모두 그가 짓습니다.
그대가 그를 붙들지 않고 도리어 나를 응징하려 하니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