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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요집 제2권
1.2. 경법편(敬法篇)
[여기에 여덟 가지 연(緣)이 있음〕
1.2.1. 술의연(述意緣)
대개 들으니 ‘적멸(寂滅)하여 움직이지 않는 이것은 형상할 수도 없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것이나 느껴서 마침내 통하는 것이다’라고 하나, 이름이 있고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네 구절 게송은 듣기 어려우나 삼천 세계의 불 속에는 들어가기 쉬운 법이다.
바라건대 몹시 춥고 고요한 밤이 되게 하라. 달 밝은 긴긴 밤 한적하고 텅 빈 곳에 혼자 앉아서 경전을 음송(吟誦)하되 궁(宮)과 상(商) 등의 소리로 토해 내고 받아들이며, 문자를 분명하게 하고 말의 의미를 아름답게 흐르게 하여 사운(詞韻)이 서로 어울리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맞을 것이다.
그러하여 생(生:중생)을 이롭게 하고 사물이 좋아하게 하면 족히 어두운 곳에 있는 혼령들[幽靈]로 하여금 기뻐 날뛰게 하고 정신(精神)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래도록 익혀 순수하고 익숙해지면 글 뜻이 통해 밝아질 것이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은근하게 외우면 지극한 정성에 깊이 감동할 것이다.
받아 지닌 한 게송의 복덕과 이익은 크고 깊으며, 쓰고 베낀 한 마디 말의 공덕(功德)은 여러 겁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진실로 알 수 있다.
그런 까닭에 가섭(迦葉)이 머리로 받들어 받되 가죽이 벗어지는 것을 아까워 하지 않았고 살타(薩埵)는 마음으로 즐거워하며 피 뿌리기를 사양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바로 감로(甘露)의 첫 관문이요 도에 들어가는 마지막 덕인 것이다.
1.2.2. 설법연(說法緣)
법사(法師)가 자리에 오르면 먼저 반드시 삼보(三寶)에 예를 올리고 공경하여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고 때 [時]를 관찰하고 사람을 가려 자비(慈悲)의 뜻을 갖추고서 중생을 구원하고, 사물을 이롭게 한 연후에 설법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보은경(報恩經)』에서 말하였다.
“법을 듣는 사람은 앉아 있고 법을 설하는 사람이 서 있을 경우 마땅히 법을 설하지 않아야 하고,
만약 법을 듣는 사람이 요구하는 것이 있거나 법을 설할 사람에게 허물이 있으면 마땅히 설법하지 않아야 하며,
만약 법을 듣는 사람이 사람에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지 않거나, 문자[字]에 의지하고 뜻에 의지하지 않 거나, 불료의경(不了義經)에 의지하고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지 않거나, 지식에 의지하고 지혜에 의지하지 않으면 모두 반드시 설법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 하면 이러한 사람은 여러 불보살의 청정한 법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약 존귀하고 소중한 법을 설하고 그 설법을 듣는 사람도 또한 숭상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지극한 마음으로 받아 듣되 소홀히 여기거나 오만하게 굴지 않으면 이것을 청정한 설법이라고 말한다.”
또 「오분율(五分律)』에서 말하였다.
“탐욕을 없앤 마음, 스스로 경솔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 대중들을 업신여기지 않는 마음, 자비스런 마음, 가뻐하는 마음, 이익을 주려는 마음, 동요하지 않는 마음, 이러한 따위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마침내는 사구게(四句偈)를 선설(宣說)하여 앞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여실(如實)하게 이해하도록 하는 사람은 긴 밤이 지나도록 안락(安樂)할 것이며 이익이 한량없으리라.”
또 『열반경(涅槃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베껴 쓰거나 선설함이 있더라도 때가 아니거나 장소가 아닌 데에서는 청하지도 않는데 설법하거나 경솔한 마음으로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찬탄하면서, 어느 곳에서나 설법하여 도리어 부처님의 법을 소멸시키고 나아가 한량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게까지 한다면, 이 사람은 곧 중생들의 악지식(惡知識)이 되느니라.”
또 『십송률(十誦律)』에서 말하였다.
“사람에게는 다섯 종류가 있으니, 이들이 법을 붙으면 모두 마땅히 설법하지 않아야 한다.
첫째는 시험 삼아 질문하는 것이요,
둘째는 의문도 없는데 질문하는 것이며,
셋째는 범한 죄를 뉘우치지도 않으면서 질문하는 것이요,
넷째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질문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힐책하고 따지기 위해 질문하는 것이니, 이 모두에게는 대답하지 않아야 한다.
만약 앞에 있는 대증들이 진실로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앞의 뜻을 구족 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선(善)을 생기게 하고 악(惡)을 없애려는 자이니, 법사는 근기에 따라서 방편(方便)과 좋은 마음으로 설법해 주어야 한다.
만약 스스로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했거나 혹은 법에 대해 의심을 낼 경우에는 설법하지 말아야 한다. 앞의 사람으로 하여금 잘못 전해지는 실수가 있을까 두려우니, 피차(彼此)간에 모두 죄를 얻게 될 것이다.”
또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법대로 머무는 사람은 자신이나 남이 모두 다 이롭고, 법대로 머물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한다는 이름을 얻지 못하느니라.
뵙대로 머무는 사람에게는 여덟 가지 지혜가 있다.
무엇이 그 여덟 가지인가?
첫째는 법지(法智)요, 둘째는 의지(義智)이며, 셋째는 시지(時智)요, 넷째는 지족지(知足智)이며, 다섯째는 자타지(自他智)요, 여섯째는 중지(衆智)이며, 일곱째는 근지(根智)요, 여덟째는 상하지(上下智)이다.
이 사람은 이와 같은 여덟 가지 지혜를 구족(具足)하고 있으므로 대체로 열여섯 가지 일을 갖추어 설법 할 수 있다.
첫째는 제 때에 법을 설하는 것이요,
둘째는 지극한 마음으로 설법하는 것이며,
셋째는 차례대로 설법하는 것이요,
넷째는 화합(和合)하여 설법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뜻에 맞추어 설법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설법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마음을 따라 설법하는 것이요,
여덟째는 대증을 업신여기지 않고 설법하는 것이며,
아홉째는 대중들을 꾸짖지 않고 설법하는 것이요,
열째는 법대로[如法]설법하는 것이며,
열한째는 스스로나 남이 모두 이익 되게 설법하는 것이요,
열두째는 산란(散亂)하지 않게 설법하는 것이며,
열셋째는 이치에 맞게 설법하는 것이요,
열넷째는 참되고 바르게 설법하는 것이며,
열 다섯째는 설법을 마치고 나서 교만한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요,
열여섯째는 설법을 마친 뒤에 내세(來世)의 과보를 바라지 않는 것이니,
이와 같은 사람은 다 른 사람을 쫓아 법을 들을 수도 있다.’
또 『정법념처경(正法念處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어떤 중생이 바르고 착한 업을 행하고,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을 위해 한 게송의 법을 설하여 그로 하여금 깨끗해지게 하고 부처를 믿게 하였다면 그는 목숨을 마치고 나서 응성천(應聲天)에 태어나 갖가지 즐거움을 누리다가 그 하늘로부터 다시 물러나서 지은 업을 따라 유전(流轉)할 것이다.
만약 재물(財物) 때문에 사람들에게 법을 설하거나, 자비한 마음으로 중생를 에게 이익을 주지 못하고 재물만 취하거나, 혹은 술을 마시거나, 혹은 여인과 함께 같이 마시고 먹거나, 기아(伎兒:伎女)의 법과 같이 스스로를 팔아 재물을 구하는 이와 같은 법시(法施)는 그 과보가 매우 적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상에 태어나면 지혜조(智慧鳥)가 되어 능히 게송을 설하리니,
이것을 이름하여 하품(下品) 법시라고 말한다.
어떤 것을 중품 법시라고 말하는가?
이름이 널리 소운이 났기 때문이요, 다른 사람보다 우세하기 때문이며, 다른 큰 법사들보다 우세하기 때문이니,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뵙을 설할 때에 혹은 더러운 마음으로써 다른 이를 위해 설법하면 이와 같은 법시도 그 과보를 증득하는 것이 또한 적다.
이런 사람은 하늘 세계에 태어나 다른 과보를 받거나, 혹 은 인간 세계에 태어나리니, 이것을 이름하여 중품(中品) 법시라고 말한다.
어떤 것을 이름하여 상품 법시라고 말하는가?
정정한 마음으로써 중생들의 지혜를 증장(曾長)시키기 위하여 법을 설하되 재물이나 이익을 위하지 않으며, 삿된 소견이 있는 중생들로 하여금 바른 법에 머무르게 하면 이와 같은 법시는 자기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한다.
더없이 가장 뛰어나며 마침내 열반에 이르러도 그 복이 끝나지 않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상품(上品) 법시라고 말한다.”
또 『가섭경(迦葉經)』에서 말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게송을 설하셨다.
삼천대전세계에
귀중한 보배 그 가운데 가득하니
이와 같은 보배로써 보시한다 해도
얻는 공덕은 적을 것이다.
만약 하나의 게법(偈法)을 설한다면
그 공덕은 매우 많을 것이요
삼계에 여러 가지 즐거움이 될 만한 것들을
다 가져다가 한 사람에게 베푼다 해도
한 게송을 베푼 것만 못하리니
그 공덕 가장 뛰어나네.
이 공덕은 저 공덕보다 뛰어나서
능히 모든 고뇌(苦惱) 여의네.
만약 항하강 모래얄처린 많은 세계에
귀중한 보배가 그 가운데 가득한 것을
모든 여래에게 보시한다 해도
하나의 법을 보시한 것만 못하네.
보배를 보시한 복 아무리 많다 해도
하나의 법을 보시한 것엔 마치지 못하네.
하나의 게송 보시한 복도 오히려 뛰어나거늘
더구나 사의(思議)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것이겠는가.”
또 십주비바사본(十住毘婆沙論)에서 말하였다.
“속가에 있는 사람[在家人]은 재물 보시를 행해야만 하고 출가한 사람[出家人]은 법 보시를 행해야만 한다.
왜냐 하면 속가에 있는 사람의 법 보시는 출가한 사람에는 마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속가에 있는 사람이 법을 경청하고 받는 것은 믿는 마음이 천박(淺薄)하기 때문이다.
또 속가에 있는 사암은 재물이 많이 있지만 출가한 사람은 모든 경전의 법에 대하여 읽고 외워서 통달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 해설하되 대중들 속에 있어도 두려움이 없나니, 속가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미칠 바가 아니다.
또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데 있어서도 출가한 사람에는 마치지 못하며, 또 법을 설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항복시키려고 하는 데에도 출가한 사람에는 마치지 못하나니, 게송으로 말한 것과 같다.
우선 스스로 법을 닦아 행하고
그런 연후에 다른 사람을 가르치나니
너는 내가 하는 말을 따르라고
마침내 이런 말을 할 수가 있다.
자신도 착하지 못한 짓을 행하면서
어떻게 저들을 착하게 만들 것이며,
스스로 적멸(寂滅)을 증득하지 못하고서
어떻게 냥을 적멸에 들게 할 수 있겠는가.
또 출가한 사람이 만약 재물 보시를 행하면 나머지 선행을 방해하고 아련야(阿練若) 처소를 멀리 여의며 틀림없이 마을[聚落]에 이르러 속인들과 함께 종사(從事)하면서 말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세 가지 독[三毒:貪ㆍ瞋ㆍ癡]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여섯 가지 바라밀[六度]등의 마음이 없어질 것이다. 나이가 마침내는 다섯 가지 욕심을 탐내고 집착하여 계율을 버리고 세속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죽게 된다고 말하고, 혹은 계율을 위반하여 무거운 죄를 쉽게 일으키기도 하니, 이것을 죽음과 동등한 여러 가지 번뇌(煩惱)와 괴로운 근심이라 말한다.
이런 인연 때문에 출가한 사람에게는 법보시를 칭찬하고 찬탄하는 것이요, 속가에 있는 이에게는 재물의 보시를 칭찬하고 찬탄하는 것이다.”
또 『금광명경(金光明經)』에서 말하였다.
“법을 설하는 이에겐 다섯 가지 일이 있으니,
첫 번째, 법시는 저들과 내가 함께 이익이 되지만 재시(財施)는 그렇지 못한 것이요,
두 번째, 법시(法施)는 능히 중생들로 하여금 삼계를 벗어나게 하지만 재시는 욕계도 벗어나지 못하며,
세 번째, 법시는 법신(法身)을 이익되게 하지만 재시는 색신(色身)만을 기르고 보양하는 것이요,
네 번째, 법시는 증장(增長)함이 끝이 없지만 재시는 반드시 다하여 없어질 때가 있는 것이며,
다섯 번째, 법시는 무명(無明)을 끊을 수 있지만 재시는 오직 탐하는 마음만을 항복받는다. 그러므로 재시는 법시에 마치지 못한다.
법시 가운데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는 스스로 계단을 밟아 점점 나아가되, 만약 아는 것이 있는 데도 다른 사람에게 아는 것을 활용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이 나보다 나아질까 두려워하여 숨겨두고 말하지 아니하면 미래 세상에서 항상 법을 뜯지 못하게 될 것이다.”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만약 법을 아끼면 항상 변두리 지역의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곳에 태어나리니, 법을 아낌으로써 다른 사람의 혜명(慧明)을 장애하였기 때문이다. 곧 다른 사람에게 법을 파는 것이 이것보다 도리어 나은데, 이것은 그것만도 못하다.”
또 『제법용왕경(諸法勇王經)』에서 말하였다.
“염부제(閻浮提) 안에 있는 물과 육지와 허공을 다니는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사람의 몸을 얻게 하고,
만일 어떤 한 사람이 이 모든 사람을 가르쳐서 그로 하여금 오계( 五戒)와 십선(十善)에 편안하게 머무르게 하여 얻는 공덕은
어떤 사람이 한 사람을 가르쳐서 그로 하여금 믿고 행하게 한 공덕만 못하다.”
또 『십주비바사론』에서 말하였다.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 네 가지 법은 지혜를 잃게 하므로 보살은 마땅히 멀리 여의어야 할 것이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법과 법을 말씀하시는 사람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요긴한 법을 숨기고 아까워하여 인색하게 구는 것이며,
셋째는 법을 좋아하는 사랍에게 장애되는 일을 지으며 그의 들으려는 마음을 무너뜨리는 것이요,
넷째는 교만한 마음을 품고서 자신은 높은 체하고 다른 사람은 낮추는 것이다.
또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지혜를 얻게 하는 것으로서 마땅히 항상 닦고 익혀야만 한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법과 법을 말씀하는 사람을 공경하는 것이요,
둘째는 들었던 법과 읽고 외웠던 것을 다른 사람을 위하여 말하되 그 마음이 깨끗하고 이양(利養)을 구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많이 들음을 따라 지혜를 얻는 것이라고 알고 있으므로 부지런히 구하며 쉬지 않기를 마치 불에 타고 있는 머리를 구제하듯 함이요,
넷째는 들었던 법을 받아 지녀서 잊지 않고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말만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1.2.3. 청법연(聽法緣)
대체로 법을 듣고자 하면 반드시 법을 공경하고 사람을 중시하며 지성으로 세간을 벗어나려고 하되 인천(人天佛說偈)을 희망하지 않아야 하나니, 이것은 유위(有爲)의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함경(阿含經)』의 불설게(佛說偈)에서 말하였다.
법을 듣는 사람은 마음을 단정히 하고 목마를 때 물 찾듯
일심으로 딸의 뜻 속으로 들어가서
법을 듣고 기뻐 뛰거나 마음에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면
이와 같은 사람에겐 설법해도 좋으리라.
또 「우바새계경』에서 말하였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법을 들을 때에 열여섯 가지 일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때마다 듣는 것이요,
둘째는 즐겁게 듣는 것이며,
셋째는 지극한 마음으로 듣는 것이요,
넷째는 공경하여 듣는 것이며,
다섯째는 허물을 찾지 말고 듣는 것이요,
여섯째는 따지지 말고 듣는 것이며,
일곱째는 자가가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말고 듣는 것이요,
여덟째는 법을 들을 때에 법 설하는 사람을 경솔하게 여기지 않는것이다.
아홉째는 법을 들을 때에 법에 대하여 경솔하게 여가지 않는 것이요,
열째는 법을 들을 때에 끝까지 스스로를 업신여기지 않는 것이며,
열한째는 법을 들을 때에 다섯 가지 번뇌를 멀리 여의는 것이요,
열두째는 법을 들을 때에 받아 지녀서 읽고 외우는 것이며,
열셋째는 법을 들을 때에 다섯 가지 욕심을 없애는 것이요,
열넷째는 법을 들을 때에 믿는 마음을 갖추는 것이며,
열다섯째는 법을 들을 때에 모든 중생을 위하는 것이요,
열여섯째는 법을 들을 때에 무명의 뿌리[闇根]를 끊는 것이다.
선남자야, 여덟 가지 지혜를 갖춘 사람은 법을 설할 수도 있고 법을 들을 수도 있으니, 이와 같은 사람은 자신과 남을 이익되게 하지만 이를 구족(具足)하지 못한 사람은 곧 자신도 이익되게 하고 남도 이익되게 한다는 이름을 얻지 못한다.”
또 『아육왕경(阿育王經)』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아서가왕(阿恕伽王:阿育王)이 도인(道人)을 시켜 법을 설하게 했다.
그때 보장(步障)으로써 모는 부녀자들을 가려놓고 그들로 하여금 법을 듣게 하였다.
그 때 법사가 여러 부녀자들을 위하여 법을 설할 적에 항상 보시에 대한 논리[施論]와 계율에 관한 논리[戒論]와 하늘에 태어나는 논리[天論]를 설하였다.
그 때 한 부녀자가 한계를 지어 놓은 왕의 법을 범하고 휘장을 걷고 법사 앞에 나아가 법사에게 물었다.
‘여래대각(如來大覺)께서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모든 법을 깨달있을 때에 보시와 계율만을 깨달있습니까? 또 다른 법도 깨달있습니까?’
법사가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유루법(有漏法)은 모두 괴로운 것인데 그것은 마치 융철(融鐵)과 같다는 것을 깨달으셨고, 이 괴로움의 원인은 습기를 따라 생겨나는 것인데 그것은 마치 독한 나무와 같음을 깨달으셨으며, 여덟 가지 바른 도(八正道]를 닦아서 괴로움과 쌓임[苦習:苦集]을 없앤다는 것을 깨달으셨습니다.’
이 여인이 그 말을 듣고 수다원(須陀洹)의 도를 획득한 뒤에 목에 칼을 쓴 채 왕의 처소에 이르러서 왕에게 아뢰였다.
‘제가 오늘 왕의 막중한 법을 범하였습니다. 바라옵건대 왕께서는 법으로 저를 치죄(致罪)하시기 바랍니다.’
왕이 물었다.
‘네가 무슨 일을 범하였느냐?’
대답하였다.
‘저는 왕께서 금지하사는 제도를 깨뜨리고 도인(道人)의 처소에 이르렀습니다.
비유하면 마치 목마른 소가 죽음을 피하지 않는 것처럼 저도 실상은 부처님 법에 목말랐던터라 이 때문에 당돌하게도 묵묵히 법을 들었던 것입니다.’
왕이 물었다.
‘법을 듣고 난 뒤에 자못 얻은 것이 있었느냐?’
대답하였다.
‘네 가지 참다운 진리[四諦:苦ㆍ集ㆍ滅ㆍ道]를 깨달았으며 음(陰)ㆍ입(入)ㆍ계(界)에 대하여 이해하게 되었으며,
또한 여러 가지 요소[大]에도 나[我]라는 것이 없음을 알아 마침내 법안(法眼)을 증득하였습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펄쩍펄쩍 뛰면서 환희(歡喜)하며 곧 예를 올리고 큰 소리로 명하였다.
지금 이후로 법을 들을 때에는 휘장을 쳐서 가리지 말고 법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곧바로 법사에게 나아가 대면한 채 법을 듣게 하라.’
그리고는 찬탄하여 말하였다.
‘기특하구나. 우리 궁전 안에서 비로소 사람 보배를 배출하였구나. 이 인연 때문에 법을 듣는 사람들에게 큰 이익이 있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또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반차라국(般遮羅國)에서 흰 기러기 오백 마리를 바사닉왕(波斯匿王)에게 바쳤다. 왕이 맹하여 그 기러기를 기환정사(祇桓精舍:기원정사)에 보내 살게 하였는데 대중 스님들이 식사할 때가 되면 사람들이 음식을 가지고 가서 스님들께 드시기를 청했다.
기러기들은 스님들이 모여 있는 곳을 보고 그 앞에 와서 서 있었다.
부처님께서 한결같은 음성으로 법을 설하시면 중생들은 각각 부류별로 이해하곤 하였다.
마침 그때 기러기들도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여 법을 듣고 환희하며 우는 소리가 서로 조화를 이루었다. 그 기러기들은 연못으로 돌아갔다.
그 뒤에 털과 날개 깃이 더욱 길게 자라 다른 곳으로 날아갔는데 사냥꾼이 그 물로 덮쳐 모두 죽게 되었다. 한 마리 가러기가 소리치자 여러 마리 기러가들이 모두 화답하였으니, 그것은 법을 들었을 때의 그 소리였다. 그들은 그 착한 마음으로 말미암아 죽어서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났다.
하늘에 나는 법에는 세 가지 생각이 있다.
첫째는 ‘본래 어디서부터 왔는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요,
둘째는 ‘다음에는 어느 곳에 나기로 결정되었는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며,
셋째는 ‘전생에 무슨 업을 지었기에 이 하늘에 태어나게 되었는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기러가들은 문득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신에 대해 살펴보니 전생에 다른 선행은 없었고 오직 부처님과 스님들의 주변에서 법을 들은 것뿐이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오백 천자는 즉시에 내려와 부처님의 주변에 머물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시니, 모두 다 수다원(須陀洹)을 증득하였다.
바사닉왕이 우연히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렀다가 항상 오백 마리의 기러기가 부처님 앞에 늘어서 있던 것을 보곤 했었는데, 이 날은 그 기러기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문득 부처님께 여쭈었다.
‘여기에 있던 모든 기러기들은 다 어느 곳으로 갔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기러기들이 보고 싶습니까? 이보다 앞서 기러기들이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가 사냥꾼에게 잡혀 죽임을 당했는데, 목숨을 마치고 나서 하늘에 태어났습니다.
지금 이 오백 명의 모든 천자 등은 좋은 하늘의 갓[冠]을 썼고 단정하고 빼어난데 이들이 바로 그 기러기들입니다. 오늘 법을 듣고 모두 수다원을 증득하였습니다.’
왕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모든 기러가들은 무슨 업연(業緣)으로 축생(畜生)에 떨어졌다가 목숨을 마치고는 천상에 태어났으며 또 지금은 도를 증득하게 되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 가섭(迦葉)부처님 때에 오백 명의 여인들이 모두 계를 받았으나 마음씀이 견고하지 못하여 받은 계율을 깨뜨렸고, 그 계율을 범한 인연으로 축생 세계에 떨어져서 이 기러기 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계율을 받았기 때문에 여래를 만나 법을 듣고 도를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러기의 몸으로써 법을 들은 인연 때문에 천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또 『구잡비유경(舊雜譬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사문(沙門)이 밤낮으로 경전을 외웠는데, 그 평상 밑엔 개 한 마리가 엎드린 채 일심으로 경전 외우는 소리를 들으며 밥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렇게 여러 해를 지내다가 목숨을 마치고 사람으로 태어나 사위국(舍衛國)의 여인(女人)이 되었다. 그 여인이 자란 뒤에는 사문들이 걸삭[分衛]하는 것을 보면, 문득 달려가서 스스로 밥을 가져다가 사문에게 주고는 기뻐하였다. 그 후로 비구니가 되어 응도(應道:阿羅漢)의 과(果)를 증득하였다.”
또 『부법장경(付法藏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체 중생이 삼계(三界) 생사(生死)의 큰 바다를 벗어나고자 하면 반드시 법의 배[法船]를 빌어야 비로소 건널 수 있다.
법은 청량제가 되어 번뇌의 열을 제거한다.
법은 곧 묘한 약으로서 능히 번뇌의 병[結病]을 고치며,
법은 곧 중생의 참다운 선지식(善知識)으로서 큰 이익을 지어 모든 고뇌에서 구제한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일체 중생의 지성(志性)은 결정된 것이 없어 더러운 습기[汚習]를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선(善)을 가까이하면 선해지고 악(惡)을 가까이하면 악해지는 것이다.
만일 나쁜 벗을 가까이하면 곧 악업을 지어 끝없이 생사의 바다를 흘러 돌게 되고,
만약 착한 벗을 가까이하면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켜 미묘한 법을 듣고 반드시 그들로 하여금 삼도(三塗:地獄ㆍ餓鬼ㆍ畜生)의 고뇌를 떠나게 하나니, 이 공덕으로 말마암아 최상의 즐거움을 얻 느니라.
화씨(華氏) 국왕에게 흰 코끼리 한 마리가 있었는데, 그 코끼리는 원수와 적을 잘 멸하였으므로 만약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그 코끼리로 하여금 밟아 죽이게 했다.
뒷날 어느 때에 그 코끼리의 집에 불이 나서 다 타버리자 코끼리를 옮겨다가 절 가까운 곳에 두었는데, 코끼리는 비구가 외우는 법구경『(法句經)』의 게송을 듣게 되었다.
그 게송은 이러했다.
선을 행하면 천상에 나고
악을 행하면 깊은 못에 들어간다.
코끼리는 그 법문을 듣고 마음이 곧 부드러워져서 자비한 마음을 일으켰다. 그 뒤로는 죄인(罪人)을 붙여주어도 다만 코로 냄새만 맡거나 혀로 햝기만 하고 물러날 뿐 도무지 죽이는 일을 즐기지 않았다.
왕은 이것을 보고 나서 마음으로 매우 당황하여 곧 여러 신하들을 불러 이 일을 함께 의논하였다.
지혜 있는 신하가 왕에게 아뢰었다.
‘이 코끼리는 절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틀림없이 묘한 법분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렇게 되었을 것이니, 지금이라도 푸줏간 가까운 곳에 옮겨다가 매어 놓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왕은 그 말대로 하였다. 코끼리는 짐승을 도살(屠殺)하는 것을 보자 사나운 마음이 맹렬하게 치솟아 더욱더 잔혹하게 사람들을 해치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일체 중생의 지성(志性)은 결정된 것이 없다.
축생도 오히려 그러하여 법을 들으면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살해하는 것을 보면 해치려는 마음이 더해지거늘, 하물며 사람이야 어찌 물들고 익숙해지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마땅히 그런 줄 깨달아 알아서 악을 보면 반드시 버리고 선을 보면 마땅히 가까이하여 부지런히 경법(經法)을 들어야 하느니라.
또 옛날 어떤 바라문(婆羅門)은 많은 사람들의 해골[髑髏]을 가지고 화씨성(華氏城)으로 가서 성 안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그것을 팔았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흘러가도 그것을 사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그 때 바라문은 몹시 화가 나서 큰 소리로 꾸짖어 말하였다.
‘이 성 안의 사람들은 모두 어리석고 미련하다. 만약 내게 와서 이 해골을 사지 않으면 나도 마땅히 그들의 나쁜 소문을 성 안에 퍼뜨릴 것이다.’
그 때 성 안의 모든 우바새(優婆塞)들은 이 말을 듣고 그가 비방할 것이 두려워 곧바로 돈을 가지고 가서 그 해골을 사려고 하였다.
그리고 곧 구리 젓가락으로 그 귀를 뚫어 보아 만약 완전하게 뚫리는 것이면 곧 많은 값을 주고 그것 이 반쯤 뚫리는 것은 값을 조금 적게 주고 전혀 뚫리지 않는 것은 전혀 값을 치르지 않았다.
바라문이 말하였다.
‘나의 이 해골은 다 차이가 없는데 어째서 가격에 차이가 있소?’
우바새가 말하였다.
‘먼저 완전하게 뚫리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 생전에 묘한 법을 듣고 받았으므로 지혜가 제일 우세하니 그와 같이 귀중하기 때문에 많은 값을 치르는 것이요,
그것이 반쯤 뚫리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 생전에 법을 듣기는 했으나 잘 분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값을 적게 치른 것이며,
전혀 뚫리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이 과거에 전혀 법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값을 치르지 않은 것이오.’
그 때 우바새는 이 해골을 가지고 성 밖으로 나아가 탑을 세워 공양했고 목숨을 마친 뒤에는 모두 천상에 태어날 수 있었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묘한 법을 들으면 큰 공덕이 있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우바새는 법을 들은 사람의 해골을 위해 탑을 세우고 공양한 것을 가지고도 오히려 천상에 태어났거늘 하물며, 지극한 마음으로 경법(經法)을 듣고 받은 사람에게 공양하고 공경함이겠는가?
이 사람의 복의 과보는 진실로 다함이 없어서 미래에는 틀림없이 무상도(無上道)를 성취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사람이 최상의 안온함과 쾌락을 얻으려면 마땅히 지극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경법을 들어야 하느니라.”
또 『현우경(賢愚經)』에서 말하였다.
“옛납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사위국(舍衛國)의 수달장자(須達長者)는 불법을 믿고 공경하며 승가의 시주[檀越]가 되어 그 승가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을 다 공급했다.
수달의 집에는 앵무새 두 마리가 있었다. 첫째 이름은 율제(律提)요, 둘째 이름은 사율제(賖律提)였다.
이들은 품성(禀性)이 총명하고 지혜가 있어서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 비구가 오는 것을 보변 먼저 집안에 알려 식구들로 하여금 나아가 영접하게 하였다.
그 후 어느 때에 아난(阿難)이 장자의 집에 이르러 새들의 총명하고 지혜로운 모습을 보고 그들에게 네 가지 진리인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의 집 문 앞에 나무가 있었는데, 두 마리 새는 법을 듣고 나무 위로 날아가 기뻐하며 외워 지녔다. 그런데 그날 밤에 나무에서 자다가 살쾡이에게 잡아먹혔다.
그러나 그들은 이 선근이 인연이 되어 사천왕천(四天王天)에 태어났다가 그 하늘의 수명이 다한 뒤에는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났으며,
도리천의 수명이 다 한 뒤에는 다시 야마천(夜摩天)에 태어났고,
야마천의 수명이 다하고 나서는 도솔천(兜率天)에 태어났으며,
도솔천의 수명이 다한 뒤엔 화락천(化樂天)에 태어났고,
화락천의 수명을 마치고는 여섯 번째 하늘인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태어났으며,
타화자재전의 수명이 끝난 뒤에는 다시 화락천에 태어났다.
이와 같이 차례로 다시 내려와 사천왕천에까지 이르렀다가 사전왕천의 수명이 다하면 다시 올라가 타화자재천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오르내리기를 일곱 번 되풀이하다가 욕계 여섯 하늘에서 마음껏 쾌락을 누리면서 여섯 하늘의 수명이 다 마치는 그 사이에 일찍 죽는 일이 없었다.
뒷날 어느 때 목숨을 마치고는 인간 세계에 태어나 출가 수도하여 벽지불(辟支佛)이 되었으니, 첫째 이름은 담마(曇摩)요, 둘째 이름은 수달마(修曇摩)였다.”
또 『현우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어떤 비구가 숲 속에서 경을 외우는데, 그 음성이 매우 청아하고 좋았다.
그 때 새 한 마리가 법을 듣고 공경하고 좋아하였다.
어느날 그 새는 나무에 앉아 법을 듣다가 때마침 사냥꾼의 화살을 맞고 목숨을 잃었다.
이 선근(善根)의 인연으로 도리천에 태어나 열굴 모습이 단정하고 광명이 빛나 짝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스스로 숙명(宿命)을 알아 비구가 경을 외울 때 그 법문을 들었으므로 그로 인하여 여기에 태어날 수 있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곧 하늘의 꽃을 가지고 비구가 있는 곳으로 가서 예경(禮敬)하고 문안드린 뒤에 하늘의 향과 꽃을 비구에게 공양하였다.
비구가 그 사정을 자세히 불어 그것이 왜곡된 것임을 알고 곧 명하여 앉게 하고는 그를 위해 설법하여 수다원(須陀洹)을 증득하게 하였다. 이미 과(果)를 얻고 난 뒤에는 천상으로 돌아갔다.
새가 법을 듣고도 오히려 복을 얻어 그 과보가 끝이 없었거늘 더구나 사람이 믿는 마음으로 법을 들으면 어찌 선한 과보가 없겠는가?.”
또 「선견율론(善見律論)』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첨파라국(瞻婆羅國) 가라지(迦羅池) 가에 이르러 대중들을 위하여 설법하셨다.
그 때 그 못에 있던 조개 하나가 부처님께서 못가에서 법을 설하시는 소리를 들었다.
그 조개는 곧 물 속에서 나와 풀뿌리 밑으로 기어들어가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시는 것을 들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소를 놓아 먹이고 있었다. 그는 부처님께서 자리에 앉아 대중들을 위하여 설법하시는 것을 보고 곧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법을 듣고 싶어하였다.
그래서 지팡이로 땅을 찌르다가 잘못하여 조개의 머리를 찌르자 조개는 곧 죽어서 도리천에 태어났다.
이러한 복의 과보 때문에 궁전의 가로와 세로가 십이 유순(由旬)이나 되었고 여러 천녀(天女)들과 놀면서 즐거움을 누리다가 곧 궁전을 타고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 가서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니,
부처님께서는 아시면서도 일부러 물으셨다.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갑자기 내 발에 예배하며 신통(神通)과 광명(光明)과 상호(相好)가 비할 데 없으며, 또 이 세간을 환하게 비추느냐?’
조개였던 천인(天人)은 곧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옛날에 조개의 몸으로서
불 속에서 먹이를 찾고 있다가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소리를 듣고
물 속에서 나와 풀뿌리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소먹이는 어떤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와서 법을 듣다가
지팡이로 땅을 찔렀는데 잘못 내 머리를 찔러
목숨을 마친 뒤에 천상(天上)에 태어났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조개였던 전얀이 옮은 게송으로써 사부 대중을 위하여 법을 설 하셨다.
그 때 대중들 가운데 팔만 사전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두 도적(道迹:須陀洹)을 증득하였으며, 조개였던 천인도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어 미소를 머금고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