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학입문 상권
제14장 공처정空處定
색계의 네 하늘은 곧 앞의 사선四禪이다.
무색계의 네 하늘은 곧 사공처四空處이고, 일명 사무색정四無色定이라고도 하니, 형태가 없고 빛깔이 없음을 말한다.
또한 사공정처四空定處라고 하는데, 이미 형태와 빛깔이 없으므로 다만 관찰되는 경계로서 처를 삼음을 말한다.
염처念處ㆍ승처勝處ㆍ일체처一切處가 모두 관찰하는 대상을 따라 처라는 이름을 얻은 것과 같은 경우이다.
사공四空이란
첫째 공처空處,
둘째 식처識處,
셋째 무소유처無所有處,
넷째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이다.
이들은 모두 각도 없고 관도 없는 성스럽고 고요한 마음이며, 또한 사구선捨俱禪에 포함된다.
그러므로 경에 “허공처정虛空處定을 얻으면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그 마음이 점차 늘어난다.”고 하였다.
공처정空處定은 다음과 같다.
수행자는 먼저 색법色法의 허물과 죄를 깊이 생각한다.
“만약 형색을 갖춘 몸이 있으면 안으로 굶주림ㆍ목마름ㆍ질병ㆍ거침ㆍ무거움ㆍ헛됨ㆍ거짓 등의 고통이 있고, 밖으로 추위ㆍ더위ㆍ칼ㆍ몽둥이ㆍ묶임ㆍ형벌 등의 괴로움을 받게 된다.
인연이 화합하여 과보로 받은 이 몸이 곧 괴로움의 근본이다.
또 색법은 마음을 얽매어 자유롭지 못하게 하니, 이것은 마음의 감옥이다.
어찌 탐착하랴. 허공은 형색이 없이 확 트이고 고요하여 어떤 허물이나 근심도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한마음으로 자기 몸을 자세히 관찰한다.
모든 털구멍과 아홉 구멍이 비고 성근 것을 모두 보며, 마치 얇고 고운 비단처럼 안팎이 서로 통하고 또 파초처럼 겹겹이 싸여 있지만 알맹이가 없다는 것을 본다.
그러면 떡시루의 체와 같고, 거미줄 같다가 점점 미미해져 몸이라는 구분이 모두 사라진다.
이와 같이 관찰할 때 눈으로 보던 빛깔이 없어지고 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도 차례차례 모두 사라진다.
색법이 사라지고 나서 한마음으로 공을 반연하면 색의 선정이 곧 물러나는데, 공처정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에도 중간선이 있다.
이때 절대로 걱정하거나 후회해서는 안 된다. 마음을 오로지하여 부지런히 힘쓰면서 공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곧 그 마음이 사라지고 저절로 공의 연緣에 머물게 되니, 이것이 미도지정의 모습이다.
그런 후에 활연히 공과 상응하여 그 마음이 밝고 깨끗해지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이 점점 늘어나고, 선정에서 오직 끝없는 허공만 보이며 마음에 흐트러짐이 없게 된다.
그러면 이미 색의 속박이 없어져 심식이 맑고 고요하며 걸림 없이 자재하게 되니, 마치 새가 새장을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것과 같다.
제15장 식처정識處定
수행자가 공처정에서 색법을 타파하고 허공을 관하는 것은 바깥의 법을 반연하는 것이므로 흩어져 없어지기 쉽다. 따라서 식처정識處定만 못하다.
식처정은 안의 법을 반연하는 것이므로 선정에 안온함이 많다. 이에 곧 공처정을 버리고 한마음으로 현재의 심식을 반연하여 찰나찰나 떠나지 않으면 곧 그것이 사라지고 저절로 식의 연에 머무르게 되니, 이것이 미도지정이다.
그 후 활연히 식과 상응하여 마음이 안정돼 움직이지 않고, 다른 현상은 보이지 않고 오직 현재의 심식心識이 찰나찰나 머물지 않는 것만 보게 된다.
그러면 선정의 마음이 분명하고 식으로 생각함이 대단히 넓어 한량없고 끝이 없다.
또한 선정 가운데서 과거에 이미 사라진 한량없고 끝없는 식을 기억하며, 미래에 일어날 한량없고 끝없는 식도 다 선정 중에 나타나 식법識法과 상응한다.
식법을 마음에 지니면 산란한 뜻이 없게 된다. 이 선정은 편안하고 청정하고 고요하며, 심식이 밝고 예리해지는 것이 어떤 비유로도 설명할 수 없다.
제16장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은 불용처정不用處定이라고도 한다.
말하자면 공은 바깥 경계고 마음은 안의 경계인데 이 두 경계를 버리고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소처정少處定이라고도 하니, 이 선정은 일체를 다 버렸으나 의근에 아직 법진法塵이 조금 남아 있다는 것을 말한다.
또 무상정無想定이라고도 한다.
수행자는 식처정의 과실과 우환을 깊이 알아야 한다.
즉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심식은 한량없고 끝이 없으므로 식을 반연하여 선정에 들어가는 것은 진실한 법이 아니니, 오직 심식처가 없어 마음에 의지할 것이 없어야 비로소 편안함(安隱)이라 부를 수 있다.”고 알아야 한다.
그러면 곧 식처를 버리고 마음을 무소유처에 매어 둔다. 무소유란 공도 아니고 식도 아닌 무위법의 경계이며 분별도 없다.
이와 같이 알고 나서 그 마음을 고요히 쉬고 무소유법을 생각한다.
이때 식처정이 곧 사라지고 중간정인 미도지정이 나타난다.
이때 수행자는 한마음으로 안이 깨끗하며 공하여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모든 법을 보지 않고, 고요하고 편안하여 마음에 흔들림이 없다. 이러한 선정을 얻었을 때 은은한 기쁨이 샘솟고 고요하며 생각이 끊어져 어떤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음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데 하물며 다른 법이 보이겠는가.
분별하는 바가 없으니, 이를 무소유처정이라 하고 또 무상정이라고도 한다.
제17장 비유상비무상처정非有想非無想處定
이 선정의 이름에 대한 고금의 해석이 제각각인데 각기 의미가 있으므로 모두 소개한다.
어떤 이는
“비상非想은 거친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고, 비비상非非想이란 미세한 생각이 아님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이미 거친 생각은 없지만 여전히 미세한 생각이 남아 있기 때문에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이라 한다.”고 설명한다.
어떤 이는
“식처정일 때는 생각이 있고, 불용처정일 때는 생각이 없는데, 지금 이런 있고 없음을 함께 버리는 것이다.
비상으로 생각 있음을 버리고 비비상으로 생각 없음을 버리기 때문에 비상비비상이라 한다.”고 설명한다.
또 어떤 이는
“이 선정에서는 어떤 모습도 보지 않으므로 비유상非有想이라 한다.
그렇다고 만약 오로지 생각이 없기만 하다면 마치 나무나 돌과 같을 것이니, 어찌 생각이 없다는 걸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비무상非無想이라 한다.”고 설명한다.
수행자는 무상無想 중의 허물과 죄를 깊이 알아야 한다.
즉 “이 무소유처정은 우매한 것 같고 취한 것 같으며 잠자는 듯 어둠 속에 있는 듯하다.
무명에 덮여 깨달아 아는 것도 없으니 사랑하거나 즐거워할 이유가 없다.”고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선정(무소유처정)의 수ㆍ상ㆍ행ㆍ식이 아무리 미세하다 해도 역시 무상ㆍ고ㆍ공 등의 법임을 면치 못한다는 사실을 세밀히 관찰하고 곧 그것을 떠나 비유비무를 관찰한다.
무슨 까닭인가?
나의 지금 이 마음은 과거ㆍ현재ㆍ미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으며, 이미 모습이 없을 뿐만 아니라 처소도 없으므로 마땅히 ‘있는 것이 아님(非有)’을 알아야만 한다.
또 만약 말 그대로 ‘없다’면 무엇을 마음이라 부르겠는가?
만약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면 다시 별도로 없다 할 것도 없다.
무슨 까닭인가?
‘없음’은 저 홀로 없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있음’에 대한 집착을 타파하기 위해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만약 ‘있음’이 없다면 ‘없음’도 없다. 그러므로 ‘비유비무非有非無’라고 한다.
이와 같이 관할 때 있음도 없음도 보지 않고 한마음으로 중도를 반연하며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비유상비무상정을 수습하는 것이다.
이때 불용처정이 문득 사라져 중간선을 얻고, 그 마음이 저절로 중도를 반연하여 머물게 된다.
그런 후 갑자기 진실한 선정이 발생해 있고 없는 모습을 보지 않게 되며, 일체가 없어진 듯 고요해 마음에 동요가 없게 되며, 편안하고 청정한 것이 열반의 모습과 같게 된다.
이 선정은 미묘하여 삼계에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
외도가 이것을 증득하면, 이것을 중도실상中道實相인 열반涅槃으로 여겨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이라 하면서 이 법에 애착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다.
이 선정에 들어가면 있고 없음을 보지는 않지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마음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외도들은) 곧 이 마음을 계탁하여 “이것이 진신眞神으로서 멸하지 않는 것이다.”라고들 한다.
그러나 만약 불제자라면 이것 역시 네 가지 음陰이 화합하여 있는 것으로서 허망하고 실체가 없으며, 별도의 신지神知는 없다는 것을 안다.
또한 허공처정은 색을 타파하므로 공空이라 한다.
식처정은 공을 타파하므로 식識이라 하고 유상有想이라고 한다.
불용처정은 식을 타파하므로 무식無識이라 하고 무상無想이라고 한다.
지금 이 선정은 무소유를 타파하므로 비무상非無想이라 하고 비유상비무상非有想非無想이라고 한다.
이 선정에서는 들뜨고 가라앉음이 완전히 평등하고 공과 유가 균등하므로 세간선 중에 가장 높고 뛰어나다.
또한 무상無想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무상천정無想天定이고,
둘째는 비유상비무상정非有想非無想定이며,
셋째는 멸수상정滅受想定이다.
외도 가운데 방편을 모르는 자는 마음을 멸해 무상천정에 들어가고
방편을 아는 자는 마음을 멸해 비유상비무상정에 들어가지만,
불제자는 마음을 멸해 멸수상정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