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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론 상권
5. 부혁의 말에 대한 답변(1), 부처님 법에 대하여
부혁이 말하기를,
“해내(海內)에서 임금을 섬기는 자는 적은데 홍교(弘敎)를 즐기는 이는 많다.
바깥으로 오랑캐의 부처를 섬기고 안으로는 사견을 내어 머리카락을 깎고 옷을 바꿔 입고는 신자(臣子)의 문을 벗어나 승니(僧尼)의 집으로 들어간다.
우뚝 선 채로 임금을 배알하고, 앉은 채로 무릎 아래로 내려다보니, 참으로 불충불효(不忠不孝)하면서도 사찰이나 떡 벌어지게 짓는다.
부처는 서역에 있어 말도 이상스러운데다 가는 길도 멀기만 한데, 부모도 버리고 재산도 마다하면서, 장년(壯年)을 높이고 노년(老年)을 무시하며, 부강한 사람을 중시하고 약한 사람을 경시하며, 소년(少年)을 애호하고 기년(耆年)을 천대하면서, 광대 짓으로 예능(藝能)을 삼고 속임수로 종지(宗旨)를 삼는지라, 참으로 부처는 일성(一姓)의 집안 귀신이다.
귀신이 되었다면 다른 씨족을 겸할 수 없는 법인데, 어찌 살아 있는 남자를 죽은 오랑캐에게 주겠는가?
이곳의 명주(明珠)를 업신여기면서 저곳의 물고기 눈깔을 존중하여, 부친[嚴父]을 버리고 다른 이를 모시는데, 어찌 열 개의 진흙 오랑캐상을 꿇어 앉혀 경상(卿相)을 삼고, 한 소쿠리 식은 밥을 올려 제왕으로 대우할 수 있는가?
부처의 사설(邪說)에 따르면 인정에 가깝지 않게 될지니, 부처가 우스꽝스럽게 큰소리를 쳐도 전맹(旃孟)에 미치지 못하고 사치스럽게 조성하는 것이 죄가 걸주(桀紂)보다 크기에, 집안에 들이면 집안이 망하고, 나라에 들이면 나라가 망한다“고 하였으나,
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체로 출가(出家)라는 것은, 안으로는 부모와 처자를 하직하고 밖으로는 관직과 영화를 버려서, 위없는 보리(菩提)를 구하며 생사의 고해를 벗어나고자 원(願)을 세우는 것입니다.
조종(朝宗)의 복식을 벗고 복전(福田)의 가사를 입는 이유도, 도를 행하여 사은(四恩)에 보답하고 덕을 세워 삼유(三有)를 이롭게 하려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그 큰 뜻이라 하겠습니다.
또 부처님을 오랑캐 귀신이라 욕하고 스님들을 대머리라 욕하는 말도, 공자와 노자의 경서에 따르면, 한나라와 위나라 이래 내외의 사적에 대략이나마 부처님을 스승으로 존중하고 있음을 존중하는 글이 다음과 같으니,
이로써 이 삿된 인간에 대한 답변을 대신하는데, 저 부혁은 엎드려 지은 죄를 빌어야 할 것입니다.
『도사법륜경(道士法輪經)』에는,
“만약 사문(沙門)을 만나면 무량(無量)을 생각하고, 일찌감치 출가하여 진불(眞佛)을 배우기를 원을 세우라”고 하였고, 다시
“만약 불도(佛圖)를 보거든 무량을 생각하고, 일체 중생이 법문(法門)에 널리 섭입되도록 원을 세우라”는 대목이 출전됩니다.
『태상청정소마보진안지지혜본원대계상품경(太上淸淨消魔寶眞安志智慧本願大戒上品經)』에도 49원(願)에는,
“만약 사문니(沙門尼)를 만나거든, 일체법을 밝게 깨우쳐 도를 얻는 것이 부처님과 같게 되도록 원을 세우라”는 대목이 출전됩니다.
『노자승현경(老子昇玄經)』에도,
“천존(天尊)이 도릉(道陵)에게 고하되, 동방에 가서 부처님을 친견하고 법을 받으라”고 하였고,
도사 장릉(張陵)의 『별전(別傳)』에도
“능이 곡명산(鵠鳴山)에 있으면서, 금상(金像)을 공양하며 불경을 되풀이하여 읽었다”는 대목이 출전됩니다.
다시 『승현경』에는,
“동방여래(東方如來)께서 선승대사(善勝大士)를 태상(太上)에게 보내어 말하기를
‘그대가 장릉에게 설법하는 것을 여래께서 들으시고, 나를 보내어 그대를 만나 보게 하셨다’고 말하면서,
장릉에게
‘너는 나를 따라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가자꾸나. 네가 일찍이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할 것이고, 듣지 못한 것을 듣게 할 것이다’라고 권했다.
이에 장릉이 대사에게 예배하고 대사를 따라 부처님 계신 곳을 찾아갔다”는 대목이 출전됩니다.
『노자서승경』에는,
“내 스승이 천축에서 교화하시다가, 니원으로 잘 들어가셨다”는 대목이 출전됩니다.
『지혜관신대계경(智慧觀身大戒經)』에는,
“도를 배우려면 마땅히 대범천(大梵天)의 유영궁(流影宮)으로 가서 부처님을 예배해야 한다”는 대목이 출전됩니다.
『승현경』에는
“만약 사문이 찾아와 경을 듣고 재법(齋法)을 보고자 하면, 공양주는 음식을 마련하는 비용만을 따져서 그 참관을 제지해서는 안 된다. 마땅히 상석에 모시고 도사(道士)나 경사(經師)는 그 아래에 앉으라”는 대목이 출전됩니다.
『승현경』에는 다시금,
“도사가 재(齋)를 지내 공양하는데, 만약 비구가 찾아오면, 상석에 모시고 공양을 잘 마련해 드리고 도사나 경사는 아랫자리에 앉으라.
만약 비구니가 찾아와 법을 듣고자 하면, 가려진 곳에다 모시고 상석으로 예우하면서 공양주(供養主)는 여법하게 공양해야 하니, 이를 제지해서는 안 된다”는 대목이 출전됩니다.
『화호경(化胡經)』에도,
“우담바라 꽃 꺾기를 원하옵고, 전단향 사르기를 원하오니, 천 불의 금색신(金色身)을 공양하면서 정광(定光)부처님께 고개 숙여 예배드립니다”라고 하였으며, 다시
“부처님께서는 어찌 이리도 늦게 오셨으며, 어찌 이리도 일찍 열반에 드셨는가?
석가문불(釋迦文佛)을 뵙지 못하니, 마음이 울적하구나.”라는 대목이 출전됩니다.
[구본(舊本)에는 “내가 태어난 것이 어찌 이리 늦었으며, 부처님께서는 어찌 이리도 일찍 가셨는가”로 되어 있다.]
『영보소마안지경(靈寶消魔安志經)』에는,
“도는 재계(齋戒)를 우선하되, 부지런히 닦아서 부처를 이룰지니
[신본(新本)에는 ”부지런히 닦아서 금궐(金闕)에 들지니”로 개작되었다,]
이렇게 대법교(大法橋)를 이룩하여 사람들을 널리 제도하라”는 대목이 출전됩니다.
『노자대권보살경(老子大權菩薩經)』에는,
“노자는 가섭(迦葉)보살이 진단(震旦)에 화현하신 것이다”라는 대목이 출전됩니다.
『영보법륜경(靈寶法輪經)』에는,
“갈선공(葛仙公)이 태어나 며칠이 지나자,
외국의 사문이 찾아와 갈선공을 보고서 두 손을 모으고 선공의 부모에게
‘이 아이는 서방의 선사(善思)보살이신데, 지금 한나라 땅에 오신 것은 중생을 교화하고자 함이니, 선도(仙道)에 노닐다 백일승천(白日昇天)하리라’고 말했다.
선공이 제자들에게
‘내 스승의 성씨는 파열(波閱)이신데, 종자(宗字)는 유나가(維那訶)로 서역 사람이시다’라고 말했다”는 대목이 출전됩니다.
『선인청문중성난경(仙人請問衆聖難經)』에는,
“갈선공이 제자에게 말하기를,
‘내가 예전에 석도미(釋道微)ㆍ축법개(竺法開)ㆍ장태(張太)ㆍ정사원(鄭思遠) 등 네 사람과 동시에 원을 세웠는데, 도미와 법개 두 사람은 사문이 되겠다고 원을 세웠고 장태와 정사원 두 사람은 도사가 되겠다고 원을 세웠다’”는 대목이 출전됩니다.
『선공기거주(仙公起居注)』에도,
“갈상서(葛尙書)의 집에 태어났는데, 상서의 나이가 이미 여든을 넘었으나, 이때 처음으로 아들을 보았다.
이때 어떤 사문이 천축의 스님이라 자칭하면서 저잣거리에서 향을 샀다.
상인이 의아해 하며 연유를 묻자,
스님이
‘내가 어젯밤 꿈에 선사보살이 갈상서 집에 태어나는 것을 보았으니, 내가 이 향으로 목욕시키려 한다’고 대답했다.
태어나는 때가 되자, 이 스님이 찾아가서 향을 사르고 오른쪽으로 일곱 번을 돌고 나서 목욕시키고 가 버렸다”는 대목이 출전됩니다.
『선공청문상품경』에는,
“사문과 도사는 말과 뜻을 도에 둔다”는 대목이 출전됩니다.
『상품대계경(上品大戒經)』의 「교량공덕품(校量功德品)」에는,
“불탑(佛塔)에 시주하면 천 배의 과보를 얻고 사문에게 보시하면 백배의 과보를 받는다”는 대목이 출전됩니다.
『승현내교경(昇玄內敎經)』에는,
“혹 어떤 이가 평상시에는 복을 짓지 않다가, 사문과 도사가 설법하여 권선(勸善)하는 것을 보고서야 생각지도 않던 것을 깨우치게 된다”는 대목이 출전됩니다.
『지혜본원대계상품경(智慧本願大戒上品經)』에는,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음식을 보시하고 불탑과 사찰에 한 푼을 보시하더라도 모두 2만 4천 배의 보답이 있으니, 공덕이 많을수록 과보도 늘어나서 세세생생 현명해지고 경사가 끊이지 않으며, 7대 조상까지 모두 무량불국토(無量佛國土)에 들어간다”는 대목이 출전됩니다.
『선공청문경』 하권에는,
“다시 범부가 이 같은 공덕을 지으면서 사문이나 도사가 되기를 원할 경우, 대박(大博) 이후에 태어나면 사문이 될지니, 불경을 크게 공부하여 마침내 대중 가운데의 법사가 될 것이다.
다시 어떤 이가 사문과 도사가 재정(齋靜)하고 독경하는 것을 보고 이를 비웃으면서,
‘저들이 허공에 대고 경을 읊조리는데, 이는 대체 무엇을 바라고자 함인가? 하루에 한 번 먹으니 배가 몹시 고프긴 고프리라’고 욕하는 때에,
이 같은 죄인에게 도사가 자비심을 내어 타일러도 고집부리고 뉘우치지 않는다면,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 다섯 가지 고통을 겪을 것이다”라는 대목이 출전됩니다.
『선공청문경』에는,
“고상노자(高上老子)가 말하기를,
‘상고시대에는 인민이 순박하여 각기 도덕에 뜻을 두었으니, 마음을 비워 현적(玄寂)하게 하고서 무위(無爲)를 일로 삼았다.
그러나 이 같은 풍화가 흩어져서 백 갈래 다툼이 구름처럼 일어나고 만 갈래 유파로 갈라지니, 간신과 공신이 서로를 치고 바보와 현인이 서로를 능멸하고 귀신이 위세를 떨치는지라 중성(衆聖)이 출현하여 교화를 이루는 것도, 오로지 백성이 선(善)을 닦아 본분을 지키게 하고자 함이다.
이로써 오경(五經)이 있으니, 유가(儒家)의 속업(俗業)에다 도가와 불가가 각각 그 가르침을 더하여 선으로 돌이킨 것이다”라는 대목이 출전됩니다.
『태상령보통현진일권계법륜묘경(太上靈寶洞玄眞一勸誡法輪妙經)』에는,
“내가 여러 대(代)의 하늘을 살펴보니, 수없는 겁 이래로 여러 도사ㆍ백성ㆍ남녀가 무상정진(無上正眞)의 도(道)를 얻는 것을 보았다.
고선(高仙)ㆍ진인(眞人)은 자연(自然)히 시방의 부처가 되었는데 모두 전생에 근수(勤修)하는 고통을 받으면서 도를 구한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다”는 대목이 출전됩니다.
『법륜묘경』에는,
“도(道)의 말씀에 하늘은 윤회하여 멸하지 않고 다시 환생(還生)하여 인간 가운데 태어나는데 대지혜(大智慧)와 명달(明達)을 얻는 이는 수없는 겁으로부터 배워서 진인이 된다. 고선(高仙)으로 자연히 시방의 부처가 된 자는 행업(行業)의 소치가 아님이 없으니, 몸을 제어하고, 뜻을 안정하고, 좌선을 통하여 현미(玄微)함을 생각했기 때문이다”는 대목이 출전됩니다.
이상 기록된 것은 도가의 경전에 보이는, 부처님을 스승으로 받드는 문장들로 앞서와 같습니다.
『주서이기(周書異記)』에는,
“주나라 소왕(昭王)이 즉위한 지 24년째인 갑인년(甲寅年) 4월 8일에 강물과 연못이 갑자기 늘어나고 우물물이 모두 넘쳐흘렀다. 궁전과 입사(入舍) 및 산천대지가 모두 진동하고 밤중에는 오색 빗줄기가 태미성(太微星)을 꿰뚫었고 서쪽이 온통 청홍색으로 물들었다.
소왕이 태사(太史) 소유(蘇由)에게
‘이는 무슨 길조인가’ 하고 묻자,
소유가
‘대성인이 서방에 태어나셨기에 이 같은 서응이 나툰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소왕이 ‘앞으로 천하가 어찌 되겠는가’ 하고 묻자,
소유가
‘지금은 별다른 것이 없으나, 천여 년 후에 그 성교(聲敎)가 이 땅까지 미칠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는데,
이에 소왕이 바로 사람을 시켜 돌에다 새기고 남교(南郊)의 천사(天祠) 앞에 묻었으니, 이때가 부처님께서 처음 왕궁에 태어나신 때이다.
또 목왕이 즉위한 지 32년째에 서방에 몇 갈래 빛줄기가 비추는 것을 보았는데, 예전에 소유가 한 말을 이미 들었기에 바로 서방에서 성인이 세상에 나신 것을 알았다.
그러나 목왕이 이치를 몰랐기에 주나라의 도가 아니라고 여기고, 상국(相國) 여후(呂侯)를 서쪽으로 보내 도산(塗山)에서 제후와 회맹(會盟)케 하여 광변(光變)으로 처리하였는데, 이때가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래 계셨을 때이다.
또 목왕 52년 임신년(壬申年) 2월 15일 새벽에 폭풍이 휘몰아쳐 집을 무너뜨리고 나무를 부러뜨리면서 산천대지가 모두 진동하였는데, 오후가 되자 하늘에 검은 구름이 몰려들면서 서쪽으로 흰 무지개 열두 갈래가 남북으로 걸쳐 있으면서 밤이 되도록 없어지지 않았다.
이에 목왕이 태사 호다(扈多)에게
‘이는 무슨 징조인가’ 하고 묻자,
호다가
‘서방의 성인이 멸도하셨기에, 이제 쇠상(衰相)을 나툰 것입니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목왕이 크게 기뻐하며
‘짐이 저 이를 늘 두려워했는데, 이제 멸도(滅度)하였다니, 짐이 이제 무엇을 근심하리오’라 말했는데,
이때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무렵이다“라는 대목이 출전됩니다.
『사록(史錄)』에는,
“상태제(商太帝) 비(嚭)가 공자에게
‘도대체 누가 성인인가’ 하고 묻자,
공자가
‘서방에 성인이 계신데, 다스리지 않아도 어지럽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믿고 교화하지 않아도 저절로 행하기에, 너무나 위대해서 백성이 무어라 이름붙이지도 못한다’고 대답하였다”는 대목이 출전됩니다.
이상의 기록은 공자의 책에 보이는 부처님을 찬양하는 문장들로 앞서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