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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미증유인연경 하권
[5계와 술 이야기]
그때 모임 가운데 한 태자가 있었으니 기타(祇陀)라 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10선도법(善道法)의 인연ㆍ과보가 다함이 없는 것을 듣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세존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예전에 저로 하여금 다섯 가지 계[五戒]를 받게 하시었는데, 이제는 버리고 10선법계를 받고자 하나이다.
무슨 까닭인가?
다섯 가지 계 가운데는 술[酒]의 계율이 지니기 어려워서 죄를 얻을까 두려운 때문이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술을 마실 때 어떤 악을 지었는가?”
기타가 대답하였다.
“나라 안의 호걸들과 때때로 모여서 술과 밥을 가지고 서로 즐겨 화목을 이룩했으니 죄가 될 것은 없었나이다.
무슨 까닭인가?
술을 만나면 계율을 생각하여 방탕하지 않았으니, 그러므로 술을 마시되 악을 저지르지는 않았나이다.”
[유루의 선과 무류의 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말이다. 좋은 말이야, 그대는 이미 지혜ㆍ방편을 얻었도다.
만일 세상 사람들이 모두 너와 같다면 평생 술을 마신들 무슨 죄가 있겠느냐?
이렇게 행동하면 복이 생길지언정 죄가 되지 않느니라.
대체로 사람이 선을 실천하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유루(有漏)고,
둘째는 무루(無漏)이니라.
유루의 선[有漏善]이란 항상 인간이나 천상의 쾌락한 과보를 받게 하고,
무루의 선[無漏善]이란 나고 죽는 괴로움을 건너서 열반에 이르는 과보를 부르느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술을 마시고도 나쁜 업을 일으키지 않고, 기꺼운 마음 때문에 번뇌를 일으키지 않으면 이 착한 마음의 인연으로 착한 과보를 받느니라.
그대가 다섯 가지 계를 지니는데 무슨 손해가 있겠는가?
술을 마시면서 계율을 생각하면 그 복이 더하리니, 먼저 다섯 가지 계를 지니고 이제 10선을 받으면 공덕은 10선의 곱이나 뛰어날 것이니라.”
그때 바사닉왕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마음이 즐거워서 나쁜 업을 짓지 않는 것이 유루의 선이라 하심은 옳지 않은가 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사람이 술을 마실 때에는 마음이 즐겁고,
마음이 즐겁기 때문에 번뇌를 일으키지 않으며,
번뇌가 없기 때문에 해치는 일을 하지 않고,
물건을 해치지 않기 때문에 세 가지 업이 맑고 깨끗하니,
맑고 깨끗한 도는 곧 무루의 업이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생각하옵건대 지난날 제가 사냥을 떠나면서 주방 책임자[厨宰]를 데리고 가기를 잊었었나이다.
깊은 산에서 시장기가 들어 무엇을 먹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말하기를
‘왕께서 아침에 떠나실 때 주방 책임자를 데리고 가자 명령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잡수실 것이 없나이다’라고 하기에
제가 이 말을 듣고 말을 달려 궁으로 돌아가서
‘먹을 것을 찾으라’고 명령하니,
궁내의 주방 감독으로 수가라(修迦羅)라 하는 사람이 있는데,
수가라가 대답하기를
‘당장 잡수실 것이 없으니, 지금 바로 짓겠나이다’라고 하였나이다.
제가 시장함에 쪼들려 분한 마음이 나서 앞뒤를 생각지 않고 한바탕 성을 내어 곁에 신하에게 명령하여 주방 감독을 죽이라 하였나이다.
신하들은 저의 명령을 받고 서로 상의하되
‘온 나라를 통틀어도 오직 이 한 사람만이 충성되고 곧으며 어질게 일을 보거늘 이제 죽이시면 다시는 능히 왕의 뜻에 맞게 하는 주방 감독이 없으리라’ 하였나이다.
그때 말리(末利) 부인이 제가 수가라를 죽이라고 명령한 소식을 듣고 매우 애석하게 여기고, 이어 제가 몹시 시장한 것을 알았나이다. 곧
‘좋은 고기와 아름다운 술을 장만하라’고 명령하고
목욕하고 좋은 향을 발라 그 몸을 잘 꾸민 뒤에 모든 궁녀들을 거느리고 저에게로 왔었나이다.
저는 부인이 장엄하고 화려하게 단장하고 모든 궁녀들을 거느린 채 좋은 술과 고기를 가져온 것을 보고 성내는 마음이 곧 사라졌나이다.
무슨 까닭인가?
말리 부인은 부처님의 다섯 가지 계를 지니어 술을 끊고 마시지 않아 제가 항상 아쉬워하던 터였는데, 그날따라 홀연히 술과 고기를 가지고 와서 서로 같이 즐기고 묵은 정을 풀고자 했기 때문이옵니다.
곧 부인과 함께 술을 마시고 고기를 씹으며 여러 가지 풍류를 잡혀 기뻐하고 즐기니, 성냈던 마음이 곧 풀렸나이다.
부인은 제가 성내던 마음이 풀어진 것을 알자 곧 내시[黃門]를 보내어 저의 명령이라 전하면서 밖의 신하에게 수가라를 죽이지 말라 하였더니, 곧 명령은 받들어 시행되었나이다.
제가 다음 날 아침에는 깊이 뉘우치고 근심에 잠겨 즐거워하지 않고, 얼굴이 초췌하였더니
부인이 저에게 물었나이다.
‘무엇 때문에 근심을 하시나이까? 어디가 불편하시옵니까?’
‘내가 어제 굶주림에 쪼들리고 울화가 터져 성내는 마음 때문에 수가라를 죽였구려.
아무리 헤아려 보아도 나라 안에 다시는 수가라만큼 나의 주방을 감독할 이가 없으니 그 때문에 뉘우치고 한탄하고 있소.’
부인이 웃으며 말하였나이다.
‘그 사람은 아직 살아 있으니, 원컨대 왕은 근심치 마옵소서.’
제가 거듭 물었나이다.
‘실제로 그러하오? 아니면, 웃음의 말이요?’
부인이 대답하였나이다.
‘실제로 살아 있사옵고, 빈 말이 아니옵니다.’
그래서 제가 사자를 보내 주방 감독을 데려오게 하니, 사자가 가서 부르자 잠깐 사이에 데려왔나이다. 저는 크게 기뻐하며 근심 걱정이 모두 없어졌나이다.”
[계를 어기는 것과 선행의 과보]
왕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말리 부인은 부처님의 다섯 가지 계를 지니며 달마다 6재(齋)를 수행하다가 하루 사이에 평생 지녀야 할 다섯 가지 계에서 술 마시는 계와 거짓말하는 두 계를 어기었고, 8재계(齋戒) 가운데서 여섯 계를 몽땅 범하였으니, 이 일은 어떠하옵니까?
계를 범한 죄가 가볍습니까, 무겁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그렇게 계를 어긴 것은 큰 공덕을 얻을지언정 죄가 되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이롭기 때문이니, 내가 앞에 말한 것과 같으니라.
대개 사람이 선을 닦은 데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유루의 선이고,
둘째는 무루의 선이니라.
말리 부인이 계를 어긴 것은 유루의 선행에 들어가는 것이고,
계율을 어기지 않는 것은 무루의 선행에 들어가는 선행이니라.
말의 뜻에 따르는 사람은 계를 어기고 선행을 닦으니, 유루의 선이라 하느니라.
뜻의 말에 따르는 사람은 무릇 마음에 일어나는 선을 모두 닦으니 무루의 업이니라.”
[왕이 술의 공덕을 말하다]
왕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말리 부인이 술의 계를 깨뜨려도 악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공덕이 생기고 죄보가 없다면 모든 인민도 전부 그러하옵니까?
무슨 까닭인가?
제가 생각하오니 머지않은 옛날 사위성 안에 있던 모든 호걸의 족성과 찰제리[刹帝利] 왕공들이 작은 일로 인해 시비가 붙었다가 마침내 큰 원수를 맺었나이다.
제각기 꾀를 짜내어 군사를 일으켜 공격하려 하니, 양쪽이 모두 나라 안의 호걸들인데다가 더욱이 친척 사이여서 차마 무기를 들지는 못하고, 시비가 분분하여 화해하는 말도 듣지 않으니 깊이 근심이 되었나이다.
다시 생각하니 옛날 태자로 있을 때 제위라(提違羅)라는 선왕(先王)의 대신이 있었는데, 자기의 문벌이 부귀하고 강한 것을 믿고 경솔하고 거만하게 굴며 하는 행동마다 희롱조여서 축생보다도 더 심하였나이다.
그때 분통이 터져 감정과 진실을 분별치 못하고 죽이고자 하였으나 힘이 미치지 못하여 부왕에게 호소하였지만, 또 도움을 받지 못하여 독기와 한탄만 품고 어찌할 바를 몰랐나이다.
그 까닭으로 음식이 줄고 근심으로 초췌해지더니, 그때 태후(太后:어머니)께서 저의 근심과 괴로움을 보시고 여러 가지로 타이르시었지만, 근심은 여전히 그치지 않았나이다.
그때 태후께서 자식을 사랑하는 정이 지극하셔서 사자를 보내 좋은 술을 구해다가 저에게 마시라 하였나이다. 저는 어머님께 말하였나이다.
‘조상 때부터 나라연(那羅延) 하늘을 섬기고 바라문을 받들었거늘 지금 만약 술을 마시면 하늘의 노여움을 받거나 바라문에게 벌책을 받을까 두렵습니다.’
태후께서는 자식이 치명상이라도 입을까 두려워하여 밤이 깊었을 때 궁전의 문을 굳게 닫아걸고 다른 사람, 즉 내시나 남종ㆍ여종들이 알지 못하게 한 뒤 저에게 말씀하셨나이다.
‘대체로 천신이란, 자비하신 마음이 있어서 온갖 괴로움을 구제하시니 바라문도 모두 이러할 것이니라.
네가 지금 근심에 지쳐 헛되이 자기의 생명을 잃으니 천신인들 어찌 너의 목숨을 구하겠느냐?
차라리 약을 먹어 근심을 흩어 버리고 몸과 목숨을 온전히 해야 할 것이니라.
모든 바라문이 천안통(天眼通)을 얻지 못하였으니, 어찌 네가 비밀스럽게 한 일을 알겠느냐?’
굳이 두세 차례 권하시기에 이럭저럭 권고에 따라 술을 마시고 근심을 잊었나이다.
태후는 아들의 안색이 회복된 것을 보시고 기뻐하시며, 곧 궁녀들을 불러 풍류와 광대를 잡히고 3ㆍ7일 동안 5욕락을 받게 하시니, 분하고 한스러운 일이 차츰 뜻대로 되어 마음에서 사라져버렸나이다.
이 일을 기억하고는 곧 충신들에게 명령하여 좋은 술과 맛있는 안주를 장만하게 하고, 한편 나라 안의 호화로운 족성과 뭇 신하와 백성들에게 명령을 전하여, 나라의 큰일에 대해 의논할 게 있으니 모두 모이라 하였나이다.
모든 신하가 다투어 모여, 양쪽의 권속이 각각 5백 명씩이나 부름에 응하여 왔으므로 왕좌(王座) 앞에 큰 음악을 장만하고, 충신들에게 명령하여 석 되 가량씩 드는 유리 술잔을 준비하도록 하였나이다.
모든 보배 술잔에 좋은 술을 가득가득 따르게 하고 제가 여러 사람 앞에서 먼저 한 잔을 마시고 말하기를,
‘이제 나라의 큰일을 의논하는데 여기에 앉은 여러분은 이의(異議)가 없을 줄로 생각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제각기 이 한 잔의 감로양약(甘露良藥)을 마신 뒤에 일을 의논하는 것이 어떠하오?’ 하니,
모두 ‘지당하시옵니다. 대왕의 명령을 받드오리다’ 하였사옵니다.
아울러 음악관[伎官]에 명하여 큰 풍악을 연주하게 하니 모든 사람이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듣더니 마음이 흐뭇해져서 원수도 모두 잊고, 패연(沛然)히 근심이 없어졌나이다.
저는 다시 잔을 들며 모든 대신에게 말하였나이다.
‘사대부가 덕을 닦아 여러 세상을 계승하면서 성인의 가르침을 받들어 시행하는데 어긋나지 말게 할 것이거늘 경들은 어찌하여 작은 일로 인해 이토록 분쟁을 하는 것이요?
만일 참지 못하면 나라의 앞날을 그르칠까 두려워 다시 권유하니, 부디 다투는 일을 멈추기 바라오.’
모든 신하들은 말하기를,
‘삼가 소중하신 분부를 좇아 어기지 않겠나이다.’하니,
이후로 나라가 화평하게 되었나이다.”
왕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모든 사람이 분쟁을 일으킨 것은 술 때문이 아니고, 오히려 술로 인해 분쟁의 마음을 쉬고 태평을 찾았으니, 이 어찌 술의 공로가 아니겠나이까?
또 세존이시여, 세간의 빈궁한 소인들과 노비와 객사(客使)와 남ㆍ북의 오랑캐를 보니, 명절 같은 날에 술집에 모여서 술을 마시면 즐거운 마음 때문에 남이 시키지 않아도 제각기 일어나 춤을 추거니와 술이 없을 때에는 도무지 이러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알겠으니, 사람은 술을 마심으로써 즐거워지고 마음이 즐거울 때는 악한 마음[惡念]을 내지 않으며, 악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그것이 착한 마음이고, 착한 마음 때문에 응당 착한 과보를 받는가 하옵니다.
또 세존이시여, 원숭이가 술을 마셔도 춤을 추거늘 하물며 세상 사람이야 어떻겠나이까?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을 베풀면 착한 과보가 있고, 악을 베풀면 나쁜 과보가 있다 하시니, 세간 사람들이 전생에 보시하고 복덕을 지은 인연으로 이제 큰 부자가 되었거니와,
가난한 이는 얻기만 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남에게 주지 않은 까닭에 간탐한 인연으로 아귀의 과보를 받는다고 하시었나이다.
세상에 어떤 남자거나 여자이거나 단정한 몸을 받았거든 남자가 좋으면 여자에게 사랑을 받고 여자가 예쁘면 남자들이 즐거워하거늘,
만일 강력한 이가 이들 남녀를 제재하여 만나지 못하게 끊으면, 만나지 못하는 까닭에 근심과 괴로움을 이룰 것이니 이러한 죄는 어디로 돌아가겠나이까?
말리 부인도 전생에 좋은 것으로 남에게 베풀었기 때문에 이제 좋은 과보[好報]를 받았거늘
세존께서는 어찌하여 다섯 가지 계를 지니도록 하시고,
달마다 6재를 행하게 하시면서 재일(齋日)에는 향기롭고 화려한 의복을 입지 말고,
광대와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지 말며, 남편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가까이 말라 하시니,
마침내 무엇으로 보시하겠나이까?
헛되이 그 공력만 없애는 것이니 어찌 괴로움이 아니겠습니까?”
[계율과 지혜의 공덕]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의 힐난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말리 부인이 젊었을 때 만일 내가 ‘계율을 받아 지혜를 닦으리라’ 명령하지 않았던들 어찌 오늘의 덕이 있었겠는가?
자신이 능히 제도를 얻고 다시 왕의 몸을 제도하니, 이러한 공덕은 누구에게 돌리겠는가?
말리 부인이 나의 가르침을 받은 까닭에 말대로 수행하여 오늘과 같이 지혜를 성취하고 방편 해탈을 성취하였느니라.
또 대왕이여, 비유하자면 세상 사람이 한 아들을 두었는데 성공하도록 하려고 어릴 때부터 서당에 데리고 가서 스승에게 문예와 서한과 인간의 예의와 학당의 법규를 배우게 하노라.
모두 절제가 있으며 꾸짖고 매질하여 음식을 금하고 조절하며, 잠을 적게 재우고, 나아가고 들어감에 절도를 잃지 않게 하며, 어긴 것이 있으면 죄의 경중에 따라 벌을 주는 것이니,
아이는 매가 무섭기 때문에 전심으로 배움에 힘쓰다가 나이가 많아지고 학문이 높아지면 다시 제가 아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느니라.
말리 부인이 재계와 지계를 받드는 것도 그러하니라.
또 대왕이여, 부루나(富樓那) 같은 이는 질투심 때문에 은인과 애정을 끊고 부모와 처자를 떠나 산에 들어 학문을 익히는데,
풀잎으로 옷을 삼고 추위와 괴로움을 참으면서 맹세하기를
‘반드시 96종의 경전을 모두 외우고 통달하리라. 그렇지 않으면 돌아가서 부모를 뵙지 않으리라’ 하더니
20년을 채워 일체를 통탈하고 왕사성(王舍城)으로 돌아갔느니라.
머리에는 횃불을 이고 구리쇠로 배를 싸매고 한길을 다니면서 외치기를
자기가 일체를 아는 지혜를 가졌다고 하더니
나에게 와서 호통을 쳤느니라.
‘너 구담(瞿曇) 사문아, 무엇을 안단 말이냐?’
나는 말하였느니라.
‘이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러고 나서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비록 얼마쯤 들은 것이 있어도
스스로 크다 하면서 남에게 교만하면
이것은 맹인이 촛불을 들고 가지만
남은 비추어도 자기는 어두운 것이로다.
그때 부루나가 이 말을 듣고 잠깐 사이에 마음을 깨쳐, 횃불을 버리고 배를 풀고 엎드려 절하며 잘못을 참회하였으니, 모두 다문(多聞)의 지혜와 모든 감관이 총명한 까닭이니라.
일어나기 전에 삼계의 모든 번뇌[漏]를 끊고 아라한을 이루니 모두 지혜의 힘이니라.
비유하자면 코끼리를 길들이면 갈고리를 따라 움직이는 것과 같으니, 대왕이여, 마땅히 아시오.
학문을 익히는 이는 모두가 다섯 감관을 금지하고 제재하며 조섭한 연후에야 걸림 없이 통달하는 것이니, 이를 걸림이 없는 지혜[無礙智]라 하느니라.
걸림이 없는 지혜란 네 가지 말재주[四辯才]를 갖추니, 지금의 부루나가 네 가지 말재주를 갖춘 것도 모두 괴로움을 참고 배우기를 힘써서 얻은 것이니라.
[지혜로 아는 일곱 가지 덕스러운 재주]
그러므로 나는 지혜로 아는 데는 일곱 가지 덕스러운 재주[七德才]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니,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첫째는 믿음의 재주[信才]고,
둘째는 정진의 재주[精進才]며,
셋째는 계의 재주[戒才]고,
넷째는 부끄러움의 재주[慚愧才]며,
다섯째는 들음의 재주[聞才]고,
여섯째는 버림의 재주[捨才]며,
일곱째는 정혜의 재주[定慧才]이니,
이것을 일곱 가지 재주라 하느니라.
말리 부인은 이 일곱 가지 재주를 갖추었으니, 대왕이여 아시오. 말리 부인은 비록 여자의 몸을 받았어도 재주가 높고 지혜가 넓어서 보통 사람과 다르니, 모두 젊을 때부터 몸ㆍ말ㆍ뜻을 삼가고 한마음을 오롯이 하여 지혜를 닦은 탓이니라. 지혜의 힘으로 해탈하고, 다시 지혜로써 천하를 깨우쳐 주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라후라 사미를 통해 모든 대중에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들음[聞]은 용을 먹는 금익조(金翼鳥) 같아서
위세(威勢)와 무력이 강하고
들음은 움직이는 보배창고이어서
간 곳마다 이롭게 하여 주느니라.
들음은 커다란 교량(橋梁)이어서
여러 가지 괴로움을 건너 주고
들음은 큰 배의 사공이어서
나고 죽는 바다를 건네주느니라.
많이 들어 의지가 밝아지면
밝음으로 지혜는 더하여지고
지혜는 아는 뜻을 넓게 하여서
듣고 보며 법을 실천해 편안하느니라.
다문(多聞)은 넉넉히 근심 없애고
선정으로 기쁨을 삼게도 하며
감로법을 분명하게 알게 하나니
이로부터 열반을 얻게 되리라.
들음은 율법을 알게 하여서
의심을 풀고 바른 소견을 얻게 하나니
들음으로 인하여 그릇된 법을 버리고
수행하여 죽음이 없는 곳에 이르리라.
선인들이 들음을 공경히 섬기고
모든 하늘이 또다시 그렇게 하여
마음에 만족하고 방일치 않으면
들음을 쌓아서 성인의 지혜를 이루리라.
지혜는 넉넉히 근심을 흩으며
그릇되고 사악한 것도 없애 버리니
편안하고 길한 것을 구하려 하면
반드시 밝은 사람을 섬길지니라.
맹인이 이로부터 눈을 얻고
어둠 속에서 촛불을 얻은 것과 같으니
세상 사람을 깨우쳐 인도해 주되
눈 밝은 이가 맹인을 이끌 듯하리라.
때문에 반드시 어리석음을 버리고
거만과 호사와 부귀에서 떠나
배움에 힘쓰며 밝은 사람을 섬기면
이것이 공덕을 쌓는 것이니라.
[반야 지혜의 네 가지 뜻]
그때 세존께서 이 게송을 말씀하시고 다시 왕에게 이르셨다.
“왕이 지금 복덕을 받고 총명하며 널리 아는 것은 모두 전생에 밝은 스승을 가까이 섬기면서 괴로움을 참고 시봉하면서 학문을 익힌 때문이니라.
그러한 인연으로 받은 과보가 이제 인간의 왕이 되어 지혜가 밝아 사해(四海)를 다스리니 세간에 드문 바이니라.
그러므로 나는 반야 지혜에 네 가지 뜻이 있다 하느니, 마땅히 알라.
3승을 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반야를 배울 것이고, 애써 세 가지 악[三惡]과 여덟 가지 어려움[八難]을 여의고 인간이나 천상의 즐거움을 얻으려 할지니,
온갖 복덕을 구하려고 하면 모두 지혜ㆍ방편을 배우고 익히는데 앞에 내가 말한 것과 같이 할지니라.
아일다왕(阿逸多王)이 부지런히 학문을 익힌 지혜의 힘 때문에 비록 실수하여 나쁜 갈래[惡趣]에 태어났어도 항상 전생의 일을 알았고,
숙명을 아는 까닭에 악을 고치고 선을 닦아 속히 해탈을 얻었으며,
모든 하늘이 건져 내어 공양하는 일도 만났고,
지혜의 힘으로 모든 하늘의 스승이 되기도 하였으니,
이러한 까닭에 나는 반야에 네 가지 뜻이 있다 하노라.”
[유루ㆍ무루의 선과 두 가지 근기]
그때 바사닉왕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공덕ㆍ인연관ㆍ지혜ㆍ방편을 듣고 몹시 기뻐하였으며, 기타 태자와 황후와 대신과 서민이 모두 깨달음을 얻고 제각기 공경을 다하여 부처님께 예배하고 전과 같이 다시 앉았다,
왕이 합장하고 여쭈었다.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세상 사람이 선을 닦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유루의 선이고,
둘째는 무루의 선이나이다.
유루와 무루 두 가지의 뜻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세존께서 어찌하여 차별되게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두 가지 품류[二品]로 나누니,
첫째는 영리한 근기[利根]고,
둘째는 둔한 근기[鈍根]이니라.
둔한 사람을 위해서는 두 가지의 선을 말하고 영리한 사람을 위해서는 두 가지를 말하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모든 근원의 흐름이 마침내는 한 바다로 돌아가는데, 둔한 사람들은 모든 감관이 어둡고 막히었기 때문에 분별된 법을 말하여 주느니라.”
그때 국왕의 태자인 기타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10선법에는 차별이 있나이까? 아니면 뜻이 같사옵니까?
망어계(妄語戒)의 뜻은 하나이옵니까? 아니면 많습니까?
만일 한 뜻이라면 마침내 지니지 못할 것이고, 만일 차별된 것이라면 설명하여 주시옵소서.”
[무거운 거짓말과 가벼운 거짓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거짓말[妄語]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무거운 것이요
둘째는 가벼운 것이니라.
어떤 것이 무거운 것인가?
만일 계를 받은 사람이 지혜를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아 어리석고 지혜가 없으면 사람들을 교화하여 불법을 번성하게 하지 못할 것이니라. 이 까닭에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고 공양을 얻지 못하여 가난하고 곤궁해질 것이니라.
이들이 공양을 얻기 위해 겉으로는 정진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안으로는 사악하고 흐린 행동을 하면서도 열심히 여러 사람에게 선전하기를,
이 비구들은 애써 정진하여 선정의 경계를 얻었다 하거나 부처를 보았다고 하고, 귀신을 보거나 용을 보았다 하니 이러한 사람은 큰 거짓말을 저지르는 것으로, 이러한 죄를 저지르면 아비지옥에 떨어지느니라.
또 거짓말을 하여 사람을 죽이거나 남의 집안을 파괴하거나 거짓말을 하여 시기와 계약을 어겨 남에게 미움을 받으면 이런 것은 낮은 거짓말[下妄語]이니,
이렇게 행하는 사람은 계를 어겼다고 말하니, 작은 지옥에 떨어질 것이니라.
그 밖의 장난을 치거나 사사로운 이치로 숨겨야 할 일에 대하여, 있는 것은 없다 하고 없는 것을 있다 하는 정도는 계율을 어기는 것이 아니니라.”
기타 태자가 부처님께 이 말씀을 듣고 10선법을 받은 뒤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자가 오늘 의혹이 모두 없어지고 3보리심을 내었사오니 부처님께서는 증명하여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말이다. 대단히 기쁜 일이니 마땅히 때가 왔음을 알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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