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경_6. 신족행장(神足行章)
지혜가 맑으니 마음으로 들어옴이 물과 같고, 악을 깨뜨리니 나무가 종자와 꽃을 여읜 것과 같다.
세상을 건지는 즐거움과 그 공덕의 쌓임은 서늘한 바람을 즐거워할만하니 지나치지 않다.
스스로 한 마음에 귀의하노니, 어디에는 있고, 어디에는 없는가?
지(止)와 관(觀)의 뜻은 저울의 추와 같은 것이니, 경에서 들은 바의 지와 관을 이끌어 세간을 밝힌다.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여 삼계에 거룩하신 모든 님께 예경을 드린다.
어떤 때엔 행자가 먼저 지(止)에 머물다가 문득 관(觀)을 얻기도 하고,
어떤 때엔 행자가 지(止)를 얻기 위하여 관(觀)에 머물다가 먼저 지를 얻는다.
어떤 행자는 지(止)를 이미 얻고 다시 관(觀)을 쫓아 해탈을 얻으며,
어떤 행자는 관이 이미 구족한 뒤에 지를 쫓아 해탈을 얻는다.
지(止)와 관(觀)의 모습은 어떠한가?
만일 뜻을 한 인연에 두어 그치게 하고, 그친 뒤에는 움직이지 않으며, 미혹되어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이것이 지(止)의 모습이다.
만일 지처(止處)에서 치우친 분별의 치우침을 버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여 어떤 느낌이 있는 듯하면 이것이 관(觀)의 모습이다.
비유컨대 금을 사려는 이가 금을 보고서 시험해 보지 않고 알면, 이를 지(止)라 할 것이요,
만일 금을 가지고 시험해 본 뒤에 이 금은 어느 나라 어느 곳의 것이라거나 구리가 섞여 진짜가 아니라거나 돌인 줄 알거나 빛깔이 좋고 나쁨과 길고 짧고 둥글고 모남을 알거나 그 밖의 다른 병통(病通)을 살펴 안다면,
관(觀)이란 것도 비유하자면 이와 같다.
비유컨대 사람이 꼴[芻]을 벨 때 왼손은 꼴을 잡고 오른 손은 낫을 잡고서야 꼴을 베는 것과 같으니,
이 비유에서처럼 꼴을 잡는 것은 지(止)요, 꼴을 베는 것은 관(觀)이다.
비유컨대 마치 행자(行者)가 해골바가지를 만나 자세히 보고 나면 눈을 떠도 보이고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과 다름이 없음을 지(止)라 하고,
만일 자세히 분별하고 관찰하여 머리ㆍ턱ㆍ치아ㆍ목ㆍ팔ㆍ손ㆍ겨드랑이ㆍ목구멍ㆍ무릎ㆍ발의 뼈가 각기 다름을 안다면, 이것이 바로 관(觀)이다.
이와 같이 뼈가 이어졌으되 네 가지 인연으로 이루어졌음을 보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밥[食]과 예(禮)와 행(行)과 합(合)인데,
이 뼈들은 영원하지 않고 괴롭고 공(空)하고 내 몸이 아니니, 깨끗하지 못함을 좇아 생겨나 있는 바가 없다고 본다면, 이것이 관(觀)이다.
지와 관의 상(相)을 요구하여 들어서 분별하지 않으면 지(止)요, 분별하면 관(觀)이 된다.
지(止)에 뜻을 둔 행자(行者)는 어떤 행을 가지고 지의 뜻을 얻는가?
갖가지 인행(因行)으로 지의 뜻을 이루거니와
요점을 들어 말한다면 두 가지 인연의 방편으로 지의 뜻을 얻으니,
하나는 오로(惡露)를 생각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안반수의(安般守意)를 생각하는 것이다.
오로행(惡露行)은 무엇인가?
이것을 들은 행자는 평등한 뜻으로 모든 사람을 편안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는 곧바로 떠나서 부수(父樹: 墓地)에 이르러 문득 수행하되
죽은 지 하루 된 시체를 관하고, 나아가서는 7일 된 것, 부풀어 터진 것, 푸른빛이 나는 것, 희생물[盟獸]같이 된 것, 반쯤 파괴된 것, 살이 다 빠진 것, 피가 씻겨나간 것, 뼈와 뼈가 연이어진 것, 힘줄이 서로 얽힌 것, 백골이 된 것, 백골이 사방에 무수하게 흩어진 것, 손으로 부수어 마치 비둘기 빛깔 같은 것을 관한다.
그 행자가 자연스럽게 하나를 선택하여 뜻을 펼쳐 알게 하면, 오래지 않아 뜻이 지(止)에 집중되니, 뜻을 펼쳐진 곳에 있게 해서 자세하고도 익숙하게 관찰한다.
만일 스스로 지금 이 펼쳐진 곳에서 안다면 그 근처 다른 곳에서도 스스로 볼 것이요, 먼 곳에 있어도 보이는 바가 역시 이와 같을 것이다.
텅 빈 한 곳에 문득 똑바로 앉아도 문득 보기를 마치 펼쳐진 인연이 있는 곳에서 본 것과 똑같을 것이요, 어디에서도 보이고 때에 따름도 이와 같을 것이다.
문득 길을 떠나 소리 없는 곳이나 말씀이 없는 곳이나 사람이 없어 빈 어느 한 곳에 이르러 문득 반듯하게 앉으면 문득 위에서와 같이 오래 앉았던 곳을 보게 되니, 뜻으로 생각을 보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만일 행자가 펼쳐진 인연을 잃어서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뜻이 생기지 않거든,
문득 다시 부수(父樹)로 가서 펼쳐진 인연의 모습을 뜻으로 하여금 받아들이게 해서 뜻을 거기에 앉히고,
다시 떠나지 않겠다는 생각을 끌어내어 항상 눈앞에 있게 해야 한다.
만일 행자가 펼쳐진 인연에 뜻을 두었거든, 출입하거나 멀리 갔거나 항상 뜻을 지(止)에 두어 멀리 여의지 않아야 한다.
그런 뒤에 밤낮으로 마음에 두어 반 달, 한 달, 한 해에 이르게 하면, 다시 행하게 할 뿐 아니라 행을 잃지 않게 된다.
다닐 때, 멈췄을 때, 홀로 앉았을 때, 여러 대중과 함께 앉았을 때, 병들어 피곤할 때, 힘이 있을 때에 연속하여 펼쳐진 뜻의 인연을 항상 생각하여 눈앞에 있도록 한다.
그리하면 펼쳐진 인연은 이와 같이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자신이 아니어서 부정(不淨)하여 있는 바가 없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본래의 인연을 뜻에 펼쳐서, 다닐 때에도 생각이 달라지지 않게 하며,
만일 자기의 뜻이 펼쳐진 곳에서 자재(自在)함을 얻었거든
문득 자신을 되돌아보되 죽은 시체와 자신이 평등하여 차이가 없다고 보며,
또 남자ㆍ수척한 사람ㆍ늙은이ㆍ젊은이ㆍ소년ㆍ단정하지 않은 이ㆍ반만 벗었거나 홀딱 벗은 이ㆍ옷을 입은 이ㆍ혹은 잘 장엄한 이 등을 볼 때에도 그렇게 관하여 생각을 펼쳤던 곳과 같이 한다.
만일 뜻과 생각이 있는 곳에서 모든 것을 모두 차이가 없게 보기를 문득 마치면, 응당 오로(惡露)를 생각함으로부터 지(止: 寂滅)의 뜻을 얻은 것이니,
이때 뜻이 행을 따르되 생각을 여의지 않으면 행이 늘어나 가득 차는 것이
마치 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