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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바사라왕]
한때 불세존께서는 마가다(摩伽陀)국의 영찰산(靈刹山) 숲에 평안히 머무르고 계셨다.
마가다국의 왕 빈바사라(頻婆娑羅)는 세존께서 대비구(大比丘)의 무리 천 명과 함께 계신다고 들었는데, 이들은 모두 전에 외도를 배웠으나 이미 모든 누(漏)가 다하고 할 일을 이미 마쳤으며, 이미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고 자신의 이익을 얻었으며 모든 유의 결박[有結]을 다하여 바른 이치 안에서 마음의 해탈을 얻었다.
왕은 이미 소문을 듣고 마차와 병사들을 성대하게 채비시키니 큰 위세가 있었다. 이는 왕의 힘 때문이니, 만 이천 대의 마차와 만 팔천 기(騎)의 기병대였다.
아울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백천의 마가다국의 바라문과 거사들도 부처님을 뵙고 공양을 올리고자 왕사성(王舍城)으로부터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왔다. 이윽고 가마가 목적지에 닿자 왕은 곧 가마에서 내려서는 걸어서 동산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빈바사라 왕은 멀리서 부처님을 보자 바로 다섯 가지의 장엄을 물리쳤으니, 곧 보배 의복과 보배 왕관ㆍ일산과 보배 왕검과 보배 부채와 보배 신발이었다.
마가다국의 왕 빈바사라는 곧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합장한 채 부처님을 향하여 공손하면서도 경건하게 자신의 성명을 세 번 밝히는 예를 올렸다. 곧,
“대덕이시여, 저는 마가다국의 왕 빈바사라입니다”라고 이처럼 세 번을 아뢰었다.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도
“당신은 마가다국의 왕 빈바사라이십니다”라고 이처럼 세 번 말씀하시고 나서
“대왕이시여, 그대는 자신의 자리에 앉으십시오”라고 말씀하셨다.
이때 마가다 국의 왕 빈바사라는 부처님의 발에 예를 올리고는 물러 나와 한켠에 앉았다.
마가다국의 바라문과 거사들도 함께 한 곳에 있으면서 또한 부처님의 발에 예를 올리고 한켠에 물러나 있었다.
이때 마가다국의 바라문과 거사들은 부처님께 문안을 올렸으며, 부처님께서 여러 가지로 위로하여 말씀하여 마치시자, 이들은 곧 물러나와 한켠에 앉았다.
마가다국의 다른 바라문과 거사들은 합장한 채 부처님을 향하여 예를 올리고는 물러나와 한켠에 앉았으며, 나머지 마가다국의 바라문ㆍ거사들은 단지 멀리서 부처님을 바라보면서 묵연히 앉아 있었다.
[가섭]
이때 구루비라가섭(漚樓毘蠡迦葉)은 대중 안에 있으면서 부처님과 가까운 곳에 앉아 있었다.
이에 마가다국의 바라문ㆍ거사들은 생각하기를
‘저 대사문(大沙門)이 구루비라가섭에게서 도를 배우는 것일까, 아니면 구루비라가섭이 저 대사문에게서 도를 배우는 것일까’라고 하였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마가다국 바라문ㆍ거사들의 생각을 아시고서 바로 구루비라가섭을 향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그대 구루비라여,
무엇을 보았기에
불에 공양함을 버리고
이 도 배우는 일을 따르는가.
이렇게 하는 까닭을
마땅히 내게 말하라.
네가 불을 섬기던 일
어찌하여 버려두었는지.
이에 구루비라가섭이 대답했다.
먹고 마시는 것의 모든 맛은
이 세 가지를 탐착하여 즐김이니
이와 같은 등의 잘못을
저는 깊이 보았기에
이 때문에 불 섬기는 일 버렸으니
그 일은 마음의 안락을 낳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 마음이 안락하지 않았다면
먹고 마시는 것의 모든 맛은
어찌하여 안락하지 않았는지
사람과 하늘 가운데 훌륭한 도를
그대는 이제 내게 대답하라.
가섭이 말씀드렸다.
제가 무여열반[無餘滅]을 보았으니
도 가운데 최고이고 제일이라서
세상의 모든 욕락에도
마음에 탐착이 생기지 않나이다.
다시 다른 모습 없으니
그렇기에 다른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며
이러한 까닭에 불 섬기는 일 버렸으니
그 일은 마음의 안락을 낳지 못합니다.
불을 공양하고 섬기면서
예전에 제 마음은 삿되어
이에 기대어 해탈을 얻으려 했으니
참으로 저는 큰 장님이었습니다.
생사의 물결을 따라다니느라
바르고 참된 도를 알지 못하다가
이제 비로소 무위(無爲)를 보았으니
여래의 진실하고도 착한 말씀은
대중들의 귀의할 곳이니
세존께서는 군대의 장수이시라
구담(瞿曇)의 참다운 진리를.
저는 이제 모두 깨달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수행의 길로 잘 왔도다.
네가 생각하는 모든 것은 사실이고
법의 모습 잘 분별하고 있으니
이미 가장 훌륭한 것을 얻었구나.
그리고는 “가섭아, 너는 이제 반드시 대중들의 의심을 풀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자,
이때 장로 구루비라가섭은 즉시 삼매에 들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마음을 일으켜 동방의 허공계에 머물러서 걷기도 하고 서기도 하고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면서 네 가지 위의를 보이자, 그 몸에서는 불꽃이 솟아나왔다.
장로 구루비라 가섭의 몸에서 솟아나온 불꽃은 여러 가지 색이었으니, 곧 청색ㆍ황색ㆍ적색ㆍ백색ㆍ홍색ㆍ수정색이었다. 그리고 몸을 변화시켜 몸 아래에서는 불꽃을 내뿜고 몸 윗쪽에서는 맑고 시원한 물을 내뿜었다.
이와 같이 남쪽ㆍ서쪽ㆍ북쪽 곳곳에서 온갖 신통과 변화를 내보이기를 마치자, 그는 돌아와 다시 합장한 채 예를 올리며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는 저의 스승님이시며 저는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이렇게 세 번에 걸쳐 거듭 말씀드리자,
부처님께서는
“그러하느니라, 가섭아. 그러하느니라, 가섭아. 나는 너의 스승이고 너는 나의 제자이다. 가섭아, 너의 자리로 돌아가 편히 앉거라”라고 말씀하셨다.
장로 구루비라가섭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앉으니,
그때 마가다국의 바라문과 거사들은 마음속으로
‘결정코 이 대사문이 구루비라가섭에게 도를 배우지 않고, 구루비라가섭이 이 대사문에게 도를 배우는구나’라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