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태자서응본기경 상권
[아야구린 등 다섯 사람]
왕은 구이의 마음을 풀어 주려고 하다가 또한 스스로 감격하여 곧 나라 가운데 호걸이며 어진 사람을 뽑아 수천 명을 얻어 그 가운데서 자손을 많이 둔 사람 다섯 명을 가려내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집에 있으면서 아들을 기르고 손자를 안으며 혼자서만 즐거워하는가?
나에겐 아들 하나가 있어서 일찍이 문을 나서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하루아침에 나를 버리고 멀리 떠나 깊은 산 속 계곡을 건너고 험난하고 막힌 길을 들어가서 길흉의 어려움과 추위와 더위, 목마르고 배고픔을 겪고 있으니, 그 누가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경들 다섯 사람은 각각 한 자식을 보내서 따라가 찾아내어 반드시 따라다니며 모시게 하시오. 만일 중도에서 포기하고 돌아오는 이가 있으면 내가 너희 족속(族屬)들을 멸할 것이오.’
그때에 아야구린(阿若拘隣) 등 다섯 사람이 명을 받고 태자를 찾아 깊은 산 속에 이르러 따라다니면서 수년 동안 모셨으나 태자는 그들과 말도 하지 않고 스스로 여여함을 수용하였다.
그 다섯 사람은 높은 산을 오르고 물을 건너며 깊은 산 속을 헤매고 다닌 까닭에 괴로워하며 말하였다.
‘이 사람은 미친 사람이다. 어찌 다니는 길이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만약 버려두고 되돌아가면 왕이 우리 집안을 멸하리니 여기에서 사는 것이 낫겠다.’
이렇게 말하고는 다섯 사람은 그곳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곳엔 샘물이 있었고 단 과일이 모자람이 없었다.
[병사왕]
태자는 스스로 길을 떠나 명산(名山)을 넘고 넘어 마갈(摩竭) 국경을 지나갔는데, 병사왕(甁沙王)이 사냥을 나왔다가 멀리서 태자가 산천[山澤] 중에 다니는 것을 보고 즉시 나이 많고 점잖은 여러 대신들과 함께 따라가서 말하였다.
‘태자께선 탄생할 적에 기이한 일이 많았고 형상이 빛났으므로 장차 사천하에 임금이 되면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어 4해가 화목하고 신비로운 보배가 이르기를 바랐어야 할 터인데,
어째서 천위(天位)를 버리고 스스로 산과 늪을 나다니십니까?
틀림없이 특별한 견해가 있으실 터이니 그 뜻이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태자가 대답하였다.
‘내가 본 천지의 인물은 출생(出生)하면 죽음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심한 고통이 세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인데 이것을 여읠 수 없었습니다. 이 몸을 헤아려 보니 고통의 그릇에 불과하여 근심스럽고 두려움이 한량없이 많았습니다.
만약 높고 사랑 받는 지위에 있게 되면 교만하고 방탕한 마음이 생겨 쾌락할 생각에만 몰두하게 되어 천하가 근심을 입게 될 터이므로 나는 이것을 싫어하여 산으로 들어가서 그 뜻을 닦으려고 하였습니다.’
늙고 점잖은 여러 대신들이 말하였다.
‘대체로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세상의 일상적인 일인데 혼자만이 그런 것을 미리 근심하여 마침내 훌륭한 이름을 버리고 몰래 숨어 잠적해 살면서 그 형체를 수고롭게 하고 있으니 그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닙니까?’
태자가 대답하였다.
‘제군들의 말과 같이 미리 근심한다는 말은 부당합니다. 나로 하여금 왕이 되게 한다면 늙음이 닥치고 병이 이르러 만약 장차 죽음이 임박했을 때에 나를 대신해서 이런 곤액을 받을 사람이 어찌 있겠습니까? 가령 대신할 사람이 없다면 어찌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천하에 아무리 사랑스런 아비와 효도하는 자식이 있어서 사랑이 골수(骨髓)에 사무친다 하더라도 병들어 죽을 때에 이르러서 서로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이와 같은 거짓 몸에 괴로움이 다가오는 날에는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고 육친(六親)이 곁에 있으며, 가령 맹인(盲人)을 시켜 촛불을 켜놓고 빈다고 해도 눈이 없는 사람에게서 무슨 이익이 있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중생들의 행위를 살펴보니 온갖 것은 덧없고 모든 것이 변화하는 것으로서 참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즐거움은 적고 괴로움만 많아서 이 몸뚱이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세간은 허무한 것이라서 오래도록 살기가 어렵습니다.
모든 물질은 생겨나면 죽음이 있고 일은 이룩되면 무너짐이 있으며, 편안하면 위태로움이 있고 얻으면 잃음이 있어서 온갖 물질은 어지럽고 혼란하여 장차는 모두 공(空)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정신은 형체는 없지만 조급한 데다 탁하고 밝지 못해서 작용에 의하여 죽고 태어나는 위험을 이룩하는데 다만 한 번만 받을 뿐만 아니라 오직 탐욕을 부리다가 탐욕이 가려 어리석은 그물이 되어 나고 죽는 물에 빠져서도 깨달아 알지 못합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일심으로 네 가지 공(空)하고 청정함을 생각하여 색(色)에서 벗어나고 성냄을 멸하고 구하던 것을 끊고 공을 생각하여 전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없고 편벽되게 결정함도 없으니, 이것은 장차 그 근원을 돌이켜서 그 근본에 돌아가려는 것으로서 비로소 그 뿌리에서 벗어나려는 것입니다.
내가 소원하는 것을 증득하는 것만이 곧 크게 편안할 수 있는 길입니다.’
병사왕이 매우 기뻐하며 말하였다.
‘거룩하십니다. 보살의 절묘한 뜻은 세간에서는 가질 수 없는 생각입니다. 틀림없이 불도(佛道)를 증득하실 터이오니, 바라건대 그렇게 되시거든 부디 먼저 저를 제도하여 주십시오.’
태자는 말 없이 길을 떠났다.
[세 범지]
니련선하(尼連禪河)를 건너려 하자 천신(天神)이 물을 막아 강물이 잠시 마르게 하였다.
태자가 물을 건너 수십 리쯤 가다가 세 범지(梵志)를 만났다. 그들은 각각 제자들과 함께 시냇가에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는데 그들은 도에 대해 질문하면서 스스로 말하였다.
‘우리들은 범천(梵天)을 섬기는데 해와 달을 받들어 섬기면서 날마다 불을 모신 사당에서 수행하고 오직 물로 씻어 깨끗이 할 뿐입니다.’
보살이 대답하였다.
‘그런 까닭에 나고 죽는 길에서 헤매는 것입니다. 물은 항상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요, 불도 오래도록 뜨거운 것이 아니며, 해가 뜨면 옮겨가고 달도 차면 기울어지기 마련입니다.
도(道)란 청허(淸虛)함에 있나니, 물로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떠나갔다.
길을 가면서 자애[慈]의 마음을 일으켜
‘중생들은 늙고 너무도 어리석어 질병과 죽어 없어지는 아픔을 면하지 못함을 두루 염려하여 그런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케 하리라’는 오직 이 한 생각뿐이었고,
자비[悲]의 마음을 일으켜 일체 중생들이 모두 다 배고파하고 목말라 하며 추위에 떨고 더위에 시달리며 득실(得失)과 허물과 가난의 근심이 있음을 불쌍하게 여겨 그들로 하여금 안온하게 하려는 오직 이 한마음뿐이었으며,
기뻐하는[喜] 마음을 일으켜서 모든 세간이 다 근심ㆍ괴로움ㆍ두려움ㆍ무서움을 만나는 걱정이 있음을 염려하여 그들로 하여금 편안하게 하려는 오직 이 한마음뿐이었고,
보호[護]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5도(道)와 8난(難)의 생(生)을 받은 이들을 제도하려 하였고, 어리석고 가려서 몽매하고 어두워 바른 도를 보지 못하는 이들을 제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무위(無爲)의 도를 증득하게 하려는 오직 이 한마음뿐이었다.
그리하여 선함을 얻고도 기뻐하지 않고 악함을 만나서도 근심하지 않았으며, 세간의 여덟 가지 일인 이로움ㆍ쇠함ㆍ헐뜯음ㆍ칭찬ㆍ칭송ㆍ나무람ㆍ괴로움ㆍ즐거움을 버려 기울거나 동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