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미증유정법경 제2권
[보살은 어디에 머물러야 하는가]
이때 변적보살마하살이 앞으로 나와서 묘길상보살에게 여쭈었다.
“지금 함께 부처님 계신 곳에 가서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어디에 머물러야 하는지를 여쭈어 보고자 합니다.”
그러자 묘길상보살이 모임 가운데서 자리에 그대로 앉은 채로 보살의 모습을 여래의 모습으로 바꾸었다.
그러자 그 상호(相好)가 구족하여 석가모니부처님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는 변적보살에게 말하였다.
“여래가 여기에 있으니, 그대는 지금 물어 보아라.”
이때 변적보살은 이것이 변화된 모습[化相]이라는 것을 모르고 여래인 줄 알고 그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어디에 머물러야 합니까?”
화불(化佛)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하는 바와 같이 보살은 마땅히 그렇게 머물러야 한다.”
[세존은 어디에 머무시는가]
변적보살이 말하였다.
“그러면 부처님 세존은 어디에 머무십니까?”
화불께서 대답하셨다.
“부처님 세존께서는 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의 법을 행하지 않으며, 욕계ㆍ색계ㆍ무색계에 집착하지 않으며, 신업(身業)을 행하지 않고 어업(語業)을 말하지 않으며 의업(意業)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와 같이 모든 곳에서 행함이 없는 것이다.
선남자여, 모든 행하는 것이란 다 변화함[幻化]과 같은 것이다.”
[변화한 모습]
변적보살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부처님 세존도 변화한 모습입니까?”
화불께서 대답하셨다.
“바로 그렇다.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머물러야 한다.”
변적보살이 즉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찌하여 세존 또한 변화한 모습이라 하십니까?”
화불께서 대답하셨다.
“그것이 아니다. 선남자여, 모든 법은 다 변화한 모습이다.”
변적보살이 말하였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모든 법의 자성이 공하니 모두가 변화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 부처님 세존 또한 변화한 모습이라 하는 것입니까?”
화불께서 대답하셨다.
“선남자여, 어찌 단지 지금 이 부처만이 변화한 모습이겠는가?
존재하는 모든 여래들은 다 변화한 모습인 것이다.”
변적보살이 말하였다.
“어떤 자가 능히 이처럼 변화시킵니까?”
화불께서 대답하셨다.
“자업(自業)이 청정하여서 변화시키거나[能化] 변화되는 것[所化]이 아니며, 나도 없고 남도 없다.
중생도 없고 수명도 없으며, 사부(士夫)도 없고 유식(有識)도 없으며,
보특가라(補特伽羅:輪廻의 主體)도 없고 부처의 형상도 없고 다른 생명[異生]의 형상도 없다.”
[보리를 얻는 법]
변적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배워야 보리를 얻습니까?”
화불께서 대답하셨다.
“모든 법은 배움[所學]이 없으므로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며,
모든 법은 행하여짐[所行]이 없으므로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며,
모든 법은 두려워함[所畏]이 없으므로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며,
모든 법은 의혹이 없으므로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모든 법은 소유가 없고 인연하는 바가 없으며,
허망도 없고 취집(聚集)도 없으며,
지어짐[所作]도 없고 문자(文字)도 없으며,
생(生)도 없고 멸(滅)도 없으며,
과거에 있지[已有]도 않았고 현재에 있지[今有]도 않다.
그것은 허깨비[幻化]도 아니고 색상(色像)도 아니며, 지혜로써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모든 생각[想]을 여읜다.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며,
이와 같이 배우면 이것을 바른 배움[正學]이라 이름한다.
그것은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만일 이와 같이 배운다면,
멀리 여의는 것도 없고 부질없는 논의[戱論]도 없으며,
즐거운 것도 없고 싫증나는 것도 없으며, 기쁨도 없고 분노함도 없으며,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다.
만일 이와 같이 배운다면 이를 바른 배움이라 이름한다.
그러므로 선남자여, 만약 즐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윤회도 없고 열반도 없으며,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으며,
베풂도 없고 아낌도 없으며,
지계(持戒)도 없고 범계(犯戒)도 없으며,
참음도 없고 성냄도 없으며,
부지런함도 없고 게으름도 없다.
선정[定]도 없고 산란[亂]도 없으며,
슬기로움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으며,
배움도 없고 배움 아닌 것도 없으며,
수행도 없고 수행 아님[不行]도 없으며,
얻는 바[所得]도 없고 깨달음[所證]도 없으며,
보리도 없고 불법(佛法)도 없으며,
나란 생각[我想]도 없고 남이란 생각[人想]도 없으며,
중생이란 생각[衆生想]도 없고 목숨이란 생각[壽者想]도 없으며,
보특가라란 생각도 없으며, 법이라는 생각[法想]도 없고 법이 아니라는 생각[非法想]도 없고,
유(有)라는 생각도 없고 무(無)라는 생각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허깨비[幻化]와 같은 것으로서 둘이 아니고 차별이 아니며, 움직이고 구르는 모양[動轉相]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법은 색으로 취할 수 있는 형상[色取相]이 없으므로 눈으로 볼 수가 없으며,
모든 법은 분별할 수 있는 형상[分別相]이 없으므로 마음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법은 자성이 공하여 행할 수 있는 법이란 없으며, 얻을 수 있는 보리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행하고 닦아서 배워야 한다.
만일 어떤 선남자가 이와 같이 설하는 것을 듣고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의혹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선남자여, 비유컨대 이는 마치 허공과 같아서
침해할 수 없으며, 불로 태울 수도 없고, 바람으로 굴릴 수도 없고, 물을 부어 줄 수도 없고, 먼지처럼 뿌릴 수도 없으며,
연기ㆍ구름ㆍ천둥ㆍ번개가 모두 여기에 집착할 수가 없는데
허공에는 아무런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살마하살 또한 이와 같아서
마음에 아무런 걸림이나 막힘이 없고 모든 법으로부터 동전(動轉)당하지 않으며,
즐겨 하고 싶은 것이나 싫어서 버리고 싶은 것이 없어
마치 허공과 같은 마음이 온(蘊)과 같은 악마들로부터 동요함을 당하지 않는다면,
이런 보살은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것이며,
또 널리 중생들을 위해 크게 이익을 지어서 그것이 끝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여래는 어디서 와서 법을 설하고 어디로 가셨는가]
이때 화불이 설법을 마치고는 몸을 숨겨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는 묘길상보살이 본래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변적보살이 묘길상보살 앞으로 나가서 여쭈었다.
“여래 세존께서는 어디에서 와서 지금 이처럼 법을 설하시고, 또 지금 어디로 가셨습니까?”
묘길상보살이 말하였다.
“본래 어디서 온 것이 아니며, 지금 또 어디로 간 것이 아니다.”
다시 여쭈었다.
“오는 것이 없이 오는 것[無來之來]이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그와 같이 오는 것이다.”
변적보살이 여쭈었다.
“만일 부처님 말씀대로라면 모든 여래들은 다 변화한 모습인데,
변화된 모습은 오는 곳이 없으면 또한 가는 곳도 없는 것입니까?”
묘길상이 말하였다.
“바로 그러하다. 변화한 모습[所化相]처럼 온 곳도 없고 간 곳도 없어서 모든 법과 모든 중생이 또한 이와 같다.”
[법과 중생은 어디에 머무는가]
변적보살이 다시 여쭈었다.
“모든 법은 어디에 머무는 것입니까?”
묘길상보살이 대답하였다.
“모든 법은 자성이 없어서 그와 같이 머무는 것이다.”
또 여쭈었다.
“그러면 모든 중생들은 어디에 머뭅니까?”
대답하였다.
“모든 중생들은 그들이 자신의 업보(業報)이므로 역시 그와 같이 머무는 것이다.”
[중생들의 업보]
또 여쭈었다.
“모든 중생들의 업보란 무엇입니까?”
대답하였다.
“모든 법은 생기는 것이 없으며 업보란 것도 없다. 모든 법은 평등한 것으로 지금 이와 같이 머문다.”
또 여쭈었다.
“업보가 없다고 하면서 그들이 자신의 업보라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대답하였다.
“지은 업연(業緣)에 따라 과보(果報)를 받는 것이 업보이다.”
또 여쭈었다.
“중생의 업보는 자성이 공(空)하며, 생긴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인데 다시 무엇을 받는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진실법(眞實法)대로라면 업(業)도 없고 과보[報]도 없으며, 생기는 것이 없어서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다.
이것이 바로 업보이다.
그러나 중생들의 업보는 없어짐도 없고 잃어버림도 없으며, 스스로 그 업의 자성이 공하니,
이것이 그 진실한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