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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사유범천소문경 제2권
[여래께서 행하시는 5력의 지혜]
범천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행하시는 5력의 지혜는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아, 첫째는 언어로 설법함이요, 둘째는 뜻으로 설법함이요, 셋째는 방편으로 설법함이요, 넷째는 6입(入)으로 설법함이요, 다섯째는 대비(大悲)에 들어가서 설법하는 것이다.
범천아, 이것을 여래께서 사용하는 5력의 지혜를 행하는 것이라 한다.
이러한 깊은 법은 모든 성문(聲聞)이나 벽지불(辟支佛) 등이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다.”
[언어로 설법함]
범천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어떻게 여래의 언어 설법을 압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아, 여래께서는 과거법(過去法)을 말하고 미래법을 말하고 현재법을 말하며, 더러운 법과 깨끗한 법을 말하며,
선법(善法)과 불선법을 말하며, 세간법(世間法)과 출세간법을 말하며,
유루법(有漏法)과 무루법을 말하며, 유죄법(有罪法)과 무죄법을 말하며,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을 말하며,
아(我)ㆍ중생(衆生)ㆍ인(人)ㆍ장부법(丈夫法)을 말하며,
득증법(得證法)을 말하며, 생사법(生死法)과 열반법을 말한다.
범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러한 모든 언설(言說)이 허깨비[幻事]를 말하는 것과 같음은 마땅히 결정(決定)함이 없기 때문임을 알아야 하며,
말이란 꿈속의 일과 같음은 허망한 견해이기 때문이요,
메아리 소리를 말하는 것과 같음은 허공으로부터 소리가 나오기 때문이요,
말이란 그림자와 같음은 인연이 화합하기 때문이요, 말이 인(印)과 같음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요,
말한 것이 불꽃과 같음은 전도(顚倒)된 견해이기 때문이요,
말이 허공과 같음은 생기는 것도 없고 사라지는 것도 없기 때문이요,
말이 없으므로 말하는 것은 마땅히 언어가 없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범천아,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여러 가지로 법을 말하는 것을 안다면 이 보살은 비록 일체의 언어로 법을 말한다 해도 모든 법에 말한 것이 없다.
법에 탐착하지 않기 때문에 장애가 없이 즐거이 말하는 변재(辯才)를 얻게 되고,
이 변재로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겁에 이르도록 갖가지로 설법해도 다함없고 걸림 없는 것은 모든 말한 바가 법계(法界)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며, 차별상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범천아, 이것을 여래의 언어 설법이라 한다.
[뜻으로 설법함]
범천아, 보살이 어떻게 여래의 깊은 뜻과 방편의 설법을 아는가?
범천아, 여래께서는 혹 더러운 법에서 깨끗함을 말하기도 하고, 혹은 깨끗한 법에서 더러움을 말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보살은 여래의 깊은 뜻을 마땅히 이와 같이 안다.
범천아, 어째서 여래가 더러운 법 가운데서 깨끗함을 말하는가?
범천아, 더러운 법체(法體)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래께서는 더러운 법에서 깨끗함을 말한다.
범천아, 어째서 여래께서는 깨끗한 법에서 더러움을 말하는가?
범천아, 깨끗한 법체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래께서는 깨끗한 법에서 더러움을 말한다.
다시 범천아, 나는 보시(布施)에 의하여 곧 열반을 보이고 있는데,
범부는 무지하여 뜻에 따라 말하는 것을 잘 알지 못하나 오직 모든 보살은 나의 뜻을 안다.
마땅히 이와 같이 깊은 선법(善法)의 뜻을 믿고 이렇게 사유(思惟)하여 보시를 행한다면 미래의 세상에 큰 부귀를 얻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법 가운데는 한 법도 따를 것이 없고, 일념(一念)에서 일념이 변하면 곧 내세가 되지만 저 열반은 변하는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한 법을 좇되 일념에서 일념이 변하여 내세에 이름이 없다면
이것이 일체 제법(諸法)의 참다운 모습[實相]이며, 제법의 참다운 모습이 곧 열반이고,
지계(持戒)가 곧 열반인 것은 짓지도 않고[不作], 일으키지도 않기[不起] 때문이다.
인욕(忍辱)이 곧 열반인 것은 생각마다 멸하기 때문이며,
정진(精進)이 곧 열반인 것은 취하거나 버리는 것이 없기 때문이며,
선정(禪定)이 곧 열반인 것은 맛[味]에 탐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야(般若)가 곧 열반인 것은 상(相)을 얻지 않기 때문이다.
탐욕(貪欲)이 곧 실제(實際)인 것은 법성(法性)에는 욕상(欲相)이 없기 때문이다.
성냄[瞋恚]이 곧 실제인 것은 법성에는 성내는 모습[瞋相]이 없기 때문이며,
어리석음[愚癡]이 곧 실제인 것은 법성에는 어리석음의 모습[癡相]이 없기 때문이다.
세간(世間)이 곧 열반인 것은 물러감도 없고 생겨남도 없기 때문이며,
열반이 곧 세간인 것은 집착하기 때문이며,
참다운 말[實語]이 곧 허망인 것은 모든 견해를 내기 때문이며,
허망이 곧 참다운 말인 것은 증상만인(增上慢人)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범천아, 여래께서는 중생의 뜻을 따르기 때문에
혹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나는 상변(常邊)을 말하는 자’라 하고,
혹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나는 더러움을 말하는 자’라 하고,
혹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나는 단변(斷邊)을 말하는 자’라 하며,
혹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나는 업이 없음[無業]을 말하는 자’라 하고,
혹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나는 곧 업을 짓지 않는다고 말하는 자’라 하고,
혹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나는 사견(邪見)을 말하는 자’라 하며,
혹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나는 믿지 않는다[不信]고 말하는 자’라 하고,
혹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나는 은혜를 모른다고 말하는 자’라 하고,
혹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나는 겁을 훔쳤다[劫盜]고 말하는 자’라 하며,
혹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나는 토해 낸다고 말하는 자’라고 하며,
혹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나는 받지 않는다[不受]’라고 하지만 여래께서는 이와 같은 모든 일이 없었다.
범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범천아, 여래께서 중생의 뜻을 따르는 것은 무슨 뜻에 의해서인가?
교만한 중생에게 아만(我慢)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범천아, 여래께서는 이와 같은 깊은 뜻에 의해서 설법하신다.
범천아, 만약 보살이 여래께서 행하시는 방편설[隨行方便說]을 알되,
만약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신 것을 듣고 믿고 받아들인다면 중생이 선업(善業) 색신(色身)의 과보를 보았기 때문이요,
만약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시지 않았음을 듣고도 역시 믿고 받아들인다면 이는 모든 부처님의 법성신(法性身) 때문이요,
만약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서 역시 믿고 받아들인다면 문자(文字)를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중생이기 때문이다.
만약 부처님께서 설법하지 않아도 듣고서 역시 믿고 받아들인다면 모든 불법(佛法)의 성품은 말할 것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요,
만약 열반이 있음을 듣고서 역시 믿고 받아들인다면 전도(顚倒)되어 일어나는 번뇌를 소멸했기 때문이요,
만약 열반이 없다는 것을 듣고도 역시 믿고 받아들인다면 모든 법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모습[相]이기 때문이요,
만약 중생이 있음을 듣고서 역시 믿고 받아들인다면 세제(世諦)의 문에 들어갔기 때문이요,
만약 중생이 없음을 듣고서 역시 믿고 받아들인다면 제일의(第一義)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범천아, 보살마하살이 이처럼 여래께서 중생의 근기에 따라 행하시는 방편 설법을 안다면 모든 언설(言說)과 음성에 두려움이 없으며, 또한 무량한 중생을 이익되게 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방편으로 설법함]
범천아, 보살은 어떻게 여래의 방편 설법을 아는가?
범천아, 여래께서는 중생을 위해 보시를 말하시는데, 이는 큰 부귀를 얻기 때문이요,
지계(持戒)는 하늘에 태어나기 때문이요,
인욕(忍辱)은 단정(端正)함을 얻기 때문이요,
정진(精進)은 지혜를 갖추기 때문이요,
선정(禪定)은 적정(寂靜)을 얻기 때문이요,
지혜는 모든 번뇌를 버리기 때문이요,
다문(多聞)은 지혜를 얻기 때문이다.
10선업도(善業道)를 행하면 인간과 하늘의 부귀와 즐거움을 성취하기 때문이요,
자비로 희사(喜捨)하면 범세(梵世)에 태어남을 얻기 때문이요,
사마타(奢摩他)는 비바사나(毘婆舍那)를 얻기 때문이요,
학지(學地)는 학지가 없음을 얻기 때문이요,
벽지불지(辟支佛地)는 청정(淸淨)하여 모든 공양을 소화하기 때문이요,
불지(佛地)는 무량한 지혜를 보이기 때문이요,
열반은 일체의 고뇌를 소멸하기 때문이다.
범천아, 나는 이와 같은 선교방편(善巧方便)으로 모든 중생을 위해서 이 법을 칭찬하며 말한다.
여래께서는 진실로 아(我)ㆍ중생ㆍ수명(壽命)과 장부상(丈夫相) 등을 얻음이 없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여래께서는 또한 보시도 보지 못했고 보시의 과보도 보지 못했으며,
또한 인색함도 보지 못했고 인색함의 과보도 보지 못했으며,
또한 지계(持戒)도 보지 못했고 지계의 과보도 보지 못했으며,
또한 계를 훼손함[毁戒]도 보지 못했고 계를 훼손한 과보도 보지 못했다.
또한 인욕도 보지 못했고 인욕의 과보도 보지 못했으며,
또한 성냄도 보지 못했고 성냄의 과보도 보지 못했다.
또한 정진(精進)도 보지 못했고 정진의 과보도 보지 못했다.
또한 게으름도 보지 못했고 게으름의 과보도 보지 못했으며,
또한 선정(禪定)도 보지 못했고 선정의 과보도 보지 못했으며,
또한 어지러운 마음도 보지 못했고 어지러운 마음의 과보도 보지 못했다.
또한 반야(般若)도 보지 못했고 반야의 과보도 보지 못했으며,
또한 어리석음도 보지 못했고 어리석음의 과보도 보지 못했다.
또한 괴로움과 즐거움을 보지 못했고 괴로움과 즐거움의 과보도 보지 못했으며,
또한 수다원(須陀洹)도 보지 못했고 수다원의 과보도 보지 못했으며, 내지 보리(菩提)도 보지 못했고 열반의 과보도 보지 못했다.
범천아, 여래께서는 항상 중생을 위해서 설법하고 모든 중생은 여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설법한 바와 같이 여실(如實)하게 수행하고 부지런히 모든 행을 닦아나가되,
어떠한 뜻을 위해서 수행하고 부지런히 그 행을 행한다면 모든 중생이 그 법을 수행하여도 얻지 못하고 증득하지 못하리라.
말하자면 수다원행(須陀洹行) 내지 아라한과(阿羅漢果)와 내지 연각지(緣覺地)도 얻지 못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얻지 못하며 내지 열반도 얻지 못한다.
이와 같은 의미 때문에 저 모든 중생은 열반을 얻지 못하며, 열반을 보지 못한다.
범천아, 이것을 여래의 방편설법이라 한다.
범천아,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러한 법 가운데서 마땅히 부지런히 수행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묘법(妙法)을 섭취(攝取)하게 한다.
[6입으로 설법함]
범천아, 어떻게 보살이 여래의 설법에 들어가는 것을 아는가?
범천아, 눈[眼]은 곧 해탈로 들어가는 문(門)이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해탈로 들어가는 문이다.
왜냐하면 눈은 비어서 나[我]도 없고 나의 소유도 없는데, 이는 자성(自性)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비어서 나도 없고 나의 소유가 없음은 자성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범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6입(入)은 다 해탈로 들어가는 문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바른 행위는 속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 등이 다 해탈로 들어가는 문이다.
이를 말하자면 공문(空門)ㆍ무상문(無相門)ㆍ무원문(無願門)ㆍ불행문(不行門)ㆍ불생불멸문(不生不滅門)ㆍ어디로부터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는 문[無所從來無所至去門]ㆍ물러남도 없고 생기는 것도 없는 문[不退不生門]ㆍ자성이 청정하고 적정한 문[自性淸淨寂靜門]이라 한다.
또 범천아, 여래는 일체의 이름자[名字]로써 이 해탈문을 보인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이름자가 화합(和合)도 없고, 쓸 데가 없는 것은 자성(自性)이 둔하기 때문이다.
범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여래는 일체의 문자(文字) 가운데서 성제(聖諦)를 말하며, 일체의 법을 말하는 가운데서 해탈문을 말한다.
범천아, 그러나 이름자와 언어로 설법한 것이 없어 모든 부처님과 여래께서는 참다운 진리[實諦]를 말씀하시지 않았다.
범천아, 여래의 설법에는 법에 더러움이 없으므로 일체 설법한 가운데서 해탈문을 보여서 증지(證智)에 들어가게 하고 열반에 들어가게 한다.
이것을 여래께서 설법한 문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범천아,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 법을 배워야 한다.
[대비에 들어가서 설법함]
범천아, 여래께서는 어떻게 대비심(大悲心)으로 널리 일체 중생을 위해서 설법하는가?
범천아, 여래께서는 서른두 종류에 상응하는 대비(大悲)를 갖추어서 널리 일체 중생을 위해 설법하신다.
무엇을 서른두 종류에 상응하는 대비라 하는가?
범천아, 말하자면 일체의 법은 무아(無我)인데도 모든 중생은 믿지 않고 알지 못해서 아(我)가 있다고 말하므로, 여래께서는 이러한 모든 중생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의 법에는 중생이 없는데도 모든 중생은 중생이 있다고 생각하므로 여래께서는 이러한 모든 중생들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의 법에는 수명(壽命)이 없는데도 모든 중생은 수명이 있다고 생각하므로 여래께서는 이러한 모든 중생들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의 법에는 장부(丈夫)가 없는데도 모든 중생은 장부가 있다고 생각하므로 여래께서는 이러한 모든 중생들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의 법에는 존재하는 것[所有]이 없는데도 모든 중생은 있다는 견해에 머물고 있으므로 여래께서는 이러한 모든 중생들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의 법에는 머묾이 없는데도 모든 중생은 제법(諸法)에 머물고 있으므로, 여래께서는 이러한 모든 중생들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의 법에는 귀의할 곳이 없는데도 모든 중생들은 귀의할 곳을 즐거워하므로, 여래께서는 이러한 중생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의 법에는 나의 소유가 없는데도 모든 중생은 내 것에 집착하므로 여래께서는 이러한 모든 중생들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의 법에는 소속됨이 없는데도 모든 중생들은 소속이 있다고 생각하므로 여래께서는 이러한 모든 중생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의 법에는 취할 만한 모습이 없는데도 모든 중생들은 취할 만한 모습이 있다고 생각하므로 여래께서는 이러한 모든 중생들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의 법에는 생겨나는 것[生]이 없는데도 모든 중생은 생겨나는 것이 있다는 것에 머무니, 여래께서는 이러한 모든 중생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의 법에는 물러나거나 생기는 것이 없는데도 모든 중생은 물러나거나 생기는 것에 머무니 여래께서는 이러한 중생들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의 법에는 물듦이 없는데도 모든 중생은 제법(諸法)에 물들고 집착하므로 여래께서는 이러한 모든 중생들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의 법은 탐애(貪愛)를 여의었는데도 모든 중생들은 다 탐애가 있으므로 여래께서는 이러한 모든 중생들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의 법에는 성냄이 없는데도 모든 중생들은 다 성냄이 있으니, 여래께서는 이러한 모든 중생들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의 법은 어리석음을 여의었는데도 모든 중생들은 모두 어리석음이 있으니, 여래께서는 이러한 모든 중생들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의 법에는 오는 것이 없는데도 모든 중생들은 오는 것에 집착하므로 여래께서는 이 모든 중생들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의 법에는 가는 것이 없는데도 모든 중생들은 후생(後生)에 집착하므로 여래께서는 이러한 모든 중생들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의 법에는 작위(作爲)가 없는데도 모든 중생들은 모두 작위가 있으니, 여래께서는 이러한 모든 중생들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의 법에는 희론(戱論)이 없는데도 모든 중생들은 여러 희론이 있으니 여래께서는 이러한 모든 중생들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의 법은 비었는데도 모든 중생들은 있다는 견해에 떨어졌으므로 여래께서는 이러한 모든 중생들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의 법은 무상(無相)인데도 모든 중생들은 상(相)에 집착하므로 여래께서는 이러한 모든 중생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의 법은 원(願)이 없는데도 모든 중생들은 모두 원이 있으니, 여래께서는 이러한 모든 중생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 세간의 중생은 항상 성내고 혐오하고 투쟁하므로 여래께서는 이러한 중생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의 세간은 삿된 견해로 전도(顚倒)되어 그릇된 도[邪道]를 행하니, 그들로 하여금 정도(正道)에 머물게 하려 하기 때문에 여래께서는 이 모든 중생들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 세간은 전도에 떨어졌고, 험난함에 빠져 도가 아닌 것에 머물고 있으니,
그들로 하여금 참다운 도에 들어가게 하려 하기 때문에 여래께서는 이 모든 중생들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 세간의 중생은 항상 인색함과 탐욕에 구속되어 만족할 줄 모르고 남의 재물을 빼앗으므로
이를 교화하여 성스러운 재물과 믿음과 계율[信戒]과 기쁘게 보시하는 지혜를 듣고 부끄러움에 머물게 하려 하기 때문에 여래께서는 이런 모든 중생들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 세간의 중생은 항상 재물과 집과 처자(妻子)와 은혜와 애욕의 노예가 되었다.
이런 것은 위태롭고 견고함이 없는데도 견고하다는 생각을 내고 있으니,
그들로 하여금 필경에는 다 무상하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여래께서는 이런 중생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 세간의 범부 중생은 이 몸이 도적인데도 항상 탐착하고 공양하고 공경하며 명예롭다고 찬탄하면서 친구로 삼고 있다.
중생이 비록 이는 선지식이라 하더라도 이 중생은 악지식이니 참으로 선지식을 친구 삼게 하여 그로 하여금 필경에는 온갖 괴로움을 끊고, 필경에는 열반을 획득하게 하려 하기 때문에 여래께서는 이런 중생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 세간의 중생은 모두 거짓말로 속이는 업을 즐겨 행하고 논과 집 등에서 삿된 방법으로 살아가므로 설법하여 옳은 방법을 행하게 해서 삼계를 벗어나게 하려 하기 때문에 여래께서는 이 모든 중생들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일체의 법은 모두 인연을 따르므로 모든 행(行)을 부지런히 닦고 내지 성취를 얻어야 하는데도 모든 중생은 게으름에 빠졌기 때문에 성스러운 해탈(解脫)을 얻지 못하므로 그들로 하여금 부지런히 정진해서 해탈의 견고한 법을 획득하게 하려 하기 때문에 여래께서는 이러한 중생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범천아, 중생은 위없고 대승(大乘)의 걸림 없는 빼어난 법과 수승(殊勝)한 열반법을 버리고 열등한 소승법, 말하자면 성문(聲聞)과 벽지불승(辟支佛乘)을 구하고 있으니,
그런 중생을 위해 대승의 법을 알게 하여 사랑하고 즐기도록 하기 위해, 말하자면 불승(佛乘)을 관찰하여 알도록 하려 하기 때문에 여래께서는 이런 중생에게 대비를 일으키신다.
범천아, 여래께서는 이와 같이 모든 중생에게 서른두 가지의 대비심(大悲心)을 행하며, 이러한 뜻 때문에 여래를 대비를 행하는 자라고 이름한다.
만약 보살이 중생 가운데서 항상 이 서른두 가지의 대비심을 닦고 쌓는다면
이 보살마하살은 대복전(大福田)이라는 이름을 얻고 큰 위덕(爲德)을 갖추며 불퇴전(不退轉)을 얻어서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대비법문품(大悲法門品)을 설하실 때 3만 2천의 사람이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얻고, 8천의 보살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으며 7만 2천의 천자(天子)는 더러움을 여의어서 법안(法眼)을 얻었다.
[법의 희열]
이때 망명동자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승사유범천은 어찌하여 이러한 대비법문과 상응하는 설법을 듣고도 기뻐하지 않습니까?”
범천이 말했다.
“선남자여, 만약 아는 것에 두 가지 법이 있다면 희열이 있을 것이고,
만약 아는 것이 두 가지가 없는 실제(實際)의 법 안에 있다면 희열이 없습니다.
선남자여, 비유하자면 여래께서 만든 허깨비 사람은 여래께서 설법하는 일을 듣고도 기뻐하지도 않고 즐거워하지도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선남자여, 일체의 법이 다 환상(幻相)과 같음을 알기 때문에 여래가 수승하다는 생각을 내지 않고, 다른 중생에게도 열등하다는 생각을 내지 않습니다.”
망명보살이 범천에게 물었다.
“선남자여, 일체의 법을 안다면 어찌하여 환상과 같다고 합니까?”
대답했다.
“범천이여, 만약 사람이 일체의 법을 분별하여 두 가지로 행함이 있다면 당신은 마땅히 그렇게 물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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