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 릴케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해주소서,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진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맬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을날」전문 (김재혁 역)
20세기 최고의 독일어권 시인 중 한 명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 본명: 레네 카를 빌헬름 요한 요제프 마리아 릴케 René Karl Wilhelm Johann Josef Maria Rilke)는 보들레르와 함께 (현대)시의 영혼과 형식에 속한다. 이 시의 도입부(‘주여’)는 존재의 소리에 대한 세계내면공간으로서 순간의 떨림이다. 그 떨림과 공명은 가을의 시간에 온전히 모아져 깊이와 울림을 더한다.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변역은 우주의 비밀이며, 운행으로서 시가 아름다운 이유다. "아름다움은 존재 사건이 일으킨 빛의 파문. … 변화 무쌍한 존재를 드러내는 최고의 방식이 시 포이에시스라면 시는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인간이 만들어 낸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김동규,「시가 아름다운 이유-하이데거 시론詩論을 중심으로」) 시는 지상의 인간이 고안해 낸 최상의 언어로서 마음의 무늬-결이며, 행역行易이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왔다는 것은 자연의 모험이 도래했다는 말. 하나의 과육이 완성을 향해 가는 가을 신성한 포도주에 맛이 스며드는 순간이다. 이 가을을 맞이하기까지 아닌게 아니라,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다.
미완의 인간이 보다 완전한 그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 또는 진리가 도래하는 가을날의 유금빛은 완미한 주에 대한 부름[Rufen]이 요청되는 시간이다. 사물이 존재의 언어가 되는 가을의 주체는 마지막 과일, 아니 그 과일들을 무르익게 명한 신이거나, 죽음과 생명의 비밀로서 씨앗이다. 더욱이 허공을 향해 점점이 퍼져 가는 과일향은 가을의 시간을 더욱 아름답고 위대하며 신비로운 것으로 만든다. 가을은 고독한 영혼의 시간. 가을의 시인은 존재의 언어를 찾아 나서기 위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맨다. 그 시인의 집에 거하는 한 우리는 모험은 피할 수 없다. 모험은 존재와 사건, 진리와 아름다움의 다른 말. 시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잠자지 않으며 읽고, 긴 편지를 쓰는 이에게만 발견될 것이다. 베르시피코 에르고 돌레오(Versifico, ergo doleo: 쓴다, 고로 나는 아프다). 릴케의「가을날」은 시작詩作의 본래本來와, "현존재의 불가사의한 깊이에 대한 경외감"(게오르그 짐멜,『렘브란트-예술철학적 시론』)으로 가득 차 있다. (김상환)
첫댓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릴케의 서간을 문청시절 밤새워 탐미하였다. 가을날은 깊고 높다. 배고픔과 마음이 추울 때 읽어서인지 ㅡ 가슴 속에 오래 남아 있다 ㅡ 매화 핀 탓일까, 이 봄 아침 채우 김상환 평론가님께 감사드린다.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이 구절에서 뭉클해졌습니다.
명시는 언제나 살아있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네요.
김상환 시인님!
수고로움을 고스란히 받아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