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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니엘 영재교육원 원문보기 글쓴이: 천사
▣ 차 례 ▣
1. 방향 정하기/21
2. 사역의 핵심적인 가치들/31
3. 자신의 가늠자로 분명히보기/49
4. 사역 건축가의 프로필/67
5. 자신의 독특한 무인을 세우라/87
6. 긴장속에서 일하는 법/111
7. 위로는 하나님을 향하여/133
8. 안으로는 교회를 향하여/177
9. 밖으로는 세상을 향하여/235
10.안정도와 패러다임의 변하/295
11.창조적 변혁을 통해 교회를 지도하기/317
권하고 싶은 참고서적
저자와 책 소개
헤럴드 J.웨스팅은 무디 성경학교, 그레이스 대학과 웨스턴 보수침례신학교를 졸업하였다. 미국 보수침례연합회의 기독교 교육국 책임자, 목회 사역원의 협동교수, 덴버 신학교의 학생과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콜로라도 리틀톤에 있는 지도자 계발원의 책임자를 맡고 있다.
그는 교회 성장과 기독교 교육분야의 권위자로 널리 아려져 있으며 그의 저서로는 ‘평가와 성장’‘세상에게 말한다’‘총관리자’‘교회조직 종합핸드북’ 등이 있다.
이 책은 이론이 아닌 실제로서 목회현장에서 교회화,사회화, 온전한 양육법, 등을 주제로 쓰여졌습니다.
제1장 방향 정하기 (Charting the Course)
그리스도의 사명은 곧 교회의 사명이다. 제임스 카터(James E.carter)는 이것을 “교회야말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중심이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애의 의미를 오늘날의 세상으로 확대시켜 놓은 기관이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자신의 고유한 청사진을 가진 각 교회는 그 교회에 의미 있는 말들로 교회의 사명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교회의 사명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경우, 현재 자기 교회의 사명이 무엇이냐를 놓고 장시간에 걸친 힘겨운 논쟁을 할 필요는 없다. 주어진 사명의 여러 가지 측면에 쏟아 붙이는 시간과 힘의 우선 순위가 교회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먼저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이해하면, 교회의 비전은 자연스레 정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릭 와렌은 “비전을 추구하는 교회가 성공적인 교회가 되는 열쇠이다.”
조지 바나는 비전이 무엇인지 잘 정의해 주고 있다. “사역에 대한 비전이란 하나님께서 그분이 택한 종들에게 부어 주신 것으로서, 장래의 바람직한 오늘을 나타내는 상이며, 그것은 하나님과 자신 그리고 주변 환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 ”비전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사명을 완수하도록 교회를 추진하는 힘이다. 그러나 이 책은 기본적으로 비전에 대한 책이 아니라 그 비전을 어떻게 성취시켜 나가느냐 하는 것에 관한 책이다.
“토마스 피터스와(Thomas Peters)와 넨시 오스틴(Nancy Austin)(1985)은 비전은 그룹 전체가 모여서 논의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 한 사람에서부터 시작된다.”라고 주장한다. 비전을 갖는다는 것은 성도들이 보지 못하는 어떤 것을 목사가 본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비전을 전수한다.’는 것은 성도들이 마땅히 봐야 할 것을 보도록 해 줌으로써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데 그들이 함께 참여하도록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목사는 일반 성도들이 보는 것 보다 훨씬 더 멀리 앞을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참 지도자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겨 주신 사람들을 어디로 이끌어 가야 할 지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이 책은 경건한 교회가 사역의 수행에 대해 어떻게 정직하고 지혜롭게 생각해야 하는가에 대한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제2장 사역의 핵심적인 가치들 (Ministry CoreValues)
종종 교회가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는 교회가 가장 소중히 붙들어야 할 가치가 어떤 것인지를 명확하게 규정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치 설정의 과정]
1. 가치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동행에서 생긴다.
시편 46:10에 보면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너희는 잠잠하여 내가 하나님 됨을 알라‘고 교훈한다. 그리스 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오랜 시간 함께 동행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마음도, 그분의 비전도, 그분의 열정도, 그리고 그분의 가치도 알 수가 없다.
2. 설교를 통해 가치를 제시한다.
목사에게 설교 시간은 성도들에게 가치를 심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다. 성도들이 목사가 주는 도전을 반드시 행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목사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바꾸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설교자는 성령의 역사를 확산시키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골1:29). 그들은 의를 따를 것인가 정욕을 따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도록 성도들을 촉구한다. 매 주일 아침 강단에서 설교를 하는 설교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형성하도록 소명을 받았음을 명심해야 한다.
설교자는 마땅히 비전을 활성화시키고 교회의 사역 철학을 확산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가치들을 설교해야 한다.
3. 신학적 지식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은 가치를 명료하게 해 준다.
올바른 성경 해석학을 따라 성경을 배우면 여러분의 가치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여러분의 사역 철학이 하나님의 뜻과 부합하게 될 것이다.
4. 가치를 전수시키는 것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5. 성경 적으로 행동하면 성경적 가치관에 도달하게 한다.
6. 가치는 우리의 문화에서 기인하는 경향이 있다.
한 나라의 문화는 종교와 흡사하며, 기독교와 똑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속에는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성경적 핵심이 빠져 있다. 성도들이 깨어 있지 않으면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의 뜻보다는 기독교의 문화적 형상에 의해 더 크게 영향을 받게 될 수도 있다. 그런 현상을 교회의 문화적 예속이라고 설명한다.
제3장 자신의 가늠자로 분명히 보기
[사역 철학을 갖는 것이 중요한 이유]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발 3:13-14). 바울이 선교 여행을 하면서 교회 개척에 대대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들 중의 하나는 아마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이라는 푯대는 그의 비전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또한 그의 사역 철학도 포함하고 있다.
교회 크기가 크든 작든, 또는 효과적이든 비효과적이든 간에 모든 개별 교회는 사역 철학을 가지고 있다.
1. 그리스도의 몸에서는 통일성 안에 다양성이 존재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 한사람 한사람을 아주 특별하고 다른 존재로 만드셨다. 모든 사람을 똑같이 만들려고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모두 똑같이 만들려는 것 역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다. 고전12장과 롬12장은 (이 구절들은 각 개인에게 주신 몸의 여러 지체들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다양성을 크게 강조한다. 몸의 지체를 각기 다르게 만드신 목적은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다양성의 목적은 통일성을 표현하는데 있는 것이다.
2. 문화가 그것을 요구한다.
문화는 그 속에 있는 죄를 영구화시키려는 경향이 있지만, 또한 하나님의 창조의 아름다움도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당신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시기에 당신만을 경배할 것을 명하신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그 독특한 모습대로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할 것을 기대하신다. 따라서 각 교회는 그 교회 고유의 문화와 연관이 있는 사역 철학을 형성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3. 효과적인 사역을 위해서 필요하다.
사역 철학은 성도들이 시간과 재능과 돈의 청지기직을 잘 수행하도록 도와주며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도록 도와준다. 즉 사역 철학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참 모습은 어떤 것이고 그들의 참 모습이 아닌 것은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한다. 사역 철학은 그들의 힘을 집중시키며, 그들이 하나님의 솜씨를 최대로 발휘해 감에 따라 가장 생산적이 되도록 도와준다.(엡2:10)
4. 모든 교회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윈스턴 처칠의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은 그 어떤 것보다도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은 백번 옳은 말이다. 사역 철학은 여러분이 고심하며 결정한 목표 대상에 대해 여러분이 어떤 자원을 가지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게한다.그러므로 사역 철학은 사역을 해 나가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라일 스칼라(Lyle Schslle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바로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는 없다. 그러므로 인생의 목적이나 존재이유, 담당해야 할 역할 등과 같은 어려운 질문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하도록 미루는 경향이 있다.
그에 따라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 큰 질문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1) 누구를 대상으로 사역할 것인가? (2) 그 사역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반드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역 철학이 필요한 것이다.
5. 사역의 균형이 그것을 요구한다.
여러 가지 일들을 모두 잘 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특정한 일을 탁월하게 수행하려 했던 당초의 목표에서 벗어나기 쉽다. 우리는 때로 ‘긴급한 일’에 몰려서 해야 할 일을 놓치고 마는데,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적이다. 바르나(Barna)는 이점에 대해 지도자들은 성도들의 전체적인 목표가 무엇이며 무엇을 수행해야 하는 지를 끊임없이 상기시켜야 한다. 이것을 실패하면 수없이 많은 훌륭한 아이디어들이 청중 속을 파고들어 집중력을 분산시키게 하고, 그만큼 청중이 갖는 힘도 미약해지게 마련이다.
지도자들은 교회 내부의 일들을 처리하고 사람들을 상담하는 데에 힘을 소진하고 수렁에 빠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 결과 교회의 진정한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쉽게 잃어버리고 만다. 그들은 그러한 문제를 벗어나서 , 진정으로 세상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그들은 지도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한다. 훌륭한 지도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사역에서 오는 여러 가지 압력들을 잘 알고 균형을 이루도록 조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떤 교회도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사역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서는 효과적인 사역을 감당해 낼 수 없다.“
6. 다양한 방법론 때문에 그것이 필요하다.
목사가 어떤 일에 결단력을 행사하고 종결 의식을 철저히 갖지 않게 되면 그 목사, 더 나아가 온 성도가 온갖 종류의 사역 철학을 계속 얘기하게 될 것이며, 그 결과 어떤 사역 철학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초점이 없는 사역철학은 교회에대한 사람들의 헌신을 급격히 뗠어뜨릴수 있다.
7. 시설과 철학은 서로 연관이 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우리는 건물을 짓지만, 나중에는 건물이 우리를 짓는다.”라고 말한 사람은 윈스턴 처칠이다.
먼저 사역 철학에 대한 동의가 선행되지 않으면, 시설을 아무리 바꾼다 해도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한다.
8.사역 철학은 다른 주요 사역을 결정하는 지침이 된다.
“사람들이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나가지 않기 때문에 성도들 가운데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성장이 멎는 이유는 사람들이 제각기 자기 소견에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비전의 진공상태에서는 이기적 이해관계만 기승을 부리기 마련인 것이다.
9.특정한 사역에 맞는 교역자를 초빙하려면 사역 철학이 필요하다.
교역자들에게 보다 분명한 지침과 철학을 주면 줄 수록 그들은 덜 탈진하게 되고, 뿐만 아니라 그들은 앞으로 여러분과의 사역에서도 갈등을 덜 일으키게 될 것이다.
10.철학이 있으면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온다.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는 이유를 물어 보면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기 자신들과 가족, 직업, 그리고 세상에 뭔가 유익이 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찾아 교회에 나온다고 대답합니다. 각 사람은 교회가 자신들이 찾고 있는 해답을 주거나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고 있는 일과, 교회가 섬기려는 대상, 그리고 그들의 필요가 어떤 것들인지를 교회가 분명하게 제시하면 할수록 자신들이 추구하고 있는 사람들 예수를 믿기로 결단하고 교회 성도로 참여하게 될 가능성은 그 만큼 높아지는 것입니다. 교회에 이미 매력을 느끼고 있고 또 교회와 친해지는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기로 결단하고 교회 성도로 참여하게 될 가능성은 그 만큼 높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섬기려는 대상들이 누구인가’를 교회가 분명하게 밝힌다면 인원 감소율은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믿습니다.
대형 교회는 레스토랑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교회에 대한 소문이 여러 경로를 따라 주민들에게 알려진다. 일단 그 지역 사회의 주민들이 여러분의 교회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고 사람들을 어떻게 대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들은 거의 틀림없이 여러분 교회에 나오게 될 것이다.
지도자가 사역 철학을 구상할 때 자신의 교회가 어느 세대를 주된 대상으로 할 것인가를 신중하게 생각해서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지도자가 한 세대 이상을 대상으로 사역하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각 세대가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사역 철학의 쟁점들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회중 전체가 일찍 혹사당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목사, 또 성도들이 그렇게 사역하도록 이끄는 목사, 그리고 성도들로 하여금 사역 철학을 갖도록 하는 목사는 지역 사회에 복음을 전할 때 큰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제4장 사역 건축가의 프로필
사역을 하도록 부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면에서 사역 건축가라고 할 수 있다. 각 사람은 신비스러울 정도로 독특하게 빚어졌고, 다른 모든 사람과는 달리 유일한 존재로 온전하게 창조되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은사와 재능을 주셨다. 이 은사가 곧 하나님께서 인간과 함께 그리고 인간을 통하여 역사 하실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특별한 재능과 기질, 그리고 일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주셨다. 여러분은 이 모든 것들을 즐기며 활용해야 한다.
당신은 창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런 창조성은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 이런 것들은 어떤 틀을 형성해 주고, 당신은 이 틀 안에서 건축을 설계하고 지을 수 있다. 교회 건축가들은 벽은 다시 고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 근본 기초는 절대로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이 기초는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교회의 터라고 말씀하셨고, 교회 지도자들은 바로 그 터 위에 건축을 해야 한다.
창조적인 사역 철학가들은:
1.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다.
여러분이 이것저것 하느라고 너무 분주해지면 안 된다.하나님 앞에 잠잠히 나아가 하나님께 배우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원하시는 방향을 여러분에게 알려 주시지 않는다.
2.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누군지 안다는 것은 자신들의 전적인 타락성(depravity)에 대해서도 안다는 뜻이다.자신들이 하나님의 죄사함을 받고 은혜를 입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 대해 사역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3. 사명의 전파 자들이다.
4. 창의적 혁신가들이다.
창의성이 좋은 지도자나 창의적이 개발을 잘하는 지도자라도 자기 주변에 자신의 사역을 극대화시켜 줄 다른 사람들을 두지 않는 지도자는 얼마 못 가서 자신의 사역이 힘없이 주저앉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창조주께서 우리 안에 창의성을 심어 주셨는데, 우리는 그런 창의성의 표현이 방해받지 않도록 두려움이나 거부감 같은 것을 갖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 지도자들의 가장 큰 특징은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끊임없이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는 어떤 쟁점들이 내재되어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서 그들은 곰곰이 되짚어 본다.
과거의 전통에 사로잡히지 않고 새로운 길을 놓아 가는 개척자들인 것이다.
5. 균형 잡힌 지도자들이다.
교회가 사회적이고 신학적 기관인 까닭에 사람과 사역 사이, 몸된 교회와 교회당 건물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이처럼 균형을 이루려면 사역 철학을 확실하게 세워야 한다. 또한 훌륭한 철학자들은 이런 문제들에 균형을 유지한다.
“훌륭하고 위대한 교회는 포기하지 않으려는 보통 사람들이 세우는 것이다.”
6.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받는 자들이다.
어떤 훌륭한 지도자라도 어린 시절에는 가족들로부터, 또 어른으로 성장하면 서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그들이 지도력을 행사하는 유형을 보면 그들이 그런 영향력을 받았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다.
7. 문화를 연구하는 자들이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의사 소통을 하려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제 5 장 자신의 독특한 무인을 세우라 (Build Your Own Thumbprint)
토마스 카알라일(Thomas Carlyle)은 이미 100년전에 “통찰력 없이 행동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라고 설파했다.
성경적인 통찰력 없이 주님을 섬기는 것은 좌절만 가져오고 더 나아가서는 파괴를 불러 올 수도 있다. 성경적인 사역 철학은 그 사람의 우선순위를 결정짓고 그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가리켜 준다. 그러므로 현명한 지도자라면 사역의 우선순위와 계획을 세우기 위해 기준이 되는 여러 가지 가치들(values)을 정리해 보고, 거기서 얻은 일련의 원칙을 가지고 사역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자아상은 우리의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형편없는 자아상을 갖게 되면 형편없는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의 자아상이 형편 없고, 자존감을 상실했으면 그 교회의 모든 활동이나 더 나아가서는 모든 사역까지도 아주 힘이 없고 비효율적이 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은 그리스도께로 가까이 나아가고 있고, 성령으로부터 힘을 공급받고 있는 사람이라고 여긴다면 그는 아주 쉽게 전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은 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교회가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자신감을 갖게 되면 적극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게 된다.
교회는 신비로운 존재인 것을 기억하라. 사역 철학은 폭 넓게 잡아야 신비로운 교회의 실체를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철학을 다루면서 어떤 쟁점들에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주의하라.
철학은 어떤 목적지(destination)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direction)을 제시하는 것이다.
교회를 지도하는 위치에 있는 여러분들이 여러분만의 교유한 디자인을 철학적으로 구상하는 것을 돕기 위하여, 독특한 사역 철학을 구상하는데 아주 좋은 모델이 될 것이라 생각한 7가지 항목만을 뽑아 보았다.
1.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분의 계시에 반응을 보일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여러분에게 알려주실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고린도후서 3:18에서 우리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게하여 변화시킬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2. 여러분의 비전에 정의를 내려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왜?’ 라는 물음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가르쳤다. 또 그것은 가장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말퍼(Malphurs)는 이렇게 말했다. “비전을 가진 지도자는 비전을 품게 하는 사람(vision-communicator),그리고 비전을 명확하게 하는 사람(vision-clarifier)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전이 사역 철학을 개발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3. 여러분의 신학을 실천하라.
신학전 소인이 찍히지 않은 교회는 설계자와 생산자의 마크가 붙어 있지 않는 자동차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사역 철학이 그 타당성을 얻기위해서는 교회의 사명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어야 한다.
사역 철학을 구상하는데 성경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는 다음의 성구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마28:19-20; 행 1:8; 엡2:11-9; 고후4:3-4; 골3:12-16; 벧전2:1-5, 9-12; 마16:18; 행2:42-47; 엡4:11-16; 히10:24-25; 골4:5-6.
4. 여러분의 환경을 평가하라.
여러분의 환경을 평가하라는 성경의 교훈 중에서 “눈을 들어 밭을 보라.”(요 4:35)고 하신 말씀보다 더 강한 교훈은 없다고 믿는다. 그 밭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사회마다 그 밭은 다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모두 다 추수되어야 한다.
알맞는 사역 철학을 구상하고 싶거든 여러분이 누구며, 여러분의 사역은 현재 어디쯤 와 있는지, 그리고 여러분이 사역하려고 하는 대상은 누군지 등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5. 여러분의 교회 역사를 연구하라.
1년만 존재해도 그 교회에는 역사가 생긴다. 회중들에게 큰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 중에 하나는 그 교회의 역사를 세워 나가는 것이다.
모든 교회엔 다 협동심이 있지만 그래도 교회가 장구한 역사를 일구어 가려면 교회는 바로 그 역사적 특성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과거를 기억하라고 여러 번 되풀이해서 상기시켜 주셨고 과거에 그들이 배운 교훈을 토대로 하나님과 동행 할 것을 도전하였다. 과거를 돌아보는 또 다른 중요한 방법은 교회 회중들의 삶을 진단하면서 그들이 어떤 특정한 단계에 있는지를 연구해 보는 것이다.
여러분의 역사를 살펴보는 또 다른 중요한 방법은 여러분의 교회 크기를 아는 것이다.
만일 교회 지도자들이 자기 교회 회중의 크기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급변하는 이 시대에 그 교회 회중이 필요로 하는 적합한 지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6. 여러분의 사역을 구상하라.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할 수도 없고 모든 것이 다 될 수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고 맡겨 주신 것, 그것에 우리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역 철학의 특징을 보면 그것이 성경적이며 간단하고 전수가 가능하며 융통성이 있다는 것이다. 선 리버 교회 (SunRiver Church)는 명확하면서도 아주 영향력 있는 사역 철학의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
(1) 우리는 성경에 입각한 교회이지 전통에 사로잡혀 있는 교회가 아니다. (2) 우리는 평신도가 주축이 되어 사역하는 교회이지 교역자 중심 교회가 아니다. (3) 우리는 여러 교회 중의 한 교회(a church)니지 유일한 교회 (the church)가 아니다. (4) 우리는 거대 (suoerchurch)가 아니라 재생산하는 교회(교회를 개척하는 교회)이다. (5) 사람이 교회이지 건물이 교회가 아니다. (6) 우리는 예배하고 가르치는 교회이지 로비나 하는 교회가 아니다.
7. 계속 평가하라.
나는 대학 리그와 전국 풋볼 리그를 즐겨 시청한다. 여기에서 얻은 유익이 있다면 그것은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하기 전위 휴식 시간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이었다. 이 휴식 시간은 각 팀이 승리하기 위해서 경기를 중단하고 전에 세웠던 작전이 어디서 들어맞고 어디서 들어맞지 않는지를 점검해 보는 시간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모든 교회 지도자들이 다 참여해서 충분하게 사역철학의 어느 부분이 제대로 되고 있는 어느 부분이 안 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휴식 시간이 있어야 한다.
제 6장 긴장 속에서 일하는 법(Working with Tensions)
교회 일에도 긴장이 있다
사역 철학을 구상하기 전에 여러분과 회중들은 이런 긴장들의 실체를 철저하게 이해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런 긴장은 여러분에게 엄청난 유익을 안겨다 줄 수도 있고 , 수많은 제약을 초래해서 교회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긴장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회피하고서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교회가 큰 힘과 에너지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1. 명분(cause)과 공동체(community)와
협력(corporation)사이의 긴장을 해소하라.
교회의 명분은 공동체는 그 공동체의 사귐이나 사랑과 관련이 있다. 명분이 쇠퇴해 감에 따라 교회는 비전을 상실해가게 되고 회중들도 이와 유사하게 공동체 의식을 상실하게 된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협력하는 것은 공동체가 그 명분을 성취하도록 추진력을 가해 준다. 명분은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공동체가 없으면 급속도로 상실되어 간다. 교회가 한 기관으로서 공동체를 이루고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 그 공동체는 혼란에 빠질 수도 있으며 따라서 명분도 성취하지 못하게 된다. 대부분의 교회는 강하고 추진력 있는 명분이 없으면 지상명령을 절대 이룩할 수 없다. 회중의 규모가 커지고 공동체가 커질수록 구성원의 협력은 점점 더 중요해진다.
2. 형식(forms)과 기능(functions)을 구분하라.
기능은 형식을 창조하고 형식은 어떤 행동이 일어나는 형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형식이 일단 형성되면 바꾸기가 불가능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문화 전통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기까지 본래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계속해서 살아남습니다.
기능, 또한 형식의 배후에 있는 의도는 아주 쉽게 깨어지기 쉽고 상실되기 쉽지만 그러나 의미가 있는 곳엔 언제나 기능이 있기 마련입니다.
때로 형식이라는 “유물”은 우리를 과거의 인질로 묶어 두어 우리가 좀더 쉽게 다음 세대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형식 또는 패러다임의 창조를 어렵게 만든다. 만일 사역의 형태를 바꾸지 않겟다고 고집하는 잘못된 교회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교회에 긍휼을 베푸사 용서하시기를 바란다. 반면에 사역의 기능들을 바꾸려고 하는 교회가 있다면... 이것도 잘못된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에 대해 각 개인이 응답하고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께 반응을 보이는 자신의 형식에 익숙해 있다. 교회에서 그런 형식들을 바꾸고자 할 때 우리는 곧 전심으로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나이 어린 다음 세대의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원한다면 예배의 형식을 바꾸어야 할지도 모른다.
3. 영적 생활의균형을 유지하라.
웰레이스 헨슬리(Wallace Hensly) “무엇인가 내용을 담으려면 어떤 구조가 있어야 한다. 교회는 겉(구조)이 필요한 이유가 속을 채우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서 ‘형식’을 같추어야 한다. 새로운 운동을 일으키고자 하는 ‘흥분된’ 교회는 어떤 ‘형식’(구조)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 무엇인가 채워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형식도, 형식을 무시하는 새로운 운동도 모두 죽은 것들과 같다.”
객관적인 교회, 즉 하나님 말씀의 내용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 때문에 사람의 감정을 인정하지 않아 균형이 잡히지 않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움직이시려고 할 때조차도 꿈쩍도 하려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반대로 주관적인 교회, 즉 지나치게 기분에 사로잡혀 종종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교회는 모든 바람과 교리에 ‘이리저리 밀려 다녀’ 너무 쉽게 움직이는 바람에 균형을 잃은 교회가 될 것이다.
4. 사회 과학과 신학을 이해하라.
모든 지도자는 또한 현재의 모습이 어떠하며 앞으로 마땅히 되어야 할 모습은 어떠한지 그 실체를 알아야 한다.지도자로서의 목사는 조경건축가와 흡사하다.
우리 대부분은 모든 회중들이 다 한 마음이 되고 사람들이 갈라서지 않으며 지도자들이 험담을 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말을 하곤 한다. 우리가 정말로 디모데전서와 디도서에 나오는 성경적인 지도자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아마도 오늘날 우리의 교회에는 지도자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성경적인 지도자상에 완전히 부합하는 지도자는 형식과 기능이라는 팽팽한 긴장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지낼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
5. 4세트로 된 렌즈를 통해 보라
사역 철학을 구상하기 전에 여러분의 교회를 충분히 이해하려고 한다면,4차원의 렌즈나 안경을 통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4차원 렌즈란 국가적 상황을 보는 렌즈와 지역적 상황을 보는 렌즈, 국가적 기관의 관점으로 보는 렌즈와 지역적 기관의 관점으로 보는 렌즈를 말한다. 그 렌즈는 각각 따로 떨어져 있지만 하나의 렌즈로 되어 있고 각각은 다른 렌즈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국가적 상황을 보는 렌즈
국민 총생산, 실업률,전쟁, 그리고 정치 상황의 변화 등과 같은 다른 모든 요소들도 여러분의 교회에 어떤 사람들이 출석해서 어떤 설교를 듣게 되는가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지역적 상황을 보는 렌즈
교회가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합리적으로 그 지역 사회의 문화와 동일한 요소들을 문화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여러분은 지역 사회가 일을 처리해 나가는 유형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영접률을 살펴보면 여러분의 교회와 아무런 접촉이 없는 사람들보다는 여러분의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기가 휠씬 쉽고, 그지역으로 새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 그 지역의 장기 거주자들보다 영접률이 휠씬 높다. 또한 새 이주민들 중에서도 관심을 가진 자들이 무관심한 자들보다 영접률이 훨씬 높다. 새신자의 친한 친구들이 새신자가 그냥 알고 지내는 사람들보다 전도 하기가 훨씬 쉽다.
국가적 기관의 관점으로 보는 렌즈
국가적 기관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보면 미국 종교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여러분이 지역 사회를 전도하는 능력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역적 기관의 관점으로 보는 렌즈
여러분의 교회 생활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의 역사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교회의 영적 생동감은 어떤가? 교회의 제자화와 전도 프로그램은 사람들의 필요를 창조적으로 충족시켜 주고 있는가? 봉사는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예배와 기도 생활에는 생동감이 있는가? 회중은 사역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가?
회중의 크기나, 교회의 성장 단계, 시설의 적절성 여부 등과 같은 다른 요소들은 모두 그 교회가 지역 사회에 효과적으로 영향을 끼치느냐 못 끼치느냐 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제 7 장 위로는 하나님을 향하여(Upward to God)
두거초 더미 사이에서 짐승 하나가 굶어 죽었는데 그 이유는 그 사이에 서서 어느 건초 더미가 더 큰지를 판단만 하다가 시간을 너무 많이 보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중립적인 위치를 포기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에 대한 예화이다.
어떤 결정을 내려 두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정말 교회에는 지혜가 필요하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찾는 다는 것은 곧 여러분이 처한 곳에서 어떻게 진실되게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는지를 하나님과 사람 모두에게 물어 보고 연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정말 쟁점이 되는 것은 여러분이 회중들을 통해 어떻게 그리스도를 위한 사역을 해 나갈 것이냐 하는 것이다.
3차원의 입체 영상에서 틱-택-토(tic-tac-toe)게임을 하는 것과 아주 흡사하다. 움직임 하나 하나가 한 게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홉 개의 게임 전부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교회에 헌신한다면, 그 헌신은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시기 위해 돌아가신 이 세상을 섬기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요한복음에도 이와 똑같은 논리가 나타나 있다. ‘내 안에 거하라’ 는 말씀은 예배에 대한 것이며(4절),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하부조직에 관한 것이며(12절), ‘가서 열매를 맺으라’는 말씀은 교회가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을 말하는 것이다(16절).”
오늘날의 예배와 찬양에서 현대적인 것들이 내일의 교회에서 확고한 전통으로 자리를 잡게 될 것이지는 일반 사람들로서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불행히도, 이것은 오늘날의 회중들을 분열시키는 가장 큰 요인들중의 하나이다.
예배의 원리
거짓 예배자들은 우상을 섬긴다. 헛된 예배자들은 올바른 하나님을 경배하기는 하지만 잘못된 방법으로 경배하는 사람들이다.
거짓 예배자와 헛된 예배자와는 대조적으로,요한복음 4:24에서는 참 예배자가 어떤사람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한은 참 예배는 진리에 뿌리를 둔 것이며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영과 결합되어 있는지를 분명하게 확인하기를 원하고 있다.
“신령”은 우리의 생각(minds)과 지성(intellect)을 포함하고 있고 “마음”(heart)은 진정한 예배의 한 부분인 우리의 애정(affection)과 감정(feelings)을 포함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바꾸는 이유가 예배 스타일 때문이며 자신들의 취향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요구받기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의 일
예배란 사람들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모든 교회가 어떤 형식이든 예배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예배는 마땅히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예배가 되도록 계획을 세워야 한다. 즉 자유(freedom)와 조직(structure)이 상호간에 충분히 관계를 유지해 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 둘 중 어느 것도 다른 하나가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다. 성령은 형식(form)과 조직(structure)을 통해 움직인다. 문제는 이 두 개의 가변적 요소 사이에 어떻게 균형을 유지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경건한 분위기가 나지 않으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없다고 느끼고 있다. 그들은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과 존경을 표현하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예배 의식은 교회 안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뿌리깊은 것이며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조상들이 하던 대로 예배를 드리고 싶어한다.
“교회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밷전 2:4-5).예배에서 그 정체성이 잘 드러나게 됩니다. 교회는 제사장의 몸이며 성령이 거하시는 왕궁이므로 공중 예배에 마땅히 참가해야 합니다. 교회가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성직자가 예배 의식을 주도하고, 회중은 수동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교회 본래의 제사장적 성격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개인주의에 물든 성도들은 대체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만일 이 예배에서 저의 필요가 채워지지 않으면 저는 저의 필요를 채워 주는 다른 곳으로 옮겨갈 겁니다.” 이처럼 아직 헌신되지 않은 개인주의에 물든 신자들을 잃지 않으면서도 전체 예배를 잘 유지해 나가는 일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 할 수 있다.
예배를 다루고 있는 성경 본문은 대부분 음악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는데 그 까닭은 음악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찬양과 경배의 표현에 너무도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예배에서 찬양이 그렇게도 중요한 것이다. 즉 찬양은 우리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게 해준다. 찬양은 예배에 영감을 불어넣고 예배를 이끌어 가며 예배를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찬미는 예배의 표현입니다. 그 노래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마땅히 받으셔야”할 것으로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쁨과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며, 창조주께 드리는 피조물의 고백인 동시에 초월적인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낮아짐을 표현한 것입니다. 찬미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그 분이 행하신 일들에 대한 송축으로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감사와 기쁨의 노래를 발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찬미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은 마땅히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도움을 입고 자기 친구들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하기 위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를 기대하신다. 그러나 진정한 예배는 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adoration)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사람들이 진실로 하나님을 경배하면 하나님을 결국 그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덧 입혀 주시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이다. 영적인 지도자는 예배를 드릴 때에 균형 잡힌 기도에 신경을 써야 한다.
지도자는 성도들이 공적인 예배에 참석하고 다른 사람들의 기도를 듣고서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전체적인 기도가 실천되지 않으면 개인 기도도 실천되기 어렵다.
훌륭한 지도자라면 회중들이 영적 여정의 어디쯤 와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순례여정에서 성숙한만큼 성숙한 기도를 하는지 등을 마땅히 알고 있어야한다.
설교는 예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오늘날 일반 방문객들은 전체 예배에 참석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들으려고 교회에 온다... 교회가 크면 클수록 담임 목사가 1년 중 적어도 44주는 강단에 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또한 설교는 공동체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드러내 놓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다. 설교는 설교자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에 오는 사람들에게도 중요하다. 그들은 모두 똑같은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은사에 대한 입장 차이
은사주의인가, 비은사주의인가?
세상의 거의 모든 교회들이 성령의 임재를 느끼고 싶어한다. 중요한 질문은 ‘성령의 임재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전달해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레이드 앤더슨은 이렇게 말했다.“(오늘날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은)1950년대나 1960년대의 지성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외침이다. 우리의 20세기는 합리주의와 자유주의의 비등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제 금세기를 추구하고 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며 그들의 삶이 완전히 바뀔 수 있는 그런 교회를 찾고 있노라고 내게 말하고 있다.”
초기의 교부들 중 당대에 성령의 역사를 인정했던 사람 중의 하나는 기원 후 140-203년에 살았던 이레니우스(Irenaeus)였다. 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교회에서 형제들이 예언의 은사를 가지고 있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모든 방언을 말하며, 사람 속에 감춰져 있는 것들을 모두의 유익을 위하여 들추어 내고 ,하나님의 비밀을 선포한다는 것과 또한 사도들도 “영적인 일” 이라고 표현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듣고 있다.
하나님의 어떤 특별하신 역사를 둘러싼 논쟁을 보는 것은 그리 특이한 일이 아니다. 60-70년대 우리의 대학가에서 엄청난 소요가 일어나고 있을 무렵, 우리 교회 안에서도 방언 운동에 관해 엄청난 논란이 일어났었는데 이것은 금새 표적과 기사 운동으로 번져서 더 큰 쟁점이 되기도 했다.
자신들을 극단적 은사 운동가들로 자처하던 사람들은 방언을 말하거나 공개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체험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강하게 받았거나 아니면 강요를 당했거나, 또는 교회를 떠나든지 자발적 의지로 포기하든지 하라고 강요를 받기까지 했던 사람들이다. 그런 문제들 때문에 때로는 교회가 갈라지기도 했다. 자신들을 스스로 비은사주의자로 분류한 사람들은 이 입장의 다른 극단에 선 사람들로서 방언이나 표적이나 기사는 오늘날에는 더 이상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많은 교회들이 이 양극단의 중간 어디쯤에 자신들이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은사문제들
첫 번째 문제는 병고침에 대한 문제이다. 수많은 목사들이 자신들은 이 문제의 극단적 양 쪽 입장에 대한 책들을 광범위하게 읽었고 따라서 자신들이 취한 입장은 분명히 정직하고 확실하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말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에 병을 고치는 치유(治癒)가 포함되는 것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대속에는 치유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이후 교회의 그 같은 치유 사역은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귀신을 쫓아내는 축귀와 관련된 문제다. 피터드윗(Peter DeWitt)은 “ 축귀는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 가운데 임했다는 증거다.”라고 하였다. 여러 가지의 다른 은사들을 어떻게 보고 또 그것들을 어떻게 분류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은 그 좌표의 이쪽에 서게 되는 것이다.
첫째 범주: 사회적 표적이나 일반 사람들에게 적용된 표적. (1)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한다. (2) 갇힌자에게 자유를 선포한다. (3) 압제 당하는 자를 풀어 준다. (4) 희년을 제정한다(여호와의 은혜의 해).
둘째 범주: 개인적 표적이난 특수한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표적.(1) 눈먼 자를 보게 한다. (2) 귀신과 악령들을 쫓아 낸다. (3) 병든 자를 치료한다. (4) 절름발이를 걷게 한다. (5) 문둥병을 깨끗케 한다. (6) 귀머거리를 듣게 한다. (7) 뱀을 집는다. (8) 죽은자를 살려 낸다. (9) 방언을 말한다. (10) 무슨 독을 마셔도 해를 입지 않는다.
피터 와그너는 은사들을 일반적인 범주로 크게 나눈 은사주의자들에 대해 얘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둘째 범주의 표적은 일반적으로 표적이나 기사들이 거룩하신 아들 예수에 의해 행해졌다(행 4:30). 그런 것들은 또한 스데반과 사도들에 의해서도 행해졌다. 둘째 범주에 속하는 표적들의 주요 기능은 하나님의 능력에 공개적으로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켜서 복음의 메시지에 대해 불신자들의 마음을 열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만일 하나님의 영이 그분의 뜻대로 오시고 이런 것들이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사들이라면 그분은 사람들이 원한다고 해서 오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 스스로의 뜻으로 오실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의문은 ‘여러분은 성령께서 그분의 뜻을 따라 여러분의 삶을 통해 역사를 나타내시길 원한다면 어떻게 여러분의 뜻을 따라 성령께서 그렇게 하시도록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은사주의 운동에 대한 사역 철학을 결정할 때 진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할 성경 구절들이다: 마 10:7-8; 막 16:15-18; 17:17; 눅 4:17-18; 24:49; 요 20:20; 행 1:8; 2:5, 8, 10: 고전 12:8; 갈 3:1-5; 겔34:4.
참여에 관한 이슈들
정말 고려해야 할 문제는 교회안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 여러분의 교회가 아주 전형적인 교회인 경우 그 문제를 생각해 보는 데 조지 바넷의 말이 도움이 된다: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하고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어른들의 경우 대다수는 등록된 교인이지 거듭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교인들과 비교인들 사이의 영적 헌신에는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등록된(formal) 교인들 중, 거듭난 사람은 48%,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52%이며, 비등록(informal) 교인들 중 거듭난 사람은 44%,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56%입니다.”
최근에 나는 휴양지에 위치해 있는 적이 있는 교회에 오랫동안 출석하고 있는 교인들이 나누는 흥미로운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교회가 전도 메시지를 하는 데 더 관심을 쏟게 되자 많은 교인들이 더 이상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예배가 더 이상 자신들을 위한 예배가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예배의 목적이 충분하게 명시되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은 더 이상 주인 의식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참여 쪽 입장의 회중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역 철학이 분명히 명문화되어야 하고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저 마음 속에 무언가를 채우러 예배에 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구세주를 소개하는 회중의 일원이 되기 위해 온 것이다.
교회의 회중들은 회중을 다섯 계층으로 규정해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공동체와 대중(community and crowd)이라는 첫 두 계층은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오지만 아직 그리스도와 완전히 연합하지 않은 사람들로 분류되었다.
8장 안으로는 교회를 향하여
오늘날 거의 모든 교회가 교회의 권위와 행정 구조 문제를 대충 처리 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교회 내에서 아주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
평신도가 이끌어 가는 교회에서는 교회의 권위는 회중들에게 속해 있으며, 특히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속해 있다. 이런 교회에서 목사는 목자교사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하다.
칼라한은 목사를 경영자나 카리스마를 가지고서 영감을 불어넣는 사람이라고 불러, 다음과 같이 중도적인 직책으로 정의하고 있다. (1) 지도자는 본질적으로 카르스마적으로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사람이다. (2) 그의 인생 철학은 철학은 현재 발생하는 종말적 사건을 해석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3) 사람들이 만든 문화란 본질적으로 타락한 것이라고 본다. (4) 그는 교회를 언약공동체로 간주하는 신학을 믿는다.
선교를 강조하는 목사가 교회의 사명을 담당할 유일한 지도자는 아니다. 교회의 사명을 담당하는 것은 여러 지도자들이 함께 해야 할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교를 담당하는 목사가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며, 단순한 경영자나 사장, 다른 사람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사람, 또는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카리스마적인 사람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교회 성장에 관해 글을 쓴 필자들은 대부분 교회의 성장과 회중 수의 증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목사라고 말한다.
목사도 일종의 직업인이라는 생각이 들자 이것은 일반 사회나 회중들이 목사를 평가하는 방식에 큰 변화를 초래했다.
“1934년에 목사는 다섯 가지 역할, 즉 교사, 설교자, 예배 인도자, 목사, 그리고 행정가의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었습니다. 1980년에 행한 한 조사에 의하면 목사의 역할이 거의 두배로 늘어나 9가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980년에 행한 또 다른 조사에는 목사가 해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역할이 14가지로 늘어났고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목사가 모든 회중들을 만족시키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리라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1. 스타일과 기질
지도자는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며 관리자는 일을 옳게하는 사람입니다. 이 차이를 요약하면 ‘비전을 바라보는 것’과 ‘일상적인 일을 정해진 순서대로 잘 하는 것’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지 바나는 “회중이 서로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 교회는 모두 강한 목사가 그 교회를 이 끌고 있었습니다. ‘강하다’는 것은 그 목사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으며 그 교회의 참 지도자라는 뜻입니다. ‘목사’는 회중들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으며, 필요할 때에 비전과 영적 지침을 제공해 주는 사람입니다. 강한 목사란 소속감을 갖고서 교회 일에 참여하고 싶어한 사람들을 참여시키면서도 자신이 교회를 책임져 나가는 사람을 말합니다.라고 말한다.
자신들이 어떤 기질을 가진 사람들인지를 지도자들 자신들이 깨닫게 됨에 따라 그들은 자신들이 잘하지 못하는 영역에 다른 교역자들을 배치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또한 자신들의 성격과 은사에 맞는 사역 철학도 만들어 낼 수가 있게 되었다.
수십년동안 내가 많은 지도자들과 동역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특권이었다.
1.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여러분의 일반적인 행동 경향을 더 잘 이해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2. 대부분의 상황에서 여러분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을 최악으로 몰고가는 어떤 상황들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
3. 팀 안에서 구성원들의 기질에 대해 균형잡힌 접근의 필요성을 인식시켜 줌으로써 팀 사역에 힘을 불어넣어 주게 될 것이다.
4. 기질이 다른 사람들간에는 마찰의 소지가 있음을 알 수 있으므로 팀 사역을 하는 사람들 중 누구와 마찰의 가능성이 있을 것을 알게 해준다.
5. 어떤 타입의 기질보다 나은 것이 아니다. 다만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반대되는 기질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도 비난하지 않게 해 준다.
6. 사람들은 기질에 따라 죄를 짓게 되므로 여러분이 어떤 죄를 지을 성향이 있는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2. 평신도가 주도하는 교회
훌륭한 지도력은 세상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통해 일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통해 사람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교회란 목사가 이런 문제와 한바탕 씨름을 하고 나면 드디어 회중 가운데 잠재적으로 사역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게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개인의 기질을 적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친근하고 개인적이며 작고 사소한 것에 더 신경을 쓰는 기질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속에서 사역을 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게리 인리그는 “우리는 사람으로서 남의 밑에 있기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 많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영적으로 성숙했을 때만이 이것은 가능합니다.
평신도 주도형 교회 “교회 갱신의 가장 큰 장벽 중 하나는 성직자들이 평신도들을 얼마든지 사역을 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목사 혼자만 가진 비전이나 통찰력, 그리고 목사 혼자만 인정하는 교회 프로그램이 일방적이고 비효과적일 것이라는 것은 뻔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만일 사도 요한이 우리 곁에 있다면 그는 회중들의 관심사나 신경을 쓰고 봉사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상기시켜 주었을 것이다.(요31:10)
섬김의 본질을 이해하기만 한다면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쉽게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즉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들은 서로 안아 주고 손을 내밀어 주며 영적으로 채워지고 있다고 느끼도록 해 주어야 한다.
조지바나(George Barna) 성장하는 교회와 정체된 교회의 차이는 명백하다. 성장하는 교회는 교회의 지도자들을 준비시켜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게 함으로써 그들이 자아 실현을 하게 하는 것이 교회가 마땅히 할 일이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정체된 교회들은 새로운 지도자를 영입하고 그들을 훈련시켜 교회 사역 내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들을 담당하도록 하지 않으면 그 교회는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평신도들이 자신들이 교회를 이끌어갈 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성취해야 할 의미있는 목표를 갖고 있지 못하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힘을 남용하기가 쉽다. 자신들이 교회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성취하는 것이야말로 성직자와 평신도가 함께 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영역이다.
중요한 각 사역의 성공과 실패는 지도자의 손에 달려 있다.
케논 칼라한 “사람들에게 권위를 주기 전에는 절대로 그들에게 책임을 맡기지 말라.” 사람들에게 책임과 권위를 부여하기 전에 책임있는 사역을 감당하도록 훈련을 시키고 구비시켜 주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원칙이다. 그런 훈련을 해 주지 않게 되면 사람들은 실망하게 되고 대체로 사역에 따르는 책임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는다.(에베소서 4:11-12)
그리스도는 교회에 훈련가들을 주셨고 그 훈련가들이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일을 감당함으로써 성도들은 봉사의 일(사역)을 할 수 있게 된다.
성직자가 평신도에게 사역에 참여하도록 할 때에 겪는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는 그들이 지도력을 발휘할 만큼 아직은 영적으로 충분히 성숙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교회 지도자 그룹이 사람들을 진지하게 훈련시켜 성숙시키지 않으면 그 교회에 치명적인 위험이 된다. 이렇게 되면 미성숙한 지도자가 계속해서 남아 있게 되고, 회중들은 ‘성숙’에 대해 그릇된 개념을 갖게 된다. 회중은 지도자가 성숙한 만큼만 성숙하게 된다.
오늘날의 사회는 극악무도한 죄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관용하고 있다. 불행히도 죄는 이제 교회의 바로 정문에까지 용감하게 쳐들어 왔으며, 대부분의 교회는 죄가 그렇게 넘실대고 있는데도 그것을 처리하지 않고 뒷걸음질치고 있다. 비록 교회에서의 징계가 종종 잘못 이해되고 있긴 하지만 그러나 그 개념은 신약성경의 여러 곳에 나와있다(고전 5:1-13;살후 3:1-18;마18:15-18;고후 5-7:딤전5:19-24;갈 6:1).
이제 남은 큰 과제는 회중들 가운데 이런 사람들이 있을 때 어떻게 여러분의 교회에서 이처럼 강한 성경적 명령을 따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칼 래니(Carl Saney):는 “성경적인 교제에는 사랑 안에서 서로 서로를 살펴 주고 충고해 주며 칭찬해 주고 권면해 주며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교회 징계를 죄와의 관계에서 씨름하고 있는 형제나 자매들에게 기독교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고 하였다.
1. 기관이 하는 징계
올리버 프라이스(Oliver W. Price) 현명한 교회 징계는 교회를 결속시키고 심령을 새롭게 하며 견고한 성장을 이루게 한다.“라고 말한다.
회중들이 교회 징계를 머뭇거리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는 자신들의 몸된 교회에 대한 헌신의 결핍이다. 이것은 어쩌면 이동이 심한 우리 사회에 큰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 그들은 만일 여러분이 회중들과 더불어 그런 일을 시작하면 많은 사람들이 훨씬 더 편안한 스타일의 다른 교회로 옮겨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로버트 맥킬킨은 “마땅히 강조할 일을 너무 강조한다고 해서 균형이 깨지는 것이 아니다. 너무 사랑한다거나 너무 신실하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신실하지 않은 것을 사랑으로 변장하는 것은 완전히 가능하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감상주의나 자기 연민 그리고 또 다른 이유를 들어 교회 징계를 하려 하지 않는다면 입으로는 사랑을 많이 말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신실하게 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고 하였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교회는 거룩하게 되고(계 4:8) 또한 서로 하나가 되어(신 6:4)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한다는것을 두말 없이 동의할 것이다.
교인 자격에 대한 입장 차이
교회에 등록해야 하는가? 등록할 필요가 없는가?
1. 교인 자격에 대한 쟁점들
여기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쟁점들 중 하나는 성찬식이 무형 교회에 주어진 것이냐 아니면 유형 교회에 주어진 것이냐 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교인 자격은 당연히 성찬식보다 앞선다. 성찬식은 가족으로서 갖는 권리이므로 참석자들은 먼저 가족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행 2:46-47; 20:7; 고전 11:18-22).
교인 자격은 교회 교제의 상징과도 같다. 성찬식에서 추방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면 출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결혼이 두 사람을 서로 묶어 주듯이 교인 자격은 사람들을 교회에 묶어 주는 역할을 한다. 그 같은 헌신이 없이는 교인들은 예배에 전심으로 출석할 수 없고 교회는 그 정결성마저도 상실하게 될 것이다. 교인 자격이 없이는 교회 징계를 유지해 나갈 방도가 없다.
레이드 앤더슨은 “사람들은 성장하는 대형교회를 선호하는데 이들은 출석은 하지만 등록하기를 싫어한다”고 한다.
이와는 반대로, 헌터(Kent R. Hunter)는 “성장하는 교회들은 교인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그렇게 요구할 수 있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그런 교회들에서는 여러 소그룹들이 아주 급속도로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뭔가 온전한 것을 가진 신자들의 그룹을 찾고 있습니다. 그들은 줏대가 있는 든든한 교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고 하였다.
2. 교단
미국이 발전하면서 기독교가 서부로 퍼져 나가자 신자들은 자신들이 속한 교단의 이름이 붙은 교회들을 찾았다. 그러나 미국에서 가장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450개 내지 500여 개의 교회들은 유명 교단 소속이 아니다.“
“반교단주의 현상은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한 사람들의 57%가 다른 교단 또는 유사 교단으로 옮긴 것으로 나타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전문화와 더불어 교회 선택의 기회가 확대되면서 교단에의 충성도는 엄청나게 떨어졌다.”교단이 미국에서는 점점 사라져 없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조지 피터스(George Peters)는 미국의 교회론에서 교단의 중요성이 감소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또 다른 견해를 밝히고 있다.
교회는 유기체와도 같은데 구조나 형태가 없는 데 대해서 부작용을 보일 것이다… 그것은 얼마 가지 않아서 그 유기체는 심각한 고통을 겪게 되거나 역동적인 기능이 정지되고 서서해 와해되어 갈 것이다.
교회는 교단의 강한 유대를 맺고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지도자들이 아직도 엄청나게 많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한 몸안에서는 분열을 치료하고 한 몸으로서 기능을 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바울이 우리 모두가 한 기관으로 뭉쳐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지역 사회에서 어떤 한 교회가 다른 교회들과 완전히 별도로 존재하려고 하는 생각은 분명히 그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이다.
교인 자격에 대한 입장 은 끊임없이 변할 것이라고 우리 모두는 예측할수 있다. 여러분의 교회를 정말로 성경적인 교회, 그러면서도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교회로 만들고 싶다면 교인의 자격과 관련된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 보는 것이 꼭 필요할 것이다.
양육에 대한 입장 차이
스스로 성장하게 할 것인가, 지도해서 성장시킬 것인가?
오순절 이후 한 세기 동안에 교회는 절대로 없어지지 않았다.
양육은 여러 가지 형태로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비계획적 양육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령께서 교회에 임재하시면(요 16:13) 그 결과 자연스럽게 영적 성장이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교회에는 신생아들이 있기 마련이므로 말씀이라는 순전한 젖을 사모하는 아기들이 있기 마련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 속에서 저절로 자라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좀더 나아가 아기들은 일정 기간 동안은 먹여 줄 필요가 있지만 그 기간이 지나면 그들은 설교를 듣거나 그들이 성장하도록 가르침을 받는 것만으로도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들은 사람들이 정말 그리스도에 대해 갈급해 하고 있고 성숙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이라면 성장에 필요한 조치를 스스로 취할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들은 성령께서 성장하게 하신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사람이 만든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할 수는 없다고 한다.
양육의 쟁점들
계획적 성장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주일 학교나 소그룹 활동을 하는 동안에 어떤 성장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규정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모두 성장을 촉진하는 어떤 과정을 따를 것을 권고한다.
요한복음 14:21-24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정도에 따라 하나님은 계시하실 것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결국 영적 계발은 정통성(orthodoxy)과 그 정통성의 올바른 실천(orthopraxis)에 관한 것이다. 계획적 양육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영적 훈육은 단순한 배움이 아니라 삶의 변화에 깊은 관심을 두고 성장을 목표로 하는 교과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제에 대한 입장 차이
자율 교제인가, 타율 교제인가?
1990년대로 접어드는 와중에 미국에서는 아주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몇 년 전만 해도 미국인들은 집으로 돌아가 문을 닫고 이웃이 우호적이지 못하다고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곤 했다. 고독이라는 것은 미국 구석 구석 거의 모든 사회에서 어느 정도 씩은 다 느끼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도시로 가면 갈수록 우리는 점점 더 소외감을 느낀다.
1950년대에 미국의 가족 제도가 와해되면서 사람들이 소속감을 상실하게 되자 소그룹 운동이 힘겹게 시작되었다. 1980년대에 가서는 소그룹은 정말 미국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미국의 거의 모든 계층에서 소그룹이 가족을 대체해 나갔다.
외로움을 더 느끼는 대형 교회에서 이런 장면은 더 두드러져 보였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기만 하면 자신들과 같은 류의 사람들을 찾을 수 있었고 또한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도 고를 수가 있었다.
자율성은 과거 한 이삼십 년 동안 숨어 있다가 최근에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나 싶다. 이제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다 외롭다는 것과도 같다. 이것은 마치 지붕 꼭대기에서 고래고래 질러 대는 소리를 듣는 것과도 같다.
이것은 엄청난 역설이다. 이 사회 속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나는 당신이 내 친구가 되어주었으면 합니다!” 하는 소리도 듣지만 곧바로 그 말 다음에 “나를 혼자 있게 내버려둬!”라는 소리도 듣는 것이다. 그들은 속으로 “당신을 위해 나는 어떤 대가도 치르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눈치 빠른 교회라면 이런 현상을 전도할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신속히 찾아낼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필요나 관심사에 바탕을 둔 온갖 종류의 활동들을 프로그램화 하고 그런 활동들을 해 나가면서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이다.
교회들은 교회에서 의미있는 교제를 체험하도록 하고자 하지만, 사회적으로 수동적이거나 또는 다른 이유들 때문에 자신들의 익명을 유지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교제가 일어나진 않겠지만 그러나 어떤 수준이든지 교제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만는 분명하다.
1. 타율 교제
타율교제 입장에 선 사람들은 알맹이 없는 교제라는 것은 무의미한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영혼이 없는 몸은 시체요 육체가 없는 영혼은 유령에 불과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만일 사람들이 관계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그들 스스로 그런 관계를 찾아 나설 것이며 어떤 식으로든 그들을 강제로 참여시키려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철저히 믿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내적 감정을 표현하면 다른 사람들이 불편을 느끼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참여하기를 꺼려 하고 있는 것이다.
2. 다음과 같은 쟁점들을 교려하라.
요즘 특히 중 소형 교회에서는 아주 심각하게 잘못된 개념이 떠돌고 있다. 그들 중에는 예배를 드릴 때에 다른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며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교회에 올 때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각 부서(committees)에 대해 열심을 내는 것보다는 교회 전체의 공동체(community)에 대해 더 열심을 낸다. 대형 교회에서 사람들의 수가 많을 때는 소그룹으로 나누어서 사람들을 의미있는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
3. 성인들에게 꼭 있어야 될 것
성경에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영적으로 더 나아가서는 어쩌면 정신 의학적으로까지 서로 서로 에게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핵심이다. 마가복음 3:14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로간에 책임있는 관계를 맺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직접 본을 보이셨다.
로마서 15:1-2과 갈라디아서 5:25-6:2은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여러분이 책임져야 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똑같이 서로의 짐을 주고(갈 6:2) 다른 사람들과 강한 사랑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벧전 1:22). 에베소서4:15-16을 연구하면서 나는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몸된 교회의 각 부분을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사람들이 그런 관계로 맺어져 있지 않을 경우 그리스도는 그에게 속한 사람들에게, 또 그 사람들을 통해서 말씀을 하려 하시지도 않고, 또 할 수도 없게 된다.
히브리서 10:24-25에서 말하고 있는 대로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모이기를 힘쓴다면 그들은 그 같은 모임을 갖는 목적을 이룰 수가 있을 것이다. 이 구절은 그들이 ‘서로 서로에게 박차를 가해 주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서로에게 박차를 가하고 그래서 상대방의 개성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사랑과 선행을” 끌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양육이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양육을 위한 모임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의 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그르칠 수도 있다(골 1:28-29). 대형 교회에서는 사람들이 관계를 증진시켜 나가도록 도와 주고 영적 성숙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기 위해서는 소그룹이나 지원 그룹, 또는 제자화 그룹 등을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대형 교회든 소형 교회든 헌신되지 않거나 성숙하고자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마련이다.
4.구조
교회에서 성인 사역을 맡는 사람은 누구든지 모든 그룹들이 종국에는 끝이 나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일단 이 사실을 안 후에는 새로운 그룹을 시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성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그룹이 끝날 때의 좋은 점은 그 그룹이 끝날 때는 믿음이 커지고 더 정결해지며 따라서 영적 계발이 더 잘 일어난다는 것이다. 또한 한 그룹이 끝나는 걸 깨닫게되면 여러분은 새로운 그룹을 시작하게 되고 그러면 그 새그룹은 교회에 더 많은 전도의 기회를 새롭게 제공하게 된다. 지도자들은 모든 그룹의 출석률을 점검해서 언제 그 그룹을 끝내고 언제 새 그룹을 시작해야 할 지를 결정해야 한다. 대개 한 그룹은 1년 내지 1년 반이면 끝나게 된다. ‘전화 심방 사역 조직’을 통해 모든 성도들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전화를 받게 된다. 그들은 그것이 참 안전한 조직망이라 생각한다. 포트랜드의 새 소망 교회 역시 모즌 성도들에게 한달에 한 번씩 전화를 하는데 그들은 전화하는 일에 전문 요원을 배치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긴다.
그들은 성인들은 한 번에 한 그룹 이상의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은 교인들 모두가 어떤 그룹에든지 하나씩 참여하도록 하고 있으며 성인들이 한 번에 하나 이상의 그룹에 속하는 것은 기대하지도 않고 있다.
조직 안에서의 교제에 상당한 비중을 두는 교회들은 자신들의 교회에 오는 새신자들을 끌어안고 동화시키고자 신속하게 그리고 열심히 노력한다.
시설에 대한 입장 차이
수수하게 할 것인가, 화려하게 할 것인가?
1. 소박한 교회를 주장하는 사람들
이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속한 사회를 향하여 정말 중요한 것은 시설이 아니라고 강력히 말한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그 시설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복음은 ‘가라’ 고 말하지만 우리의 교회 건물들은 ‘머물러 있으라’ 고 말한다. 복음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으라’고 말하지만 우리의 교회 건물들은 ‘잃어버린 영혼들이 교회를 찾아오도록 내버려 두라’ 고 말한다.”
2. 화려한 교회 시설을 주장하는 사람들
이 입장에 선 사람들은 하나님은 성전이 아주 위풍당당하기를 원하시며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기를 원하신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회 건물이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 입장의 사람들은 창고 같은 교회는 임시로 머무는 곳이고 이단 냄새를 풍기고 여러분이 ‘가정’ 이라고 부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지 않는다고 한다.
3. 시설에 대해 고려할 문제들
여러분이 교회 시설을 생각할 때 고려해야 할 두가지 기본적인 사항이 있다. 첫째는, 여러분이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여러분의 시설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지역 사회에 하나의 선언을 하고 있는 셈이라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선언문을 만들고 싶은가? 둘째는, 여러분은 여러분의 사역 철학을 달성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9장 밖으로는 세상을 향하여(Outward to the World)
목표 대상에 대한 입장 차이
구도자인가, 믿음의 가족인가?
이 입장의 차이를 달리 표현한다면 여러분의 교회가 “폐쇄형”(closed) 교회인지, 아니면 “침투형” (penetrating) 교회인지를 말하는 것이다.
“폐쇄형”이라는 말은 선교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다만 주께서 교회에 주신 사명을 어떻게 감당해 나가려는지 그 방법을 말한다.
스스로를 구도자 중심 교회라고 극단적 입장을 표명한 교회는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교회는 교회 자체를 세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를 침투하기 위해 존재한다. 교회는 스스로를 선교하는 교회로 보며, 목사가 회중들이 사회에 영향을 끼치도록 그들을 이끌어 나간다. 예배는 교회를 찾아온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진행된다. 따라서 찬양과 설교의 내용 및 스타일이 훨씬 구도자에게 민감하게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며, 그들 각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다. 신자들의 양육은 주일 오전 예배를 제외한 다른 예배를 통해 이루어진다. 비록 교인으로 등록하도록 권장하긴 하지만, 보다 더 지대한 관심은 교회 밖의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있다.
스스로를 믿음의 가족 교회로 입장을 표명한 교회들은 설교를 신실하고 일관된 방법으로 하나님의 경륜을 가르치는 데 집중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설교를 전도와 양육에 아주 효과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본다. 찬양은 예배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들은 하나님에 초점을 맞춘 예배와 기도를 강조한다. 교인들은 모두 개인의 영적 성장과 책임감을 길러 주는 소그룹의 교제에 참여하도록 권고받는다. 전세계를 염두에 두고서 선교를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열린 마음으로, 다른 문화권의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배우고자 하며 또 복음이 온 세상에 영향을 끼치도록 기도할 자세도 되어 있다.
교인이 되려면 개인적으로 주께 헌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각 그리스도인 한사람 한사람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주요 구성원이며 그 몸 내부의 사역에서 각자가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교회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불신자들을 위하는 쪽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불신자들을 위한 사역만이 곧 교회 사역의 우선적인 핵심은 아니다.
여기서의 주요 관심사는 교회가 잃어버린 사람들을 바라보고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 관한 것이다.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목표는 ‘사람을 하나님과 화목시켜야 하고 <사람의 생명>이 올바로 살아 움직이도록 회복시켜야 한다.’는 교회의 본질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룬 결과로 생긴 것이며, 또한 그분의 목적을 성취해 가는 수단이기도 하다. 교회에는 거룩한 능력이 주어졌는데, 그것은 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달성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역으로 교회가 그 목적을 어느 정도로 추구해 나가느냐에 따라 글에 비례하여 능력이 주어진다고도 할 수 있다.
1. 잃어버린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열정
여러분이 어는 입장에서야 할 것인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면 아래에 나오는 4종류의 채점들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첫째, 먼저 잃어버린 세상의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의 열정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성경은 시편 기자로부터 전도자들 및 성도들 그리고 우리 주님에 이르기까지 온통 기대로 가득 차 있다. 오늘날 기독교 선교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순종이다. 이것은 마땅한 일이다. 성경은 오늘도 잃어버린 영혼들이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또한 구원받은 사람들은 성도의 교제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것이다․․․신약성경에는 외적 성장으로서 수적인 증가와 내적 성장으로서 영적, 질적 성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구절이 수없이 많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세상 사람들이 지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주님의 마음을 알았으면, 어떻게 회중들의 삶과 사역을 통해 그 사명을 감당해 낼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여러분의 교회와 교회 회중들이 하나님의 열정을 가지고 추수의 현장에 참여하겠는가. 아니면 그저 단순히 복음의 씨았을 뿌린다는 마음으로만 지내겠는가?
씨앗을 뿌리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여러분은 어디든지 가서 씨를 뿌릴 생각을 할 것이고, 복음의 문이 열려 추수를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와그너는 단순히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의도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추수하는 교회의 입장을 설명함으로 교회 성장 운동을 말하고 있다:
단순히 씨만 뿌리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잃어버린 자녀들이 찾아지기를 원하신다. 그 증거를 살펴보자.
“하나님을 추수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자를 찾고자 하시는 열망이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는 4가지 성경적 증거가 있다.(1) 우리 주님과 그의 제자들은 단순히 씨만 뿌리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마9:37에서 특정한 사람들이 복음에 문을 여는 것을 보시면서 우리 주님은 추수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셨다. 희어져 있는 들판은 하나님의 소유다. 단순히 그 들판을 지나가면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하나님은 그 곡식들을 낫으로 베기를 원하신다(마10:14, 행13:51). (2)우리 주님의 비유는 종종 실제적으로 사람을 찾아 구원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큰 연회장에서 주인은 초청받은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종들에게“ 이 무관심한 사람들이 우리의 초청을 받아들일 때까지 계속 초청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종들에게 “가난한 자들과 불구자들과 절름발이들과 눈먼 자들을 데려 오라”고 하셨다. (3)그리스도에게서 절정을 이룬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며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말해 주고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사람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원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시키고 계신 그리스도 안에 계셨다.
(4) 신약 교회는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적극적으로 찾아 갔으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다.
2. 문화를 보는 여러분의 관점
이 입장은 회중들에 문화를 보는 관점과 연관이 되어 있어서 미묘한 점을 포함하고 있다. 어떤 교회들은 문화 속으로 첨벙 뛰어드는 스쿠버 다이버 같은 교회들도 있다. 그런 교회들은 교회들 가운데(among) 있긴 하지만 그러나 교회들 중(of)의 하나는 아니다. 니부르(H.R.Niebuhr)는 회중들의 문화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를 알아보는 분류법을 맨처음 고안해 낸 사람이다. 에디 깁스가 이것을 요약하면서 여섯가지 입장을 덧붙여서 설명하고 있다. 이같은 여러 가지 입상을 철저히 연구하면 큰 유익이 있겠지만 깁스가 요약해 놓은 것만 보아도 우리는 잘 이해할 수 있다.
니부르는 1951년에 그리스도와 문화의 관계에 관련하여 여러 세대동안 신학자들이 보여 준 사고의 범주에 대해 기록했다. ⑴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문화: 이 견해는 세상이 악한 자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세상과 대적하는 자로 본다. ⑵ 문화 속의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문화에 영감을 불어 넣어 주고 완성하시는 분이다. ⑶ 문화 위에 계신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소망의 완성자, 회복자 그리고 참된 사회의 모든 제도의 회복자이시다.
문화에서 파생되지도 않고 문화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것도 아닌 그 무엇이 있다. ⑷ 그리스도와 문화의 역설적 관계. 그리스도는 문화 위에 계시지만 각 문화를 통합시키시지는 않는다. 이것이 신자가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긴장 가운데 살게 되는 이유다. ⑸ 문화를 바꾸시는 그리스도. 문화는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으로 대치되기(replaced)보다는 바꾸어지기(converted)위해 존재한다. ⑹ 하나님은 완전히 문화를 초월해 계시지만 인간은 완전히 문화 속에 존재한다. 하나님은 인간과의 교통을 하시기 위한 장으로서 인간들이 몸 담고 있는 문화적 환경을 택하신다.(제 6번은 1979년 크라프트(Kraft)가 추가한 것이다.
회중들이 문화를 타락한 것으로 보면 회중들은 자신들을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려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임재해 계심으로써 문화를 바꾸실 수 있다고 보게 되면 그들은 개인적으로 복음을 가지고 사회속으로 침투해 들어갈 수 있는 회중들이 될 것이다.
3. 교회의 크기
교회 성장 연구소 설문지에 나온 질문 중에 회중들이 수적으로 성장하길 원치 않는지를 물어 본 것이 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과 관련해 교회의 크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살펴보게 되어 나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수천 명이 출석하는 교회의 회중들은 그 질문에 평균적으로 35%정도가 성장을 원한다고 대답을 할 것이다. 회중 수가 적거나 줄어들면 그 비율은 거의 90% 가까이 올라간다.
교회는 교인수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님은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으시다는 것을 시사하는 입장을 표명한다. 물론 교회가 수치를 위한 수치에만 신경을 쓰는 것은 큰 위험이 있으며 또 그런 오류에 쉽게 빠질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수치에 신경을 쓰는 것은 그 수치들이 잃어버린 세상을 전도하려 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지에 대한 통찰력을 주기 때문이다.
대형 교회와 마찬가지로 소형 교회에도 수많은 함정들이 있다. 예를들면, 아주 작은(cell)두 교회가 싸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 같은 일의 재발을 위하여 교회는 수많은 그룹이나 집단이 필요하다. 반대로, 축제를 하듯이 예배를 드리고 소그룹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큰 교회는 수천명을 상대로 사역을 할 수 있지만, 회중에게만 초점을 맞춘 교회는 기껏해야 수백 명을 상대로 사역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대형 교회들이 사람들을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데 대해 이제는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또한 작은 교회라도 대형 교회들보다 더 사람들을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는 것도 상기시키고자 한다. 대형 교회냐 하는 것이 경건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종종 대형 교회 운동을 주창하는 레이디 앤더슨은 대형 교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대형 교회는 매주 예배 참석 인원이 2,000명 이상인 교회를 말한다. 그들은 거대한 예배실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도록 한다. 대형교회에는 직원들도 많고 비싼 시설도 갖춰야 하며 수백만의 예산을 집행한다. 그리고 설교도, 찬양도 아주 훌륭하다․․․대형 교회는 기차가 자동차를 확대시킨 것이 아니듯이 소형 교회들의 확대판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들은 다른 종류의 교회이다. 대형 교회의 성도들은 다른 성도들과의 교제 양상도 다르다.
나는 크기야 어떻든간에 모든 교회는 궁극적으로는 또 다른 교회의 개척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교회에는 심각한 위험들이 뒤따를 것이다. 결국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도를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 시설을 협소해지든지 아니면 교회가 너무 커져서, 아직도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있는 교회 주변의 지역 사회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도에대한 입장 차이
프로그램 중심으로 할 것인가, 사람중심으로 할 것인가?
1900년에 미국에는 미국인 1만명당 27개의 교회가 있었다. 1985년에는 미국인 1만 명당 고작 12개의 교회밖에 남지 않았다. 미국의 어떤 지역에서는 하루에 평균 9개의 교회가 사라지고 있다.
“행전 8:1에서 우리는 ‘사도들 외에는 모두 흩어졌더라’는 구절을 보게 된다. 이 구절이 강조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온 천하로 다니며 말씀을 선포했던 사람들은 사도들을 제외한 모든사람이었다. ‘말씀을 전파하다’라는 말은 물론 전도하다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유앙겔리조마이(euaggelizomai)에서 온 것이다. 따라서 초대 교회에서는 평신도들이 온 천하로 다니며 전도를 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할 잃어버린 이상이다.”
모든 영적 지도자들은 성경의 명령이 무엇인지는 금방 알아내지만 그러나 더 큰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성취하느냐 하는 것이다. 더 많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이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프로그램중심’의 사람들과 개개의 그리스도인들이 각자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주도적으로 전도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중심’의 사람들 사이에 큰 입장 차이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1. 프로그램 중심
프로그램 중심으로 전도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이 입장에는 몇가지 전제조건이 있다고 말한다. 그들에 따르면 모든 신자들은 자발적으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아니며 다른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통해 그들을 이끌어 주면 훨씬 더 잘 훈련된다고 한다. 그들은 그룹을 통해 동기를 부여하기가 훨씬 더 쉽다는 것이다. 또한 소수의 주류가 전도 하는데 필요한 사람 사귀는 기술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다고도 말한다. 각 사람이 자신의 기질에 맞는 방식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듯이 전도도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스타일에 맞게 전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필요나 관심사가 관계 형성의 주요 요소라는 말이다. 단순관계를 맺는 사람들, 또는 공통의 이해해야 한다. 이들이 전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2. 사람 중심
사람 중심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입장에 선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 성령께서 임재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그들이 전도하는 생활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이 입장에 개인적으로 의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은 각 개인의 삶 속에 임재해 계시는 성령께서 그들에게 전도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인도해 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행5:39-42을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지침으로 인용한다: “만일 (저들의 말이) 하나님께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그리고 그들은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은 영적 생활을 하는 유기체이므로 교회는 프로그램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전도를 프로그램을 통해서 펌프질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전도란 가르쳐서 되는게 아니라고 강력히 말한다.보통사람이 강의실에서 전도를 배운다는 것은 거실에서 비행기 조종법을 배우는 것만도 못하다고 한다.
3. 전도의 쟁점들
우리가 전도할 때 불신자들이 회심하도록 인도해야 하는데 그 회심에는 “삼중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1) 죄와 사망의 세력으로부터 해방됨(롬 8:1-8),(2)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됨 (요 1:12; 롬 8:16-17,29;갈 3:16, 26-29; 4:5b-7; 요일 2:1-2),93)그리스도의 통치에 참여함 (엡 1:2; 계 1:5f).
4.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대리인들
여기에서 결정하는 과정에는 전도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역할과 인간의 역할에 대한 여러분의 신학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21:27은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고 말한다.
이 본문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 없이도 우리가 집을 세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동역자로 (고전 3:9)인간과 함께 교회를 세우는 일에 참여하시지 않는다면 그때는 완전히 헛수고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시사하고 있다. 여러분 스스로 질문해 보라.“ 하나님 홀로 지으신 교회를 나는 본 적이 있는가?.”
분명히 우리는 인간들 스스로의 힘으로 지은 교회들은 많이 보았다.
교회를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뿐만 아니라 신자들은 자신들이 전도할 대상을 정하는데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기도가 너무도 중요하다. 그러나 반응을 보일 사람들을 찾아내는 일뿐만 아니라 추수하게 되어 희어진 들판으로 가는 일까지 마지막 책임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
5. 주권적 구원
우리가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사람되심과 사역을 선포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천국을 전파하는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통치가 의미하듯이 완전한 구원과 완전한 복종을 포함하고 있다. 예수를 구세주라고 하면서 주님으로 알리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승천하셔서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계신 가장 높으신 주님이시며, 구원을 베푸실 권세를 가지셨고, 죄인들을 죄와 두려움과 악과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가 때문이다. 사람들이 “주권적 전도”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고”, “가르치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명령에서 어느 한 요소도 분리 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리스도인이 자동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므로 회심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양육은 반드시 있어야 하며, 그리스도인의 제자화에는 매일매일 회개하는 것과 순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에 의견을 같이 한다. 사람들에게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선포할 때는 항상 진실하게 해야 하며, 윤리적 변화가 없는 회개는 있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윤리적인 문제의 세부 사항은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에 의견을 같이 한다.
6. 어린이 전도
많은 어린이들이 헌신의 의미도 알지 못하고 튼튼한 밑 바탕에도 없이 너무 일찍 그리스도인이 믿고 있는 경향이 있으며 그 바람에 나이가 들어서는 인생의 주인이신 주님이 기대하고있는 헌신은 거의 하지 않고 살아간다. 구원이란 한사람의 생애를 그리스도께 헌신하는 것으로 볼 때, 그들은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따르겠다는 열망을 보여 주는 평생의 헌신이 마땅히 있어야 한다.이것이 아마도 자신의 결정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언제냐 하는 쟁점일 것이다.
7. 전도자들
그리스도인이 된 지 오래 되었고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일수록 잠재적으로 회심을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교회에 새로운 회심자가 계속 늘지 않으면 그 회심자들은 금방 전도 프로그램에 필요한 세상 속에서의 잠재적 접촉자들을 만날 수 없게 될 것이다. 영적/심리적인 성장 기관이 계속 사람들을 교회로 데려오고 복음을 듣게 하려면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이 계속해서 자신의 친구들을 그리스도께로 데려오도록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8. 전도를 위한 훈련
오늘날의 교회는 사람들에게 계속적으로 전도 훈련을 시켜 주지 않는 데 대해서 어떤 핑계도 댈 수가 없다. 수 많은 홈 비디오화 교회나 가정에서 쓸 수 있는 아주 다양한 전도 훈련 과정들이 있으며 거기에다 대부분의 큰 도시에서는 선교 단체나 지역 훈련 기관에서 제공하는 강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주된 문제는 훈련 자원의 부족이 아니라 그렇게 하도록 하기 위한 동기의 부족이다 .
점점 더 많은 회중들이 전도 목사들이나 책임자들을 채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 역할을 다루고 있는 주요 성경 구절들을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엡4:12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목사들과 교사들과 전도자들을 주셔서 성도들을 구비시켜 전도의 일을 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전도 책임자들을 두고 있는 많은 교회에서전도 업무가 종종 그 책임자의 사무실로 분리되어 오직 그의 감독하에만 놓이게 되는 것을 보았다. 에베소서 본문은 전도할 때 목사/교사가 다른 모든 활동들을 지휘해야 하며 또 그것을 혼자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9. 전도 프로그램
프로그램이라는 수단으로 전도를 촉진시키기를 두려워하는 교회나 지도자들은 종종 성령이 아닌 프로그램이 전도 사역의 능력이 될까 봐 겁을 내고 있다.
그러나 설교나 가르침, 전도 훈련 프로그램 및 인쇄된 교재 등 그 어떤 것들도 전도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종종 프로그램은 프로그램으로서만 운영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그 쪽 방향으로 나가는 사람들은 바로 그점에서 실수할 수가 있으므로 그들은 전도를 해 나가면서 게속 자신들이 성령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인 것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10. 목표 대상을 정하고 사역하라.
여기서 몇가지 창의적인 ‘목표 대상 전도법’만 열거하고자 한다. 덴버시에 있는 풋힐스 바이블 교회(Foothills Bible Church)에서 온 훈련된 한 팀이 최근에 그 지역으로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을 일일 찾아다니며 지역 주변 경치에 대한 전문적인 조언을 해 주며 이웃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이것은 그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주고 그 다음에 교회로 그들을 초청할 수 있는 한 방법이다. 스티브 스페칭어는 캔사스 굳 랜드에서 목회를 한 적이 있는데 그 곳 농민들이 농업위기를 당하자, 그는 “농업 위기 극복”에 관한 세미나를 열었다. 당연히 이 세미나는 교회 시설에서 열렸다. 그가 그 도시와 주 및 국가 농업 기관들과 연락이 닿아 있었기 때문에 그 반응은 엄청나게 좋았다. 그런 상황을 통해 사람들은 현재 그들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영적 지침이나 상담 등을 받을 수 있었다. 최근에는 많은 교회들이 자신들의 프로그램과 사역에 참석하도록 지역주민들을 초청하기 위해 교회 시설에서 극장식 저녁 만찬을 벌이는 것을 보았다. 아리조나 주의 메사에 있는 트리니티 침례교회가 극장에서의 저녁 만찬을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전도한 교회들 중의 하나로 꼽힌다.
오레곤의 멕민빌에 있는 베델 침례 교회의 바드 마샬(Bard Marshall)목사는 지역 주민들 중 관심있어 하는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나누어준 전도 테잎을 통해 수 많은 사람들이 결신하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집어서 편안하게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데 쓰이는 수 많은 방법들 중의 한 가지다.
성령께서 각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시도록 개인들에게 맡겨 놓든지, 아니면 여러분이 평신도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프로그램과 전략을 짜든지 간에 이 마지막 당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전도는 이처럼 특별한 시간에 하는 것이라거나 이런 저런 활동 중의 어떤 것으로 격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전도는 일상 생활 속에서 삶으로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장벽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믿게 되는 것은 놀라은 일이 아니다.
구성원에 대한 입장 차이
동질인 교회인가, 이질인 교회인가?
미국인 교회 지도자들이 정서적으로 가장 부담스럽게 느끼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회중들을 동질인 교회로 이끌어 갈 것인지 아니면 이질인 교회로 이끌어 갈것인지 하는 것이다.
1. 동질인(同質人) 교회 입장
피터 와그너와 도널드 맥가브란(Donald McGavran)은 교회 성장에 관한 저자들 가운데서 동질인 교회의 원칙을 최초로 주창한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인종적, 언어적, 사회적 장벽을 뛰어 넘어야 하는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이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오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그들은 교회는 가능한 한 장벽을 최대한 허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강력히 동의한다. 이런 장벽들 때문에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나오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불신자들이 자신들과 동질 단위의 사람들과 함께 있는 상황하에서는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오기가 훨씬 쉽다.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신학적인 것이기보다는 사회적인 경우가 더 많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것은 그것이 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이 이방인처럼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2. 이질인(異質人)교회 입장
교회는 이질인들의 모임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사회가 안고 있는 장벽들, 예를 들면 지리적, 인종적, 언어적, 사회적, 교육적, 직업적, 경제적인 장벽들이나, 이런 제요소가 복합된 것 또는 기타 다른 장벽들을 초월해서 교회는 전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하려고 애쓰는 까닭은 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며, 그와 같은 성도들이 성숙했다면 궁극적으로는 교회가 하나됨을 반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만일 어떤 사람들이 동질인 속에서만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들은 비성경적인 믿음과 관행을 강요당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우리가 성경적인 교회가 되려면 우리는 완전히 융화된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런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는 몸의 연합을 요구하시며 그연합은 곧 잠재적으로 신자가 될 모든 사람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3. 동질인 교회 입장의 공통점
대체로 미국 교회의 대다수는 동질인 교회다.
동질인 원칙에는 두 가지 큰 예외가 있다. 첫째는 엄청나게 복합적으로 구성된 회중들도 다원주의를 수용하고 확증하기 위해 회중들의 생활을 민감하고 체계적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면 수적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엄청나게 복합적으로 구성된 회중들도 행동 연구 모델에 적합한 경우에는 수적 성장을 경험한다.
4. 설교
성도들의 교제와 교육을 위해 성인들을 그룹으로 나누는 것과 목사가 설교하는 것이, 회중들로 하여금 교회의 이질성에 대해 신념을 갖게 하는 두 가지 지름길이다. 라일 스칼라는 인종적, 문화적 특성을 초월한 설교를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데 우리에게 시사 해 주는 바가 있다: “흑인을 대상으로 한 설교와 백인을 대상으로 한 설교의 내용을 분석해보면 흑인 설교자는 구약의 본문을 강조하고 시각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반면, 백인 설교자는 신약 본문에 훨씬 더 의존하고 있고 추상적 개념을 구두로 표현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5.동질인 교회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
어떤 교회의 주변에 있는 환경이 변하고 주민들이 바뀔 때, 그래서 회중이 교회가 위치한 이웃 사람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경우, 그 회중은 대개는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 이 때 교회는 회중들과 비슷한 이웃을 찾아 이사를 가야 하는가, 아니면 교회 주변에 있는 주민들을 전도하기 위해 애를 쓸 것인가? 만일 그렇게 하려면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는 말씀대로 선교적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사도 요한은 선교사들이 많은 열매를 맺으려면 자신들의 문화를 자신들이 전도하려는 사람들의 문화와 똑같은 것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전도는 이질적인 회중들 내에서 이루어질 수 있고 또한 이루어지지만 그러나 그것이 훨씬 어렵고 대개는 느리게 자라기 때문에 상당한 좌절을 맛보게 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사람들이 ‘나는 너보다 더 거룩해’ 하는 식의 태도를 갖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은 올바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서 같은 종류의 사람들만 함께 모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동질인 회중들은 배타적으로 될 위험성에 직면하며 따라서 사회의 다른 그룹들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게 된다.
도덕관에 대한 입장 차이
창조 신학인가, 구속 신학인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참여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물어 보는 그리스도인을 나는 본적이 없다. 우리가 세상을 좋아하든 않든 우리는 이미 세상 속에 있다. 우리는 세상에서 투표도 하고 매매도 하고 먹기도 한다. 우리의 종교 활동과 신조도 사회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고, 그 반대의 일도 역시 생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위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참여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참여하고 관심을 가질 것이냐 하는 것이다.
1. 구속 신학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눅 19:10). 그리스도의 명령을 받들고 교회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지 않으면 안된다.
브루스 쉐리(Bruce Shelldy)가 이 입장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그는 복음주의 교회가 “변하는 세상의 도전에 대처해 나가는 방법은 .... 분명히 ‘사회적 행동’ 보다는 ‘영생’ 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우리는 전통적인 도덕적 기준이 사라지는 것을 우려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수 많은 개인들의 회심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2. 창조 신학
이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전인 구원을 강력히 주장한다. 이 입장의 극단에 선 사람들은 하나님의 궁극적 의지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사회의 전인적 구원을 향해 일하는 것이 그들이 거듭났다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고까지 주장한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회 해방자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 스스로 이 입장의 첨단에 서 있다고 주장한다.
3. 도덕성이란 무엇인가?
디이트리히 본회퍼 (Dietrich Bonhoeffer)는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내가 선해질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선을 행할 수 있을까?’ 하는 데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 그대신 완전히 다른 질문, 즉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를 물어야 한다... 이렇게 윤리적 사색을 하는 목적은 내가 선해지고 나의 선한 행동으로 인해 세상이 선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성경의 권위와 하나님의 법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해 준다.
4.여러분의 성경 해석학은 정직한가?
여러분은 이들 각 입장에서 대한 성경적인 해석을 강조하면서 여러분의 신학을 적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어떤 것도 이것보다 더 중요하고 더 어려은 것은 없을 것이다. 존 스토트(John Stott)는 “현재 나돌고 있는 에큐메니칼 저술들에 대해 심히 불쾌감을 갖는 이유는 기본적으로는 해석학과 관련된 것이다. 그것은 신약과 구약 모두를 포함해 성경을 다루는 것에 관한 것이다.”라고 했다.
한 사람의 성경 본문 해석이 어떻게 설교 가르침의 스타일에 큰 영향을 끼치고 그래서 회중 사역에도 영향을 미치는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도덕성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물론, 그 도덕성의 사회적 적용에 대한 해석도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5. 개인의 도덕성을 다루는가? 단체의 도덕성을 다루는가?
교회는 세상과 세상의 질서와 제도에 대해 말을 해야 하지만 어떻게 이것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가? 우리는 교회에서 사람들을 도덕으로 무장시켜서 그들이 개인적으로 세상이라는 좁은 길로 침투해 들어가면서 세상에 영향을 끼치게 하고 있는가, 아니면 교회가 교회라는 단체의 이름으로 사회에 대해 비판하고 성명을 발표하는가? 흔히 여기서 교회는 자신들의 교회 정체와 그에 수반되는 자율성에 영향을 받는가.
윌리암 윌리몬(William Willimon)은 “교회의 첫째 가는 과업은 사회 정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대안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믿으라고 도전하는 것은 세상이 정부의 조직으로도 성취할 수 없었던 것을 창조해내도록 특별한 사람들이 되고 특별한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에 속하라는 초청이다.”고 하였다.
6.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가?
만일 여러분의 교회가 중간 입장를 취하고 있고 그래서 구속 신학과 사회 창조 신학 입장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할 것에 대해 동의하고 있다면 흔들리지 않고 그 균형을 철저히 유지해 나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인간과의 화해가 하나님과의 화해는 아니며 사회적 활동이 전도는 아니고 정치적 해방이 구원은 아니라고 해도 우리는 전도와 사회 정치 적인 참여 모두 그리스도인의 의무라는 것을 확신한다… 구원의 메시지는 또한 모든 형태의 소외와 압제와 차별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도 암시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어디서든지 악과 불의가 있는 곳이면 그것에 대해 책망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여러분이 여기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데 고려해야 할 성경 본문은 다음과 같다: 레 19:18; 약 2:15-16; 마 5:13-16; 요 3:19-20; 12:47; 눅 4:18; 요일 3:17,18;
행 6:1-6; 10:39-42.이 문제에 대해 더 연구를 하고 싶으면 다음의 책들을 읽어 보기 바란다:(1)조지 W. 피터스의「교회 성장 신학」(존더반, 1975), (2) 브루스 쉘리의 「소바자 교회」(IVP,1992), (3) 존 R.W. 스토트의 「현대 세계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사명」(IVP,1975), (4) 피터 와그너의 「교회 성장과 온전한 복음」(하퍼 앤드 로우, 1982), (5) 윌리암 윌리몬 「교회가 잘하고 있는 것」(하퍼 앤드 로우,1985).
정치기직에 대한 입장 차이
해외 선교인가, 국내 선교인가?
선교는 몸이고, 돈이며 벽돌이다
해외 선교의 개념을 두둔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해외 선교에 많은 예산을 배정해 놓고 국내 예산엔 주머니끈을 졸라 맨 교회의 예산을 축복하신다고 믿고 있다. 그것은 시설이나 프로그램, 그리고 교역자들에 대한 예산을 재한 함으로써 해외 선교에 더 많은 돈을 쓸수 있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 국내 선교
이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은 만일 그들이 예산의 상당한 비율을 직원들과 프로그램, 그리고 회중들의 양육을 위한 시설에 사용한다면 결국에는 해외 선교를 위한 예산을 상당히 모으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신의 지역 사회를 선교지로 생각하고 있다.
이들은 해외 선교를 위한 노력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며, 성경적인 명령은 온 세상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온 세상에 큰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는 국내의 기지를 구축해야 한다는 우선순위의 문제인 것이다.
여러분은 그들이 요한복음 15장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자신들의 우선순위의 지침으로 언급하는 걸 볼 수 있다. 1-11절에서 그리스도는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예배에 대함 면령이다. 12-15절은 “서로 사랑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그들의 몸인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도하고 있다. 16-27절에서 그들은 “나를 증거하여 세상에 알리라”는 교훈을 받고 있다. 그것이 세계 선교를 말하고 있는 세 번째 우선순위라는 것이다.
이들은 “우리는 사도 시대의 특징들 가운데 하나로 돌아서고 있다. 이제 우리는 교회의 정문이 단순히 외부 세계로 나가는 문이 아니라 선교지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생각한다.”
2. 청지기직 수행의 경향들
목사들 중 돈에 대해 얘기하는 목사들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는 놀랬다. 그들에게 돈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비전이 훨씬 더 중요한 것이었다. 그들은 회중들이 교회 비전을 보고 그 비전을 갖게 되면 회중들은 하나님의 사역 은행에 즉각적으로 투자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급성장하는 교회의 예산을 살펴보면 그 예산의 대부분이 국내 선교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교회 성장 연구소에서 행한 몇가지 조사를 보면, 선교에 쓰인 돈의 비율과 그 교회의 성장과의 상관 관계에서 대해 매우 재미있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해외 선교에 보내진 돈의 양과 교회 성장 사이에는 역 상관 관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만일 돈이 선교에만 보내지고 교역자에게는 지출되지 않을 경우 성장은 다소 방해를 받는다.
외부 지출이 너무 과다할 때의 5가지 증상
1. 교회에 교역자가 모자란다(출석 성도 150명당 1명이 채 안된다.)
2. 교회의 시설이 열악하거나 모자란다.
3. 교회가 자체 전도 활동을 거의 못한다.
4. 교회가 수직으로 정체되거나 줄어든다.
5. 교회가 영적 정체에 빠진다.
3. 예산에 대한 사회학적인 기준들
미국 사회가 공동체 의식을 떠나 개인주의 태도를 취함에 따라 선교 예산을 쓰는 데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케논 칼라한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주고 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돈을 투자한다. 그 다음엔 프로그램에 그리고 마지막에는 보험에 투자한다. 이것이 시사해 주고 있는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강한 지도력을 가진 목사의 인도를 따르는 회중들은 그들이 그 목사의 재직 기간에 대해 확신하지 못할 경우 추가 프로그램이나 교역자, 그리고 시설에 투자하는 데 아주 인색하다는 것이다. 어떤 교회들은 자기 교회 목사들이 전혀 예기치 않은 때에 하나님께 부름받아 소천하게 될 것을 염려하여 목사 앞으로 생명 보험을 들기까지 한다!
우리 주님이 하신 말씀 중 6분의 1은 돈에 관한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죄가 돈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신다… 수년 동안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20%가 자신들이 누리는 기쁨과 만족의 80%를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얻는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군가를 돕고자 손을 내밀 때가 훨씬 기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에게 교회에 돈을 내라고 하거나 교회는 그들의 돈은 필요로 한다교 말하지 말라. 사람들에게 교회나 예산에다 드리라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라고 요구하라.“
이 점은 오늘날 예산을 세우는 데 그런 특별한 접근법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성장하는 교회의 예산은 약속헌금에 의한 것이라면 약속 헌금을 당장 올려라.” 케논 칼라한은 돈은 선교를 따르게 되어 있지 선교가 돈을 따르는 법은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4. 예산의 문제들
교회 직원을 위한 예산은 전체 교회 예산의 40%를 넘지 않아야 한다.
5.청지기직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여러분이 선교 헌금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를 생각할 때 명심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성경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잠 13;11; 14;20, 31;17:16; 전5:10; 7:12; 행4:34-37; 고전 16:2; 딤전6:10, 딤후3:2; 히13:5; 약4:13-14; 벧전5:2.
제 10장 안정도와 패러다임의 변화
(Security Levels and Paradigm Shifts)
어떤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장애물과 악조건 아래서도 확신을 가지고 앞으로 전진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다. 그들의 가슴에는 위대한 일을 하겠다는 비전과 열망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눈을 열어 보기만 하면 매일 그런 일을 볼 수 있다. 여러분이 회중들과 어울릴 때 여러분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의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제대로 표현만 할 수 있다면 그들이 교회에 온 목적이 바로 그것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산에 오르고 싶어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슬에 묶여 있어서 출발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그들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람이 참된 자유를 누리도록 격려하고 도와 주는 교회에 사람들은 몰려 든다. 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다니던 옛교회를 떠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생명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퇴화의 법칙
오랜 세월 동안 회중들과 알고 지내게 되면서 나는 어떤 회중들은 생명이 있는 나무와 같고, 또 다른 회중은 생명이 없는 전봇대와도 같다는 결론을 얻었다. 둘 다 같은 근원에서 시작되었지만 하나는 성장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죽어 가거나 썩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멀리서 볼 땐 아름다운 외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들은 시간과 좌절의 풍상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 가는 전봇대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교회들은 이처럼 지치고 피곤해져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들은 생명이 있고 자라나는 나무가 아니라 죽어 버린 전봇대가 되고 만다. 사람들이 이기적이 되고 자기 중심적이 되며 세상을 향한 비전이 없게 되면 그 교회는 곧 사멸하게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깨달아야 할 사실이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더 열심히 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문제에 빠지게 될 것이다.
퇴보의 법칙에 대한 양면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중요한 구절로 달란트 비유를 말하는 마25:14-29을 들을 수 있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엄청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교회를 방으로 생각한다면, 그 방의 벽은 탄성과 수축성이 있어서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면 늘어나고 계시지 않으면 줄어드는 것으로 생각해 볼수 있다.
본 구절의 핵심은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도 잃어버리게 된다는 데에 초점이 밎추어져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잃어버리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심도 잃어버린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버리시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들이 받은 달란트를 열심히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달란트를 빼앗긴 것이다. 하나님은 받은 바 달란트를 사용하는 사람들-퇴보의 법칙에 빠지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달란트를 더 주신다.
여러분의 회중 가운데서 퇴보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라보려면 그들의 생화 주기를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영적 에너지를 다루는 기쁨
교회는 고교통을 최소화하면서 영적 성장의 새로운 단계로 사람들을 이끌어 가야 한다. 또한 사람들이 현 단계에서 만족하고 안일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많은 회중들은 단지 자신들이 성장하고 싶다는 소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성장에 관해, 또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 참 많은 얘기를 하지만, 실제로 자신들이 성장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직하게 평가하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마도 자신들이 정말로 성장하고 있는지 하지 않고 있는지를 시험해 보기가 두려워서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암 환자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너무도 힘들어 도리어 자신이 건강하다고 얘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고통을 의지하라
위의 제목이 그리 기분좋게 들리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적 가르침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또한 성장은 고통 없이는 오지 않는다는 것도 명심하라. 사실 우리는 디모데서에서 우리가 성장하길 원한다면 우리 자신을 훈련하든지, 아니면 삶 속에 고통이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는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성장하도록 우리의 삶 속에 고통을 가져오신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드는 줄 앎이라.”고통을 당하기 전까지, 스트레스를 받기 전까지, 아니면 고통에 기대어 서기 전까지는 크게 성장할 수 없다. 바울도 이 사실을 디모데전서 4:7-8에서 똑같이 말하고 있다. 바울은 디모데를 지도자로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는 디모데가 영적으로 박약하기를 원치 않았다. 교회는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을 것이며, 그 때 디모데는 자신이 수행하는 사역에서 맡은 과업을 감당하기 위해 준비를 갖추고 있을 필요가 있다. 바울을 네 자신을 훈련시키면 더 높은 수준의 경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죽은 전봇대와 생명이 있는 나무의 차이가 “경건해지기 위하여 너 자신을 훈련하라”는 말 속에 나타나있다. “훈련”(exercise) 이라는 단어는 “교육”(education) 또는 “훈육”(discipline) 이라는 단어들과 어근이 같다.
이 세상 여러 분야에서 큰 일을 이룬 사람들이나 애를 많이 쓴 사람들은 보다 큰 육체적, 정신적 일을 하기 위해 그들의 역량을 끊임없이 펼쳐나갔기 때문에 성공했다. 영적으로 위대한 종의 자세를 가진 지도자들은 모든 문화 속에서 성공했는데 이는 그들이 자신의 역량을 계속해서 훈련 했거나 펼쳐 나갔기 때문이었다. 큰 교회들도 다르지 않다.
여러분은 어느 정도의 고통과 불안이 왜 있어야 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 고통은 회중이 견딜 수 있을 만큼 있어야 하고, 믿음이 가장 좋은 사람 또는 성숙한 사람만이 견딜수 있는 정도여서는 안 된다. 회중들을 너무 몰아붙여서 데모스데네(Demosthenes)처럼 되지 않도록 하라. 그는 자신을 너무 심하게 훈련시킨 결과 완전히 비효율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는 위대한 연설가가 되기를 원했으나 신체적으로 부적합했다. 그는 어깨가 구부정했고 말을 할 때는 입안에 바위가 있는 것처럼 둔했다.
여러분이 그들을 새로운 영적 수준으로 이끌어갈 때 잠언서의 말을 명심하라: “신중한 사람은 사람은 앞의 어려움을 내다보고 대비를 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맹목적으로 가다가 환난을 겪는다.”
다음 단계의 일을 하기 위해 여러분 자신을 훈련하라
사람들이 긴장을 느끼는 기점은 일에 대한 기대감과 흥분, 그리고 그일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 사이에 위치한다. 바로 이때에 사람들은 고통을 느낀다.
사람들이 인생의 문제들을 놓고 생각해 보게 하라. 예수님은 우리가 안일한 삶을 살도록 부르신 것이 아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아들이 아버지를 딸이 어머니를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케 하려고 왔노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가족이리라.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자기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도다. 고통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자.
제 11장 창조적 변혁을 통해 교회를 지도하기
(Leading the Church Through Creative Change)
여러분은 얼마든지 그리스도의 위대한 증인들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여러분의 교회를 수퍼 교회로 만들기위해 어러분이 알고 싶은 것은 뭐든지 다 가지고 있다.
첫째,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터가 그리스도 안에 마련되어 있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수도시라”(고전 3:11). 어떤 다른 터를 닦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아무런 창의적인 유전자도 갖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모든 사람은 상상력을 가지고 있지만, 단지 상상력의 한 기능인 창의성을 우리 모두가 다 가지고 있지만, 단지 상상력의 한 기능인 창의성을 우리 모두가 다 가지고 있지는 않다. 창의력에서 예술이 나온다. 상상력의 결과는 예술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실제적인 것이 나올 수도 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상상력이 무한하신 창조주를 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육신이 되게 하사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평범을 초월한 행위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상상력하나님에 대한 메시지는 얻지 못했었다.”하나님께서 사람들과 나누시는 대화에 대해 연구해 보라. 그러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솜씨를 조금은 엿볼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우리에게 교회라는 기능을 주셨고 교회를 세울 수 있는 터를 주셨는데 이는 세상에 하나님의 속성을 표현하도록 하기위해서이다. 이제는 가서 일하고 그분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여러 가지 사고를 해야 할 때이다. 다시 똑같은 방식으로 일할 필요는 전혀 없다.
상상력을 개발하는 두 번째 원리는 여러분이 기꺼이 원점으로 돌아가서 기본적인 요소만을 가지고 사역을 구상하라는 것이다.
여러분의 상상력을 개발하는 세 번째 지침은 여러분 스스로 참신한 자료를 얼마나 접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다.
상상력을 발휘하려면 새로운 자료들을 조합하며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여러분의 청중이 일주일 내내 세속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면 그들이 추상적이고 영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할 때는 영적인 영역으로 들어와야 한다. 여러분은 상대방이 처한 입장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물리학이나 경영, 역사, 정치학, 심리학, 문학, 그리고 대중 의사소통 등에 관한 독서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분이 현 상태 만족하고 있다면 나는 사역에서 여러분이 창조적인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다. 여러분이 창의적인 지도자가 되고자 한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하는 그칠줄 모르는 열망으로 차 있어야 한다.
흔히 사람들은 실패하는 것은 사탄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실패하는 것은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과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창조적으로 사역을 한다는 것은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려는 상상력의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사탄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하는 복음을 사람들이 듣도록 하겠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실패를 당해서도 웃을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 주신다. 그럴 때 사람들은 훨씬 더 실패를 무릅쓰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실패를 무릅쓰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기회로 본다.
상상력이 풍부한 지도자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종종 시작하려고 하는 사역의 상당 부분이 전혀 논리에 맞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지도자가 되려면 모호한 것을 참아 내는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은 추상화를 그리는 화가가 되는 것 같다고 할 수 있다. 고통을 의지하라. 그러면 의를 이룰 것이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교회를 세워 나가는 자들에게는 이생과 내세에 약속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딤전 4:9).
교회를 세우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 교회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상상력과 변화는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여러분이 어떤 모임에 변화를 가져오게 하려면 먼저 그들의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왜 변화를 싫어하고 거부하고 저항하는지 그 이유를 열거해 보면 도움이 된다.
1. 그들은 현재의 상황에 매우 편안해 한다. 이제 말 적응하고 편안해 질려고 하니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려 한다고 느낀다. 이 경우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게 되면 그들에게 역시 적합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그들은 새로운 환경에서도 편안할 것임을 알아야 한다. 랜디 포프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을 미리 알려 주지 않는 것이 현명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변화의 조짐만 보이면 그들은 곧 저항하는 자세를 취하기 때문이다.
2. 그들은 자신의 기득권이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그들이 앞으로 있을 조직에 대한 구상, 명칭의 변경, 건축 계획, 또는 사역 철학을 세우는 데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
3. 그들은 실패할 것에 대해 내심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완벽주의자들 사이에 흔히 있는 일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앞으로 있을 변화에 대한 세세한 부분까지도 알 필요가 있으며, 이 모든 변화가 더 좋은 방향으로 일어날 것을 알아야 한다.
4. 그들은 상황을 정확히 모르고서 반대할 수도 있다. 이경우에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전체적인 설명을 하거나, 최소한 이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이 품었던 모든 의문에 대해 만족스럽게 설명한다.
5. 그들은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과 과거에 유쾌하지 못한 관계가 있었거나 서로 다투었던 경험에서 그들을 반대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알아보고 그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부록 - 전도 책임자가 읽어야 할 참고 도서 목록
윌리암 아브라함, [전도의 논리학], 그랜드 래피즈: 윌리암 B. 어드만스 출판사, 1989.
요셉C. 알드리히, [생활 전도: 불신 세계를 전도하기 위한 전통의 장벽을 넘어], 포트랜드: 멀티노마 출판사, 1981.
에드워드 R. 데이톤, 데이빗 A. 프레이즈, [세계 복음화 전략], 그랜드 래피즈:윌리암 어드만스 출판사, 1978.
데이빗A.드와이트, [난제에 대한 답변: 기독교에 대한 흔한 질문들], 시카고:무디 출판사, 1980.
로저 S. 그린웨이 편집, [목사는 전도자다:교회 성장의 설교자, 모델, 동원가], 그랜드 래피즈: 베이커 북 하우스, 1987.
아더 존슨,[세계 복음화를 위한 전투], 휘튼:틴데일 하우스 출판사.1978 포올 E. 리틀, [믿음의 길을 내는 법], 시카고:IVP, 1966.
마크 맥클로스키, [자주 말하고 , 잘 말하고, 전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라], 산 버나도: Here is life 출판사, 1988.
도날드 A. 맥가브란, [효과적인 전도:신학적 명령], 필스버그: 개혁장로회 출판부,1988.
J. I. 팩커, [전도와 하나님의 주권], 시카고: IVP,1961.
짐 피터슨, [우리 시대를 위한 전도: 전도를 생활화 하기 위한 실제적 방법].
콜로라도 스프링스: 네비 출판사, 1987.
동 포스테르스키, [전도의 재발견: 오늘의 세계에 그리스도를 제시하는 새로운 전략], 다우너스 그로브: IVP,1989.
솜 S. 레이스너, [21세기의 전도: 중요한 쟁점], 휘튼: 헤롤드 쇼우 출판사, 1989.
딕 시슨, [전도와의 만남: 전도의 기쁨을 교회로 돌려 놓기], 휘튼:빅터 북스, 1988.
데이빗 R. 비어만, [청년 전도: 그들이 갇혀 있을 때가 아닌 이웃일 때], 휘튼: 빅터 북스,19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