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독교의 본질과 원리
기독교인이 기독교의 본질을 더 모른다면 말이 되는 것일까? 교회들이 교회의 본질을 더욱 모른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일까요? 그러나 사실이다. 그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비밀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역사적인 실례대로 보건데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인 보다도 더 모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비밀이다(고전1:18-31, 고전2:2).
기독교의 본질이 세상의 법칙과는 반대로, 다르기 때문이요 역설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의 본질은 세상에 인간이 만든 종교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랑이나 자비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교회가 기독교의 본질을 이해하기가 더 어렵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기독교를 신앙인의 노력으로 실행되는 선행의 행위의 열매가 사랑이고, 그것이 교회의 본질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논리의 생각으로 따지자면 인간본질이 돌 감람나무라도 거름만 많이 주고 잘 가꾸기만 하면 참 감람나무 열매를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치 않은 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다. 사람이 성령의 중생의 구원을 받고 신자가 되었다고 영의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다. 뿌리는 언제 어디까지라도 돌 감람나무의 뿌리라는 사실이다. 인간의 본질은 죄인이고 악인이다. 아무리 성도라도 그러하다. 그래서 날마다 제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한다. 그래서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이기 전에 먼저 십자가인 것이다. 기독교의 복음은 사랑이 아니고 십자가이다(눅9:23, 갈6:14, 롬1:16). 십자가만이 복음이요 하나님의 죄인과 악인 구원의 방법이요 하나님의 구원의 지혜인 것이다.
이같이 기독교의 본질을 십자가로 온전히 분명히 이해하는 영적 지식의 믿음이 없으면 누구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언제까지라도 유대인처럼 빈껍데기만 붙잡고 허공 치는 싸움만 하다가 결국은 하나님을 향하는 열심이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원수가 되고 말 것이다(빌3:18-21, 고전15:31, 2:1~2, 13:1~7, 엡 1:3~4).
십자가란, 선인이나 의인을 위해 죽는 것이 아니요, 죄인과 악인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대신 죽어 주신 것이 십자가이다. 기독교의 본질인 십자가 사랑이란, 세상의 개념과 이교도에서의 사랑과 자비의 개념과 비교할 때 표면적인 단어는 같을지 몰라도 본질과 차원이 다르다. 십자가가 있다는 것이 다른 것이다. 하나님의 전지전능의 힘으로도 안 되는 죄악의 본질을 가진 죄인들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그 죄인의 마음을 온전히 설복시키고 인격적으로 항복시키는 것이 십자가라는 말이다.
교회는 죄인과 악인을 비판하는 곳이 아니고 내가 죽어 십자가의 복음과 은혜로 그 죄인과 악인을 대신 살려내는 곳이 교회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원리와 절대적인 본질을 흐리게 하거나 그 초점을 잃은 어떠한 교회의 부흥도 비대해지는 것일 뿐이며 진정한 부흥성장은 기독교의 본질과 원리 곧 십자가로 부흥성장 하여야 할 것이다. 오직 십자가로 사랑할 능력의 사람도 없는데 숫자만 늘어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첫댓글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이기 전에 십자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