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량예술대학교
일본 다테야마 배낭여행 셋째날 이야기
(제1편)
어쩌면 우리들은 선택받은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하늘아래 이렇게 높은 곳에서 하룻밤을 잘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선과 다름 없었으니 말이다.
신선의 세계에서 잠이 올것 같지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바로 옆에서 자고있던 조정현 대원의 코고는 소리에 잠을 깼다.
나도 코를 골기는 마찬가지 였을 텐데 내소리는 못듣고 남의 코골이는 잘 도 듣는다.
시계를 보니 새벽3시20분이였다. 그런데 벌써부터 노짱은 배낭을 챙기고 있었다.
이 양반 잠을 잦는지 날밤을 샜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눈이 초롱초롱하다.
" 형님, 새벽5시에 출발해야하니 그냥 일어 납시다. " 할말이 없다.
역사를 쓴다.
2016년5월19일새벽4시50분이였는데 날이 훤하게 밝았다.
한국보다 확실히 해가 일찍 뜨고 있었다. 오늘 정상 등정에는 두명의 대원이 탈락했다.
오환욱 대원의 고소적응이 회복되지를 않아 친구인 김정수 대원이 보호를 위해 같이 남기로 했다.
가이드인 노짱을 포함해 10명의 대원이 산장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배정 받았다.
일단 잇지노크 산장까지 등정을 한 뒤 상태를 점검해 움직이기로 했다.
대원들은 아이젠과 스틱 털모자와 장갑으로 완전무장을 하고 파이팅을 외쳐 본다.
사람의 용기는 때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낸다.
각자 배낭에는 자기가 먹을 도시락과 식수를 챙겨 담았다.
서울의 북한산도 아닌 일본의 북알프스 오야마(3003m)를 등정한다는 자체가 도전이다.
극한 환경속에서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강인한 정신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 같다.
체력적으로 걱정이 되는 여성대원은 임정숙 언니였다.
다행히 등산화를 나고야 에서 첫날밤 새것으로 구입했기에 그나마 다행이였다.
스틱은 오환욱 대원님 것을 빌려왔으니 모든게 미완성 대원 인셈이다.
선두는 노짱이 맞고 후미는 내가 보기로 했다.
잇지노크 산장 가기전에 무인 대피소 건물이 갈림길에 있다.
이 곳에서 무로도 버스터미널쪽으로 직진하는 등산로가 열려있는데 거리가 짧아 하산길로 이용한다.
가이드 양반의 설명에 의하면 일본 에도막부시대(1696년) 때 이곳을 등반했다고 한다.
그때 이곳에 움막이 있었는 지는 몰라도 그걸 기념하기위해 만든 건물이라고 했다.
사람의 흔적이 없어 실내는 들어가보질 못하고 그냥 지나쳐 갔다.
미구리 온천장을 출발한지 35분 쯤 걸려 도착했는데 다들 설경에 취해 정신없이 걸었다.
선두로 도착한 노짱이 언덕위에서 손을 흔들며 파이팅을 외쳐 주었다.
대피소 앞마당 갈림길에 실당평(室堂平) 안내도가 반겨준다.
안내도 한 가운데 연못이 그려져 있고 그 주변에 등산로가 숫자로 표시되어있다.
그런데 지금은 눈이 덮여있어 등산로를 구분하기가 어렵다.
좌측편 붉은 색의 건물표시가 무로도 버스터미널로 생각되어 진다.
하늘이 도와 바람 한점없고 기온 마져 포근해 정상등정에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금호동 언니는 세상 살다보니 이런 좋은 날도 있기 마련이란다.
부처님 오신날 도선사에 촛불을 켰다고 했는데 효염이 있는 것 같다.
대피소에서 숨을 고른 뒤 이제부터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한다.
오늘 산장에서 오야마 정상등정을 시작한 팀은 청량예술대학교 대원들 뿐이였다.
이 멋진 설원의 장관을 우리에게만 제공해준 특혜를 누리고 있다.
등산로변에는 대남무 작대기를 일정한 간격으로 꼽아놓았다.
한국처럼 날개식 멋쟁이 이정표는 찾아볼 수 가없다.
눈길은 아직 뽀송뽀송해 오름길에서는 아이젠이 필요없을 정도 였다.
여기서 부터 경사진 눈길이 금새 숨을 헐떡거리게 한다.
앨범 제작용 사진....
일본 다테야마 배낭여행 전 일정을 앨범으로 제작해볼 생각이였다.
그래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데 마음이 급해서인지 잘 안된다.
평생에 추억으로 남을 이 장면을 위해 몇번을 찍었다.
앞으로 한 30년 후쯤에 손자들이 할매 사진을 보면 어떻게 말을 할까?
우리 할매가 70 나이에 일본 북알프스를 등정했다고 믿어줄지 모르겠다.
그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앨범을 만들어 주고 싶다.
이 그림 정말 멋지다.
영화속의 한 장면 같은 이 멋진 설경은 실물로 보아야 더 좋다.
뽀드득, 뽀드득... 급경사면의 옆구리를 타고 돌아가는 왼쪽편은 깊은 협곡이 아찔하다.
한 번 잘못해 미끄러지면 살아나오기가 어려울 정도로 깊고 멀었다.
적당한 스릴도 있어 걸음거리가 조심스럽다. 그런데 거리가 영 줄지를 않는다.
산장에서 바라보던 정상쪽은 금방 손에 잡힐 듯 했는데 그게 아니였다.
워낙 등치가 큰 산이여서 거리감이 없어진 것 뿐이였다.
다테야마(立山)를 전세 냈다.
이 멋진 장면을 돈으로 계산 한다면 얼마나 될까?
청량예술대학교 원정대를 위해 모든 잠것들을 다 치워준 이 설원 말이다.
속된말로 삼성재벌이 부럽지가 않다. 결코 돈으로 살수없다.
마치 영화속의 한 장면 같다. 너무 아름답다.
히말리아 원정대를 방불케 한다.
다테야마 알펜루트를 찾아온 여행객들은 꿈도 못꿀 등정길이다.
여행사를 통한 다테야마 알펜루트 관광은 산행 상품을 끼워넣지 않고 있다.
북알프스 등반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여행상품은 따로 있다,.
그대신 여행경비가 고가이고 일정도 3박4일이 기준인데 혜초여행사가 전문이다.
20년전에 처음 북알프스 상품을 개발했던 여행사 였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지금 청량예술대학교 원정대는 복 받은 분들이다.
그점에 가이드를 맡아준 노짱님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
멀리서 보았을때는 등산로가 완만해 보였는데 그게 아니였다.
엄청나게 쌓인 눈을 밟고 올라서자니 중심이 자꾸 흔들려 한걸음 움직이기가 힘들다.
강원도 언니는 자꾸 왼쪽발이 미끄러져 두번째 주저않았다.
스틱 사용법도 아직 서툴고 새로산 등산화도 거북한지 걷다 서기를 반복한다.
젊었을때는 제법 산을 잘 탔다는 관록만 믿고 지금 용을 쓰고 있다.
뒤를 따라가고 있는 금호동 언니도 엉덩이가 무겁다.
앞서가는 후미팀의 궁둥이만 쳐다보고 걷자니 나도 피곤하다.
원래 오르막은 천천히 꾸준하게 걸어야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가다서다 죽을 지경이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카메라를 360도 돌려가며 그림을 담아본다.
지나쳐왔던 무인대피소가 꾀 멀리 내려다 보인다. 그래도 싸목싸목 많이 걸어왔다.
서쪽으로 떨어져나간 지맥의 정상쪽에 아침 햇살이 화장을 시작한다.
한국에서는 결코 볼수없는 이 장관앞에 넋이 나간다.
세자매
시계 방향으로 막네 총무님, 강원도 언니, 금호동 언니, 마지막 웃음이다.
고생을 사서 한다는 말이있다. 그것도 거금(?)을 들여 일본까지 원정을 와서 말이다.
막네 총무님은 산에 들면 힘이 장사다. 나름대로 전국의 명산도 선렵을 했다.
그런데 어제는 고소증으로 오늘 산행을 포기할 생각도 했었다.
천만다행으로 하룻밤을 자고 나니 적응이 되어 오늘은 언니들을 보필하고 있다.
금호동 언니는 구미의 금오산(977m)을 함께 거뜬히 등정한 결력이 있다.
그러나 강원도 언니는 실력테스트를 해본 적이 없어 걱정이였다.
젊었을적에 산 다람쥐였다는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까마득하게 뒷따라오고 있던 젊은 여성 산악인이 금새 따라붙었다.
우리와 똑같은 코스로 오난지야마(3.015m)까지 왕복 등반을 하는 여성분들이였는데 미인들이였다.
산을 좋아하는 여성들 치고 얼굴 못생긴 사람을 지금것 본적이 없다.
우선 건강미가 흘러넘치고 매사에 자신이 있어보여 호감이 갈 수 밖에 없다.
한때 며느리 될 처자는 꼭 설악산 대청봉을 함께 등반해본 뒤 결정하려고도 했었다.
산은 인간에게 인내할 줄 아는 능력과 자연의 지혜를 터득하게 해준다.
일본의 산... 한국인을 싫어하지 않는 것 같다.
아이고 나 죽것다 !!
잇지노크 산장 돌바닥에 주저 앉아 사람죽것다고 신세한탄이다.
여기까지 올라선 것 만 해도 감지덕지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 하산을 시켜야 될것 같았다.
선두팀들과 차이가 너무 많이나 후미를 보고있는 내가 더 힘들어 죽을 지경이다.
일단 산장앞에 집합을 시킨 뒤 상황점검을 해보기로 했다.
산장 현관문은 열려있는데 무인대피소 처럼 인기척이 없어 둘여다 볼 생각도 안했다.
여성대원들의 화장실 사용문제가 생겼는데 돈을 내야 한다고 해서 그만 뒀다.
건물 뒷편 적당한 곳에서 해결하도록 보초를 서주었다.
잇지노크의 결정...
어떻게 할 것 인가? 강원도 언니와 금호동 언니에게 물었다.
이곳에서 왔던 눈길을 따라 두분의 대원이 기다리고 있는 미구리온천장 까지 하산 할 건가를 ...
나머지 대원들이 정상을 다녀 올려면 적어도 2시간은 넘게 걸릴 것 같았다.
할일없이 죽치고 기다린다는 것 도 지루할 것 같아 산장으로 갈 것을 권유했다.
그런데 결론은 NO 였다, 죽어도 같이죽고 살아도 같이 살겠단다.
막네 총무님도 언니들.. 저와같이 천천히 올라가 봅시다. 추임세를 놓는다.
가이드 양반... 눈치가 못마땅 한 것 같았지만 말을 못한다.
" 그래 !! 갑시다. " 결정은 내가 할 수 밖에 없었다.
해발2,702m 에서 ...
청량예술대학교 9명의 대원들은 정상으로 향했다.
남한땅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 백록담의 높이가 1,950m이니 현재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동쪽으로 펼쳐진 만년설로 뒤덮인 고봉들의 장관에 숨이 멎을 것 만 같다.
마치 유럽의 알프스 산맥에 와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무아경지(無我境地) ... 할말을 잊었다.
고생 시~ 작 !!
앞을 쳐다보니 험한 돌자갈밭이 벌떡 일어나 있다.
" 언니야~ 저길 어떻게 올라가지? " 금호동 언니가 오히려 자기 걱정부터 하고있다.
" 야~ 가다가 못가면 내려오지 뭐~ " 우리 강원도 언니 대답이 시원하다.
선두는 벌써 저만치 오르막을 치고있는데 이제사 출발이다.
1996년6월 이야기
나는 지금 20년전의 내 발자국을 따라 오난지야마(3,015m)를 오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1996년6월15일 이였다. 그날은 새벽부터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산장지기도 등반을 포기 하라는 조언을 할 정도의 비가 쏟아젖다.
그 시절 제석산악회 에서는 산 타는데 일가견이 있었던 용병 들로 원정대를 조직했었다.
수많은 산을 다니면서 억수같은 비를 한두번 맞아본 것도 아닌데 포기할 수 없었다.
다테야마의 날씨는 변덕이 심하기로 유명하다. 그걸 믿고 출발했다.
그러나 잇지노크 산장에 도착했는데도 비는 계속 내렸다.
장대비는 안개를 동반해 10m 전방을 확인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 전면에 올려다 보이는 돌밭길의 형태도 전혀 가늠되지를 않았으니 말이다.
혜초여행사 산악전문 가이드 김진석씨... 이름도 잊어버리질 않는다.
이 양반 고향이 전라도 고흥 촌놈(?) 이여서 벌교(筏橋) 출신인 내 말을 잘 들어 주었다.
북알프스를 10회 이상 안내등반 했다는 실력자로 이곳 다테야마로 인연을 맺게 됐다.
어떻든 그로인해 매년 대만의 옥산(3,958m), 중국의 황산(2,680m)과
말레시아 키나바루(4,150m)까지 원정등반을 함께 했다.
잠시 이야기가 샛길로 흘렀지만 옛날 감회가 깊어 그리 됐다.
이렇게 선명한 오야마(3,003m) 정상까지의 등산로를 쳐다 보니 그때도 이랬나 싶다.
앞사람과 3m 간격을 절대 유지시켜 진행을 했는데 그때는 바위에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대부분 붉은색 화살표 였는데 짙은 안개비 속에서는 길 찾는데 딱이였다.
잇지노크 산장에서 정상까지는 설악산 오색에서 대청봉까지에 비한다면 쉬운 편이다.
그런데 문제는 고소증 때문에 다리심 만 가지고는 안된다.
이 지점에서 우리 강원도 언니 엉덩이가 점점 뒤로 쳐지기 시작했다.
무로도(室堂) 평원이
까마득하게 내려다 보인다.
위에서 내려다본 광경은 올려다 볼적과 큰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원근감의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 무로도 터미널에서는 손에 잡힐 듯 했었는데 말이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쳐다만 보고있었던 오야마 정상을 오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벅차다.
그동안 한강변 걷기로 체력을 다젖다는 금호동 언니도 숨을 헐떡거리고 있다.
평생에 처음 느껴보는 고소증을 핑게대고 있지만 속 들여다 보인다.
뒷 폼들은
그럴 듯 해보인다.
첫번째 안부에 도착한 후미팀의 뒷 모습을 담아 보았다.
그래도 막네 총무님께서 언니들을 격려 시켜가며 선두를 보고있어 고마웠다.
덕분에 내가 사진도 찍고 동서남북 돌아보며 북알프스를 즐긴다.
이렇게 좋은 날씨를 점지해 준 천지신명에게 감사할 뿐이다.
청량예술대학교 대원들 축복을 따따불로 받았다.
직선으로 치고 올라온 잇지노크 산장이 납작하게 엎드려있다.,
내 고도계가 해발2,790m를 가르키고 있었다. 지금 백두산 천지 보다 더 높은 곳에 와 있다.
20년 세월에 바위들의 크기가 조금 작아진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의 기억으로는 집체만한 바위들 틈새를 비집고 올라섰던 것 같은데 조금 편해잔 것 같다.
하기사 워낙 시야가 어두웠고 비 까지 퍼붓고 있어 정신이 없었지만 말이다.
이번에는 금호동 언니가 스틱을 던져놓고 주저 앉어 버린다.
선두팀을 이끌고 있던 노짱께서 걱정이 되었던 것 같다.
후미팀과 간격이 너무 벌어지자 선두팀을 정상으로 올려보내고 기다려 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후미를 노짱에게 맞겨야 할 것 같았다.
조금 어려운 사람이 곁에 있으면 억지로라도 힘을 내 줄 것 만 같았다.
두 대원의 상태를 점검해보고 하산을 시키든지 결정해 달라고 했다.
여기서 부터는 옹삭스러운 바위지대를 통과해야 한다.
후미팀을 노짱에게 맛기고 나는 정상으로 향했다.
두번째 급경사 바위지대를 통과하자 잇지노크 산장이 안보인다.
그 뒷편으로 끝없는 산맥이 또 다른 북알프스의 산군을 형성하고 있었다.
노짱(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다음 도전할 상대라고 했다.
중앙알프스와 남알프스까지 그는 생명이 다하는 날 까지 목을 메게 될 것 같다.
일본 북알프스에 한 번 중독이 되면 이렇게 혜어나기가 어렵다.
20년 동안 오늘이 오기를 기다렸던 내가 증인이 된다.
제석산악회
꼬리표를 달다.
일본 북알프스에서는 산악회의 그 흔한 꼬리표를 발견치 못했다.
요즘은 한국도 국립공원내에서는 꼬리표를 메달지 못하게 되여있다. 환경오염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악천후를 만나게 되면 이 꼬리표가 생명줄과 같은 역활을 톡톡히 한다.
키큰 나무가 없어 땅바닥에 붙어있는 작은 가지에 내 흔적을 남겨본다.
혹시 한국사람이 지나가다 발견하면 반가울 것 도 같다.
내가 다시 이곳을 찾게 될때까지 이녀석이 기다려 줄지 모르겠다.
20년전의 한을 풀어준 고마움에 마음의 점을 찍고 간다.
선두팀을 부지런히 따라 붙었더니 정상밑에 모습이 보인다.
노짱께서 후미팀을 끌고 올라서는지 이곳에서는 확인이 되질 않았다.
우선 내가 숨이 턱에 차올라 전화를 해볼 생각도 못했다.
일단 정상에 올라선 뒤 모든 상황을 점검해볼 수 밖에 없었다.
아무렇게나 딩굴고 있는 바위들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마지막 힘을 내본다.
분명히 이길을 다녀갔는데도 생소하게만 느껴젖다.
삼각꼭지점
한국의 산에서 자주 보는 삼각점이 여기도 박혀있다.
오야마(3.003m) 정상의 꼭지점은 측량의 기준점이 되는 곳으로 전망이 좋은 곳에 설치한다.
산장은 처마밑까지 눈이 쌓여있어 아직 개장을 안한 상태였다.
옛날에는 이곳에서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잠시 비를 피해 머물기도 했던 곳 이다.
이런 상태라면 6월이 되어야 문을 열것 같다. 정상은 너무 썰렁했다.
오매불망 염원했던 오야마 정상인데도 어쩐지 허망하다.
지금 내곁에 없는 님 생각에 마음이 시릴 뿐이다.
이건 또 뭔지....
삼각 꼭지점보다 더 정성을 들여 제작한 동판이 궁금했다.
분명 20년전에는 없었던 시설물이였다. 동판에 새겨진 문양을 보니 산맥의 지도같다.
방위(方位)를 나타내는 표시가 중앙에 있는 것 같았다.
설치한 지가 얼마 안되는 듯 짜맞춘 석축의 상태가 아직 선명했다.
어떻든 신사와 함께 오야마의 정표가 되고 있다.
도리아(鳥居)
일본에서 흔히 볼수있는 신사의 도리아(鳥居)가 세워져있다.
한문을 직역하면 새가 기거하는 곳 이되는데 우리네 솟대와 같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부터가 신의 영역에 해당되는 경계선으로 절집의 일주문을 연상하면 될 것 같다.
일본의 3대 성산(聖山) 중의 한 곳인 이 오야마는 그래 더욱 의미가 깊다.
20년 전에는 이곳에 나무로 만든 도리아가 없었던 걸로 생각된다.
정상위에 세워져있는 저 작은 신전 건물도 그때는 분명 없었다.
변하지 않은 건 풀한포기 없는 암봉 그것 뿐이였다.
일본은 수많은 신(神)을 섬기는 국가임을 증면해주고 있다.
내가 알기로는 예도시대때 까지만 해도 불교와 신사는 공존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명치유신 이후 불교와 신사를 분리했고 지금은 신사가 절대 우위에 있다.
그 대표적인 신사가 말썽많은 " 야스쿠니신사 " 로 유명한 곳 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영웅 " 도꾸가와 이에야스 " " 도요토미 히데요시 " 도 신이 됐다.
실존했던 인물들을 신(神)으로 모셔 역사의식을 심어주고 있다.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신사에대해 공부해야 한다.
오야마 신전(神殿)
2016년5월18일 오전08시50분 오야마(3.003m) 정상에 올랐다.
한문으로는 웅산(雄山) 이다. 수컷 곰웅9雄)자를 썼는데 일본말로는 "오야마 " 가 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원래 이곳 해발은 3.000m 에 조금 부족해 북알프스의 3.000m 그룹에 들지 못했단다.
일본 3대 명산에 드는 이곳 오야마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축대를 쌓아 2m쯤 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오야마 신전까지 새롭게 건설을 한 것 같다. 이렇게 해서 3.003m 가 됐다.
위의 내용은 전적으로 귀동냥으로 얻어들었으니 착오 없기를 바란다.
6월부터 신사가 문을 열게되면 신관이 주제를 하게되고 참배객들에게 입장료를 받는다고 한다.
한 사람당 한국돈 5천원을 징수한다니 우리팀은 5만원을 번 셈이다.
늦게 도착한 강원도 언니와 금호동 언니가 인증샷에 빠져 안타갑다.
두 언니도 천신만고 끝에 등정에 성공했음을 필자가 보증한다.
오야마(3.003m)정상석
오늘은 시간적 여유가 있어 정상석 한개를 골라 배낭에 챙겨담았다.
구멍이 난 화산석이였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돌멩이가 보이지를 않아 신전앞에 있는 걸로 골랐다.
지난해 노짱께서 북알프스의 미녀봉 야리가다케(3.180m)정상석을 기증 받았다.
내 염원의 일부분을 위로해준 선물이기도 했다. 그녀석 짝을 오늘 찾았다.
다행히 돌 중간부분에 구름이 떠있어 잘만 좌대를 깎아주면 폼이 날 것 도 같다.
혹시 일본 신전의 귀신이 붙어 한국까지 따라오면 머리 아프다.
우나즈키 온천마을에 가면 깨끗하게 딲아줄 판이다.
오늘 첫번째 목포지점이였던 오야마 정상 등정은 전원 성공했다.
기진맥진한 두 언니들을 부축해 이곳까지 등정시켜준 노짱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오환욱 대원께서 빌려준 스틱(LEKI)도 귀찮아 바위틈에 숨켜놓고 네발로 기었단다.
어디서 그런 강인한 정신이 나타났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강원도 언니의 고소증이였는데 대피소 처마밑에 벌렁 눞고 말았다.
고소증은 해발이 낮은 곳으로 내려서는게 상책이다.
해발2.000m 지점까지 하산을 시키는 수 밖에 없어 5명의 대원을 내려보냈다.
가다가 힘들면 우리가 도착할때까지 쉬고 있기를 주문했다.
오난지야마(3.015m)로 출발 ...
오난지야마는 일본 북알프스의 3.000m 고봉에 당당히 들어있는 명산이다.
그곳이 오야마 정상에서 30분 거리에 솟구쳐 있으니 그냥 버려두고 간다는 건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또한 내 개인적으로는 20년전 폭우로 인해 사진 한장 찍지못하고 지났첬던 곳이였다.
오늘 내가 목표로 정한 오난지야마(3.015m.. 정식 명칭은 대여산(大汝山) 이다.
그런데 문제는 출발 부터가 옹삭스럽기 그지 없었다. 내려서는 절벽구간이 결빙되어있었다.
위험하게 내려선 노짱이 돌도끼 같은 바위로 발 딛을 홈을 파기 시작했다.
위에서 내려보던 여성대원들이 겁에 질려 몸을 사린다.
한국에서 배낭을 꾸릴때 10m짜리 로프를 빼놓고 온게 아쉬웠다.
가급적이면 배낭의 무게를 줄인다고 한 짖인데 매사는 불여튼튼 이라고 좋은 경험을 했다.
왼발딛고 오른발 내리고 왼손을 옆으로 뻗어 바위끝 잡고 ... 노짱 주문이 재미있다.
절벽의 높이는 8m 정도였지만 급경사의 너덜지대가 끝도없이 내려다 보였다.
이 절벽 바로 위에는 오야마 신전이 자리하고 있다.
오난지야마로 가는 길은 이렇게 시작부터 겁을 주고 있었다.
하늘에 있는 모든 바위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 것 같다.
진부령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황철봉(1.380m)을 오르다보면 유명한 너덜지대를 통과하게 된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집체만한 바위들이 어깨를 기댄체 끝도없이 연이어 진다.
그곳에 비하면 이건 양호한 편에 속한다. 그러나 돌멩이들이 전부 움직이고 있어 조심스럽다.
너덜지대에서는 특히 발목을 조심해야 한다. 삐끗했다간 낭페를 당하게 된다.
참 기묘하게 생긴 돌멩이 밭을 걷자니 다리에 힘이 더 들어간다.
오난지야마 정상이 가까운 곳 에서 오야마 정상쪽을 바라본다.
정상위의 신전이 성냥갑 처럼 작아보인다. 거리상으로는 얼마 안되는 것 같은데 제법 멀다.
연이어진 칼끝 같은 암봉 세개가 마치 형제들 같아 이색적인 정취를 느끼게 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다리쉼을 하고 있던 산행팀 4분을 만났다.
일본 산꾼들로 "후지노로리다데(釜山) " 를 거쳐 무로도 켐프장까지 가는 팀이란다.
노짱의 통역에 의한건데 20년전 내가 걸었던 코스와 똑같은 여정이였다.
빙하위에 걸려있던 나무다리를 건너야 했던 그날의 기억이 또렸하다.
이렇게 구름 한점없는 청명한 일본의 하늘... 정말 복받았다.
만세삼창 !!
드디어 오난지야마 턱밑에 도착한 청량예술대학교 원정대 모습이다.
그동안 지리산 천왕봉(1.915m)을 못 올라보았다고 한탄을 해왔던 우리 총무님 만세다.
여기가 무려 해발 3.015m 정상이다. 1회용 커피봉지가 터질 듯 팽창하는 곳 이다.
아무리 다리심이 좋아도 고소증에 적응치 못하면 결코 오를 수 없는 곳 ...
여기에 작은 거인 조영란 대원이 만세삼창을 웨치고 있다.
大汝山(3.015m)
김동주,한화숙,이원숙,조영란 대여산(大汝山) 정상에 서다.
나는 이 순간을 위해 무려 20년을 기다려 왔고 세명의 여성동지들은 누워서 떡을 얻어먹는다.
그때도 정상에는 나무 판자로 만든 정상 표지판이 바위틈새에 꽃혀있었다.
지금 것 보다는 크고 글씨도 오랜 세월의 흔적에 희미해 있었고 손잡이는 없엇다.
누군가 기념사진용으로 제작한 것 같은데 명성에 비해 조금은 초라했다.
내가 내 자신에게 큰 상을 내린다고 해서 누가 탓할 것 도 아니다.
이 순간만은 참으로 김동주가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月堂과 노짱
25년지기 산우를 위해 마련해준 이 영광의 순간을 즐기고 싶다.
나는 항상 내자신을 " 산 때문에 행복한 사람 " 이라고 자화자찬을 하고 살아왔다.
산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결코 이런 기분 째지는 순간을 만끽치 못했을 것 이다.
꿈은 이루워지기 위해 존재 한다. 노짱이 백두대간 종주를 끝내던 날 생각난다.
그를 축하해주기위해 달려갔던 진부령 종착지점... 난 지금 그때 기분이든다.
내 다림심이 남아있는 한 결코 북알프스는 외면하지 않을 것 같다.
이 지면을 통해 다시 한 번 노짱에게 감사를 드린다.
오전11시35분 오야마 산장옆 옴팍한 곳에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꺼냈다.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던 대원들이 모두 잇지노크 산장으로 하산을 해버렸다.
올라왔던 길이고 날씨가 청명하니 길 잃을 일은 없을 것 같아도 걱정된다.
일단 도시락을 먹고 뒷따라 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노짱이 가스버너로 물을 끓여 봉지 커피부터 한 잔 해보는데 꿀맛이다.
넉살 좋은 마포댁(이원숙)이 분위기를 삼삼하게 만들어 놓는다.
일종의 성취감이라고 할까... 웃음 꽃이 활짝 피었다.
이 장면을 위해 제작해온 프랑카드 였기에 더욱 빛이 닌다.
마침 타이완(Taiwan) 산꾼들이 오야마 정상에 도착해 이 멋진 장면을 담아주었다.
"Verry Good" ~ 하고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며 우리를 축하해 준다.
그들이 청량예술대학교를 알았더라면 화재거리가 됐을 것 이다.
오야마 정상을 등정한 9명 전원이 함께 인증샷을 찍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하기사 1시간여를 이곳에서 기다린다는게 고역이였을 것 같다.
산행기를 쓰면서 이장면을 다시 보니 감동적이다.
조난 대원을 만났다.
잇지노크 산장쯤에 도착해있을 줄 알았던 언니 두분을 만났다.
돌무덤 같은 곳에 말뚝이 세워져있는 안부였는데 강원도 언니가 사색이 된체 누워있었다.
자꾸 졸리고 팔다리가 저려 움직일 수 가 없다는 것 이였다.
조정현 대원과 두분의 여성대원이 함께 내려가자고 했지만 우리를 기다렸단다.
노짱이 급하게 버너에 물을 끓여 커피를 진하게 두잔 만들어 먹였다.
저혈당 증세가 나타는 것 같았다. 10분쯤을 기다렸더니 웃는다.
쪼코렛을 또 먹여 당분 섭취를 충분하게 해주었다.
스틱을 못찾았다.
이런 옹삭스런 돌밭길은 하산때가 더 위험한 법이다.
이럴때 스틱이 필요한데 이쯤에 던져놓고 왔던 스틱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다.
노짱 말에의하면 일본은 산행길에서 벗어논 배낭이나 등산용품은 절대 가져가질 않는다고 했다.
반듯이 그곳에 있을 거라고 장담을 했는데 어떤 후레자식이 들고 가벼렸다.
한국에서 LEKI 제품의 스틱은 고가품에 속하고 재질도 뛰여난 편이다.
그런 제품이 버려져 있었으니 웬 떡이냐 싶어 슬쩍 해버렸을 게다.
누구를 원망할 것 도 없다. 적선한 셈 치면 된다.
노짱과 내가 스틱 한짝씩을 벗어 두 언니에게 들도록 했다.
우리 금호동 언니도 말은 안해서 그렇지 죽을 맛인 것 같았다. 얼굴 표정을 보면 읽을 수 있다.
천근 같이 무거워진 다리를 조심스럽게 옮기면서 무순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마음 속으로 " 총장놈에게 속아 내가 쌩고생이다 " 아마 원망을 하는지 모르겠다.
무언가 농담이라도 해서 기분을 풀어줘야 겠는데 그냥 쳐다만 본다.
잇지노크 산장이 내 님처럼 반갑게 손을 벌리고 반겨준다.
다 왔다는 방심에서 였을까 강원도 언니가 갑자기 균형을 잃고 넘어지기 일보직전이였다.
바짝 붙어 따라오던 노짱이 뒤에서 동짝 빠르게 두팔을 껴안아 위기를 면했다.
비명소리에 놀라 총무님이 뒤를 쳐다보며 " 언니 괜찮아요 ? " 외친다.
만약 그대로 날카로운 돌밭에 넘어젖다면 큰 일날번 했다.
엉덩이 썰매....
천신만고 끝에 잇지노크 산장에 도착해 한숨 돌린 뒤 설원으로 들어섰다.
이 눈길도 내려서기가 힘들다. 한 번 몸이 풀린 탓이라 강원도 언니가 자꾸 넘어진다.
차라리 엉덩이 썰매로 내려가는게 더 안전 할 것 같아 내가 시범을 보였다.
혼자 미끄러지는 것 보다 금호동 언니와 붙어서 타도록 했다.
엉뚱한 곳으로 떨어질지도 몰라 노짱이 밑에서 기다려 주었다. 태백산의 오궁 썰매 였다.
한 번 맛을 들이더니 자꾸 엉덩이로 눈위를 미끄러져 내려간다.
한바탕 웃고 낫더니 기분들이 좋아진 것 같았다.
정오가 지난 시간에 스키로 완전 무장을한 사나이가 올라간다.
저만치 뒤에서 여성분도 열심히 따라오고 있었다. 부부사이인지 연인사이인지 몰라도 그림좋다.
빈 몸으로도 올라서기 힘든 눈길을 스키를 신은체 잘도 올라간다.
군살 하나없는 날씬한 몸매에 자세도 완벽해 스키 선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카메라를 의식했는지 한 번 쳐다보고 웃어주었다.
도란도란 죽을 고생을 한 다테야마 이야기는 끝이 없다.
우리들의 발자국도 여름이 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또 새로운 눈이 쌓일 것 이다.
우리들의 생애에 다시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이 설국의 세상은 그래 값지다.
내 삶의 혼탁했던 정신들이 순 백색으로 깨끗하게 세탁된 것 같다.
청량예술대학교를 위하여~ !!
오후1시50분 미구리 온천장 앞마당에서 자축연을 베풀었다.
처음 노짱은 정상 등정시간을 왕복 4시30분 으로 계산하고 있었는데 무려 8시간이 걸렸다.
오늘 일정을 수정해야 할 정도로 산행에 시간을 너무 많이 뺏겨 버렸다.
그러나 전혀 아쉬울 게 없다. 작은 교또라고 하는 "다카야마" 를 빼먹어도 말이다.
우리를 산장에서 할일없이 8시간동안 기다려준 두 남성대원들 고맙다.
오늘밤 온천장에서 등이라도 밀어줘야 할 것 같다.
미구리 온천장을 떠나면서 ...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를 않아 산장 정문에서 흔적을 남겨본다.
이제 가면 언제 오실거요 ? 이몽룡이가 춘향이 이별하 듯 문지방을 만지며 진짜 이별을 고한다.
내 산행 역사에 길이 남을 추억하나를 건지게 해준 다테야마 알펜루트는 이렇게 끝이난다.
그동안 고생해준 총무님을 위해 오난지야마(3,015m)를 선물해 주었다.
온천장 이름을 잊어버릴까 봐서 한국의 " 미꾸라지 " 를 연상어로 기억해 둔다.
시간이 촉박해 그 좋은 유항온천욕을 한 번 더 못한게 아쉽다.
인정사정 없는 노짱은 벌써 지옥곡 입구쪽 계단을 내려서고 있다. 참 바쁜사람이다.
이때 산장앞마당 한쪽에서 한국말로 떠들어대는 아짐씨들을 발견했다.
갈길은 바쁜데 아짐씨들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
첫댓글 밤잠 못자고 고생스럽게 쓰신 산행기에 사족을 다는것 같아 죄송하지만, 몇자 바로잡았으면 합니다.
신사 입구 기둥인 鳥居(とりい도리이)는, 한자로 직역하면 새가 기거하는 곳,이란 해석이 가능하며, 우리 전통의 솟대와 비슷한 의미를 가집니다. 원래 새(鳥)는 神의 使者라고 하여 신계와 속계의 경계에 세워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3대 聖山의 하나가 벳산이 아닌 北陸지역의 白山(하쿠산2,702m)으로 정정, 오난지야마 다음 봉우리인 후지노오리타테(富士ノ 折立 2,999m) 는 후지산을 볼수있는 봉이란 뜻입니다.
감사합니다.
지적해주신 잘못된 내용은 수정했습니다.
.
일본 한문 공부 : 일본의 큰 산을 오르다보면 산의 오름길을 대부분 십등분으로 나누어 표시를 해 놓았다. 이 나눔의 단위를 合目(고메, こめ)라고 한다.(예: 1.2.3.4.5合目....10合目)
또 **乘越이라는 표시가 많다. 한문적 해석은 탈 乘, 넘을 越 로 능선길에 좌우로 넘어다니는 길이라는 표시이다. 우리나라 지리산의 장터목, 화개재 등
과 같은 뜻, 비슷한 말로 一ノ越(잇치노코시), 二ノ越, 三ノ越등이 있다. 이는 첫번째 넘는 고개, 두번째 고개 등. 또 우리가 흔하게 썻던 일본 잔재어
앞지르다의 오이코시(追越, おいこし)도 넘을 越자를 씀. 이상 일본어 공부 ㅎㅎ
ㅎㅎㅎ 오이코시 , 잇치, 니, 산, 시... 재미있네요.
이번 여행에서 입이 안떨어져 일본말을 한 번도 못해 보았슴다.
20년간 일본말 해볼 기회가 없었으니 좃되버렸네요
혹시 모를 북알프스를 위해 틈나는데로 일본어 공부 해야겠슴다.
배워서 남주는 것 이나니까 말임다. 노짱.. 참 대단해요.
@김동주 써 먹든 안 써먹든 외국어 공부를 하는것은 치매예방에 특효라고 합니다. 더군다나 조그만 동기부여(일본 북알프스 산행)를 하여, 외국어 공부를 한다면, 머리에 쏙
쏙, 특히 행님 정도면, 어렸을적 어른들이 상용한 일본어를 상기하며 그 단어들을 연계하면 재미가 배가됩니다. (예: 택시 등 탈것을 대절한다는 가시키리(貸切), 편을 가를때나, 승부를 가를때 하는 "우라(裏)오모테(表)", "じゃんけんばん(잔켄뽀)" 등등)
노짱님의 도움으로 다녀온 오난지 야마입니다 .사진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