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의 왕
김종연
낮과 밤이 사실 이어지지 않는 개체의 연속이라면
그렇게 생각을 하기로 다짐한 네가 하루를 못 지키고 다른 궁금증에 빠져
하천의 오리들은 왜 얼어 죽지 않는 걸까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털도 말리지 않아
그런 건 문학적 상상력이 아니라 추적과 관찰이 알려주는 거야
오리들은 쉽게 사랑에 빠져
초라할수록 보여줄 게 많아
아직 보여주지 못한 것이 이만큼이나 많아
오늘은 이만큼 내일은 저만큼 그러고도 우리에겐 아직 남은 게 많지
지금 우리가 아니라 오리 얘기를 하는 거야
그러니까 이건 사랑 없는 사랑의 시
부리가 오리의 전부는 아니지만 부리로 구별되는 우리의 시
아침에 일어나 집을 나설 때 당신을 돌려세우는 손이 있습니다
그건 당신의 손입니다
그럼 손이 세 개인가요?
네 개여도 좋아요
오리에게는 손이 없어요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 건 그보다 많아도 좋습니다
필요 없는 것을 모아서
필요한 것과 바꿀 수만 있다면
부끄러워 눈을 못 마주치겠다고 말하면서
눈을 마주칠 때
그간의 꿈과 아름다웠던 미래의 축약이 스쳐지나가고
사랑은 모두가 잠들었을 때에도 잠들지 않고 밤을 새우며 가진 모든 것에 이름을 붙여준다
그 말 내가 들은 것으로 할게요
우리에게 정말 시간이 많았다면 그 말도 하고 말았을 테니까
우리는 주머니가 되어 예쁜 걸 하나씩 뱉어내고
비어갈수록 주름이 지는 긴 목을 가만히 매만지며 바라보다가
알게 되었다
우리가 본 건
얼어 죽지 않은 오리구나
우리가 영원히 살지 않을 수만 있었다면
불 지핀 오두막에 저 오리들을 모두 안고 들어와 몸을 녹여 줄 텐데
그러니까 이건 사랑 없는 사랑의 시
부리가 오리의 전부는 아니지만
부리로 구별되는 우리의 시
오리 얘기가 아니라 우리 얘기를 하는 거야
부리가 없는 오리
우리의 곁으로
사랑의 이미지가 오고 있다
오리의 왕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