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무열공 노신 (1336-1397년)
무열공(武烈公)의 이름은 신(愼)으로 호(號)는 악은(岳隱)이며 시호(諡號)는 무열공(武烈公)이시다.
고려 충숙왕 5년(1336년) 송경(松京. 현재 개성 가조리)에서 출생하셨다. 10세 미만에 문장을
붙여 읽을줄 알았으며 12세에 경사(經史)에 능통하였고 고려 공민왕 8년(1359년)에 홍건적(紅巾賊)
의 난을 만나 24세의 나이로 안우경등과 더불어 적(敵)을 물리쳐 일등훈을 세웠고 다시 공민왕 13년
(1364년)에는 김용(金鏞)의 난에도 이성계와 함께 난을 평정하여 경성(京城)을 수복하는데 일등 공훈을 세워 공신(功臣)이란 칭호를 받았다. 벼슬이 정윤상호군(正尹上護軍)에 이르고 함풍군(咸豊郡:현, 함평군)에 습봉(襲封:영지를 대대로 물러 받음)되었다. 그 뒤에 이성계의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태조로 등극하자 57세로 40동지와 더불어 보봉산(寶峯山)으로 들어가 갓을 걸고 두문불출하여 스스로 귀은(歸隱)이라 칭하였으며 그 후 다시 함풍으로 돌아와 은둔 생활을 하였으며 신종여시(愼終如始)란 뜻으로 신(愼)을 고치고 송악산(松岳山)을 잊어 버리지 않는 의미에서 호(號)를 악은(岳隱)으로 바꾸고 매월 음력 초하루에는 마을 뒷산에 올라가 송경(松京)을 바라보며 눈물로 사배(四拜)하고 내려 옴으로써 후세 사람들은 그 산을 월망산(月望山)이라 불렀으며 지금의 함평군 월야면에 있는 월악산(月岳山)이다.
돌아가신 후에 조정에서는 무열(武烈)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려 칭송하였으니 강강직리(剛强直理)의 무(武)요 집덕진업(執德進業)의 열(烈)로 무열(武烈)은 곧고 높은 충절(忠節)이니 만인이 본 받아야 할 지다. 묘는 함평군 월야면 월악리 836번지 내동마을 뒤에 있으며 제사는 매년 양력 4월 첫재 토요일에 모시고 있다. 사당(祠堂)은 개성 두문사(杜門祠), 장성 경현사(景賢祠), 나주시 문평면 거평사(居平祠), 무안군 해제면 학산사(鶴山祠), 영암군 서호면 관봉사(冠峯祠)와 경기도 파주시의 고려통일대전(高麗統一大殿)에 배향(配享)되어 있다.
- 본 자료의 원고는 진사공파 29세손 노점석님께서 수고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