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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道의 尊貴性과 卑賤性
(敎師로서의 靈性을 갈구하면서)
도덕교사 이재원
1. 교직이 아니고 사도이다. 교직에는 가치가 없다. 그냥 교직일 뿐이다.
교직이 사도가 될 적에 교만에 의하여 존귀와 비천이 생성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혁명을 선동하는 사회주의적 탕아가 자기보다 우수한 시민을 자기보다 하수인 인민으로 보고 한 수 가르칠려고 덤비는 꼴과 진배가 없다. 그리하여 그들은 알마든지 우수한 최고급의 프로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착각에 의하여 지식성장이 중단된 결핍의 아마추어로 자기이야말로 진정한 프로인양 한 수 위인 기술 무한대의 프로를 무한정 공격하면서 자기가 공개적으로 그렇게 질타한다고 하는 프로의 모양을 흉내내고 있다. 하지만 그들도 알고 있다. 계속 지기 때문에 계속 선동을 해야하고 모여야하고 단식을 해야하고 자기들끼리는 뭉쳐야하고 일탈자를 감시하게 된다. 그것도 종신(終身)토록 말이다. 그런데 더 문제는 어느 한 시민의 무리를 인민단으로 만들어 자기들의 생명연장의 숙주로 삼아야만 하는 데 그들의 영원한 비극이 있다.
특목고에 다니는 어느 우수한 학생이 스승의 날 제자로서 모교를 찾아와서 졸업반 담임이었던 은사에게 자신의 장래 희망이 교사라고 할 때 그 여교사는 답변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 역시 명문국립사대를 나온 수재급교사였지만 왜 머뭇거렸을까? 바로 무의식적 본능으로 느낀 교사의 비천성때문일 것이다.
교사란 분명 존귀한 직업이다. 그런데 왜 비천하기도 할까? 그에 대하여 문제를 솔직하게 엮어나가보자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이는 누구의 찬반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알기론 다른 모든 나라에서도 종종 자주 일어나는 교단에서의 일이기 때문이다.
2. 신(神)에 의하여 다음 장면이 개시되었다.
2014.9.5(금) 6교시 중학교 2학년 도덕수업 때의 일이다. 장소는 나름대로 괜찮은 대도시의 신시가지 학교 중의 하나이다. 인구가 밀집되어 이웃에도 초등은 물론이고 고등학교도 즐비하다. 고등학교는 모두 인문계로 실업계는 다 멀리 포진되어 있다. 중학교 졸업생의 70%이상은 인문계로 진학하고 실업계로 갈 학생들은 3년동안 먼 길을 통학해야 한다. 운이 좋은 해는 학급 석차 골찌도 인문계로 가기도 한다. 지원자 부족으로 말이다.
~~계속(바빠서)
"반장이 없다고?
그럼 부반장이~.
그도 같이 없다고?
이 거룩한 도덕시간에, 아니지 지금 이 시간 도덕만 있는 것이 아니지.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음악미술체육 등등 기라성같은 아름다운 수업시간에 겨우 법정문화교실 따위를 한다고 학생들을 모어다니 정신들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좋아!!! 그건 그렇다치고 그럼 남학생부반장은 있겠지."
그는 교과서의 내용을 전달할 시에는 수업용 존칭어를 쓴다. 하지만 공적이지만 다분히 사적인 내용을 설명할 적에는 수업용 존칭보다는 비존칭을 주로 사용한다. 그 이유는 그도 모른다. 그냥 편하게 느껴지고 저절로 나오는 말이기 때문이다.
배려
존중
그 학생은 항변했다. 왜 그것을 정답이라고 합니까?
시끄럽다. 다 하나님의 뜻이다.
헐~~~.
역지사지의 3요소(배려/존중/관용)
~~~~ 그는 분명히 하나님이라고 했다. 하느님이 아니다. 그것은 대단한 이념적 교육의 무의식적인 자연방출의 산출이다. 그는 개신교의 하나님이 천박한 명명이지만 고상하게 알기 어렵게 표현한 천주교의 하느님보다 선악이 명백하고 자기네들이 오히려 불리한 솔직한 표현이라고 보고 있어 하나님을 선호한다. 게다가 언제가는 왕창 망할 수 있는 비윤리적 표현이라고 비판적으로 냉소하고 있다. 물론 마음으로만 말이다. 오히려 그 명칭을 글자 그대로 믿다간 단체적으로 지옥으로 행하는 길일지도 모르는 걸로 보고 있다. 그것도 시끄럽게 목에서만 나오는 설교로 11조나 강조하면서. 그래도 스님으로 불리는 떼중이 중들보다는 낫다는 기분은 왜 들까. 그는 유신론자이다. 신이 아니고는 무기물들을 도저히 계속 연차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확고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논리적 비약이다. 신은 누구나 예수처럼 자기 가슴 속에 있다고 그는 느끼기 때문이다. 아니 인간인 이상 그렇게 느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또 항상 혼자서만 시간이 나면 가끔 사유할 따름이지 누구하고도 그 문제에 대하여선 이야기하지 않는다.
3. 한 번 이런 일도 있었다.
난데 없이 수업 도중에 "선생님, 사람이 죽으면 무엇이 하나님 앞에 가나요? 정말 궁금합니다."
"그 어려운 질문은 담임교사나 부모님께 문의를 해야지 내가 답할 것이 아닌가 한다."
"다 모른다고 하시는데요."
그는 분명히 담임교사라 했다. 선생님보다 교사가 정식적인 순간에는 더 정확하다.
"그래?"
잠시 뜸을 들인 후 그는 답변을 했다.
"그렇다면 간단히 말하마. 모두들 듣어라. 급우의 질문이다. 하지만 답은 별거 아니다. 영(靈)만이 신 앞에 선다. 혼(魂)은 날아가고 백(魄)은 흩어지고 육(育)은 피와 살로써 산화되고 신(身)은 뼈로 흙으로 소멸된다."
또 답변이 이어졌다.
"완전히 죽기 전에 누구나 신의 선물인 천국에 이른다. 그 천국은 상상이상으로 찬란하다. 그 천국의 끝에서 영과 혼이 분리되면서 혼은 사라진다. 영만이 영원한 자신의 주인없는 실체다. 하지만 영만으로는 망각의 세계에 빠져들 뿐이다. 억겁도 순간이다. 왜? 영에게는 시간이나 공간개념이 없다. 억겁의 시간 후에 태어나지만 신(神)에 의하여 새로운 백을 만남으로 순간적으로 즉각 다시 태어난다."
또 말이 이어진다. "우린 이미 영적인 세계란 것을 낱말로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 겨레의 원초적 혼이 담긴 영산(靈山) 백두산말이다. 겨레의 영산 백두산이지 다른 말로 하지는 않는다. 꼭 하나 더 있다면 그 산맥엔 우리 겨레의 뿌리인 우리의 영혼적인 넋이 있을 뿐이라고.
또 답변이 이어졌다. "다시금 강조하면 영은 우주의 차원을 넘어선다. 우주는 쉼없이 움직어야하는 시간과 공간의 포로일 뿐이다. 영혼의 영과는 완벽하게 무관하다."
그리고는 수업종료종이 울렸다. 중학교2학년생들에게는 더 이상의 질문은 거의 없다. 아무리 쇼킹한 진리의 시간이라도 노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 넘치게 말했지만 티벳의 '사자의 서' 수준에 불과하다.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말이다.
4.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말 해봐!"
"국민 소득 GNP말입니다."
GDP가 아니었다.
외부를 부정하는 속인적인 GNP보다 외부를 인정하는 속지적인 GDP가 1994년 이후 진짜 소득으로 등장하였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일단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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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미친 일류 정치사기꾼들의 속임수를 방어하기 위하여 우리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서는 연간개인가처분가능소득액을 산출해 놓고 인터넷에 개방해 놓고 있다. 정치란 표만 모을 수 있으면 갑자기 독도도 일본땅이 되는 수가 있다.
물음에 대한 결론적 요지를 말하리다. 이념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남을 향해 던지는 돌멩이에 불과하다. 남을 해치는 것이다. 논어에도 나온다. 소인인 자신의 실책이나 잘못마저도 항상 남에게서만 그 탓을 찾아 짖어댄다고, 그리고 특이한 것은 그는 일을 직접 하지 않는다. 그런 자들은 사상적 고민이 전혀 없다. 그냥 조선말 안동김씨 세도가처럼 백성들의 피와 땀을 공짜로 쳐 마시고 있을 뿐이다. 세도정치일수록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위대한 철인정치를 할 수가 있지 않겠는가.
그는 잠시 생각한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길게 생각할 수 있다. 이런 내용의 수업은 중학교 2학년생들에게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것을 안다. 그냥 폭우 속을 헤메는 내용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교과서밖의 특이한 경험들은 나중에 긴요하거나 급박한 순간에는 자신의 생명을 수 없이 구하는 나침반이 될 것이다.
참담한 마음 속에 그는 4층의 교실에서 2층의 교무실로 복도를 타고 내려가고 있다. 그는 다음의 장면들을 생각한다. 그 역시도 한 때는 전선의 용사였다. 비록 계급은 말단 소총수 였지만 기동타격대 출신으로 자다가도 사이렌이나 호각소리, 타격대 타격대 하면서 황급히 달려오면서 외치는 출동명령 소리만 들어도 5분 안에 단독 군장으로 차량에 승차할 수 있었다. 아니지,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했다. 군 복무 시에 그런 훈련을 수 없이 받아 왔다. 그것도 일당백의 출중한 실력의 적 침투 게릴라들을 상대로 그들의 퇴로 차단과 접전 유지를 다음 전투부대가 올 때까지 유지해야 한다. 물론 경무장이다.
5. 그리고보니 지금 그의 모습도 경무장이다. 교과서와 분필, 그리고 노트북과 이들 들고가는 가방 속에 든 수업진행체크공책이 전부 다다. 개인 화기인 소총과 실탄 수십발과 매우 튼튼한 탄띠, 수류탄 2발, 그리고 백병전을 대비한 대검처럼 말이다. 물론 훈련차량은 대부분 출발도 없이 우릴 하차시켜 버린다. 그리고 칭찬 몇마디 해 준다. 오늘은 승차 후 엔진시동까지 4분33초가 걸렸다고. 흥!!! 미리 이야기만 해 주면 30초 이내로 해 낼 수 있는 데 뭘 그리 새삼스레 ~. 대한민국에서 교사는 교수와 달리 수업종료종이 칠 때까지 교실을 지켜야 한다. 그 날의 교실수업이 이상하게 흘러도 예외가 없다. 그처럼 정년이 2년 남은 노교사라도 말이다. 정말이지 젊은 타격대의 소총수이다.
사실 교사란 별거 아니다. 누구나 될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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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학생은 진짜로 사고뭉치 개구장이다. 실험정신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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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자기 동생에게 자세히 말했다. 영락없는 교사의 답변이었다. 동생은 어이가 없는 모양이다. 따라는 가지만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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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모레에 있을 학교평가준비차 약간 바쁜편이었다. 교감과 교무부장과 몇몇 교사들이 4층 도서실에서 평가관련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그는 자기 동생과 같이 학교에 다시 와 저기 교실에 갔다 오는 것이다. 무슨 일인지는 알기가 쉽다. 그것은 너무나 뻔하다. 물건을 놓고 간 것이다. 그 물건을 찾으러 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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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란 엄청난 문명의 이기를 그대로 두고 그는 동생에게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새로운 세계의 룰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치 지식인들의 자유처럼 색깔을 칠하고 있었다. 정말 어이없고 슬픈 장면이다. 황당하기까지 할 지경이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무한한 꿈을 심어주는자가 아니다. 앞의 예처럼 도덕을 이용하여, 도덕을 응용하여 자유를 속박하는자이다. 그 학생은 너무나 당연한 최고의 오빠가 될 수 있는 찰나의 기회이지만 영원한 찬스를 미리 받은 교육에 의하여 소멸시키고 있었다. 물건에 의하여 정신이 계발될 수 있는 기회를 약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오빠의 실수에 의하여, 교사의 실수에 의하여서이다.
5-1. 교사란 천상의 직업입지만 이런 일도 있었다.
교사란 분명 하면 할수록 인간관계에서의 천상의 직업이란 것을 느끼고 또 느낀다.
하지만 그 높이만큼 비천함이 계속 모양을 바꾸어 따라 온다. 악마들이 온다는 것이다. 무용실의 열쇠 비번 변경사건이 바로 그것익다. 모든 것이 무상으로 돌아가는 그 아름다운 시골의 큰 고급 중학교에서의 일이다. 아이들도 무척 착해 보인다. 아이들이 착해 보이니 교사들도 당연히 천사의 모습들이다. 행정실의 모든 직원들도 나날이 천상을 거닌다. 경비나 청소부도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이런 천상의 학교에도 악마가 숨을 쉬고 있었다.
5-2.
샤마니즘의 천한 인간들이 학교에도 간혹 있다. 아니 갑자기 생긴다. 그 착한 교사가 천한, 아니지, 거룩한 무당이 된다. 그것도 영특한 타부적 무당이 되어 춤을 춘다.
5-3 . 어느 도덕수업 : 사회주의란 머리 나쁜 인간들이 하는 짓이다. 베니스의 상인 샤일록을 보라!!! 그는 위대한 신의 목소리를 전달한 분이다. 네가 너의 심장이 필요하다. 바로 계약법에 의하여. 나는 신에게 위증을 하지 않는다. 나는 꼭 너의 심장의 살이 1파운드 필요하다. 왜 나는 너무나 비천하기 때문에 고귀하다는 너의 심장의 살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진짜 고귀한지 만지고 느껴보고 싶단 말이다.
그리곤 마지막 말로 결론을 맺었다.
"샤일록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신이 정해준 사람만이 그때 그 순간 절명의 시간대에 할 수 있다. 남들이 알든 모르든 간에."
그리고 도덕교사인 그는 화장실에 가서 엉엉 울었다. 아! 신이시어. 아시아인에게는 어째 이런 글귀를 내려주시지 않습니까. 여기에도 어린 양들이 많습니다.
6. 엘리베이터?
좋은 물건이다. 그는 입실할 적에 복도를 걸어서 올라간다. 시간도 벌고 마음을 조정하기 위함이다. 퇴실 후 교무실로 갈 적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온다. 엘리베이터에 비친 거의 모습을 보곤 생각에 잠긴다. 허연 머리칼, 60대 노인의 모습이다. 노련할 나이지만 그건 사기이다. 살아 있는건만도 다행이다. 걸음도 느리다. 복도를 올라 갈 적에 확실히 느낀다. 생각에 잠겨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아니다. 그냥 느려서 그렇다. 밤마다 오줌이 마려서 몇 번씩 깬다. 그런 교사가 뭘 노련하고 생각이 깊겠는가? 건강한 것만도 다행이다. 엘리베이터에 비친 그의 모습은 대강 이렇다. 60대 노인의 모습과 교과서와 수업준비물이 든 가방과 손에 든 노트북이 보인다. 그의 초년병 교사 시절엔 교과서와 지도안, 분필통과 학급출석부가 전부였지만 이젠 지도안은 사라졌고 입체력이 가능한 노트북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가방 속엔 분필통과 수행평가용 자료도 있다. 분필은 예전과 달리 먼지도 안 나고 참 좋다. 촉촉하게 만들어 놓았다. 마음에 든다. 칠판도 자석이 탁 달라 붙는다. 유인물 수업에 그만이다. 수행평가는 매시간 체크한다. 그리고 출석부도 학급교탁에 그대로 두고 다닌다. 학생들은 수업 중에 말들이 많지만 쉬는 시간에 쉬는 데 정신이 팔려서 출석부를 거의 건드리지 않는다. 좋은 현상이다. 출석부? 특별실 등에서 오는 수업교사들이 많아서 제1교무실에 둘 수가 없다. 예전엔 출석부를 반드시 가지고 다니게 했다. 수업체크용이다. 그도 간혹 출석부를 두고 오는 교사들을 멸시했다. 이젠 멸시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부장경력은 풍부하지만 그는 교감으로 승진을 못 했다. 사립학교 6년, 산업체부설고 15년을 거친 후 공립에 오다보니 승진점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공립에 온 후 노력하여 전국2등급, 전국3등급, 부산시 1등급 등의 연구실적과 연수점수, 학교연구과제수행, 특수지 학교근무 등의 기타 승진가산점을 해마다 긁어 모았지만 승진의 기회를 따라 잡지 못 했다. 석사학위는 일찌감치 사립에 있을 적에 따 놓았다. 그냥 공부가 좋아서 2군데나 다녔다. 그때부터 공립에 있었으면, 산업체에서 10년만 근무하고 왔더라면, 부질 없는 생각이다. 공립에 먼저 와 있던 후배교사들의 승진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교직의 길? 교육자로 포장을 할 수도 있지만 생존의 길이다. 이제 2년 남은 길을 안전히 지나가야 한다. 정년하는 날까지 그는 수업을 할 생각이다. 먼저 그만 둔 선배나 명퇴한 동료들을 보면 병가 등을 내어 3개월이나 몇 일을 쉰다. 그는 그냥 근무하다가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가고 싶다. 교직의 사명감이 아니다. 자존감이 아닌 그도 내키지 않은 자존심이다. 쓰려져도 좋은 병사가 되고 싶다. 수업은 점점 자신감이 사라진다. 자신감이 사라져도 그는 마지막까지 갈 생각이다. 수업시간에 병든 자존심보다는 자존감을 지녀야한다고 학생들에게 자주 전달한다. 맞는 말이지만 자존감도 무시할 수가 없다. 이제 2년 남은 길에 누구를 믿겠는가? 학생도 아니다. 동료교사도 아니다. 자신만의 자존심과 자존감만이 그를 지킬 것이다. 공립에 늦게 온 탓도 있지만 인연이 있는 교사도 별로 없다. 친한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퇴근 후에는 생각도 안 난다. 물론 학생들도 생각이 안 난다.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위험하다. 시속 100k로 달려서 집으로 오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한 장면도 수 없이 많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상당수의 교사들이 차를 몰면서 위험하게 출퇴근을 한다. 퇴근 후 집에 오면 학교는 20KM 밖에 있다. 당연히 교사도 학생도 생각이 안 난다. 이 동네엔 이 동네의 룰에 따라야 한다. 물론 이 동네에서는 퍼팩트하게 일개 시민으로 돌아 간다. 학교보다 행복하다.
6-1. 양성평등에 대한 직관 - 다문화 편견에 대한 원초적 해석 - 개인주의의 '개인' 바른 모습 인식 업그레이드
예: 우장춘 - 엄마나라, 아빠나라. 처음 수업 - 조용했지만 가부장적 인습적 닫힌 수업 & 다다음 수업 - 다소 업된 분위기 속에서 나도 모르게 여학생들을 보다가 '아차! 이렇게 하면 안 된다라는 감정을 느끼며 엄마나라 발성. 한 달 후 토요일 아침에 잠결에 아! 그렇다. 이제부터라도 엄마나라 VS. 아빠나라, & 개인 강조 - '개인'이란 인간 본연의 모습 찾아오기. 창세기에도 언급. 사랑에 눈 뜨면 부처도 못 말린다. 등등 예제는 많다.
다문화에 대한 확실한 앎의 체득.
잠결이지만 반가워!!!^^
7. 교무실 분위기는 그런데로 참을 만하다. 교원들도 우수하고 하는 일도 고강도까지는 아니다. 교사 1인당 파티션으로 구분이 되어 있어 사생활 보호 기능도 좋다. 사립이고 공립이고 간에 품격이 있는 교원들도 많다.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교원이 아니더라도 학교 구성원만 되어도 누구나 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받을 수 있고, 법적으로도 요구할 수 있다. 그래도 조직은 조직이다. 조직이란 애매모호한 형질변경이 있다. 군생활의 예를 들어보자. 사병들은 100%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군에 와 있다. 거룩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대우와 그들의 행동은 거룩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어떨 적에는 무지막지한 몽골병사들이다. 간부나 선임으로부터 무시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래서 다음 말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는 평교사라서 그런지 본의아니게 매우 건강하고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편이다. 교장 교감의 경우는 학생들과 직접 부딪치지 않아서 나이가 들어도 견딜만 하다. 그래서 서로 되려고 한다. 하지만 잘 되지 않고 된 경우라도 이젠 인생 황혼기다. 몸이 예전과 다르다. 그가 사립에 있을 적에 교장회의에 대리로 여러번 출장으로 참석한 적이 있었다. 교장회의 시 마다 그는 괴로웠다. 단체에서 풍겨나오는 냄새 때문이다. 몸이 늙어 가는 몸냄새였다. 회의 중간에 나온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사립에 있을 적에도 병든 교장이나 교감들이 많았다. 수술은 기본이고 심장마비로 급사하거나 중간에 건강상 문제로 그만 둔 교장 교감도 제법 있었다. 공립도 마찬가지이다. 지병으로 수술한 교장이나 교감이 꽤 된다. 10년 전의 어느 교장은 구취가 심하여 여교사들이 가까이 가서 말하길 꺼렸다. 어느 교감은 심한 흡연으로 코를 쿵쿵 거리며 콧물 빨아 먹는 소리를 교무실에서 너무 자주 내어 여교사 몇은 구토를 느껴서 쉬는 시간에도 교무실에서 잘 안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래포를 형성한답시고 여교사들에 자주 접근하여 커피를 부탁하여 얻어 마시곤 하였는데 이를 불편히 여긴 여교사 몇은 그가 빨리 딴 학교로 가길 바라고 있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함께 노쇠하고 있다. 교장 교감이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이 해결해야하는 상황도 제법 있다. 정년퇴직하는 어느 교장은 퇴직을 10일 앞 두고 야간경비에 창피를 당한 경우도 있다. 교장과 경비가 근무문제로 언쟁이 붙었는데 '당신은 나보다 나이도 어린데 왜 이리 버릇이 없는냐?'고 몇 일 후 석별할 교장실에서 공격을 당한 것이다. 그 교장은 마지막을 백전노장처럼 행세하다가 말단 경비에게 어린애로 취급 당한 것이다. 어느 교감은 교장으로 승진하여 전출을 간 후도 그 학교 근무 때처럼 개인 동호회 테니스 후 학교의 샤워실을 공짜로 혼자서 이용하려다 경비에게 퇴짜를 당한 경우도 있다. 그 샤워실은 겨울에도 따뜻한 물이 펑펑 나온다. 경비도 처음엔 인정상 그냥 협조를 해 주었지만 아무런 이득이 없자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고 시비를 걸어 교장으로 승진 후 득의 양양한 그 교감을 그냥 쫓아 내고 말았다. 이때 경비가 한 말이 걸짝이다. '당신은 매번 공짜로 남의 학교를 이용하면서 우째 맨날 맨입으로 오요? 경비인 나한테 특별히 선물을 주는 것도 없고 말이야.' 그는 한 마디 더 붙었다. '선생님들이 이 사실을 알고 모두 당신 욕을 하고 있소.' 그는 창피를 톡톡히 당한 것이다. 그 후론 오지 않았다. 그 경비는 나이가 74가 넘었다. 결국 그도 나이가 많은 관계로 다음 학기에 정리해고 당했다. 그 경비는 그 학교에 14년 근무했다고 한다. 경비로 지위는 높지 않았지만 명문 국립대 출신이다. 자존심을 죽 숙이다가 다가오는 정리해고를 직감적으로 느끼고는 몇 일 후 퇴직할 교장과 교장으로 승진하여 득의 만만한 교감을 목표로 골라서 그동안 당한만큼은 못 되지만 일부나마 속 시원히 복수를 하고 간 것이다. 교사란 바로 이런 것이다. 상대방이 무시하려고 한다면 교사로서의 징표는 바로 날라가 버린다. 그땐 보통 시민마냥 화를 내기도 어렵다. 화를 내는데 서툴기도 하지만 화를 낸 순간 그는 그냥 바로 일개시민으로 계산되는 것이다. 상대방이 노리는 순간이다. 손실이 너무나 크다. 이겨도 손해이다. 그 교감은 재수 없게 경비의 안주감도 안 되었다. 그 경비는 기회가 있을 적 마다 매번 자랑할 것이다. '내가 학교경비로 있을 적에 말이야 퇴직하려는 교장과 버릇 없는 교감도 혼을 낸 적이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경비는 야간 근무 중에 무단침입의 불법취객이나 버릇 없는 학생들로부터 말로써 모욕을 당한 적이 꽤 많다. 그는 그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교장과 교감도 잘못하면 벌 주는 학교경비인데 어째 시시하기 짝이 없는 취객과 학생들이 자기와 동격일 수가 있겠는가? 어림 반쪽도 있을 수가 없다. 그는 자주 바뀌는 총리를 무시하는 구(舊) 중앙청 정문 경비인 것이다. '나는 단 한 명의 총리를 제외하곤 나머지 총리는 모두 나의 중앙청 후배야, 후배!!! 우하하하.' 통쾌하지만 아무도 알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평교사라는 것이 힘들고 불편하다.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
7-1. 버릇이 없는 교사들로부터 마음이 멀어지다.
특히 나에 대한 무지한 행동은 바로 신의 소리이다.
7-2. 일부 잡다한 한국적 3류 교사들
7-3. 교사의 정확한 위치
원래 교사들은 아시아에선 2급 평민이고, 유럽 로마에서는 그리스 출신의 노예였다. 결코 수퍼갑의 여유있는 선도적인 학자는 아니었다. 오로지 배고픈 서생들일 뿐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돈많은. 혹은 야망이 있는 인간이 할 짓이 못 된다.
8. 2014.9.13(토) 유력 한 조간신문에 전 국회의장인 76세 P씨가 전전날 11일 오전 강원도 원주의 한 골프장에서 라운딩 도중 손녀뻘 되는 22세의 여성캐디의 가슴과 몸을 손으로 접촉하는 등의 성추행을 하여 곧바로 다른 캐디로 교체를 당하고 피해자로부터 고소를 당하게 될 것같다는 기사가 등장하였다. 캐디? 골프장의 캐디라면 경기진행요원으로 남자가 유리한 것이 아닌가? 하긴 여자라도 못할 리도 없지만~.
2014.11.12 경기도 포천 어느 골프장 HS골프클럽회장으로 있는 전 검찰총장의 여직원 성추행 - 결국은 댓글 등으로 실명이 드러났지만 언론은 계속 이름을 침묵하며 익명으로 처리. 앞의 분보다 직위도 낮고 나이도 70.
이상한 점은 앞의 경우는 바로 실명을 언론이 앞서서 거론, 이번의 경우는 이름부문에 침묵으로 일관?
그는 이 기사를 보면서 이무기처럼 깊은 숨을 쉬면서 회상에 잠겼다. 그렇다. 우리 교사도 천박한 면이 있지. 5년 전 앞의 학교에서 근무할 적에 교사팀들이 어머니 학부모와 배구시합이나 달리기 시합을 하면 어떻게든 지지 않으려고 수작을 부린 적이 있지 않는가?
그때의 배구시합에 대한 회상에 빠진다. 어머니 배구단이 예상외로 강팀이었다. 그들은 아마팀으로 틈틈히 연습을 하는 통호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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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달리기에 대한 회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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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렇지. 국회의장이라면 삼부요인 중 하나인데 그기에 비하면 교사들의 그 정도의 추함은 용서가 가능하지 않는가. 그는 다시 이무기처럼 생각에 잠겼다. 이무기! 용이 될 지도 모르는 위치나 신분이다. 설사 승천을 못하더라도 그는 그 분야에서는 달인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무기로 되는 과정에서 피타는 결투가 얼마나 많았는가? 악어를 통째로 삼키키도 하였다. 악어를 통째로 삼키다가 배가 터져 죽어간 동료도 있었다.
그러나 그를 진짜 어이없고 당황하게하는 말은 전 국회의장인 P씨의 말이다. '손녀같아서 귀엽다는 표시로 했지만 정도는 넘지 않았다' 이는 반성이 전혀 없는 말이다. 반성자체가 없다는 말이다. 어쩌면 반성 자체가 사치인지도 모르겠다.
교사들도 학부모팀을 이겼다고 좋아하고 정치인들도 관록이 있다고 자랑하는 판에 무슨 반성이 필요한가? 그냥 살다가 수명이 다하면 되는 건데 말이다.
그 후 연이어 나온 기사에 의하면 그는 결국 12일에 고소를 당하고 경찰수사를 받게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부부동반이었고 홀마다 성희롱 및 성추행을 했다는 것이다. 그 캐디는 참다 못해 무전기를 이용하여 교체를 요청했고 9번 홀에서 다른 캐디로 교체가 되었다고 한다.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는 상대방이 국회의장 출신인 것을 몰랐다고도 한다.
76세!
나이 60이면 이순(耳順)이라고 했지.
하지만 그의 경험에 의하면 이순이 아니다.
교만하고 건방지기 쉬운 나이다. 만약 60이 아니라 130살이라도 20대마냥 그냥 젊고 건강하다면 교만과 건방이 하늘을 찌를 것이다. 다행으로 몸의 삭신이 노곤하여 교만과 건방이 겸손으로 위장되어 바뀐 것처럼에 불과하다.
인간에 있어서 나이란 정말로 비천(飛天)과 비천(卑賤)으로 함께 아울러 통하는 지름길이다. 다행이도 신의 뜻에 의하여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바로 그 결정타가 전립선비대증이다. 이 비대증 덕분에 60남정노인네들의 인격이 고상한 것이다. 그것도 매우 고상한 것이다.
8-1. 정치인과 관료?
정부의 두 축을 이루고 있다. 하나가 종(縱)이라면 하나는 횡(橫)이다. 이는 입체적인 정부구조를 하나의 평면 위에 도식화할 수 있는 좋은 예이다. 하나가 X축이라면 하나는 자연스레 Y축이 된다. 이는 이미 17세기 데카르트가 제시한 구조가 아닌가? 정부라는 것!!!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뛸 수 있다. 국가란 말로 포장할 수가 있어서 교실수업에서 도덕교육의 바탕이고 수업의 핵이다. 심지어 방향까지 설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속내는 한심한 정치인과 생각보다는 어이없게도 수준 미달의 관료들일 뿐이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예전부터 권불십년이다. 문제는 권불십년의 DNA가 앞이나 뒤나 거의 차이가 없다는 데에 있다.
8-2 정부관료의 실체적 무지 - 1997년 외환위기
한국의 경제는? 88 올림픽 이전의 노태우 정권까지는 가난과 싸웠고, 1997년 외환위기 협곡을 거치면서 정부가 국민을 오히려 대량 가난하게 만들고 난 후, 아! 정부라는 것도 우릴 가난으로 몰고 갈 수 있구나. 그래서, 2002 월드컵 이후 정부부터는 가난한 사람들과 싸우고 있다. 88 올림픽에서도 4강을 했고, 2002 월드컵에서도 4강을 했다. 국민들은 4강을 할 수 있다는 저력을 느낌과 동시에 정부에 대한 도전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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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정부는 국민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민을 바닥에 내려 놓았다는 것이다. 이제 서서히 정부불신의 싹이 움트는 순간이었다.
8-3 한국의 지도층은 백성을 버린 전력이 깊다. 1592년의 임진왜란이 그렇고 1910년의 한일합방이 그렇다. 병자호란은 버릴 시간과 공간조차도 없었다. 바로 함락된 것이다. 평시에도 위민정치는 드물었다. 그냥 사는데로 서로 살아 왔을 뿐이다. 이 깊은 불신을 풀 기회를 바르게 가질 볼 여유가 아직도 없다.
9. 가정방문의 변
그 선배친구 왈 '교사가 학생을 제어하는 것 중에 하나로 가정방문이란 것이 있다.'
어이가 왕창없었다.
학생을 공중분해?
나는 두번이나 당했다.
고1ㄸ 한 번, 고2때 또 한번. 실로 대 참살 그 자체이었다.
생각이 아쉬웠던 담임선생님의 실수
그렇ㄱ도 훌륭한 분이셨는데 어이가 없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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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년 후의 나의 가정방문기
당황하는 일부 학생들과 나의 조심성
비닐하우스
어머니가 학생의 연락을 받고 마중!!!
젊고 건강하고 미인, 긜고 보니 학생도 외모가 참했다. 잠시 거쳐하는 집처럼 느낌
'키는 작지만 농구의 달인, 교냋육대회 학급대표' 사실판단이었다.
10. 심봉사와 이를 방기한 국가의 몽매성에 대한 이야기로 이야기를 해 보자.
이를 위하여 시장의 본질부터 엮어 나가자. 시장의 본질은 가격이다. 바로 보이지 않는 손을 신(God)를 일컬는 말일 따름이다. 그에 대한 시작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산업체부설학교 고교교사! 지금은 사라지고 없어진 학교, 하지만 그곳은 학교가 아니었다. 1988년 3월부터 15년 간 근무했지만 교사도 학생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후진국가의 교육모형으로는 가히 세계적이었다. 미래가 있었고 그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그리고 용기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의 마음에 상처가 더 크다. 나에게는 큰 복이었다. 하지만 국가의 보호는 법령자체를 빼고는 너무나 미진하였다. 학생들은 근로청소년으로 할 일을 다 했다. 모두 여학생이다. 만든 물건들이 중동까지 간단다. 내수시장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완전 수출지향적 산업체이다. 생산의 촛점이 국내가 아닌 세계시장에 있었다. 근로학생들은 국제간 자유시장에서의 산업전사인 셈이다. 그런데 한 번도 격려차라도 방문하는 고급정치인이나 고위공무원들이 없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그 누구라도 자기가 살기 위하여 그 일을 본능적으로는 힘써 행하면서도 그 일에 대한 과학적 법칙과 철학적 바탕을 이론적으로는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본능적으로 하다보니 그저 운이 좋아 그 일을 하게 된 무리 같았다. 하긴 우리가 타고 있는 이 지구란 비교적 안정적이지만 자그만한 행성도 태양 주위를 달을 데리고 빠르고 자전과 공전하면서 위험천만하게 이 은하계를 엄청난 속도로 매초 달리고 있지만 우리가 현재 지금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잖아. 하긴 은하계마저 자전과 공전을 한다고 하니 알고 있는 것이 이상할만도 하다. 그는 우연을 믿고 싶지 않지만 그것을 경험하고 있음을 철학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다싶다. 이 무리들이 가는 방향이 지구처럼 태양이 비추는 곳과 평행으로 달리기 때문에.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시각이 다가오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처럼 그 물결이 보이고 있었다. 나는 실로 마지막에 그 곳을 빠져 나오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마지막에 교문을 영원히 잠거는 그런 교사말이다. 경비에게 마지막 선물을 전달하면서 '그동안 고마왔습니다. 선물이 두 개인데 하나는 야간 당직자용입니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폐교 1년 전에 그 곳을 나와 공립에서의 교사생활이 시작되었다. 피할 수 없는 나의 잔상이다. 가슴이 너무 아프기때문에 내가 좀 더 살 수 있을 것 같다. 몇몇 장면은 내라도 기억해야 하지 않겠는가? 예쁜 학생도 많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여교사와 잘 생긴 남교사도 많았다. 학생이나 교사나 모두 너무나 순진하여 그 곳에 온 것이다. 그래도 그 곳은 복 받은 곳이다. 오전반, 오후반, 늦은 오후반으로 학교는 마지만 교사가 퇴근하기 전까지는 불야성이었다. 나에겐 그곳에는 교직만 있을 뿐이다. 나는 한 번도 사도를 행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근로청소년들을 상대로 할 적에는 사도보다는 교직자의 마음이 더 도덕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폐교는 우리 누구도 한 것이 아니다. 국제경제의 파도가 그 학교를 폐교로 몰고 간 것이다. 쓰나미처럼. 다른 사람들은 탈출하여도 교직자는 마지막까지 남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현관앞 교정에 핀 금송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 금송은 양편 두그루로 나와 같이 그 학교에 입교한 것이다. 옮겨 심는 것을 본 것이다. 현관 입구쪽의 여러 나무 중에 마지막에 이송되어 온 것이다. 그 나무가 금송으로 교목이 되었다. 금송!!! 찬란한 이름이다. 금송과 더불어 그 학교는 그에게 교실궁전 그 자체었다. 그는 그 궁정 속에서 도덕과 철학을 전수하는 윤리교사였다. 일반 사립학교로 후속되었으면 작지만 아름다운 한국의 또 하나의 선(善)한 표상이 될 수 있었는데. 그 학교의 터는 금정산 기슭으로 동쪽으로 내리 앉은 마지막 높은 곳으로 평평한 5,000평의 돌출구로 금정구를 한 눈에 바라보는 호랑이의 터이다. 호랑이가 아니면 그 학교의 터에 머물 수가 없다. 가서 보면 알 수 있다. 지금은 주인은 있지만 주인이 없는 땅이다. 텅 비어 있다. 교정의 마른 잔디밭에 풀들은 무성하다. 그 잔디밭은 무성하지만 마르다. 가서 밟아보면 느낄 수 있다. 당시 교무실 나의 책상에서 보면 멀리 서울행 경부고속도로 입구가 보이고 미국의 로키산맥처럼 남북으로 길게 뻗은 아홉산이 변덕 많은 푸른 산을 등지고 있고, 부산동쪽교외 번영로가 회동저수지와 수영강변을 따라 해운대까지 그대로 죽 연결되어 부산국제영화의 전당과 바다의 도시 센텀지구를 거쳐 부산이 자랑하고픈 국제적 명물인 마린시티구역까지 통과한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바다 위에 세워진 2층 구조의 다리인 광안대교 앞에서 그 소임을 다 한다. 또 산넘어 산이 계속 보인다. 글자 그대로 산속의 낙원이다. 민가의 집들은 교문밖에서 해지는 서쪽을 제외하고는 숲처럼 무성하고 소리내게 마찰적이고 역동적이지만 교무실에서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명당 중의 명당이지만 규모는 작다. 작은 챔피언이랄까. 겨우 호랑이 한 마리 정도만 기거가 가능하다. 안락과 평온의 안정 속에서 번영을 구가할 수 있는 도심 속의 미학이다. 분명 시골과는 다른 도시미학의 한 줄기이다. 그기에는 나를 위한 자유가 있다.
그기 위 학교에 근무할 적에 기이한 관경 하나를 잊을 수가 없다. 물론 그의 경우에만 한하는 경험이다. 그 말고도 많은 교사들이 있었지만 모두 도구과목으로 도덕과 윤리와는 학문적 거리가 있는 교사들이다. 바로 도덕 이데올로기 현장이다. 도덕 이데올로기는 출발은 정치에서 하지만 그 결판은 항상 경제에서 나는 것이 아닌가. 윤리시간에 학생들에게 이데올로기 수업이 있었다. 남북간 비교의 체제교육이다. 세계사적으로는 느끗한 동서의 문제지만 우리에겐 지리적으로 급박한 남북의 문제이다. 북한은 여전히 공산주의 모조품이고 남한도 한때는 자본주의 악용자였다. 교과서 내용의 전체에서 15% 정도를 이루고 있지만 3학년 2학기 말미에 배우게 되어 있는 북한실정은 그냥 넘어간다. 나도 잘 모르고 학생들도 전혀 관심이 없다. 숨가쁘게 넘어가는 20세기의 교실에서 하릴없이 시시한 내용을 말하거나 듣고자하는 것이 관심이 대상이 되기 어렵다. 이는 학생들도 본능으로 안다. 하지만 2학년 수업의 내용 일부인 경제윤리는 재미가 있다. 학생들도 제법 듣는다. 시험에 나오니까. 내용은 애덤 스미드를 거쳐 마르크스를 비판하고 케인즈 경제학까지 일람을 하는 수업이다. 분량은 3시간 정도이니 1주에 1시간으로 3주간 수업이다. 주간으로치면 제법 길다. 수업내용으로는 애덤 스미드의 국부론에서의 생산과 자유시장에서의 보이지 않는 손, 맑스의 자본론에서의 시대반항정신으로 정치적 일당독재와 경제적 비자유성, 케인즈의 국가개입의 정부지출과 민간의 유효수요창출의 수정자본주의론까지만 한다. 인간과 윤리적 측면에서 도덕과 철학을 함께 다루며 책 1권으로 3년을 배운다. 학생들은 책을 3년간 잘 보관한다. 노트용 필기는 책의 여백에 하게 한다. 교사도 편하고 학생도 편하다. 그도 매주 1번 씩 해당 교실별로 들어가지만 3년을 그렇게 대하니 학생들과도 정이 깊다. 그런데 기이한 내용은 바로 다음 내용으로 그 곳의 학교매점을 통하여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생생한 현상을 학생들과 실제로 증언으로 함께 느낄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회사 노무과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매점은 염가로 제공합니다. 학생들은 용돈을 아낄 수가 있습니다." 그는 흡족한 웃음을 띠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도 경험도 없고 철이 없어서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다소 건방진 놈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내보다는 연배가 10년 정도 높아 보였기 때문에 그러러니 했다. 회사를 위하여 그렇게 말한 그 노무과장은 몇 년 후 정리해고를 당하여 회사를 떠났다. 첫 인상이 별로라서 아쉬운 느낌이 안 들었다. 부산대 영문과 출신으로 ROTC 장교 출신이란다. 그것도 자기 입으로 말이다.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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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에 학생들은 와~ 웃었다. 그들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용감한 그 터미네이터 숙녀님은 회사의 매점으로 원위치했단다. 그 뒤 나는 자유경쟁과 자본주의의 신봉자가 되었다. 자유경쟁만이 늙은이를 마지막까지 부릴 수가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에는 사적인 이윤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미 경제가 아닌 것이다. 젊고 용감한 카리스마 넘치는 터미네이터 숙녀님도 그냥 내용연수가 다 할때까지 용도폐기를 하릴 없이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다시 말하면 철저한 자연경쟁의 이기적 자본주의야말로 우리 인간을 가장 행복하게 해주고, 남녀노소를 움직일 수만 있다면 모두 노동의 환희로 안내하거나 내 몰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하여 환희와 흥분으로 가득차서 말이다. 퇴근시각을 기다리는 불만에 가득한 힘이 넘치는 젊은 노동자보다 힘없고 병약한 늙인이이지만 환희에 차서 눈이 불을 켜고 자신의 소득을 위하여 밤 늦게까지 일을 하는 자 중에 누가 더 행복한가? 이 경우 자신은 물론 이웃과 사회에 누가 더 이익을 가져다 주는가? 똑같은 착한 일을 하더라도 전자는 자기 희생적 손실을 감수해야 하지만 후자는 자신의 행복적 쾌락만 있을 뿐이다.
그 학생은 그에게 말했다. '이곳은 나에게 천국입니다. 집에 가도 이 정도의 일은 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저에게 돈을 주지 않습니다. 농사를 돕는데 그냥 해 줍니다. 몸만 골병듭니다. 이곳에는 돈도 주고 학교도 보내줍니다. 그리고 기숙사도 제공합니다. 저축도 할 수 있습니다. 아무런 보상 없는 집보다 이곳이 저에겐 오래 머물고 싶은 곳입니다.' 이론적 정립이 따로 필요 없는 내용이었다. 교사들은 물론이고 사장보다도 고정급료의 생산노동이 주는 자유의 성과에 대한 정확한 답변이었다. 간단하지만 모든 것을 다 표현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그 학생이 경제학자는 아니었다. 그냥 느낀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도덕교사를 도덕교사로 더 확신이 서게 해 줄 수 있는 살아 있는 답변이었다. 이는 전장터에서의 유탄과 같은 것이다. 철모를 울리고 지나가는 총탄의 충격음이다.
10-1.
그래도 우수한 재벌총수.
그는 어느 면에서는 아주 훌륭한 성직자 이상이시다.
11.
- 국민윤리 교과서 중의 살아 있는 자유주의의 핵심 : 칸트 정언명법
- 윤리교사
- 도덕교사
이기적 유전자 속에서의 자기 선택에 의한 늑대와 맹견, 치열한 싸움 속에서의 자기 정체성 확립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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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늑대는 우~하고 울부짖는다. 하지만 맹견을 멍멍하고 짖는다. 다 자기가 선택한 것이다.
도덕교사로서 수업을 하다보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가 어떤 모양을 갖출 때 가치의 단위명제가 종종 된다. 하지만 어떤 것이 가치가 되어 단위명제가 될 때 악의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자랑스러운 자유는 바로 상대방을 차별하고, 평등은 상대방을 무시하고, 정의는 상대방을 공격하고, 복지는 남의 소득을 약탈하려고 군사를 모으는 것이다. 카라비언 해적들이 흑인 백인 할 것 없이 해적으로 참여한 모든 이들이 아주 공평하게 재물을 나누기 위하여 남아메리카에서 약탈하여 대서양을 평화롭게 횡단하는 스페인의 무장 무역선을 공격하여 재화를 가질려고 하는 것과 진배 없다. 교과서대로라면 카라비언 해적들은 하나님께 축배의 기도를 올릴 자격이 된다. 우리는 아주 공정하게 이 재물을 나눈다. 그 날 선장은 자기 노트에 이렇게 일기를 쓸 수 있다. '하나님, 뭐 잘못한 것 없죠?'라고 말할 수 있다. 또 하나 그가 양심의 가책을 전혀 받지 않고 쓸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어차피 그들도 약탈한 물건을 우리에게 약탈 당한 것입니다. 음수에 음수를 곱하면 양수가 되는 거 맞죠? ㅎㅎ'
맹자의 항산과 항심(인, 의 - 실제적 이로움 vs 백전노장 노련한 군주 양혜왕의 이(利))
경제에 대한 정치철학적 요소의 중요성 강조
춘추전국시대의 최고의 자유주의 사상인 공자와 맹자, 순자의 사상, 백성의 자유로움을 갈구하는 자본주의적 휴머니즘
'인'이야말로 사상의 시장에서의 최고의 상품으로 누구나 가지고 싶고 베풀어주고 싶어하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
'의'야말로 인에 대한 커다란 첫 번 째 지지대.
'순자의 예'야말로 '인'에 대한 구체적 산물로 해석이 가능한 두 번 째 지지대가 아니겠는가?
자유주의 경제학자가 왜 논리적으로도 그의 길이 아닌 제3의 길인 경제민주화를 해야 하는가?
그것은 거지들이 너무나 착하고 양심적이기 때문이다.
그럼 거지들은 왜 착하고 양심적인가?
그들은 왜 경제민주화를 통하여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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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고집의 제도이기 이전에 우리를 만드신 신의 계시를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와 민주를 따로 계산한다면 그는 자애스런 인간은 될지언정 거지보다 더한 도둑놈이 되고, 같이 본다면 자선을 베풀어도 그는 교만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것도 모르고 행동한다면은 그는 쪽박의 지름길로 달리는 지도자의 우를 범하고 말 것이다.
12. 징검다리로서의 제18대 서울시 교육감의 교육사상
이로 인한 교사의 비천성에 대한 정치판의 비열한 공격, 그 이름도 착한 K씨 18대 서울시 교육감
그의 701일 간의 행적, 하지만 어느 면에서는 매우 훌륭한 징검다리.
그의 지론 중의 하나 '공교육의 표준교체는 시대의 요구입니다. 행복한 교육혁명으로 21세기 민주사회의 공교육에 걸맞은 공교육의 새 표준을 만들어야 합니다'
교육에는 학제는 있어도 표준자체가 없다고 보는 나로서는 멀리서나마 위험한 순간이었다.
서울에서의 일인데 TV와 신문, 인터넷 등을 타고 동해안까지 그 여파가 내려왔다.
덕분에 나는 죽다가 살아 났다. 결국은 내가 조심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 교활한 학생들의 행태. 일부 학부모들의 편승.
살아 있는 비천성을 실감. 일부 인정을 해 주면서도 그의 교활성에 조심하는 것만이 상책이 그대로의 현실.
목적과 수단이 헷갈리는 2년 간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분명 도움은 되었다.
그의 대학 4학년 때 공산주의 이론 비판이라는 칼 맑스 자본론 비판강좌를 들어야 했다. 국민윤리 교직코스 마지막 필수강좌였다. 나름 이름난 명문대학이지만 그 강좌만큼은 대학의 격을 2류로 낮춘 3류 강사에 의한 강의였다. 그 강의실엔 철학도와 법학도, 교육학도가 수강하였다. 인원은 대략 20명 정도. 강의 내내 거의 질문이 없었다. 수업의 질이 떨어지고 강의를 빨리 마치는 등 어이가 없었다. 학생들은 수업의 질이 워낙 떨어지니 더 들을려고 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그 강사는 강사급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불쾌했다. 자기를 무슨 고등학교 사회교사라는 분인데 학교수업을 중단하고 온 헉헉거리는 모습이 영 불편했다. 당시 철학과 졸업반들은 철학연습1,2로 독일 실존철학과 헤겔의 논리학 등을 세미나로 수업 중이었다. 법학도들도 몇 번 질문하다가 어이가 없었는지 질문을 중단하였다. 교육학도들은 관심 자체가 없었다. 그 강사는 질문받을 만큼 실력이 전혀 안 되었다. 내용설명의 훈고학적 수준조차도 되질 못하였다. 상대방이 해당자격인으로서 자질이 그 격에 맞지 않으면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대학 4학년생 다웠다. 대학 4학년생!!! 이제 이 고지를 지나면 모조리 사회로 진출해야 한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내가 잘 해낼 수는 있을까 등등으로 머리가 아플때다. 재학 중 3년간의 군복무를 필한 그로서도 불필요한 질문을 할 이유가 하등 없었다.
12-1
학교 교사 조직도?
구미의 학교에서도 학교장과 교감들은 공문만 쳐다 볼까?
이해가 잘 안 된다.
학력신장 같은 문제는 교감에게 일임 후 성과 후 책임 묻기
학교재정을 꼭 교육청에게만 기대어야 할까?
아리달송?
엄격한 법집행.
한국 조직정치문화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기간제 교사에 대한 성과급문제, 적게 주거나 주지 않을려고 하는 간악한 술책들, 이는 노력한큼만큼 지불하는 노력의 댓가를 그대로 지급해야하는 자유주의에 반하는 행동으로 사회주의 조차에게도 미치지 못 하는 간교한 술수와 무리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이것이 한국의 정부 수준이다.
13. 너무나 짧았던 대영제국!
이제는 영국에 불과하지.
한국의 현재와 장래와 미래를 고민하는 도덕교사로서 2014.10.18(목) 스코틀랜드의 독립에 대한 스코틀랜드 주민투표를 관심 있게 보았다. 결과는 참여율 84.6%로 독립찬성이 44.7%, 독립반대가 55.3%로 부결되었다.
한국의 현재와 장래는 도덕과 경제가 중요한 문제가 되겠으나 미래는 영토문제가 아니겠는가? 말도 안되게 어지러운 지난 세기도 무척 많았는데 나는 독립이 되길 간절히 바랬다. 그 이유는 한국을 위함이다. 22세기의 한국말이다. 22세기 때는 유럽의 몇나라도 독립이 다 되고 러시아는 물론 특히 중국에서의 소국들도 독립이 무조건 되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22세기 인류들이 나아갈 길이다. 일본인들이 세운 만주국! 이는 복잡하고 어이가 없는 황당한 수준이하의 짓이지만 잘만 되었으면 상당한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엄청날 뻔 했다. 그러나 일본인도 만주인도 우리 한국인도 너무나 무지했다. 도무지 세계사 인식의 개념이 없는 것들이다. 오늘날 만주국이 있다면 내몽고국도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 중국내부에서도 러시아처럼 많은 자치국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것이다. 유럽처럼 소국들이 서로를 보호할 것이다.
영국?
그런데 영국인들의 도덕가치수준이 상상이외로 높다. 벌써 22세기 수준이다. 마음 속엔 아직도 언제나 대영제국이다. 하긴 맑스가 사는 것을 허용하고 대영제국 도서관에서 공산주의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도 간섭하지 아니한 나라니까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2014.10.18(목)의 스코틀랜드의 독립찬반주민투표에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공포와 희망에 휩싸여겠는가? 이 사건은 22세기가 이제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음을 소리로 느끼게하는 인류사적인 진동이었다. 그들로부터 멀리 극동에 사는 나는 또 느낀다. 문제는 이네들이 항상 역사를 앞서고 있다는 것이다.
맑스?
그는 간혹 맑스에 대한 이야기를 수업시간에 해야 할 때면 다음 스토리를 말미에 첨가한다. 이유는 길지 않다. 풀기 어려운 북한통일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자유주의에 대한 원초적인 유전자를 인지에 심기 위함이다. 이념의 이데올로기 주입교육이다. 물론 표시는 전혀 나지 않는다. 교사들도 생각없이 전달하는 경우도 많다. 자유주의 주입에 대한 방향과 전략을 위한 나의 기초 작업이다. 맑스는 공산주의 성자가 되었지만 그는 잠자는 하녀인 헬레네 렌헨 데무트를 겁탈하여 사생아를 낳게하고 그 사건을 묻는 기자에게 엥겔스의 짓이라고 뒤덮어 씌운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그의 부인 예니도 생존하였으며, 어이없게도 하녀에게 임금도 체불하였다. 그리고 그의 결정적 실수는 정치가 아니라 경제인데 개인적으로는 부유한 친구들이 도와주는 막대한 지원금 등을 근검절약하지 않고 바로바로 개인사비로 탕진했으며, 학문적으로는 사적재화마저 모두 공산의 공공재로 계산하여 모든 시민을 농노의 인민으로 속박하려고 한 것이다. 그는 자본가보다도 노동자계급을 멸시한 인물이다. 지원금의 개인적 탕비! 이것은 자기가 직접 번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네들이 직접 번돈이라면 그렇게 낭비할 수가 없다. 3개월씩이나 간 가족 여행은 불가능하다. 남작가문출신의 그의 부인도 마찬가지이다. 수입에 대한 저축개념은 물론이고 이 돈이 이떤 과정을 거쳐 생성되는지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는 부부이다. 자본의 무한한 생산성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다. 자본가는 그가 누구라도 노동자에게 임금이라도 주지만 그는 노동자들을 하류생산 단순노동계급이라고 멸시의 동정심만 주었다. 맑스는 처음부터 돈계산이 안 되는 인간이었다. 그는 손님이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여 직접 애가 타게 돈을 벌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는 도덕교사로서 더 말한다. 선동하는 자들은 그가 누구든 모조리 선동하는 만큼 선을 가장한 인간이다. 선동하는 자들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어떤 선동자도 예외가 없다. 물론 교과서에는 없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가 가르쳐 온 학생들은 관심이 없다. 그냥 그가 전달하는 지나가는 소리에 불과하다. 학생들은 그저 그냥 아직은 암기하는 머리로만 공부할 뿐이기 때문이다. 여학생도 남학생도 아직은 그냥 듣고만 있을 수 밖에 없다. 관심은 다른 데 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맑스를 정확히 전달해야하는 도덕교사로서 그는 그의 소임을 다 하고 있다. 고교에 불과하지만 도덕이나 윤리가 아니고 철학시간이라면 더 깊이 전달하고 질문을 받았을 것이다. 도덕과 철학은 수업시간에 분명 구분하는 다리가 있었다. 자신의 이론을 과학적이라고 믿고 그대로 제목에 형용사적 명제로 기계적으로 붙인 칼 맑스! 인류사에서 적시에 성공은 했으나 독단을 낳고 시민을 인민적 노예로 보는 성자의 우(愚)를 범하고 말았다. 그의 추종자들은 계급을 떠나 모조리 독재자들의 하수인인 부속품으로 전락하지 않았는가? 이에 대하여서는 동서와 남북, 남녀와 인종, 귀천과 빈부의 차이가 없다. 있다면 자유주의 정신의 핵라 볼 수 있는 그림자가 없는 햇불 자체만이 철학적으로 있을 뿐이다. 정치경제학에서 계급적 이론은 사상적으로 아름다워 보이지만 자기와 거리를 둘때만 아름답다. 그것은 우리의 목적과 일치하는 철학이 아니다. 시행착오적인 실험실의 화학적인 사상은 될 수 있을 것이다. 법률적 귀족이고 상대를 동정과 구원의 대상으로 보는 칼 맑스적인 우(愚)는 분명히 실험적이고 과정적이고 화학적이었다. 그것은 선동과 선전에 불과하다. 도덕이 아닌 철학교사는 교육으로 생산의 모험적인 실질 주체이며 참여하는 모든 종업원들에게 예외없이 이윤창출에 노력한 만큼 임금을 주며, 자기를 위한 이윤창출의 생산동료로 보는 자본가계급만이 이런 우(愚)를 뛰어 넘을 수 있음을 긴 독서와 철학적 토론으로 알게해야 한다. 그리고 나와 너의 자본에 대한 인정이야말로 우리 모두 자부심을 함께 느끼는 역사의 진보임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철학교사는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가? 인간이란 유전적 이기적 시기심으로 자기도 모르는 강자의 타인이 자기보다 잘나가는 동료를 공격해 주길 무척 바라는 무의식적 심성이 일부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결 노력을 철학교사는 조금이라도 교실수업에서 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문제는 맑스적인 공산주의는 문을 닫더라도 플라톤적 사회주의는 소크라테스의 이데아처럼 후학들을 계속 속일 것이다. 시장에서의 자유주의는 우리 모두를 풀어주는 소피스트적 자유를 선전하더라도 궤변론으로 취급받아야 할 운명이다. 기원전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의 정치대중들은 무식할 만큼 본능적으로 너무나 현명하여 소피스트와 프로타고라스를 열광적으로 받아 들었지만, 불행히도 20세기 이후의 대중들은 국민 공교육인 어중간한 의무교육 탓에 돈이 들지 않고 정의로워 보이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스승으로 여길 것이다. 문제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 있다. 철학의 핵심을 모르는 2류 교사들이 2류 시민을 양산한 것이다. 그것도 '정의'라는 힘으로 '자유'의 충실한 전달자인 프로타고라스와 그 후예들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어디에서? 교실강단에서 말이다.
요약하면 이러하다.
봉건영주의 예종의 상태에서 빠져 나온 농노들이 대서양을 누비는 해적의 도움을 받아 시민계급이 되어 자유와 선택을 향유하는 부르주아(유산계급)가 되었는데 이를 다시 농노인 프롤레타리아로 만들려고 하는 자가 칼 맑스라고 결론은 지운다.
14. 시베리아 바이칼 호!!!
그곳을 다녀온 한국인들이 하나 같이 하는 말이 있다. 그 곳에 한국의 철수와 영희들이 무수히 많다.
'철수와 영희라니?'
'가 보면 안다.'
그 곳은 바로 한국인의 땅이다. 백두산을 넘어 넘푸른 바이칼 호가 한국인의 심장이다. 다행이 가는 길이 육지로 연결이 되어있다. 바로 연해지구이다. 그들은 그들끼리 용감하게 싸운다고 그들 땅이 그 곳에 널리 펼쳐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너무나 다행이도 가는 길이 연결되어 있다.
15. 나이 40이 되어 들어간 한국교원대 대학원에서 간만에 학문적 자유를 느낄 수가 있었다. 하지만 결론은 결국 공부는 내가 하는 것이었다. 1994학년도 1학기에 입학을 하였으나, 교수들은 여전히 훈고학적 수준이었다. 자기들도 배우기에 급급하였다. 한 사회의 대표적 지성인으로서는 1970년대의 교수들 모양 아직도 현 한국사회문제에 대한 진단적 능력이 부족했다. 도무지 무엇을 연구하고 공부하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별로 더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는 나이 든 교사로서 이 과정만 통과하면 되는 것이다. 영국, 미국, 독일에서 유학한 국립대의 박사급 교수들이다. 하지만 세계화의 입문적 지적수준은 분명 아니었다. 도리어 이들도 여전히 한국적이구나하는데서 안도감과 동질성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전혀 배울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처음 접하는 것도 몇 개 있지만 도덕의 경우 몰라도 되는 것을 여전히 다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1970년대의 이야기를 아직도 하고 있다니 놀랄 따름이다. 하지만 교원대대학원을 졸업하고 긴 세월이 지난 어느날 그때의 교재를 들고 읽어 보았다. 집는 순간 책벌레를 느낀다. 20년 만이다. 소파에 기대어 천천히 읽어보다가 그는 놀랜다. 그도 이미 머리가 낡았는지 아니면 노인이 되어서 그런지 문장 하나하나가 물결처럼 아름답고 지적이다. 그때의 교수들이 공부한 냄새를 느낄 수가 있었다. 교수들이 이렇게나 훌륭하셨나??? 나름대로는 그래도 교수급이긴이구나.
소리 없이 읽어 본 대학원 도서실에서의 일급 전문서적. 끝 없이 밀쳐 오는 비애감.
어이없게도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나 헤겔의 변증법보다 어렵게 구성된 학슬논문들.
마치 신고전학파 경제서적 같다. 유럽 중세시대에 그 훌륭하시다는 가톨릭 성직자들이 성경을 쉬운 평민어로 번역하는 것을 거부한 탓에 하느님과 성직자들을 그토록 따르는 평민들은 라틴어를 알지 못하면 성경을 한 줄도 읽을 수가 없었다는 것처럼 타전문지식인조차도 수학과 통계학에 능숙하지 못하면 신고전학파 경제학 문헌은 한 줄도 독파할 수 없게끔 만든 장치 마냥 방어벽을 잘도 구비해 놓았다. 이러고도 그들은 인자한 모습으로 점찮게 말씀들을 하신다. 마치 어린 양들을 위하여 천국으로 향하는 진리 전도를 꼭 해야만 하는 사자(使者)들처럼 말이다. 도도한 영역보존이다. 마치 불교승려의 사리와 같다. 일반인이 만약 사리가 나온다면 글쎄 아마도 병든 사리라고 오만가지 구실을 다 갖다붙일 것이다.
16. 남자에게 여자가 혼자일 때는 그녀는 무조건 아름답다. 둘이 되면 그때부터 사정이 달라진다. 비교가 되고 선택을 해야하는 경우가 있다. 선택가능한 정치철학에서도 이와 같다. 무릇 좌익이든 우익이든 자신의 타고난 유전자에 따르면 된다. 어느 것을 선택했던 이념적 사상의 바다 속 깊이의 흐름에서 고통의 사유를 하고 방향을 정하면 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힘써 행하는 자는 남자이나 표면의 파도에서 그것을 낭만과 함께 즐기는 자는 여자들이다. 교무실에서의 여교사들은 출근 직후부터 퇴근시까지 끝없이 이야기를 한다. 유용하고 재밌지만 거의 대부분 안 들어도 다 아는 이야기이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신의 작품처럼 어쩔 수 없다. 고통의 사유자로서 일은 그대가 세우지만 운영과 결산은 타인들이 한다. 이것이 바로 정치철학자의 주된 길이다. 생산적인 삶 자체엔 철학이 필요없다. 그냥 노래 부르고 일만 하면 된다. 철학은 여유가 있는 어떤 작위적인 인간이 재미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질서라는 자유의 길을 남자들은 아주 어렵게 천천히 천천히 고생하면서 느끼지만 여자들은 이미 시작도 하기 전에 동물적 본능으로 즉시 알고 바로 행하는 것이다. 알았다고 아르키메스처럼 희열에 차서 나체로 온마을 뛰어 돌아다닐 때 이미 마을의 여자들은 시장에서 매매이상의 정보를 교환하면서 소통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경제학을 전혀 모르는 몽골족이 거대제국을 건설하여 실크로드를 타듯이 여자들은 이미 실크로드를 따라 가면서 온 세계의 동서남북으로 입으로 쫓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남자라는 건강한 조롱말을 부리면서 말이다. 여자들에게 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필요가 없다. 이미 본능적으로 다 알고 있다. 별 것도 아닌 것을 실컨 공부하고 몇 년 연구하여 '나는 드디어 알았다' 하면서 만족의 희열을 느낀다면 그는 분명 머리가 남자이며, 몽골의 여자 하전사보다도 경제적 말을 못타는 것이다.
1988년부터 98년의 10년 사이에 교직에 들어 온 교사들은 이상하게 군중 떼거리 문화가 있었고 야외회식 때 길거리 혁명가도 남녀 모두 잘 불렸다. 특이한 것은 상당수의 교사들이 증권자본주의에 매몰된 친구들이 많았다. 물론 주식투자는 거의 남교사들이 했다. 이네들은 자신의 봉급 상당액을 증권가를 통하여 일급자본가들에게 거의 공짜로 갖다 바쳤다. 교무실에 막 들어 온 인터넷 컴퓨터로 혈안이 되어 자신의 봉급을 증권가에 갖다 바르곤 하였다. 여교사들은 그냥 행복하게 살게끔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는지 그런 것까지는 가지 않았다. 남자는 규제중심의 통제사회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여자는 자유중심의 개인자본주의적 성향이 강해서 그런 것이다.
백가쟁명의 춘추전국시대적인 각종 삶의 이론도 결국은 소비자 선택에 의하여 결정난다. 노력해도 진화하지 못하면 자연스레 소리 없이 도태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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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대영제국의 예비장교들을 수 없이 양산한 그에게 어느 누구도 학자로서 대하는 장면은 없다. 시간적 여유를 틈 타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사를 물어오는 손님도 제법 없지는 않지만, 그냥 나이 많고 경험 많고 전시에 운 좋아 살아 남은 노객일 따름이다. 그것이 오늘 나의 가슴에 박히는 또 하나의 소리이다. 탁~, 카르르~~~.
어쩌면 그는 예비장교들을 수 없이 양산한 부사관에 불과한 지도 모른다. 본인은 사관학교의 교관이나 교장라고 생각하더라도 그는 훈련소의 조교마냥 얼마나 많은 시범을 하이톤의 거친 목소리와 손과 발을 움직여 몸으로 직접 보여 왔던가. 아니지, 보여야먄 했던가.
하지만 그는 또 하나 느끼고 있다. 어쩌면 이 싸가지 없는 짓들이 다행인 지도 모른다. 거리에 멋을 낸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이 수도 없이 많으면 많을 수록 그 사회는 건강하고 그만큼 더 건전하니까말이다. 교직의 길이 사도가 될 적에 존귀함에 비천성이 있고 비천함에 영웅을 뛰어넘는 성웅적 행동이 간간이 도출되고 있다. 황당하고 짜증나는 일도 물론 그만큼 따라온다. 하지만 꼭 알아야 되는 것이 하나 있다. 그를 소리 없는 영웅으로 만드는 것은 국가가 제정한 공무원연금이다. 국민이 아니다. 국민들은 공무원연금을 시샘한다. 왜냐면 무의식적으로 비천한 것들이라고 멸시하기 때문이다. 이 바쁜 세상에 겨우 공무원이나 한 것들이 말이다. 그것도 공부께나 한다고 하는 자들이 말이야. 항상 음이 있으면 양도 있다. 교직도 예외가 아니듯이 말이다.
18. 문제는 그가 좌파를 하든 우파를 하든 자기의 몸이 그것을 수용해야 한다. 좌파적 유전자를 타고난 이는 그가 부호의 자식이더라도 엥겔스나 체 게바라처럼 좌파에 마음이 더 가고, 우파의 유전자를 타고난 이는 궁핍한 자의 자식으로 성장을 했더라도 칸트나 카네기처럼 자유를 따를 것이다. 이는 이기적 유전자에 의하여 피하기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참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철학은 싫던 좋던 좌파와 우파의 싸움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알고자 한다. 협동농장은 표면적으로는 소비자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생산자를 위한 것이고, 자본공장은 표면적으로는 자본가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소비자를 위한 것이다. 협동농장의 조직원은 반드시 그곳의 생산물을 우선적으로 소비해야 하지만, 자본시장에서의 소비자는 자유시장에서 자기 맘대로 물건을 고를 수 있다. 전자는 조금만 일탈하여도 감독자에 의하여 배반자의 누명을 쓸 수 있지만, 후자는 어디에가나 상인으로부터 친절한 안내를 받을 것이다. 전자는 누구나 알 수 있게 명단 정리된 구성원의 생산자들로 일목요연하게 리스트로 정리되어 있다가 다시금 소비자들로도 둔갑되어, 모든 권한을 위임받은 감독자가 리스트로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지만, 후자는 자유만끽의 익명의 무한대중사회에서 자기 회사의 물건을 고르지 않아도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 감독자도 없지만 설사 있다손치다라도 그도 다른 곳에서 자기가 필요한 더 좋은 물건들을 종종 자주 구매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근본원인은 협동농장이 망하면 다 망하지만, 자본공장은 지금 당장 망해도 아무도 다치지 않은 데 그 매력이 있다. 심지어 자본주도 망하지 않는다. 그는 그 공장이외의 별도의 재산이 사유재산이란 명목으로 국가가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수양만 잘 되어 있으면 그의 공장이 하루에 100개가 망해도 잠만 잘 잘 것이다. 하지만 협동농장은 그렇지 않다. 망하는 경우 감독자는 순교를 하는 것이 아니고 당하고, 생산소비자들은 그 공장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여 분리배분 후 장비매각에 들어 갈 것이다. 그리고는 자본공장에 이력서를 들고 갈 것이다. 누구보다도 일을 잘하는 생산을 직접 해본 현장의 달인이라면서 말이다.
그는 이렇게 어쩌면 말도 안 되는 결론을 연속적으로 내리고 소파에 기대어 조용히 잠들고 있었다. 그가 내렸다고 주장하는 엄청난 결론이란 것도 효용적으로 따지고 보면 노동자의 삽질 하나보다 못한 것이다. 물론 그도 충분히 알고 잠들고 있다. 이미 그도 수 많은 삽질을 했으므로이다. 또 할 것이다. 살아 있는 한 자신의 유전자의 명령과 도움에 의하여. 그는 또 하나의 꿈을 동시에 꾸고 있다. 사실 그도 하나의 큰 유전자이다. 노동자도 사실은 자본가이다. 그가 모를 따름이다. 이 사회의 흐름을 소비자들이 정한다는 것을, 소비자 자신들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교사는 불쾌하더라도 화를 마구 내어서는 안 된다. 학생을 사랑한답시고 참으면서 알맞게 그 선을 지켜야 한다. 마치 양의 탈을 쓴 자본가처럼 미소를 지으면서, 법률적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자면서도 느낀다. 교사는 교수와 다르다. 교수는 상위 5%를 위해 존재하지만, 교사는 상하위 100%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여기에 존귀와 비천이 전화벨처럼 구분 없이 끝없이 울린다. 소리가 그만 울릴때까지. 그리고 또 하나 더 느낀다. 학생들은 무궁무진하다. 무궁무진하게 뻗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학생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무궁무진하다. 끝없이 나아갈 수 있다. 문제는 태평양이 아무리 넓어도 지금 당장 그가 처한 곳이 너무나 급하고 정신 없이 빠를뿐이다. 그래서 그는 자유주의를 믿는다. 신의 가슴으로, 자유만이 모든 것을 포옹할 수 있다. 비천(卑賤)까지도 가슴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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