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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에 있는 양도소득세 부분을 다시 올렸습니다.
6. 비트코인, 양도소득, 양도소득세의 허구(허구가격은 양도세로 해결하지 못한다)
(비트코인 양도차액은 토지와 주식의 양도차액과 함께 발생도 부당하고, 세금부과도 부당하다)
(비트코인과 같은 자본자산, 양도차액은 영원히 소득물이 될 수가 없고, 그게 소득물로 간주를 하더라도 그 차액의 본질은 투자 원금에 대한 정상이자(소유비용=원금이자)에 속한다. 그래서 이에 매기는 세금은 자본과세와 불공평과세(이자초과세), 소급과세가 되어 계속하여 부작용을 초래한다).
비트코인의 문제를 세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 정부가 비트코인 문제를 양도소득세로 해결하려는 것은 가상물, 가상화폐를 인정하는 것으로 경제적 정책이 될 수가 없고, 허구가격을 인정하는 것으로 윤리적으로도 부당한다. 정부가 도박이나 마약거래와 다름이 없는 허구가격의 인정과 참여는 사랍의 이성을 마비시켜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조치이기 때문에 헌법의 기본 질서를 어기는 행위라고도 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허구가격물이란 거래에서 가격이나 화폐는 있어도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실물은 영원히 아무 것도 없는 대상물을 말하였다. 그런데 필자는 이런 것을 구입하거나 소유한 사람, 곧 특정 투자가나 개인에게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다. 토지 소유자, 주식을 상장시킨 기업가, 주식 투자자, 비트코인 구입자들을 개인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다(필자도 형편이 되면 토지나 주식을 살 수도 있다.)
토지에서 소유가격은 전세가격보다 항상 크다(만약 전세가격이 소유가격보다 크면 전세시장은 성립하지 않음). 이 것은 소유가격이 사용가격보다 항상 크다는 뜻이다. 그리고 성장주식의 소유가격에 대한 이자도 그 기업의 배당(가능)이익보다 항상 크다. 이 말은 이론가격으로 보면 토지 소유자나 주식 투자자는 투자 비용을 보상받지 못하고 항상 적자만 보고 있다. 그래서 이 적자는 토지나 주식을 팔 때 나오는 매매차액으로 비로소 보상(본전)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토지, 주식, 비트코인의 투자에서 원금과 수익의 상관관계를 등식으로 나타내면
원금투자비용 = 사용수익 + 원금 성장액
원금투자비용 = 사용수익(소득물) + 원금 성장액(허구가격물)
원금투자비용 = 예금이자 = 사용수익(소득물) + 원금 성장액(허구가격물)
[원금투자비용 > 사용수익] => 이것은 영구적 현상(이 투자의 적자는 팔 때 매매차액에서 간접 보상)
그러므로 매매차액은 소득물도 아니기에 세금은 부당한 자본과세가 되며 차액의 크기도 정상이자에 해당할 뿐 이자초과액이 아니므로 중과세 정책은 이자소득자와 비교해도 불공평과세가 된다.
그럼에도 토지, 주식, 비트코인의 소유나 투자에서 큰 돈을 버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는 의문이 바로 들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허구가격이기 때문에 그렇게 시장 대박이 생기는 것 뿐이다. 그 이유는 허구가격을 시장에 판매하는 자는 대박 수익을 얻을 수 있으나 이를 구매하는 일반 소유자는 (이론적으로 보아서) 거의 대부분이 계속하여 소유로 인한 손해만 보고 있다.
허구가격의 이점을 누릴 수 있는 자는 천연토지를 처음으로 점유하고 판매를 한 자, 토지 개발자, 용도 변경자(임야를 대지로) 등, 성장주식을 처음 상장 하는 기업 창설자, 주기적 가격 상승기나 급등기에 땅과 주식을 발 빠르게 팔고 시장을 탈퇴 하는 자 등이 허구가격의 이점, 곧 대박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물론 비트코인도 초기 창설자, 독점적 소유자, 열풍이 일기 전에 구입하여 열품이 꺼지기 전에 팔고 시장을 더나는 자가 이 혜택을 누린다. 비트코인이 지금은 초기 도입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대박 기회를 잡을 수 있기 열풍이 광풍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토지 양도차액, 주식 매매차액, 비트코인 양도차액은 영원히 소득이 아니다. 그래서 세금을 낼 가치물이 없다. 아니 세금을 내어도 그 양도차액은 평소 소유에서 돈 이자도 안되는 적자를 늘 보고 있다가 매매에서 비로소 보상을 받는 은행의 예금이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그 양도차액에 대하여 고율(중과세)의 세금을 거두는 것은 소득애 대한 과세가 아니라 부당한 자본과세이며, 불공평한 이자과세가 된다. 더구나 정상시장에서 토지 소유에서 나오는 양도차액은 소유의 기간비용(기간이자)에 대한 누적적 적자분에 대한 보상액이다. 그럼에도 양도소득에 대한 소유기간과 이에 따른 이자비용을 감안하지 않고, 차액의 크기만 감안한 무차별적 누진세율 적용과 다주택 중과세는 소급과세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양도차애에 대한 자본과 소득, 가치의 실현과 미실현도 개념적으로 구분하지 못한데서 투기만을 막기 위해 무식하게 매겨놓은 세금제도 실상을 바로 알고나면 매우 부당한 과세라서 위헌의 여지도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같은 매매차액 같아 보여도 실물 상품의 매매차액은 그 차액에 실물과 소득물이 들어있다. 그러나 토지, 주식, 비트코인의 매매차액에는 실물이나 소득물이 전혀 들어 있지 않다. 그래서 실물 매매차액은 부가가치이며, 국민소득(GNP, NNP)이다. 그러나 토지, 주식, 비트코인의 매매차액은 영원히 부가가치나 국민소득이 될 수가 없다. 지금 이 개념이 이해가 되어야만 실물가치와 허구가격을 식별할 수가 있고 세금도 바로 매길 수가 있다.
이와 같이 정부가 하려는 비트코인 양도세 정책은 토지 양도소득세 정책처럼 허구가격을 모르는 무지가 저지르는 또 하나의 큰 실책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지금 하려는 세금 정책은 세금에 대한 명칭만이라도 "양도소득세"라고 하지 말고, 사람들이 실물과 허구물을 구별할 수 있게 "양도차액세"라고 해야 한다. 아니면 1960년대 양도소득세를 처음 도입할 때와 같이 "투기억제세"라고 해야 한다.
7. 비트코인과 인간 이성
왜 이성을 가진 인간이 이런 거대한 사기술(실물가치와 허구가격)을 식별도 못하고, 그 피해를 장기간 당하고만 살아야 하는지? 해방 후 지금까지 어림잡아 물가가 60만배 올랐다고 한다. 그동안 화폐개혁도 두번에 걸쳐 화폐의 숫자를 1/1,000로 낮추었다. 그럼에도 지금의 화폐 숫자는 컴퓨터가 아니면 제대로 계산도 못할만큼 커져 있다. 가치가 가치가 아니라 종이 쪽지가 되어 버리니 가치를 표시하는 숫자에까지 만성이 되어서 이제는 1조원이라는 숫자도 얼핏 보면 9,900억원보다 작은 수 같고, 단순해 보인다. 그래서 이제는 경제적 가치도 "경"이라는 화폐 단위가 나와야 통계나 기록, 결제가 가능한 시대로 곧 접어들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유대교는 종교적으로 머리 카락 하나까지 수를 셀만큼 율법 준수를 강조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ㄱ. 농경시대에 성경이 가르쳐 준 시한부 가격제도를 버리고, 바알 우상이 유혹하는 영구가격제를 택하여 희년법을 파기g하고 허구가격이 발생하게 했다.
(사사시대는 룻과 보아스처럼 희년법을 지키는 자도 있지만, 왕정시대에 왕들이 희년 토지법을 문란케 하고(삼상 8:14,15), 특히 바알 숭배자 아합왕과 이세벨에 의해 완전히 파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제사장들도 이를 묵인하거나 동조함)
ㄴ. 화폐경제가 커지니 이제는 성전에서 세겔화를 상품처럼 팔아먹으며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ㄷ. 그리고 중세에는 이자금지법을 피한 환차익 금융기법의 개발(채굴)로 유럽의 부를 흡입하였으며,
ㄹ. 산업혁명으로 기업활동이 커지자 이를 주식으로 만들어 팔아먹으며 세계 대공황을 유발하였다.
ㅁ. 1970년도 이후에는 선물 사기상품을 만들어 고정환율제도를 무너뜨려 버렸으며
(한국은 이 선물 사기에 속고, 코스닥을 비롯한 벤처기업의 허구가격 열풍으로 치욕적인 IMF 경제위를 당했다)
ㅂ. 2008년 경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폭풍으로 미국과 세계 경제가 또 한번 도산의 위기를 초래하였다.
ㅅ. 그런데 이제는 무엇일까 했더니 드디어 비트코인이라는 가상물이 화폐라는 가면을 덮어쓰고 괴물처럼 금융시장에 나타났다.
이러한 인류의 지난 역사와 반복적 과오를 되씹어 볼 때
ㅇ. 비트코인을 그대로 두면 이 놈은 앞으로 중앙통제기능을 가진 기존의 화폐제도까지 완전히 무너뜨려 버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 경우 앞의 예와 같이 세계 경제는 또 다시 커다란 소용돌이를 내게 되고...).
ㅈ. 아니면 비트코인이 소멸되지 않고 세금 내는 정도로 연착륙에 성공하면 그 이후로는 인간의 이성적 판단을 더 강하게 마비시키면서 세계의 부를 이것으로 흡입하며 숫자(잎플레이션)를 크게 키워나갈 것이다.
(세계 대공황의 원인자가 주식이었음에도 살아 남았고, 선물이라는 파생시장끼지 만들어 가며 건재하듯이)
가정마다 국가마다 눈덩이처럼 커지는 가계부채, 국가부채의 본질이 무엇인지?
미국은 이자도 없는 무이자 채권인데도 발행만 하면 세계가 종이 쪽지에 불과한 그것을 왜 계속하여 사 주고 있는지? 컴퓨터가 제공하는 외환 결제 시스템을 통하여 밤과 낮도 없이 화폐(외환)를 천문학적 숫자로 거래를 하고 있는지? 무역 결제나 실물거래로 필요한 화폐 교환은 10%도 안되는데...도대체 90%의 외환 거래는 무엇을 위한 교환이고 거래인가 말이다.
주식시장은 왜 가격정지제도(상한가, 하한가) 거래 정지제도(서킷 브레이크)라는 빨간불 통제 시스템을 두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주식이 실물이 없는 허구가격이기 때문이다. 경제활동이나 실물거래는 실물의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자동으로 이런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제동장치를 걸어둘 필요가 없다. 그러나 주식은 허구가격이기 때문에 이러한 자가통제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식시장은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가격정지, 거래정지라는 빨간불을 켜 주어야 비로소 시장 참여자가 가격 위험을 감지할 수 있다.
허구가격은 실물가격의 변동률(이자율, 경제성장률, 정책 변수 등)보다 항상 더 빨리, 더 크게, 그리고 스스로(별개) 움직이기는 기본 속성 때문에 이것을 시장에 남겨두는 한 사회는 어떤 이론이나 처방책도 이 폐단을 감당하지 못한다. 발생한 허구가격의 질병은 처방의 강도에 따라 급성과 만성, 약성과 잠복성 등으로 그 증상만 다르게 나타날 뿐이다. 영국의 영란은행이 금융 투자가 조지 소로스 한 사람을 이기지 못한 이유도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럼에도 경제학자들, 그리고 주식 투자 전문가들은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기능이 가장 잘 작동하는 곳이 주식시장이라고 상황을 역으로 알고 있고, 그렇게 말하며 아주 세련된 전문 용어와 유식한 식견으로 주식투자를 권하고 있다. 그러면 주식시장의 개미들은 이것이 전문가의 견해이므로 그대로 믿으며, 주식을 모르는 백성들도 그게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렇게라고 해야 시장경제가 돌아가는 것으로 믿고 참을 수밖에 없다. 누가 주식에 대한 반론을 제시해도 허구가격의 본질을 잘 모르니 빈약한 논리에 정서적 표출만 하고 그친다. 이처럼 우리는 주식의 허구가격에 대해서는 이미 이성이 마비 상태에 깊이 빠져 있다. 이성을 잃으면 마약도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양약으로만 보인다.
앞으로 비트코인은 지금의 주식보다 더 큰 폭으로 인간 이성을 마비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 대가는 주기적 경제불황,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그리고 세금부담 증액 뿐이며, 비트코인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일반 사람들이 이 값을 장바구니에 모두 물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성경을 읽은 사람들은 이러한 허구가격과 부채가 천문학적으로 커지고만 있는데
예수님이 가르쳐 준 주기도문 "모든 빚을 사하여 주듯이 죄들도 사하여 주옵소서(눅 11:4)"의 뜻을 알고 기도를 하고 있는지? 성경에서 빚(자유의 제약물)과 세금(가이사의 것)이 사라져야 이루어질 수 있는 희년(레 25장)과 열납의 해(눅 4:18,19)를 문자만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성경 읽는 사람들이 컴퓨터가 666 마귀 숫자라고 말하고 다니다가 사람들에게 창피만 당하고 지금은 그 컴퓨터를 이용하는 사람의 이성은 물론, 하나님의 영성까지 마비시키고 있는 비트코인의 실체는 거의 모르며, 말도 못하고 있다. 영혼만이 구원의 실체로, 神(귀신 신)의 소리만 듣는 무당처럼 이 세상은 세속적이므로 저 세상만 보고 살라면서 종교만 전하고 가르치는 자들, 하나님 나라의 필수 요건인 창조질서와 실물계, 그리고 구약이 강조하는 육의 구원은 쓰레기 같아 보여서 피해 가고 싶은 대다수 종교인들...계시록 18장이 말하는 장사꾼들의 영혼거래, 그리고 하룻만에 사라져 버릴 값진 상품과 거대한 치부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목탁을 두드리며 가부좌를 틀고서 염불을, 그리고 3보 1배로 순례자의 삶을, 돌상과 목상 앞에서 현세의 복을 찾고 빌고 있는 또 한 부류의 사람들... 긴긴 역사 속에 본질을 캐기 위해 땀 흘리는 철학들, 인간의 근원적 행복을 끈질기게 추구하는 사상가들...
모두가 종이(화폐와 증권) 쪽지 하나에 기록된 숫자에 대해서는 본질은커녕, 그 가치의 존재 유무도 구분하지 못하면서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고고한 가치를 추구하며, 열심을 내거나 고행을 하며 살고 있다.
번개같이 빠른 컴퓨터 결제 수단을 통하여 하루에도 천문학적 숫자를 다루는 외환 거래는 과연 무엇을 팔고 사고 있다는 말인가? 아무 것도 아닌 허상이기 때문에 그 거래는 70억의 인류에게 1원 하나 줄게 없다. 그럼에도 굶주려서 아사 직전에 있는 생명들의 장바구니에까지 인플레이션을 집어넣어 주고는 가치를 도둑질 하고 있는 셈인데도 그 허구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노동가치만 알고, 자본가치는 감가상각비만 인정을 하고는 모든 가치를 노동가치로만 생각했던 유물론자(마르크스나 공산주의자)들의 잘못 때문일까? 아니면 토지와 자본을 식별하지 못하고 강남 부동산시장에서 집값과 땅값을 식별하지도 못하는 자본주의의 맹신들 때문일까?
8. 비트코인(블록체인)의 기술 가치와 천연 토지의 기술 가치
블록체인의 이점이 화폐시장의 혁명을 가져오더라도 하나님의 창조물이자 자연물인 토지에 비하면 그 경제적 기능은 천만분의 일도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블록체인 기술에는 그 기능이 아무리 빼어나다고 하더라도 극히 한정된 기능만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물이자 자연물인 토지는 자전과 공전, 물과 햇볕 등 어느 하나의 기능만 하더라도 블록체인보다는 천배, 만배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경제 가치물이다. 그리고 블록체인의 기능은 아무리 우수해도 그 놈이 생명을 내거나 생명을 먹여 살리지는 못하지만, 토지는 다양한 양식과 가치를 내어서 생명을 내고 있고, 그 생명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블록체인이 무슨 큰 기적을 가져다 줄 것으로 너무 과신하지 말고, 생명을 내고 살리며 이 보다 천배, 만배 더 높은 기능을 가지고도 말도 없이 생산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토지에서 더 큰 기적을 찾고 만들어 보기 바란다. 땅은 우리가 그것을 팔고 사기 때문에 천문학적인 크기의 부채를 만들어 우리에게 안겨주고 거기에 인플레이션과 세금까지 덧붙여 벌금을 매기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성만 바로 가지고 있고, 성경의 토지 경제법을 제대로 알고 나면, 그래서 창조질서대 토지가치를 바로 이용할 줄만 알면, 지금까지 사람의 잘못으로 발생시켜 놓은 천문학적 숫자의 부채와 인플레이션, 그리고 세금까지도 토지가치가 모두 대신하여 줄 것이다. 이게 토지가치가 가진 창조원리이자, 자유시장 경제원리이며, 그리고 희년법 토지 무르기가 가르쳐 주는 십자가의 구원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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