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철학 공부라 생각하고, 지난번에 예고했던 칭찬과 비난, 상과 벌에 관한 몬테소리 선생님의 위대한 발견과 위대한 사상가로서의 선생님의 견해를 잠시 얘기해볼게요. 첫 게시물에서 고백한 것처럼, 허름한 철공소 2층에서 보육원을 시작한 청년기부터 할배가 된 지금까지 몬테소리 교육사상에 깊이 빠져 산 저는,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상을 받아오거나 벌을 받기라도 하면, 꼭 제가 선생님의 아바타처럼 생각하곤 했습니다. 존경과 흠모를 초월한 투사라고나 할까요...^^ 그럼 차근차근 바위같이, 또 젤리같이^^ 상과 벌 이야기를 시작해볼게요.
9~12세 숲과 계곡 수업. 가만히 자연에 동화되는 일은 성장기의 일탈을 자연스럽게 순치시킨다.
이태리 최초의 여성 의사이기도 했던 선생님은 로마국립대학 정신과 조교수로 있을 때의 장애아동 연구와 실천으로 일생의 전환점을 맞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주는 밥과 빵만 받아먹으며 야만적인 환경에 짐승처럼 수용되어 있던 정신지체(지적장애) 아동들을 향한 선생님의 문제 인식과 인간성 뿜뿜의 실천에서 몬테소리교육은 출발합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만난 현장 교육자들 중 일부 '박력 넘치는' 사람들은 몬테소리교육을 장애아동을 위한 교육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태리 최고의 국립대학, 그 어느 공간에 갇혀 짐승처럼 대우받으며 수용되어 있던 정신지체아동들은 선생님의 끈질긴 연구와 실천으로, 빠른 기간 안에 정상화(Normalization)되는 기적을 보였고, 국가검정시험에서 매우 우수한 성적을 냅니다. '정상 아동'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었으니 가히 '기적'이라 부를 만했죠. 그러나 그 짧은 연구 시기의 성과만 보고 선생님의 교육을 장애아동을 위한 교육이라고 하면 몬테소리교육의 진실에 접근하지 못합니다. 그 시기를 거쳐, 이후 선생님의 일생을 바친 연구와 실천, 특히 인간성 회복을 향한 몬테소리 방법론, 세계평화로 가는 교육을 이야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유아기에 마을 입구 벚나무 밑에서 좀 뛰어놀았다 해서, 누군가 유준이 할배는 벚나무 밑 양아치였다고 말하면 제가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개그임^^)
Maria Montessori (1870~1952)
아무튼, 선생님의 연구가 깊어지고 아이들에게 생각하고 조작할 도구가 제공되자 가히 '기적'이라고 할 만한 눈부신 변화가 아이들에게서 나타났습니다. 이후 선생님은 로마국립대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철학, 심리학, 지구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되기도 했고, 동시에 로마 뒷골목의 빈민가, 부동산협회 소유의 낡은 건물을 얻어 문을 연 '어린이집'(Casa Dei Bambini)을 통해 선생님의 교육법은 점점 완성되었다고 보면 정확하겠습니다.
산 로렌쪼의 어린이집에서 성취한 '교육의 기적'은, 프랑스의 Itard와 Seguin(두 분 다 의사임)이 주장했던 아동의 자주성에 기초한 감각적인 교육방법을 더욱더 세밀하게 다듬고 외연을 확장시켜 '몬테소리 방법(Montessori Method)'이란 책과 함께 국내외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의 왕성한 강연 활동과 국내외 교육 순례자들의 어린이집 방문이 이어지고, 교원양성 프로그램과 협회도 여러 곳에 만들어졌습니다.
6세 이상 Variation. 기하학 입체 교구의 포장(종류가 다른 색종이 몇 종과 잘라 쓰는 스카치테이프 준비)
자, 이제 본론인 칭찬과 비난, 상과 벌에 대해 이야기해볼게요.
선생님의 교육법은 당시 빈곤과 전쟁에 시달리며 생존을 위한 노동시장에까지 내몰렸던 제 3세계 어린이를 향한 '해방의 메시지'이기도 했으므로, 선생님의 저술활동과 강연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교육을 통한 세계평화를 강도 높게 설파하면서, 세 차례나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유엔 연설문과 해석으로 이루어진 미니북 '새로운 세상을 향한 교육(The education for a new world'에서, 선생님은 빈곤의 문제, 보수적인 사회의 지배적 권력과 문화, 아이들에게 공공연하게 가해지는 사회적 억압과 폭력, 정치 권력의 부패와 전쟁의 폐해를 설파합니다. 특히 인간의 역사를 전쟁의 역사였다고 주장하며 책의 시작부터 전쟁의 참상을 낱낱이 얘기하며, 인간의 왜곡된 지배욕으로 생존의 시장으로 내몰린 20세기 초중반의 부녀 노동과 아동노동을 강도높게 비판하고 분노합니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지배자들의 모든 상과 벌은 '인간의 존엄성을 상과 벌이라는 기름칠이 필요한 기계의 부속품'으로 인식하게 한다고 비판하며, 선생님은 “인류를 위해 가장 위대한 공헌을 한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노벨평화상 후보가 된 사실조차 신랄하게 비판하며 거부합니다. 이 대목은 선생님의 '교육을 통한 가정과 사회의 평화'가 얼마나 확고한 교육사상인지 잘 알게 합니다. 선생님 존경합니다...^^
참고로, 월남전 당시 미 외무부장관 헨리 키신저를 상대로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휴전을 이끌어낸 베트남 정치인 레둑토는 베트남에 진정한 평화가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벨평화상을 거부했고, 제가 태어난 해인 1957년 알베르 까뮈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노골적으로 질투하고 비판했던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작가였던 장 폴 사르트르도 1964년의 노벨문학상을 거부했습니다. 오, 대단한 가오들...^^
9~12세 세계의 지형과 문화유산. 이런 작업에의 집중은 아이의 지성을 견고하게 구축한다.
여기서 잠깐 상과 관련한 막둥이 이야기 하나 할게요. 어린이집에서 살다시피 하며 영유아기 몬테소리교육의 세례를 흠뻑 받은 막둥이가 요 앞의 게시물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엄마가 쓰러진 후 부모 부재의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홀로 학교 다니며 초중등 과정 모두 학생회장이었다는 얘길 했었습니다. 나중에 선거에 나간 이유를 물었을 때 "그것 말고는 학교에서 할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라고 하더라고요. 징한 놈...♡
그러다 보니 상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교육부장관상, 무슨 대학 총장상, 교육감상, 무슨 봉사상, 구청장상, 시장상, 경찰청장상(경찰청장 그는 지금 교도소에~ㅠ), 학교장상 할 것 없이... 그런데 막둥이는 부상으로 장학금이란 명목의 상금이나 상품을 받으면, 시큰둥한 표정으로 보고하고는 구석에 처박아두더라고요. 저 역시 특별한 반응 없이 "그랬구나." 하곤 끝이었어요.
우리 가족은 상장을 거의 스노우화이트지 정도의 종이로만 취급^^했는데 앨범 부피보다 두껍게 쌓인 그 종이들은 어느 날 막둥이랑 일일이 찢어 폐지로 버렸답니다. 성장기 내내 홀로 외로움과 싸우며 집과 학교를 오가며 보낸 막둥이를 위로하고 일으킨 건 그 어떤 상이 아니라, 쓰러져 병원에 누워있는 엄마였지만, 사랑하는 엄마와 가족이 늘 곁에 있다는 정신적인 힘이었을 겁니다.
손주가 내게로 와 다시, 아름다운 니엔후이즈 교구를 만나게 되니 이 얼마나 설레고 기쁜지...^^
어린이집에서의 에피소드 하나 이야기할게요. 교실에서 테라스로 나가는 작은 쪽문 앞에서 앞치마 두르고 대걸레로 청소하던 여자아이 옆을 뛰던 남자아이가 넘어지며 밀대를 쳐 유리가 깨어지는 사고가 있었어요. 아이들을 돌보는 환경에서 유리 파열음과 그 위태로움은 생각만 해도 위압적이죠. 더구나 수업 중인데 말이어요. 전 소리와 동시에 번개처럼 아이들에게 "움직이지 마세요!"라고 했고, 먼저 넘어진 아이가 다치지 않았는가를 확인했습니다.
다행히 다치지 않았으니 침착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다 이동하게 한 후, 교사와 함께 태연하게 쏟아진 유리 조각을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큰 조각은 포장 상자에 모으고 빗자루로 잔해를 쓸어 담은 후에 청소기를 돌렸습니다. 걸레질까지 마친 후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의 환경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간혹 교실에서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갈등의 순간을 겪으며,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늘 생각합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물리적인 벌을 받은 아이도 없었으며, 어떤 심리적인 암시나 교훈, 설명도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 넘어졌던 그 남자아이가 보여준 태도는 관찰일지에 적어둘 만큼 고요하면서도 강렬했고 감동적이었습니다. 교실에서 테라스로 나가는 문턱 앞에 어린 동생이 서있으면, 슬그머니 다가가서 이곳은 위험한 곳이니 조심하라고 돕는 장면을 보며 속으론 기뻤습니다. 유리가 깨어질 때 이미 내면의 벌을 스스로 받은 아이의 각성이 동생들을 돕는 선행의 에너지로 나타난 것입니다.
만 2세 이상. 일상생활 영역에 세팅된 다양한 물 작업. 스포이트로 색물 옮기기(작은 스펀지, 약간 젖은 물수건 준비)
요즘 TV를 보면 아이를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가 지나치게 호들갑스럽고 칭찬과 비난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어요. 칭찬과 비난, 상과 벌을 남발하는 건, 인간을 기름칠이 필요한 기계의 부속처럼, 기름칠이 필요한 절대 미숙의 존재로 인식하게 하고, 기득권자의 힘이나 원조에 의존성을 갖게 만듭니다. 선생님은 잦은 칭찬과 비난이 아이를 무력하게 만드는 심리적 환경을 염려하며 저서 곳곳에서 그 부분을 지적합니다.
아이를 돌볼 때, 의도적이고 명백하게 보여주어야 할 '통제와 분노', 또는 의도하지 않은 실수에 대한 '침묵의 격려'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부모의 지혜가 그래서 어려운 법입니다. 선생님은 세상의 모든 생명은 상과 벌이라는 기름칠이 없어도 고유의 가치와 의미를 나누며 어울려 온 존재라고 합니다. 기쁜 일엔 함께 더 기뻐하고, 힘들 땐 서로 살피고 돕는 일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설명합니다. 선생님의 저서에서 이런 대목을 발견하면, 전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더라고요...^^
1920년대, 선생님의 어린이집 수업 풍경, 매트를 펴고 감각교구와 언어교구를 만지는 아이들.
상과 벌
어떤 이에게서
상 받은 기록과 치적 빼곡한 명함을 받자
아득한 이명(耳鳴)이 급습하여
의자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정직하게 살았단 말일까
능력이 크단 말일까
상과 벌이
모든 걸 뒤흔들고 찢다가 나중에는
인간의 물질대사 기능을 바꾸게 하는 줄 모르다니
인생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자유의지도
성찰도 부끄러움도 없는 속물이었구나
허울 좋은 도둑놈이었구나
아무 말 없이
작은 물줄기에 기꺼이 제 몸 섞으며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꾸역꾸역 한길로 가다
꿈에 그리던 바다와 만나는 날
흔들리고 부서지며 다시 대양으로 향하는
강을 보라
꿈꾸는 저 의연한 강을 보라
상 없이도 때 되면
갈색 옷으로 갈아입으며
벌 없이도
언 땅 아래로 더 깊이 뿌리 내려
연초록의 찬란한 새싹 가지 끝으로 내뱉는
이름 없는 나무들이 만든 위대한 숲을 보라
그 어떤 상과 벌이 없어도
바다로 향한다는 것만으로도
강은 길이며
존재만으로도 숲은
내밀한 성찰이고 스승일진저
시집 '붉은 폐허'에서
손주를 만나며 젊은 엄마들을 향한 선생님의 교육 철학과 '아이와 함께 사는 일' 속에서 엄마가 배우는 몬테소리교육을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아이와 함께 무더위 잘 이기시고요. 이상, 부산에서 유준이 할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