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피아니스트 김철웅 교수의 통일음악회
캐나다 뮤즈 한국 청소년 교향악단
상임지휘자, violinist, 수필가
박 혜정
요즘 제자들과 이야기 할 때 “너희들 이런 것도 모르면 간첩이야.” 라고 하면 “간첩이 뭔데요?” 라고 다시 되물어 와서 질문한 내가 오히려 어색해지는 경우가 생긴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과할정도로 반공교육을 받아서 북한 사람을 빨갱이라고 불러 북한사람은 빨갛게 생긴 줄 알았을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런 청소년들이 우리의 통일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한편 걱정도 되었다. 그러던 차에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씨를 알게 되어 민주 평통 문화분과를 대표하여통일음악회를 열게 되었다.
김철웅씨는 자기가 81학번이라고 했다. 1974년생이라 의아하게 생각되어 물어 보았다. 북한에서는 1973년부터 8세 예체능 부분의 조기 교육이 시행되어 3000:1의 경쟁을 뚫고 음악대학을 8세에 입학을 한다. 학생 800명에 교수 1700명. 물론 좋은 출신 성분만 입학이 가능하다. 그는 북한 제일의 피아니스트로서 러시아에 유학을 하던 중 우연히 카페에서 리차드 클레이더만의 “가을의 속삭임” 이라는 곡을 듣게 된다. 1999년 북한으로 귀국 후 차관급 대우를 받는 평양 국립교향악단 수석피아니스트가 되었다.
러시아 유학시절 들었던 그 곡을 치다 보위부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 후 연주의 자유를 찾아 탈북을 결심하게 된다. 북한에서는 클래식 이외의 곡은 전부 자즈(트로트까지도 포함해서)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렇지만 모든 클래식 곡을 연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낭만주의 시대의 것 까지만 연주를 할 수 있다. 그중 라흐마니노프는 미국으로 망명을 했기 때문에 그의 곡은 연주 할 수 없다고 한다. 사상적으로 우수한 작곡가의 곡만을 연주 할 수 있다.
총감독을 맡아 음악회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연주날도 무대 뒤에 있었지만 아쉽게도 마이크로 이야기하는 내용은 들을 수가 없었다. 많은 관객들이 관심을 표현 해주셨다. “통일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북한의 실상을 교과서와 언론 외에 진실로 알 수 있어서 좋았다.” “통일을 위해 어떤 일이 필요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연주시간 내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너무 감동적이고 눈물이 나는 공연 이었다.” 등등. 그의 연주 CD는 금방이 매진이 되었다. 많은 분들이 흡족해 하셨다는 소리를 듣고 5개월간의 준비 기간 동안 힘들었던 일들이 눈 녹듯 사라지며 행복감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날 또 빅토리아 공연이 계획되어 있어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빅토리아 공연은 많은 출연자가 갈 수 없어 2명의 연주자만이 동행하게 되었다. 덕분에 나도 음악회를 감상하며 북한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북한에서도 피아노를 배울 때 바이엘, 체르니, 하논 등을 친다고 한다. 우리와 다른 것은 북한 동요를 자기가 연주 하는 곡의 2배 이상 쳐야한다는 것이다. 그 예로 북한 동요 “혁명군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이 곡은 단순한 동요라고 하기 보다는 터어키 행진곡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 국악기도 개량해서 모든 서양곡과 맞도록 작곡을 한다고 했다. 물론 선동과 선전을 위한 곡들도 3000곡이나 된다고 한다. 그 중 700곡 정도가 월북 작곡가 리면상씨의 곡이라고 했다.
그의 메시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르다는 것 보다는 같다는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 통일의 지름길이다.” 이 중요한 것을 왜 느끼지 못했는지. 나 또한 연주 할 곡을 주고 받으면서 “이런 것이 다르구나!” 라고 먼저 생각 했었다. 그런데 한국 가곡 “남촌”과 북한 가곡 “산으로 바다로 가자”를 들으면서 느껴지는 서정적인 감정은 비슷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대표곡인 “아리랑 소나타”를 연주했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라는 곡으로 조용히 시작되어 격정적인 느낌의 아리랑까지 들을 수 있는 멋진 곡이었다.
탈북자 25000명 시대. 그는 “탈북자를 동포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라고 주장한다. 그들을 “미리 찾아 온 통일의 메신저”라고도 이야기 한다. 북한은 인터넷이 안 되는 나라이다. 그래서 민중 봉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단다. 그러므로 탈북자가 잘 사는 세상이 오면 소문을 통해 자연히 북한이 변화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는 김정일, 김정은은 싫지만 태어나서 자란 곳이기에 북한을 사랑하고 또 그곳을 더욱 좋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연주를 통해 통일을 단 3분이라도 앞당길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으로 연주를 한다.
그는 탈북청소년에게도 관심이 많다. 그들이 한국 사회에 동화 되어 일반 청소년과 다를 것 없이 평등하게 살기를 바라며, 또한 통일의 밑거름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그들을 위한 “아리랑 오케스트라”를 창단하려고 한다. 이번 연주는 ‘탈북청소년을 위한 기금모금’으로 모아진 성금을 전부 전달하였다. 많은 분들이 통일을 바라는 마음에서 정성껏 모금하여 주셨다. 그 또한 감사한 마음으로 탈북 청소년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하면서 밴쿠버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의 소원대로 음악을 통한 통일의 초석이 되어 다시 한 번 그가 만든 아리랑 오케스트라와 함께 밴쿠버에서 만나기를 기원해 본다.
첫댓글 하루만에 많은 댓글을 보니 은근 신이 나고 재미있고 좀 더 열심히 글을 올려야되겠다는 동기가 생깁니다. 제 글을 읽고 격려해 주시는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 음악회 무대에 섰던 저도
이 글을 읽으며 새로운 느낌으로 되새겨 보게 됩니다
좋은 글을 대할 수 있어 기쁘고 고맙습니다 선생님..
김철웅씨와 대화하면서 우리가 간과했던 것 중 누구를 만나면 이것이 나랑 안맞고 다르구나 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고 이것이 나랑 공통점이고 잘 맞는구나라고 시각을 바꾸어 본다면 세상이 더욱 둥글게 굴러가지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또한 평양시민은 우리가 생각했던 북한 주민이 아닌 굉장히 잘 사는 특별시민이라는 점도 알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혹자는 그렇다면 그렇게 다른 곳이 아니고 통일비용도 생각보다는 적게들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게되었다는 것도 들었습니다. 정말 의미있는 연주회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