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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공유영(藝空游泳)02
천사(1,004) 섬들의 나라, 신안
최이해(崔伊海)
어린 왕자. 생텍쥐베리의 어른을 위한 동화에 나오는 지리학자는 가만히 앉아서 지도를 그리고 만듭니다. 여행가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만으로 누구에게나 통하는 지도를 그려주는 것입니다. 이런 사정은 지금도 여전한 듯하여, 여행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인터ᅟᅦᆺ 검색을 통해 여행일정과 경로를 그려냅니다. 예술공간을 헤엄치다, 예공유영(藝空游泳) 두 번째인 신안군, 지리학자의 지도로 살펴본 신안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서해안의 여러 섬들로 이루어진 한반도의 최서남단에 위치한다.
겨울과 여름으로 나누어진 계절 변화가 두드러진다.
우리나라의 기상 현상의 발생 및 이동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가거도, 홍도, 흑산도가 신안군에 속한다.
목포를 중심으로 진도와 무안 사이의 여러 섬들이 무려 1,025개.
지도 압해 증도 임자 자은 비금 도초 흑산 하의 신의 장산 안좌 팔금 암태 등이 섬 이름이고 또한 행정구역의 면단위 명칭이기도 하다.
압해현은 통일신라시대부터 거명되며, 압해 정씨의 관향이며 시조묘가 있다.
모두 21,000가구에 42,000여명이 살아가는 터전이다.
이런 여러 간단하지 않은 지리지로부터 예공유영(藝空游泳) 기획 의도에 맞춰 몇 군데만 집중 탐색하기로 합니다.
애기동백 만발한 신안군청 소재지 압해도
신안의 동백꽃이 12월과 1월이 개화 절정기입니다. 압해도에는 분재공원이 있습니다.
분재(盆栽), 땅에 키우지 않고 화분에 키운다. 땅에서 크는 나무를 분에 담아 키우니 각각 특별한 외형을 보여주는 기술이지요. 잘 가꿔진 부재를 보면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되더군요. 자연(自然)과 인공(人工) 모두가 아름다울 수 있고, 예술(藝術)은 그 둘의 적절한 조화로 더욱 빛나는 것은 아닐까 여겨지더군요.
천사섬 분재공원. 다양한 분재를 모아 식목원처럼 꾸미고 중간중간에 조각작품도 세우고, 한켠에는 애기동백 군락지가 있습니다. 몇일 전 눈 모자를 눌러쓴 애기동백의 새빨간 얼굴들이 참으로 볼만했더랍니다.
이 공원 안에 저녁노을 미술관 Sunset Musium이 있는데요, 이 미술관이 작년부터 동백꽃을 그린 작품들을 모아 특별전을 열었습니다.
올해도 30점 작품이 모였습니다. 전시회는 2월7일까지였답니다. 내년에는 시기를 맞춰 이곳을 찾아보기를 권해봅니다. 그림 사진 말고, 눈에 쌓인 애기동백 사진은 분재공원 원장님을 만나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백상록 천사 섬분재공원 원장 77세
그는 이곳 분재공원 제안자이면서 창설자이고, 현재는 원장입니다. 그는 이곳 분재공원이 있는 압해도의 면장과 읍장을 두 차례나 맡았는데, 그 때 군수님을 모시고 이 자리에 와서 분재공원을 세우자고 설득하여 꿈을 이뤄내었습니다.
“압해도는 저녁노을이 장관일 뿐만 아니라 밤이면 별들이 쏟아져 내려 그야말로 널따란 바다를 차경(借景)한 중심점에 공원을 만들자고 제안했던 것입니다.”
분재란 한 마디로 심미안(審美眼)의 대상일진대, 공직자로서 직접 분재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지녔으니, 신안의 관광자원을 만들자는 제안에 군수님도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지요. 그러면서 자신이 애지중지 만들어낸 분재 100점을 기증했습니다. 2년 전에 다시 왔답니다.
“분재는 관리사 손길이 뜸하면 금방 표가 납니다. 그 좋던 분재들이 말라비틀어지니 군청에서는 다급해서 저를 불렀고, 애비 자식 심정으로 올 수밖에요. 손길을 열심히 주고 있습니다.”
분재공원의 어려움에 대해 ‘가치를 숫자로 나타내기 어려움’이 나무들에게 최고 걸림돌이라고 말했습니다. 분재협회가 적정가임을 보증한다고 해도 모 지자체 담당 공무원이 중징계를 받은 현실이 안타깝다는 것이지요.
“분재 작품 앞에서 허리를 숙이면 분재를 볼 줄 아는 분이고, 허리를 숙이지 않고 입으로만 이야기 하게 되면 분재를 전혀 모르는 분이 됩니다.”
가족 나들이로 찾아와서, 아버지는 분재 심미안을 지녔기에 허리를 구부리고 시간을 들여가며 분재를 감상하는 데에 비해 동행한 가족들은 꽃 구경 나무 구경이라도 해야겠기에 분재공원 여기 저기 나무를 심고 꽃을 심는 일도 게을리 할 수가 없답니다. 군데군데 자그마한 조각들도 들여 놓고, 신안군이 자랑하는 애기동백 군락지를 통해 묘목들도 키워내야 한답니다.
분재공원 안에 설립한 ‘최병철 분재기념관’은 분재인 최병철님이 이 공원 건설에 자문한 바도 컸거니와 평생 가꾸어 만든 명품 200여 점 분재를 기증한 공로를 기린 것인데, 따로 조경수 200여 점에 소재 8,400여 점도 받았답니다. ‘저녁노을 미술관’은 신안의 한국화가 우암(愚岩) 박용규 선생의 기증 미술품을 위해 지어진 미술관인데, 둘 다 분재공원이 마치 준비라도 하듯 미리 만들어져 포근히 안아 들인 문화예술 시설이라는 점에 노익장의 원장직에 힘이 난답니다.
섬들의 나라로 들어가기 : 천사대교
다리, ‘등을 내밀고 어깨를 내주어 남들을 건네주는’ 다리의 숙명을 새삼스레 돌이켜 보았습니다. 신안군 대변혁의 시작점인 ‘천사대교’를 건너가 봅니다.
일 천 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진 신안군은 그야말로 섬들의 나라 물색 고운 자연의 땅입니다 . 그런데 큰 섬 여러 개가 연륙이 되어 뭍이 되었습니다. 천사대교가 그 마무리 정점을 찍은 것입니다.
천사대교는 2010년에 착공해서 재작년 2019년 4월4일에 준공했으니 연륙된 지 얼마 안 되죠. 이 다리 이름은 신안군이 스스로 신안군을 “천사의 섬”이라 애칭으로 부른 데서 붙여진 것입니다. 입에 착 감기는 표현을 찾다보니 1,025개의 섬이라는 현실보다는 1,004로 줄이니 더 좋았다는 것이죠. 천사(天使) Angel 로 들리는 중의(重意)도 좋죠. 전체 길이가 7.26km나 된다니 전국에서 4등으로 긴 다리입니다.
다리는 곧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다는 초능력의 구체화 현물(現物)입니다. 갇힘이 섬의 본질이라면, 다리는 열림의 마법입니다. 차안(此岸)과 피안(彼岸), 이승과 저승. 그 사이를 흐르는 물길을 레떼(Lethe) 곧 망각(妄覺)의 강이라 이른다지요. 그 물을 건너는 일을 주로 했던 이는 중이었답니다.
현수교(懸垂橋) 공법과 사장교(斜張橋) 공법이 모두 쓰인 이 다리는 중간부분이 아래로 살짝 주저앉은 모양새인데 실제 주행을 해보면 완만한 내리막길에 이어 오르막을 오르는 느낌이 사뭇 다르답니다. 시속60kn 제한속도인지라 15분 정도를 달려 섬을 들고 날 때 몽환적이랄까, 알 수 없는 나라로 들고 나는 기분인데 구름이 끼거나 해무(海霧)까지 끼었다면 정말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다네요.
다리의 전장(全長)을 보기 위해 암태도 옛항구인 오도산칙장으로 들어섰더니 긴 다리 전체가 보입니다. 장관이네요. 한가운데 처진 듯한 부분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바다는 마치 호수처럼 잔잔합니다.
트릭 아트 동백머리 파마 벽화
기동 삼거리, 암태도 북쪽으로는 자은도로 가고 남쪽으로는 팔금도와 안좌도로 가는 갈림길인데요, 여기에는 트릭 아트 Tric Art 개념의 벽화가 눈길을 끕니다. 민밋한 블록 담장에 드러나는 마당의 동백나무를 파마머리로 차용하여 이 집 안주인을 그려낸 것이거늘, 바깥양반이 “나도 하나 그려다오.” 해서, 동백 한 그루 급히 파다 심고 해서, 근사하게 짝을 지어냈더니만 천사대교 넘어와서 처음 만나는 귀물 명품이 되었답니다.
이파리만 해풍에 반짝여서 잘나온 파마머리로 세 계절을 지내다가 12월부터 3월까지 겨울에는 유난히 고운 동백꽃 파마머리를 자랑한다니 때맞춰 찾아간 저는 아주 제대로 된 모습을 만났습니다. 꽃단장한 문패에 ‘문병일♡손석심 보금자리’라는 표지판 문패가 참 사랑스럽습니다.
이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가면 자은도가 나옵니다. 자은도도 보고 싶지만 우선 퍼플교가 궁금했습니다. 팔금도를 지나 안좌도로 갑니다. 이름도 생소한 퍼플교, 퍼플 Purple 보라색 다리라, 마을은 퍼플 빌리지요, 섬은 퍼플 아일랜드랍니다.
퍼플 빌리지
보라의 나라에는 모든 게 보라랍니다. 여행기흫 미리 읽었는지라 마을의 지붕들이 유별난 보라색임을 금방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목포역 관광 안내판에서 본 항공사진에 보행 목교는 물론 지붕 색들도 모두 보라 일색이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되어 어서 빨리 보라의 나라로 가보고 싶었습니다. 반월교로 들어가는 초입의 찻집에서 커피로 카페인 충전을 했습니다. 건물 겉은 물론 탁자며 집기가 모두 보라색입니다. 찻집 2층 한쪽 면에는 아스타 보라색 확대 사진이 강렬합니다. 반월도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고, 브르셔를 얻고, 보라색 의상을 대여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머플러 하나를 샀습니다. 마치 드레스 코드를 맞춰야 할 일이 있을 듯도 했으니까요. 세상은 온통 보라색 하나뿐이었습니다.
보라색을 사람들은 귀족의 색이라고 여기나 봅니다. 자료를 보니 보라색의 자연색을 얻으려면 조개를 무지 많이 사용해야 해서 얻기 어려운 색이라 귀족들이 좋아했다는군요.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으로 줄을 세우는 영국의 귀족 서열에도 드는 것 보면 확실히 귀족의 색깔이긴 합니다.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일곱 색깔 무지개의 맨 끄트머리 자리요, 그걸 벗어나면 자외선이 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어떤 색깔도 쉽게 얻어내는 요즘에는 개념이 좀 달라지기도 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물체의 그림자는 보라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파랑이 빨강에 눌린 색이라는 표현도 그럴 듯한데, 보라의 영역은 생각보다 넓어서, 그늘 속의 보라와 볕에 드러나는 보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경쟁적인 색깔이 아니다, 다 품어주는 색깔이다.’ 색깔 관광 상품화의 근거가 되는 말이랍니다.
퍼플 섬 선포식이 작년 8월 20일에 있었답니다.
‘보라색의 의미’를 살펴보면서 “퍼플 섬이 단지 보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동호인들만의 선호처가 아니라, 현대사회의 지난한 삶에 지친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평화를 선사하는 영혼의 안식처가 되기를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일행은 보라색 포장 도로를 걸어갑니다. 레드 카펫 위의 주인공이 되어 천천히 우아하게 걷다가 돌아서서 머플러를 바람에 부나끼며 포즈를 취합니다. 퍼플 키펫은 끝간 데를 모르게 일행을 따라붙습니다. 밭두둑에는 시들어버린 가을 국화가 드라이 플라워로 정물화를 그리고 있고, 그 곁에는 갓이 싱싱한 보라색입니다. 갈대꽃을 비추는 햇볕이 또한 옅은 보라색이었던가요, 퍼플교 중간 중간에 보행자를 위한 의자들이 놓여 있고, 긴 기둥에 기대어 내려다보는 개펄은 도립공원이며, 천연기념물이며 장도에는 람사르 협약으로 보호받는 습지가 있다고 하던데, 우선은 빛나는 잿빛 위를 보라가 살짝 코팅이 된 듯합니다.
식당에 앉아 맛보는 갈치조림이며 해초 반찬들, 하물며 신안 막걸리까지 그릇부터 내용물 모두가 보라색 아닌 게 없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보라의 마법에 빠졌네요. 누구 없나요? 구해 주세요!
중노둣길과 전설같은 러브 스토리
노두. 순 우리말 단어이데, 민속적인 용어입니다. 음력 정월 열나흗날 밤에, 신수가 나쁜 자식을 위하여, 어버이가 일종의 액막이로 냇물에 징검다리를 놓는 일이랍니다. 다른 말로는 월강공덕(越江功德). 강을 건네주는 공덕이 얼마나 크기에 자식의 액을 막아줄 정도가 된다는 것인지.
중노듯길은 박지도와 반월도 사이에 놓여진 징검다리 바닷길로 지금도 썰물 때 장화를 신으면 무사히 건널 수 있다고 합니다. 전설이라기엔 너무 가까운 과거의 이야기이고, 설화라기엔 아주 교훈적이며 사실적입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인데, 박지도에 절이 있어 비구니가 수행중이었고, 건너편 반월도에도 절이 있어 비구가 지키고 있었거늘, 목탁소리로 서로의 존재를 알리고, 서로가 궁금해 하던 중 양쪽에서 징검다리를 놓아갔더니만, 마침내 가운데쯤에서 상봉하였고, 서로 이야기에 팔려 물이 드는 줄도 몰랐더라니, 이내 물이 나고 동네사람들이 살펴보니 비구 비구니 둘 다 한날 한시에 사라졌더랍니다.
천사대교를 건너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로 이어진 연도(連島) 행로가 보행 전용 목교를 건너며 반월도와 박지도를 잇고 있는 노듯길의 이야기를 눈으로 직접 봤다는 사실이, 다리(橋)의 여러 형태에 무관하게, 갇힘을 푸는 마법으로서의 기능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하는군요.
정홍일 박지리 이장 69세
그는 박지리가 고향입니다. 군복을 35년간 입었고, 전역해서는 신안군에서 에비군 지휘관을 지냈습니다.
“박지도는 바가지, 반월도는 반달 모양이라는 지명입니다. 우리 마을이 퍼플 아일랜드로 바뀌면서 이장을 했지요. 천사대교 개통이 2019년 4월 4일이고, 퍼플교 완공도 그해 5월이니 전라남도가 2016년에 ‘가고싶은 섬’으로 뽑았을 때부터 예정된 변화가 속도를 내게 되었다고 봅니다. 마을 호텔을 짓고, 마을 식당을 운영하게 되고 등등.”
“2006년도에 이미 현재의 퍼플교는 갈색 목교로 완성이 되었습니다. 안좌도와는 물때와 상관없이 걸어서 드나들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래서 가고 싶은 섬에 뽑힐 수도 있었고요. 걸어서 갈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특별한 여행지가 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는 관광객들이 부르면 얼른 순환 승합 택시도 몰고, 전동차 카트도 몰고, 자전거 대여 일도 합니다. 코로나로 급감한 관광객 때문에 수입은 줄었지만, 이장으로서 밑은 임무를 즐겁게 수행합니다.
“연금이 나오니까, 이제 나이도 들었고 태어난 고향을 찾아오는 타지 분들께 친절함을 선물하는 게 즐겁기도 합니다. ‘중노둣길’ 이야기도 제가 정리해서 군에 전달했죠. 작은 섬마을에도 그런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있다는 걸 다들 좋아하더라고요. 어릴 적에 아버지가 이 섬 당산 마루에 절터에 가면 빈대가 살았더니라 하시더군요. 사람이, 아니 중이 절을 지키더라는 예기였지요.”
퍼플 아일랜드 곳곳에 숨은 풍경들, 900년 우물, 당산 정상의 모습, 기도원으로 바뀐 분교 자리, 라벤더 정원과 새로 심은 유채꽃밭 그리고 물이 나면 드러나는 중노둣길 이야기를, 승합 택시나 카트를 몰면서, 멋드러진 해설사가 되곤 하는 것입니다.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생가
안좌도(읍동리)가 수화 김환기(1913~1974)의 생장지이며 이를 증거해주는 생가도 들러볼 계획은 처음부터 갖고 있었습니다. 다만 먼저냐 나중이냐, 고민했거늘 어쩌다 보니 일정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결과가 좋으면 다 좋다, 서양 속담이죠. 퍼플 빌리지에서 폭삭 물들어버린 안구를 씻어내고 시각의 평형을 되찾을 수 있었으니까요. 앞산의 무채색 겨울 색감이 살아납니다. 바로 앞 건녀편 파랑색 양철지붕도 살아납니다.
수화는 국제적으로 한국 미술의 건재를 알려준 몇 안 되는 화가입니다. 그림값으로 치면 한국인 중 최고일 것이고, 서울에는 자하문 밖의 부암동에 개인 명의의 미술관이 있어서 호사가들에게는 문화 명소가 된 지 오래입니다. 신안의 바다와 물새들이 그의 작품 초창기를 장식하고 있었구나,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특히 펑퍼짐한 삼각형의 앞산이 범상치가 않은데, 생가 마당에서는 일찌감치 하루의 마감을 알리는 산그림자가 다가들더군요. 저 앞산 또한 수화 머릿속의 둥글거리는 산이 되었을 것이리라.
수화 마술관이 이 섬에 어디 생길 법도 했더랍니다. 2014년도이던가, 터를 잡고, 기대 가득한 기사들이 넘쳐났었거늘 지금은 조용하고, 그 터조차 어딘지 모를 지경입니다. 하기야 보통 어려운 일은 아니겠죠. 강원도 양구의 박수근 미술관이나 제주의 이중섭 미술관이 외형만 번듯하고 내용은 아주 부실해서 변변한 작품 한 점 없는 형편이니, 수화의 미술관도 똑같은 고민이 진행중일 것입니다. 수화 생가에 모조품 한 점이라도 걸려 있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에 2004년도 서울의 김환기 미술관 전시장 풍경 사진 한 장을 조심스레 이미지 컷으로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