갬성 제주 06
대정향교
역사 없는 땅이 어디 있으리오
제주는 고려시대에는 18개 현으로 구분지어졌고
조선시대에는 1목2현으로 나뉘어 국가의 다스림을 받았습니다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그 구분의 중심에 한라산이 있고
한라의 북쪽 거의가 제주목
남동쪽이 정의현
남서쪽이 대정현입니다
현재도 그 구분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나
두 현을 서귀포시로 묶었고
대정현 명은 이제 대정 읍으로 축소되었습니다
오늘 갬성 제주 6탄은 제주의 유교 유적 대정향교인데
조선시대 관학으로
서울의 성균관 휘하에 각 지방마다 설치한 향교 중의 하나입니다
제주향교와 정의향교도 각각 존재합니다
사학으로는 서원이 있었는데 제주목 안에 귤림서원이 있었지요
지금은 오현단 경내에 귤림서원 터 표지석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주가 중앙 조정으로부터 가장 멀리
그것도 바다를 건너 지리적으로 변방이었으나 목사 그것도 당상관 급의 대접받는 행정구역이었음은
조세나 특산물의 재정적 필요성에 더하여 국방과 병마 보급 등의 군사적 긴요함을 반영한 것이라고 봅니다
당연히 유교국가로서의 관학이 조선 초기부터 설치되었고
유교적 교육과 풍속교화가 이루어졌습니다
대정향교는 현성 북쪽에 처음 설치되었다가 몇차례 옮겨졌고 성 남동쪽 단산 아래 현 위치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난번 추사관과 유허지 이야기 때 나온 추사의 글씨 진품 현판 의문당 은 이곳 대정향교 명륜당의 동재에 걸린 것으로 지금은 진품은 추사관 전시실로 옮겨지고 모사품이 걸려 있습니다
당시 이곳으로 나들이하며
초학 初學 들을 가르쳤던 거유 巨儒
추사에게 전교는 동재의 현판을 지어서 써주기를 간청했고
글씨를 받아 당시 학생이었던 이가 새겼다는 기록이 진품 현판 뒤에 적혀 있다는군요
의문당 疑問堂
논어에 나오는 구사 九思 중 하나입니다
의문이 생기거든 물어볼 것을 생각하라
의와 문은 반드시 붙어다녀야 군자이거늘
요즘 저는 의문이 생겨도 슬그머니 지워버리는 얄팍한 늙마를 보내고 있는 듯 멋적습니다
대정향교는
전학후묘 前學後廟 로 사당이 강당을 즉 제사공간이 교육공간을 앞에 품고 있는 형태로 지어졌습니다
서울의 성균관하고는 반대이지요
또한 강당 교육공간인 명륜당이 사당인 대성전을 마주하게 배치되어
동재와 서재가 대성전의 내삼문을 지키듯 너른 마당을 함께 누리는 특별한 구조입니다
명륜당 현판이 안 보인다고 했더니
가운데 문을 열어보랍니다
거센 바람에 고개를 숙인듯
나즈만한 건물이라 커다란 현액을 걸 수가 없어 안에다 걸었다고 합니다
전사청은 동편에 널찍하게 한가로이 앉혀졌고
제사음식을 차려 진설 직전에 점검하는 찬막단도 보입니다
제관이 다니는 길은 제주만의 독특한 검정 판석으로 깔았군요
바굼지 오름 곧 단산이 감싸고 있는 향교 뜰에서 꿈틀거리는 추사 글씨를 연상하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공자와 4성인과 공문10철과
우리나라 18현에게 석전을 지내는 전국의 향교 대성전 앞에 3강5륜을 상징하는 나무가 있거늘
이제는 거목으로 자란 소나무와 팽나무가 사방을 지킴이처럼 에워싸고 있습니다
특히 북동쪽 팽나무 거목은 별도로 소개해야할 정도로 거목 노거수입니다
밑둥 우람 자태 한번 보시지요
저는 대정향교 사무국장 금당 琴堂 이정숙 선생님을 만나서 행복했습니다
전북 남원 사람인데 15년 전에 대정으로 옮겨왔답니다
성균관 유림 교육 수료했고
시조창 사범이시기도 하고
대정향교 장의도 지냈는데
지금은 사무를 총괄하고
일반 시민을 대상 시조창 강의를 주1회 이곳 의전당에서 진행한답니다
남창지름 시조 한 수
괘도를 내걸면서 학생들을 기다리시길래 창 한 수 청했더니 기꺼이
나비야 청산 가자를
사범님답게 정숙 청결하게 들려주시더군요
사위가 빨려들어 크게 고요해졌습니다
인생은 여행길 한 마리 나비 되니
청산은 곧 제주 일색 풍광이더군요
갬성 제주 06은
아직도 귀에 쟁쟁한 시조 한 수 옮겨 적는 걸로 마무리합니다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날 저물면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