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1월 26일 일요일, 맑음.(말레이시아)
아침 6시 30분에 기상했다. 세면을 하고 일행이 7시 30분에 모여 성원이가 기도하므로 주일을 기억했다. 찬주 네는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우리는 숙소에서 나와 길 건너편에 있는 버스터미널로 가서 여러 식당 중에서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시켜서 먹었다. 아내는 쌀국수를, 유진이와 상희는 떡을 시켜 먹었다. 떡 종류도 다양했다. 맛있어 보였다. 9시에 숙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늘 일정인 바투 동굴로 향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제일 먼저 방문하려고 계획했던 곳이다. 센트럴 마켓 뒤쪽에 가서 11D번 버스를 기다리다가 탔다. 시내를 벗어나 약간 외곽으로 약 30분을 달려간다. Batu Cave가 보였다. 뜨거운 날씨다. 많은 사람들로 도로도 차량으로 붐빈다. TV나 사진으로만 보던 낯익은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니 반갑다. 인상적인 층계를 오르기 전에 광장에는 많은 노점상들이 있다. 방문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입구에는 각종 여신상이 조각되어있다. 층계를 오르기 시작했다. 층계마다 번호가 있다. 272개로 된 급한 경사의 계단을 오른다. 한 번 쯤은 쉬어야 했다. 규모가 크다. 원숭이들이 오르내리며 사람들이 주는 음식과 과일을 받아먹는다. 층계와 사원의 신상들이 주로 노란색과 붉은 색, 그리고 초록색으로 칠해져있다. 272개 계단을 숨 가쁘게 오르니 라이트 케이브로 불리는 커다란 종유동이 있다. 여기에는 힌두교의 성자 스바라마니안을 추모하는 절이 있다. 힌두교의 성지로 되어있다. 매년 2월 8일에는 타이프 삼 축제가 열리는데 많은 사람들로 붐빈단다. 그 외에도 많은 종유동이 있다. 제일 큰 것이 다크 케이브로 길이 400m, 높이 110m로, 낮에도 어두운 동굴 내에 박쥐가 날고 있다. 자연 조명으로 동굴의 분위기가 운치가 있다. 하늘을 향해 뚫려있는 구멍은 아름답다.
동굴만 있다면 좋은데 힌두교 인들이 제사를 드리는 음식과 꽃들, 그리고 각종 기구들이 열기와 습도로 부패되어 엄청난 악취를 풍긴다. 엄청난 낙서와 함께 성지라기보다는 지옥 같다. 깨끗이 청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힌두교신은 지저분하고 악취가 풍기는 것을 좋아할까? 이 넓은 동굴에서 깨끗이 정리하고 클래식 음악회를 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11시 정도가 되니 주로 이마에 점을 찍은 인도계 사람들이 모여든다. 노란색, 붉은색 옷을 입은 인도 여인들이 아기를 앉고, 예물, 꽃, 음식 등을 갖고 줄기차게 올라온다. 사람이 많으니 장사꾼도 모이고 음식, 옷, 아세사리, 기념품 등의 상가가 크게 형성되었다. 불교의 지옥은 라오스의 불상공원이라면 힌두교의 지옥은 악취가 풍기는 이곳 바투 동굴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움 보다는 추한 모습, 질서보다는 혼란, 청결 보다는 불결, 상쾌함보다는 악취가 풍기는 곳이 지옥이 아닐까?
동굴의 자연미에 마음이 끌리지만 인간이 더럽혀 놓은 현장이 정서에 맞지 않았다. 동굴을 나오니 무지무지 뜨겁다. 버스 정류장 옆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하나씩 입에 물었다. 시원했다. 11D 버스를 타고 다시 시내로 들어왔다. 나시고랭 USA로 점심을 먹었다. 별 특이한 것도 없는데 왜 USA를 붙였는지 모르겠다. 재미있는 것은 이 식당에서 태어나 처음 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거꾸로 가는 시계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시계가 움직이는 것이다.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데, 생각이 바뀌니 재미있다. 툰페라 거리로 걸어간다.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교통량이 많은 곳으로 끊임없이 자동차 행렬이 이어진다. 동쪽을 흐르는 케랑 강과 서쪽을 흐르는 곰백 강이 하나로 만나는 지점에 아라비안나이트 그대로의 아담한 회교 사원(Masjid Jame)이 있다. 하얀색이 귀엽다. 계속 걷다가 남쪽 방향으로 돌아서니 라자 거리(Jalan Raja)이다. 넓은 잔디밭 건너편에 금색 돔이 붙은 동화나라 이야기 같은 거물 군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이곳이 아라비안 모스크 풍의 관청 가인데, 가장 말레이시아다운 건물인 것 같다. 고등 재판소, 연방사무국빌딩, 중앙우체국 등이 있다. 길 건너편의 넓은 녹색의 잔디밭과 어울려 아라비안나이트 성과 같았다.
태양을 받아 눈이 부시다. 잔디밭에는 밝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대형 국기가 흔들리고 있다. 남쪽으로 계속 가니 국립회교사원이 나왔다. 옛 모스크와는 달리 근대적인 장식, 별 모양의 돔과 높은 탑이 있는 독특한 건물이다. 국민의 총의와 충성의 심벌이란다. 1965년에 일천만 달러를 들여서 만든 이 모스크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커다란 모스크 중 하나란다. 이 사원 건너편이 중앙역이다.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간다. 뜨거운 대낮이라 걷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도착한 곳이 국립박물관이다. 정문 양쪽의 커다란 벽화가 인상적인 아름다운 박물관이다. 박물관 내부의 구경보다는 시원한 에어컨이 우리를 더 기쁘게 했다.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전시품은 말레이시아의 역사를 소개하는 수공예품으로 라라와크 족 등 소수 민족이 만든 목각인형이 볼 만 했다. 그 외에 각종 무기류, 연의 종류, 의복, 가옥, 생활예식모습 등이 잘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와양 쿨릿(그림자그림꼭두각시)인형 컬렉션으로 말레이 반도 몇 나라에만 한정되지 않고 터키 페르시아에서 중국까지 광범위하단다. 와양(Wayang)은 그림자, 쿨릿(Kulit)은 가죽을 의미한다. 그 밖의 3층에는 자연 소개와 함께 각종 식물, 과일, 곤충, 동물, 어패류 등이 전시되어있다. 상희 키 보다 큰 물고기도 있다. 화려한 악기 종류도 인상적이다. 우리나라 도자기인 청자와 백자 종류도 인근 국가 일본, 타이, 중국 것들과 함께 전시되어있다. 새로 지어진 회교 박물관 앞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사 먹는다. 잠시 쉰 후에 국가 기념비가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레이크 가든을 지나간다. 시민의 휴식처인 이곳 레이크 가든은 도시 남쪽에 있는 녹지대로 엄청 넓다. 공원 내에는 넓은 공공도로가 있다. 국회의사당, 국가 기념비, 국립박물관이 인접해 있다.
열대 식물이 아름답게 피어있어 상당이 어울린다. 이곳 야외 공연장에는 젊은 남녀들과 가족들이 많이 모여 있다. 잔디 위에 나무 그늘아래 삼삼오오 앉아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을 본다. 일요일 오후를 즐기고 있다. 가수가 My way를 열창하자 박수가 쏟아진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독립투사가 잠든 무덤, 국가 기념비의 브론즈 전사의 동상을 찾아 올라간다. 더위와 갈증과 피곤한 다리가 힘들게 한다. 대형 천막을 치고 공사를 하고 있었다. 공사장을 들어가 깃발을 들고 총을 든 전사들의 모습을 확인했다. 이제 숙소로 돌아갈 일만 남은 것 같다. 조각들이 서 있는 공원을 나와 큰 길(팔리멘 거리)을 따라 언덕을 내려왔다. 잔디밭에는 사람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다시 라자 거리로 왔다. 햇빛을 받은 관청 건물들은 또 환상적이다. 분수대에서 사진을 찍고 두 강이 만나 하나를 이룬 강줄기 위에 세워진 다리를 건넌다. 두 강이라고 하지만 하수도 흐르는 정도의 좁은 강이다. 숙소로 돌아왔다. 엄청 다리가 아프다. 진하게 하루를 여행했다.
더위와 사운 하루였다. 저녁식사는 아이들이 원하는 KFC에 들어가 Three코스라는 푸짐한 치킨 세트로 식사를 했다. 밤에는 이 도시의 명동이라는 부킷빈탕 거리로 야경을 보로 갔다. 숙소에서 10여분을 걸으면 도착이다. 밤이 되니 제법 걸을 만 했다. 이곳은 영화관과 좋은 호텔이 즐비한 거리다. 차이나타운 같이 재래식 적인 분위기는 아니지만 도시 풍으로 깨끗하고 화려했다. 세련된 느낌의 부티크와 레스토랑도 많다. 아마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근사한 거리인 것 같다. 대형백화점에 들어갔다. Let10 이라는 백화점이다. 우리나라 백화점과 비슷하다. 낯선 풍경 속에서 현지인들이 우리의 상품인 삼성, LG의 핸드폰을 열심히 파는 모습이 제일 인상적이다. 열심히 분주한 모습 속에 있으니 구경거리도 많다. 눈만 즐겁고 다리는 피곤한 야경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걸어온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잘 지낸 하루다. 아이들은 금방 피곤이 풀리는지 홀에서 카드놀이를 하며 늦은 밤을 보낸다. 숙소는 낯선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간다. 인종도 다양하다. 공통점은 큰 짐을 등에 하나씩 지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