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돌
윤월수(2021.7.30.)
하천의 하류 쪽에는 둥글둥글한 돌이 많다. 반면에 상류 쪽으로 갈수록 모난 돌이 많다. 긴 세월 동안 산위에서부터 물길 따라 떠밀려 내려오면서 서로 부딪기를 수만 번을 반복한다. 물에 씻기면서 흘러오는 동안 모난 부분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 하류에는 반질반질하고 둥글둥글한 모양의 돌이 많다. 상류 쪽의 계곡이나 아직 큰 내에 이르지 못한 작은 개천 등에는 아직 덜 부딪치고 덜 씻기어 모난 부분이 많이 남아 있어 이들은 볼품은 좀 없어 보인다.
또 바닷가에 가보면 동글동글한 몽돌이란 게 있다. 수천 년 동안 파도에 이리 저리 떠밀리어 다녔다. 자기들끼리 부딪기를 반복하면서 깎기고 깍겨 반들반들해져 윤기까지 나면서 예뻐졌다. 마치 창포에 머리감아 윤기나는 어머니의 쪽진 머리보다 더 반들반들하다.
이 몽돌은 보기에는 좋은데 차곡차곡 쌓아지질 않는다. 반들반들 매끄럽고빈틈이 없기 때문이다. 틈새가 있어야 이웃한 돌의 돌출한 부분이 파고 들어와 채워줄 수가 있는데 들어가 채울 곳이 없다. 약간은 쭈그러 들어간 부분과 불쑥한 부분이 서로 만나 채워주고 받아주어야 한다. 그러면 꽉 조여져 단단한 결합체가 되어 버티는 힘이 생긴다. 동글동글 예쁜 돌들은 채워주고 받아 줄 부분이 없다. 쌓으면 허물어질 뿐 힘을 발휘할 수가 없다. 그저 관상용으로나 적합하다고나 할까?
한동안 강물 바닥을 보물찾기 하듯 뒤지어 찾아내는 수석 모으기도 유행했었다. 수십 리 수백 리 길을 마다않고 쫓아 다녔다. 어렵게 구해온 돌을 놓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를 놓고 자기 체면에 빠져 행복을 만끽하던 이들도 있었다. 마치 원시 시대에 먼저 가서 차지한 자가 주인이 되는 걸 보는 것 같았다. 다른 이의 발길이 지나지 않은 청정한 곳을 찾아 새벽부터 바쁘다. 승합차까지 대절하여 가기도 한다. 좀 더 멀리 가서 먼저 찾으려는 것이다. 인간의 본능적인 이기심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었다.
반질반질하고 매끄러워 잘 생긴 돌은 담장이나 둑을 쌓을 때는 별로다. 쌓기 위해서는 진흙 같은 끈적한 매체가 필요하다. 아니면 안 된다. 제주도에 가 보면 밭 둘레 경계석을 화산 폭발시 나왔다는 현무암들로 쌓았다. 생긴 대로 그냥 주어다가 쌓았다.
다른 재료 필요 없이 그대로도 잘 쌓아졌다. 영역 경계도 삼고 바람막이, 짐승막이도 된다. 가공되지 않은 천연석이라 순수해 보인다. 예스럽기도 하고 정감도 간다. 만일 인위적으로 기계의 힘을 빌어 반듯하게 잘라 쌓아놓았다면 조합은 더 단단할지는 몰라도 정감보다는 완벽함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이 앞설 거다.
하천 상류 쪽에 있는 좀 찌그러져 못생긴 돌이 담도 쌓고 성도 쌓을 수 있다. 제3자의 도움이 없어도 쌓을 수 있다. 울퉁불퉁한 돌들은 혼자 있을 때는 못생겨 보인다. 그러나 여럿이 모이면 큰일을 해낸다. 그들은 아래로나 위로나, 그리고 양 옆으로 자기의 빈틈을 남에게 내어준다. 그러면 불쑥한 부분을 가진 옆에 있는 돌이 파고 들어가 채워준다. 그렇게 해서 이웃한 돌들과 완벽한 협력체를 이룬다. 외부에서 힘이 가해와도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다.
시골에 가면 밭둑도, 다랭이 논의 논둑도, 집안의 담장도 잘 생기지 않은 돌들로 쌓았따. 이것들이 유용하게 쓰인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못생겼다 해도 뾰족한 부분이 많이 남아 있는 돌은 일단 열외시킨다. 회사에서 인사 채용시 까탈스레 보이면 멀리하듯.
묘하게도 우리 사람살이에서도 이와 같은 경우를 가끔 볼 수 있다. 똑똑하고 잘 나가는 사람일수록 개인적이고 이기적임을 주위에서 더러 볼 수 있다. 동네에서나 직장에서나 혹은 동창들 모임에서도 그런 이들이 종종 보인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개인적인 출세의 영광도 누리지만 지혜롭게 처신하는 이도 많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인적 유대도 잘 하는 좋은 성품을 갖춘 이들이다. 흔치 않은 경우를 확대 해석해서 객관화 하면 나만의 편견일 수 있다. 조심스런 문제이다. 경험으로 보면 결코 흔치도 많지도 않은 사례이다. 이웃 사람들과 친밀한 유대관계는 덜 하지만 혼자서 하는 일은 아주 잘 하는 이도 있고, 좀 부족한 듯 해도 남들과 소통 잘 하고 공동체를 이루는데 협조적인 이도 있다. 여기에서는 후자에 초점을 두고 그들을 더 소중한 인격인으로 보고자 하는 것이다.
소위 잘 나간다는 사람들은 여럿이 함께 더불어 하는 일에는 흥미가 적다. 혼자서는 야무져 독자적인 일에 더 적합한 친구이다. 나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충만한 탓이라고 미루어 본다.
그렇지만 잘 나가지 않는 보통의 순수한 심성을 가진 이들이 오히려 오지랖 넓다. 주위 사람들에게 눈길을 돌려 관심을 잘 가져준다. 일반적인 소시민이라면 늘 어딘가 한 구석쯤은 부족함을 느낀다. 취약한 부분을 채워줄 다른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면서 살기 때문일 게다.
오목한 돌은 불룩한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울쑥불쑥한 부분이 서로서로 만나 사슬처럼 이어져 힘을 발휘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인간살이도 그렇게 얼그러져 사람 냄새가 풀풀나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