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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시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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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시읽기 7주차 A조 <멧새소리>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21이선하 추천 0 조회 85 23.05.16 20:06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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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3.05.22 22:19

    첫댓글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작품론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역설적인 제목이다. 독자로 하여금 슬픔이 어떻게 자랑이 될 수 있는가, 질문하게 한다. 하지만 시를 천천히 읽고, 계속 되뇌며 생각해 보면 독자도 충분히,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슬픔은 단지 눈물이 많은 일이 아니라, 다른 이를 위해 기꺼이 눈물 흘릴 수 있다는 것이니까. 이 시의 매력 중 가장 큰 매력이다. 역설적인 제목과 내용을 통한 설득, 그리고 이 시의 주제인 슬픔과 공감, 위로.
    슬픔을 위한 슬픔, 그것이 바로 위로가 된다. 상처받은 사람만이 다른 이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슬퍼해 본 사람만이 다른 이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다. 이 시는 사람들이 흔히 부정적인 감정이라 여기는 슬픔만이 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위로를 이야기한다. 사람이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느꼈던 상황이나 감정에 진실하게 공감할 수 있고, 그러한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진실하게 위로할 수 있다. 그리고 진실한 위로는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를 치유한다.
    화자는 이 시의 초반부에서 자랑이 될 수 없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 23.05.22 22:21

    화자는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왜 굳이 ‘당신’이라는 시적 대상을 설정하고 화자가 그의 슬픔을 생각하게 했을까? 이 시의 작가인 박준 시인은 신춘문예에 계속 떨어지던 중 열린 광우병 촛불 집회를 보고, “시인 되는 법은 학교나 강좌에서 배우는데, 시민 되는 법은 어디서 알려주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집회에 자주 나가고 용산 참사 장소 주변에도 다녀오며 타인의 슬픔에 대해 글을 써볼까 생각했고, 그렇게 이 시를 썼다고 말한 적이 있다. 화자가 말하는 ‘당신’은 아마 시인에게만큼은, 추모하며 슬픔의 연대를 보여줬던 그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서로 같은 슬픔을 가졌지만, 또 그러므로 서로의 슬픔에 가장 잘 공감할 수 있었고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위로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화자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 세상엔 슬픔이 아주 많다. 슬픈 사람들이 많다. 공감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 슬픔 많은 세상에서는 당신의 슬픔, 그러한 의미의 슬픔이 필요하다.

  • 23.05.22 22:22

    @23 박서진 땅에 집이 있어야 하고 집에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집을 잃고 사람을 잃은 슬픔을 기억하는 당신을 떠올린다. 과거엔 자랑이 되었지만 이젠 자랑이 되지 않는 철봉에 매달리는 일이 아니어도 이를 악문다. 화자는 이제 당신같이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슬픔 많은 세상에 대해 다짐한다. 그렇게 이를 악물면서 다짐하는 태도는 비장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다시 당신을 생각하는 화자는, 눈동자에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맺히던 눈물, 타인의 슬픔을 위해 기꺼이 흘린 그 눈물이 정말 가치 있는 것이라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화자를 ‘나’로 등장시키며 독자가 화자에게 이입할 수 있도록 한다. ‘당신’을 등장시키며 독자로 하여금 다른 이들을 위해 눈물 흘린 사람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독자에게 이 슬픔을 함께할 것을 권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슬픔이 아주 많고, 슬픈 사람들이 많고, 공감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 우리 모두 슬퍼 본 적 있다. 슬픔으로써 슬픔을 위로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 23.05.22 22:23

    @23 박서진 뜨거운 눈물이나 차가운 슬픔이 아닌, 슬픔의 따뜻한 면을 이야기하는 이 시는 우리에게 위로를 주면서 또, 우리가 위로하는 사람이 되도록 한다. 정말 따뜻하다.

  • 작성자 23.05.22 23:52

    「멧새 소리」 작품론
    백석 시에는 특유의 따뜻한 서러움이 있다. 「멧새 소리」에서는 ‘기다람’과 ‘차가움’이 서러움의 정서를 환기한다. 명태와, 나와, 고드름은 ‘기다람’과 ‘차가움’이라는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기다람과 관련한 서술을 살펴보자. 이들의 기다람은 파리하다. 이는 읽는 이로 하여금 위태로움과 안타까움을 느끼도록 한다. 또한 이들의 기다람은 하강의 이미지를 가진다. 명태는 매달려 있으며, 나도 명태이고, 고드름은 매달려서 자란다. 이러한 하강의 이미지는 서러움의 정서를 쌓는 하나의 기반이 된다.
    차가움과 관련한 서술을 살펴보자. 명태와 나와 고드름은 차갑다. 차가움은 보편적으로 서러움의 정서와 맥락을 같이 한다. 가슴의 시림이 서러움의 정서이기 때문이다. 셋 중 고드름은 특히 시어 자체로도 추위를 드러낸다. 이러한 고드름이 가슴에 달렸다는 표현을 통해, 서러움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한편, 일상어의 활용과 ‘멧새 소리’라는 청각적인 분위기 환기를 통해 향토적이고 따뜻한 느낌을 함께 부여한다.

  • 작성자 23.05.22 23:55

    질문: 제목으로 ‘멧새 소리’는 적합한가? 서러움과 관련한 제목이어야 하지 않을까.

  • 23.05.23 13:25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질문1 : 자랑의 사전적 정의는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계있는 사람이나 물건, 일 따위가 썩 훌륭하거나 남에게 칭찬을 받을 만한 것임을 드러내어 말함. 또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에서는 슬픔이 '썩 훌륭하거나 남에게 칭찬을 받을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아니라면 '자랑'을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까요?

    질문2 : 논의점에서 '타인의 슬픔을 진실되게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슬픔이 자랑이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진실되게 공감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자랑이 될 수 있다고 봐도 될까요?

    질문3 : 화자의 정서를 '부정적인 정서'라고 하셨는데, 마지막 연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부분에서 일부 희망적(긍정적)인 정서로 전환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을까요?

  • 23.05.23 18:18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질문 1 : 이 시에서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이라는 부분은 어떤 세부적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그리고 왜 이것이 아득한 일일까요?
    질문 2 : 시적 화자는 '당신'에게 연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까요?
    질문3 : 이를 악물고 당신을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 23.05.23 18:42

    Q1. 제목인 멧새 소리와 시의 관계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Q2. 따뜻하고 밝은 멧새 소리와 차갑고 정적인 시의 분위기를 대조했다고 봐야할까요? 아님 제목도 백석 시인에 맞춰 그리움으로 상정해야할까요?
    Q3.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에서 '당신'은 '나'의 이상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23.05.23 18:42

    <멧새 소리>
    1. 제목과 내용과의 상관성은 적절한가?
    2. 화자의 정서는 추상적으로 예측만 가능하지, 시에 두드러지게 나타나있지 않다. 좀 더 구체적인 서술이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3. 화자가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과연 무엇일까? 어떤 사건을 겪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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