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
권예자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둡다. 별은 없다. 어려선 자주 만났던 별이고 사춘기엔 일부러 찾아보았던 별이지만, 나이 들면서 별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만큼 현실적인 삶에 부대껴 한가한 시간도 없었지만, 혹여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가 있어도 휘황한 네온과 가로등에 익숙한 눈이 별을 찾아내지 못하였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일부러 별을 찾아보는 것은 신호를 기다리며 멈추어 선 승용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이 나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푸치니의 별은 슬프고 비장하다. 그의 오페라 「토스카」 3막에 나오는 이 곡은 오페라를 잘 모르는 내가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아리아 중 하나다. 오늘 총살형을 당할 화가 카발라 도시는 편지를 쓰다가, 연인 토스카를 생각하며 노래 부른다.
별들은 반짝이고
대지는 향기로운데
저 화원 문을 열고
가벼운 발걸음소리 났네
……
나 이제 죽게 되오
나 이제 죽게 되오
……
사실 이 노래는 별은 배경에 지나지 않고, 연인을 두고 죽어야 하는 한 남자의 처절한 마음과 그리움이 담겨 있다. 그런데도 나는 이 아리아를 들을 때마다 별을 생각한다. 냉정하고 차갑지만 아름답기 그지없는 별밤이 생각난다. 이유는 간단하다. 오페라의 두 주인공 카발라 도시와 토스카는 그 별빛 아래서 세상을 떠나야 했으므로….
별 하면 생각나는 또 다른 별이 내게는 있다. 그것은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별」이다. 학창 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별은, 스테파네트 아가씨의 고운 모습과 산골목장의 풍경, 사춘기 목동의 순진무구한 첫사랑의 감정이 더할 수 없이 아름답고 섬세하게 나타나 있어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던 글이다.
「별」을 배우던 날, 선생님은 학생들 몇을 선정하여 돌아가며 책을 읽게 하셨다. 그때 내가 읽은 대목은 스테파네트 아가씨와 목동이 별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이었다. 그 내용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기억되는 것은 마굴론(목동의 별)이 프로방스(토성)를 7년 동안 쫓아가서 결혼한다는 부분이다.
먼발치에 숨어서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인근 백 리 안에서 가장 예쁘다는 스테파네트 아가씨와 양치는 목동의 만남. 그 아가씨에 대하여 품어온 소년의 내면을 흐르던 보드랍고 촉촉한 감정, 대화, 산골목장의 밤 풍경 묘사 등은 다른 글에서 느낄 수 없는 따뜻한 감동을 나에게 주었다.
별 이야기를 듣다가 소년의 어깨 위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잠든 아가씨를 지켜보며, 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 하나가 제 어깨 위에 앉았다고 여기며 목동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그 아름다운 문체와 주인공의 순수함이 사춘기인 내게 얼마나 깊게 전이되었던지 도데의 별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소녀처럼 아니 산골목장의 양치기 소년처럼 가슴이 설레고 또 설렌다.
다음으로 내가 간직한 별은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다. 서른일곱 젊은 나이에 자살한 고흐가 그 삶의 마지막 무렵에 정신병과 싸우며 그린 작품이라는 「별이 빛나는 밤」은 전체 화폭의 반 이상이 모두 별이다. 그 별 무리는 금방이라도 마을을 덮치고 말듯 화려한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그에 대적이라도 하려는 듯 격정적으로 치솟는 삼나무의 대비가 율동적이다. 나선형으로 돌고 있는 별들의 흐름은 스스로는 도저히 추스르지 못했던, 고흐의 정신적 혼돈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철창이 쳐진 정신병원의 창 너머로 숨 막힐 듯 아름다운 밤하늘과 생 레미 시가의 모습을 보며 고흐는 무엇을 생각하였던 것일까?
10년이라는 짧은 작품 활동 기간에 900여 점의 명작을 남겨 후배 화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로 꼽는다는 고흐. 그러나 생전에 팔린 그림은 단 한 점뿐이었다는 현실적 좌절감이나, 수시로 찾아오는 정신병의 발작, 가까웠던 고갱과의 결별로 인한 외로움들이 크고 작은 알갱이가 되어 그 별 무리 속에 돌출되어 나타난 것은 아니었을까?
그의 또 다른 별 그림인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도 주먹만 한 별들이 하늘 가득히 반짝이다가 급기야 론강에 잠겨 새로운 별을 잉태한다. 마을과 별과 불빛이 강물을 매개로 상응하는 환상적인 풍경이 황홀하다. 그뿐인가 그 속을 산책하는 가난하고 피곤해 보이는 두 남녀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이 그림이야말로 한 장으로 된 시가 아닐는지…….
어려서 별을 참 좋아했었다. 그중에서도 오리온 성좌의 삼왕성을 매일같이 눈여겨본 때가 있었다. 삼왕성의 별을 우리 가족의 별이라고 정해 놓고, 세 개의 별이 더 가까워지기를 바라곤 하였다. 그 별들이 가까워지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가 돌아오실 것 같았고, 객지에 계시던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르며 집으로 오실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돌아오지 못하셨고, 나이가 들면서 내가 별에 걸었던 기대는 서서히 잊혀갔다.
나는 오늘 오랜만에 별 없는 하늘을 바라보며, 기억 속의 별들을 차근차근 꺼내 들여다보았다. 그러면서 고흐의 소용돌이치는 별 무리 속에서 길을 잃기도 하였고, 푸치니의 아리아를 들으며 슬픔에 잠겨도 보았다. 그리고 도데의 별 안에서 잠시 어린 소녀로 되돌아가기도 하였다.
환경오염으로 하늘의 별들은 흐려졌어도, 내 마음속에 깃든 별들은 아직도 변함없이 총총하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라던 고흐. 떠난 지 120년이 가까운 고흐가 오늘 밤 나를 꿈꾸게 한다. (2007)
첫댓글 별은 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을까요? 잡을 수 없어 더 영롱해보이겠지요? 한낱 먼지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거리가 빚어낸 창작물이 아닌가해요. 때로는 허상속에서 우리는 위안을 얻을 때가 많은 거 같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어려서 보던 그 별들 지금은 다 어디에 숨어 있는지?
땅 위에 스타가 하도 많아서, 슬며시 숨어버렸나 봅니다. ㅠㅠㅠ ......
잘 읽었습니다
한결 같으신 송 선생님,
따스한 마음에 늘 감사합니다.